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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장쩌민 주석도 감탄한 ‘현대판 우공(愚公)’

중국 교과서에 실린 제주 ‘생각하는 정원’ 성범영 원장

  • 황의봉 | 세종대 초빙교수, 前 동아일보 베이징특파원

장쩌민 주석도 감탄한 ‘현대판 우공(愚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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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더 강인하게

그는 이 글에서 “…이처럼 천태만상의 많은 분재를 보고 나니 분재에 관한 종전의 내 관점이 크게 달라졌다. 분재에 관한 나의 보잘것없는 지식은 어릴 적 공즈전의 ‘병매관기’를 읽고 난 후 뇌리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것이었다”며 성 원장과의 대화를 통해 분재는 나무를 오히려 강인하게 만들 뿐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 예술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고 강조했다. “분재를 기르는 일이 나무를 괴롭히는 일이라면 그 나무는 일찍 죽었어야 한다. 하지만 나무들은 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제한된 공간에서 생존해내고 더 훌륭하게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 우리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성 원장의 설명에 공감한 것이다.

판 총편집이 읽었다는 ‘병매관기’는 청나라 때의 유명한 작가 공자진(공自珍)이 쓴 글로, “곧은 것을 찍어내고 촘촘한 것을 쳐내고, 바로 선 것을 솎아내게 하여, 매화를 일찍 죽게 하고 병들게 하는 것”이라고 분재를 비난하는 내용이다. 이 글은 당시 청나라 권력층이 백성 개개인의 개성을 말살해 입맛에 맞는 인물로 만들어가려는 의도를 비판한 것이기도 했다. 판징이 총편집의 ‘신병매관기’는 분재의 발상지 중국에서 분재 문화의 복권(復權) 신호탄이 됐다. 많은 중국인이 공자진의 ‘병매관기’ 이후 비딱하게만 보던 분재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됐다는 것이다.

‘신병매관기’는 1995년 11월 17일자 인민일보에 실렸고, 그날 장쩌민 국가주석이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장 주석은 방한 기간 중 제주로 와 분재예술원을 찾았다. 장 주석은 전시된 분재를 일일이 살펴가며 수형(樹形)과 수세(樹勢)를 관찰했고 설명서도 꼼꼼히 읽는 등 관심을 보였다.

성범영 원장으로부터 분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정원을 감상한 장 주석은 귀국 후 간부들에게 “한국 제주도에 있는 분재예술원은 일개 농부가 정부의 지원 없이 혼자서 세계적인 작품으로 만들어낸 곳이다. 그곳에 가서 개척정신을 배우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 원장에 따르면 장 주석의 정원 방문은 판징이 총편집이 다녀간 뒤 주석에게 보고해 결정됐다고 한다.



“가서 개척정신을 배우라”

인민일보에 ‘신병매관기’가 실리고, 장쩌민 주석이 분재예술원을 방문하자 성범영 원장과 그의 분재정원은 순식간에 중국에서 유명세를 타게 됐다. 국가 지도급 인사들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중국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각종 언론매체마다 탐방 기사를 싣기에 이르렀다. 인민일보에만 6차례나 보도된 것만 봐도 중국인의 관심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다녀간 중국의 정관계 고위직 인사만 6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렇게 성범영 원장은 중국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중국의 각 기관이나 대학 등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했고, 이에 따라 성 원장은 바쁘게 중국을 드나들어야 했다. 지금까지 중국 방문횟수만 100차례가 넘고 많은 중국인, 특히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깊은 교분을 맺게 된다. 성 원장이 중국 지인들로부터 기념으로 받은 글과 그림만도 1000여 점에 달한다.

성 원장과 그의 생각하는 정원이 중국에 소개된 지 20년이 된 올해에는 마침내 교과서에 등재됐다. 중3 ‘역사와 사회’ 교과서 하권 제5단원에 한국의 발전상을 소개하면서 한국인 ‘민족정신의 전범’으로 성 원장을 거론했다.

“성범영은 예전에 서울의 한 셔츠 회사 사장이었다. 1963년 그는 처음으로 제주도에 발을 디뎠다. 일본 식민통치의 약탈과 착취가 남긴 황량한 민둥산을 바라보며 그는 도시생활을 버리고 제주도를 개간하기로 결심했다. 제주도는 화산섬으로 돌이 많고 흙이 적다. 물도 전기도 없는 초라한 거주 여건 속에서 성범영은 황무지를 개간하고 나무를 심었다. 20여 년 동안 그는 모두 15만t의 돌과 흙을 운반했다. 나날이 다달이, 한 해 또 한 해가 지나면서 1992년 마침내 전체 면적 3만여 ㎡의 정원을 열었다.

開拓進取 堅忍不拔 自强不息

장쩌민 주석도 감탄한 ‘현대판 우공(愚公)’

성범영 원장의 사연이 실린 중국 교과서.

성범영은 일개 농부의 힘으로 오랜 생명의 시간을 들여 분재원-생각하는 정원을 조성했다. 그가 분투노력하던 역정은 공교롭게도 ‘한강의 기적’과 동시에 이뤄졌으며, 성범영이란 이름은 한국인의 개척진취(開拓進取), 견인불발(堅忍不拔),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상징이 됐다.”

성 원장이 실린 교과서는 올해 2학기부터 일제히 중국 전역의 중학교에 배포됐고, 5000만 명이 넘는 학생이 배우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소설가 이호철 씨는 잡지 ‘좋은 생각’에 기고한 글에서 중국 지도층이 인민에게 모범적인 사례를 제시하려는 의도에서 성 원장을 주목한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과거 마오쩌둥 시대에는 이상적인 노동영웅으로 뇌봉이라는 근로자를 내세웠으나, 장쩌민 정부에서는 그에 필적할 만한 인물을 찾아내지 못하다가 제주도에 와서 성범영을 만나 ‘이 사람이다!’ 하고 낙점했다는 것이다.

성범영의 생각하는 정원이 이처럼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까닭은 단순히 분재 기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실 분재 자체만 놓고 보면 이곳이 아니어도 멋진 분재 작품은 흔하다고 할 수 있다. 성 원장 자신도 “세계 최고의 아름다운 정원이라고 칭찬들을 하지만, 분재만 놓고 보면 사실 부끄러운 점도 많다. 향나무 분재만 하더라도 일본에는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작품도 많지만 우리 정원에는 그런 고가의 분재가 없다. 소나무 분재도 우리 정원에 수억 원짜리는 없다. 대신 모과 분재나 한국향나무는 우리 것이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다고 본다. 분재와 정원수와 돌과 오름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구도로 만들어진 분재정원은 우리가 유일할 것이다”라고 자평한다.

필자 역시 생각하는 정원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은 분재 작품의 뛰어난 미적 성취와 함께 정원을 이루는 각 요소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라고 본다. 여기에 더해 근 50년에 걸쳐 황무지를 낙토로 바꾼 성범영 원장의 불굴의 개척정신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생각하는 정원이 주는 감동의 9할은 눈에 보이는 작품보다, 이를 만들어낸 피와 땀과 눈물의 역사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쯤 해서 정원 개척의 스토리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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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봉 | 세종대 초빙교수, 前 동아일보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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