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이영미의 스포츠 ZOOM 人

“슬펐다, 아팠다, 배웠다, 그래서 변했다”

‘가을남자’ 추신수 단독 인터뷰

  • 토론토=이영미 | 스포츠 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슬펐다, 아팠다, 배웠다, 그래서 변했다”

3/3
아팠기에 얻은 것

그렇다고 흔들리진 않았다. 비난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기자들도 그렇다. 내 연봉을 거론하며 올 시즌 내가 몸값을 못하고 있다며 쉽게 ‘먹튀’라고 표현한다. 잘할 때는 칭찬하고, 못할 때는 못한다고 지적하는 게 기자가 하는 일이니 오케이다. 그러나 나도 사람이다보니 가슴에 콕콕 박히는 글을 읽을 땐 슬프더라.”

추신수는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진 것 같다고 했다.

“아팠던 순간들 덕분에 얻은 게 많다고 본다. 그조차 나한테는 새로운 경험이고, 배움이고, 인생이다. 내가 멘토로 삼은 혜민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차피 안 될 땐, 뭘 해도 안 될 때는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라’고. 굉장히 큰 도움이 된 메시지다. 야구가 안 된다고 해서 세상이 끝난 게 아니지 않나. 난 야구만 슬럼프였을 뿐 다른 생활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야구를 못한다고 내 모든 삶이 불행해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족과 더 살갑게 지낸 것 같다.”

올 시즌 지옥과 천당을 오간 추신수로선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느낌표’를 만들고 있었다. 그가 왜 대단한 선수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는 이렇게 착각하려고 노력했다. ‘보이는 곳보다 보이지 않는 데서 응원을 보내주는 분이 더 많다’라고.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이달의 선수상을 받을 때 정말 기뻤던 것이다.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기 때문에.”

추신수는 지구 우승 달성 소감을 말하면서 아내 하원미 씨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는 클럽하우스에서 샴페인 파티를 하던 중 한국 취재진에게 “늘 나무처럼 내 옆에서 날 지켜봐주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게 “파티 하느라 정신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멋진 말이 떠올랐냐”고 물었다. 그는 “나도 모르겠다.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순간적으로 뜨거운 여름날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를 떠올렸다”고 했다.

“아내와 어린 나이에 만나 12년 동안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빈손으로 시작한 결혼생활이 지금은 남이 부러워할 정도가 됐다. 지금 아내를 만났다면 이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마이너리그 때 처음 만나 함께 고생하면서 사랑을 쌓았다. 아내는 시간이 흐르면서 큰 나무가 됐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지금까지 결혼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일찌감치 은퇴했거나 한국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아내가 옆에서 날 잡아주고 응원해줬기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야구선수 남편과 리틀야구 선수인 두 아들, 사랑스러운 딸을 둔 하원미 씨는 하루 종일 야구로 시작해서 야구로 끝나는 일상을 경험하곤 한다. 서로 다른 팀에서 뛰는 두 아들의 리틀야구 게임에서 소리 높여 ‘파이팅’을 외치다 저녁에는 남편의 경기장을 찾아 응원을 펼친다.

시즌 초반, 남편이 극도로 부진할 때 옆에서 어떤 얘기를 해줬느냐고 묻자 하원미 씨는 이렇게 답했다.

“남편이 야구를 1, 2년 한 게 아니지 않나. 20년 넘게 했다. 야구는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다. 그래서 난 가급적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부상만 없다면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얘기해줬다. 남편이 너무 힘들어할 땐 나도 어떤 얘기를 해줘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래도 오랫동안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쌓으면서 자기 역할을 한 사람이라 믿고 기다릴 수 있었다.”

운동선수의 아내로 산다는 건 자신을 내려놓고 많은 걸 참고 극복해나가는 삶의 연속이다. 마이너리그에서 만나 하나씩 단계를 밟아 지금의 자리에 오른 추신수와 하원미 씨는 단단하고 안락한 가정을 꾸리며 남다른 부부애를 나누고 있다. 돈 많이 버는 남편을 둔 행복한 아내라는 시선도 많으나 기자가 가까이에서 본 하씨는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무기로 세 아이를 키우고 뒷바라지하면서 남편 내조에 최선을 다했다.

“슬펐다, 아팠다, 배웠다, 그래서 변했다”

추신수는 올 시즌 22개의 홈런을 터뜨렸다.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것

토론토 원정경기에는 선수들의 가족도 동행했다. 추신수와 인터뷰를 하던 중에 하씨도 자연스럽게 합석했고, 기자와 인터뷰 아닌 대화를 이어갔다. 하씨는 레인저스 아내들의 모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리더인 벨트레의 선수 아내를 도와 자선행사와 바자 등을 열며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들을 해나간다고 한다.

“베테랑 선수들의 아내들이 중심축인데, 벨트레 선수의 아내와 뜻이 잘 맞는 편이라 좋은 일 하는 데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경매도 하고, 물건도 팔아서 남는 수익금으로 기부도 하고, 아픈 아이들을 돕기도 한다. 레인저스에선 벨트레 부부와 특히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 원정경기에 동행하면 부부끼리 만나 같이 저녁을 먹으며 아이들 교육 문제, 살아가는 얘기를 나눈다. 그들도 어린 나이에 만나 우리처럼 세 아이를 낳아 키우다보니 사는 모습이 정말 비슷하다. 남편들 성향도 비슷해서 벨트레나 무빈 아빠나 서로를 믿고 의지한다.”

인터뷰 말미에 추신수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실력이 부족해서 슬럼프가 오는 게 아니다”라며 “세상에서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일은 ‘정신, 멘털’이다”라는 얘기를 꺼냈다.

“야구를 후회 없이 하고 싶다. 어떤 상황도 극복하고 이겨내라는 가르침이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맞은 포스트시즌이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만 즐겁게 야구하고 싶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포스트시즌에 쏟아붓겠다.”

추신수의 ‘가을야구’는 10월 13일 현재 진행 중이다. 2승 2패.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디비전 시리즈 마지막 한 경기를 남겨뒀는데, 그는 늘 그랬듯이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쉬운 길을 걷지 못했다. 항상 문제가 있었고,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도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메이저리그 추신수’란 타이틀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야구한 날보다 야구할 날이 적게 남았지만 요즘처럼 야구장 오는 게 즐거운 때가 또 있었을까 싶다. 이 기쁨을 제대로 누릴 것이다. 우리 팀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신동아 2015년 11월호

3/3
토론토=이영미 | 스포츠 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목록 닫기

“슬펐다, 아팠다, 배웠다, 그래서 변했다”

댓글 창 닫기

2023/0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