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혈당수치 320mg/dl
부산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던 남편 권씨는 이른 나이에 한 가정의 가장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자연히 책임감도 늘었다. 하루 2교대로 18시간 이상 운전을 하는 것은 기본. 손님을 태우고 운행하다보면 제시간에 맞춰 식사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했다. 평소 건강에는 신경 안 쓰고 입맛에 맞는 음식만 찾던 권씨는 그마저 과자나 빵으로 대충 때우기 일쑤였다.
“야간 운전을 자주 하다보니 늘 피곤하고 졸음도 쏟아지고…그때마다 커피를 계속 마셨죠. 하루에 자판기 커피를 30잔 넘게 마셨어요.”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는 조금 다른 피로감이 찾아왔다. 엄청난 졸음이 몰려오면서 갈증도 났다. 날이 갈수록 식욕도 없어지고 짜증만 늘어 아내와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

가마에서 1500℃ 전후의 고온으로 구워낸 죽염을 들고 있는 권오민 씨.

일상조차 흔들리자 급기야 병원을 찾은 권씨. 혈액검사 결과 혈당수치 320mg/dl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에 입이 딱 벌어졌다. 정상치인 100mg/dl의 3배가 넘었다. 하지만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년 뒤 재검사를 받으면서 당뇨 합병증인 간염이 발견된 것. 순간 당뇨로 오랫동안 고생하다 간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당뇨와 중풍으로 사망한 형들에 대한 아픈 기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병원에서는 별다른 약이 없으니 그저 잘 먹으라고만 했다. 하지만 당뇨는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도 없는 질병이었다.
“의사의 말은 이해가 갔지만, 실생활에서는 전혀 적용이 안 되는 거예요. 내 몸은 하나인데 잘 먹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려 먹을 수도 없고….”
우선 무질서하던 생활습관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잇몸이 붓고 피가 나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음식을 먹을 때도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당뇨 합병증으로 이번엔 풍치가 찾아온 것이다. 풍치는 앞니를 제외한 8개의 치아를 앗아갔다. 고작 서른한 살의 일이었다.
그렇다고 병원에 자신의 목숨을 내맡겨둘 수도 없었다. 한번은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간호사가 주사를 놓는 순간, 원인을 알 수 없는 충격으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게 바로 저승 가는 길이구나’ 싶었어요. 그 뒤로는 겁이 나서 병원을 갈 수가 없겠더라고요. 산으로 들어가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이후 홀로 지금의 산속으로 들어오게 된 권씨. 당시 부산에서 작은 분식점을 하던 아내를 아무것도 없는 산속으로 데려와 고생시킬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아내, 아이들과 생이별을 했다.
이때 죽염을 만들던 지인이 권씨의 딱한 사정을 듣고 죽염을 권했다. 죽염으로 양치하는 방법까지 알려줬다. 그렇게 죽염과의 첫 인연이 시작됐다. 권씨는 그날 이후 죽염으로 양치하고, 밥상 위 소금도 죽염으로 바꿨다. 한두 달쯤 지났을까. 잇몸이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더니 3개월쯤 지나자 피로감이 줄어들고 몸도 가벼워졌다.
죽염의 매력에 푹 빠진 권씨는 지인을 도와 죽염을 만들었다. 그러다 7년 전부터 혼자서 죽염을 굽기 시작했다. 대나무는 경남 사천에서 실어오고, 장작으로 쓸 썩은 소나무는 근처의 산에서 직접 주워왔다. 예전에 아팠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30kg이 넘는 고목을 지고 나르는 것도 이제는 거뜬하단다.
좋은 죽염을 만드는 데 필수인 것이 대나무, 천일염, 황토. 대나무 안에 천일염을 가득 채우고 황토로 입구를 막은 뒤 가마에서 12~15시간을 굽는다. 이렇게 하면 대나무는 연료가 돼 타버리고 단단해진 소금 기둥만 남는다. 이 과정을 8번 반복한 뒤 마지막으로 고온에서 한 번 더 녹인 후 식혀야만 제대로 된 ‘9회 죽염’이 완성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