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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느림의 철학’ 이상향은 절실함이 있는 야구”

시속 130㎞ ‘최동원賞’ 투수 유희관

  • 이영미 | 스포츠 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내 ‘느림의 철학’ 이상향은 절실함이 있는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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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애와 결혼

“하루라도 빨리 결혼하고 싶다. 결혼한 선수들이 데려온 아이들을 보면 내가 더 좋아할 정도다. 내 아이가 생긴다면 정말 눈에 보이는 게 없을 것만 같다(웃음). 그런데 결혼은 정말 좋은 인연으로 맺어져야 한다. 둘만 좋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요즘 거리를 돌아다니면 알아봐주시는 분이 정말 많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연애하기가 어렵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가 없으니.

시즌 중에 골프선수와 열애설이 났다(스캔들의 실상과 관련해 유희관이 입을 연 것은 처음이다! 유희관은 시즌 중 프로골퍼 양수진과의 열애설에 휘말렸다). 어느 매체에 사진이 찍혔고, 기자들로부터 이런저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신기한 건 열애설 직후 자연스럽게 정리가 됐다는 점이다. 그때만 해도 몇번 만나서 식사하는 사이 정도였는데 기사가 나오니까 서로 어색해지고 부담스러워 더는 만날 수가 없었다. 아, 이래서 연예인이 열애설 나면 안 되는구나 싶더라.”

# 야구선수의 사생활

유희관은 자신이 만나는 여성이 야구에 대해 깊은 지식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야구 팬을 자처하는 여성이라면 만나서 야구 얘기만 할 테니 야구를 ‘조금만’ 좋아하는 여성이길 바란다고 했다. 얘기가 나온 김에 야구선수들의 사생활에 대해 물었다. 원정도박 파문 이후 프로야구 선수들의 사생활이 주목받고 있다.



“운동선수도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라 사생활과 관련해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더욱이 프로야구는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는 종목이다. 어린아이들도 좋아하는 스포츠라 더 큰 책임감을 갖고 생활해야 한다. 그런 현실에서 원정도박 사건이 터진 건 같은 야구인으로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포털사이트에 ‘유희관’을 치면 연관검색어로 ‘인성’이 뜬다. 승부욕이 철철 넘치는 내가 마운드에서 보인 행동 때문이다. 예를 들면 포수인 양의지에게 내가 어떤 제스처를 취했다고 하자(유희관은 방송 화면에 잡힌 모습 탓에 욕을 먹은 적이 있다). 그건 양의지에게 불만을 표출한 게 아니라 제구가 안 되는 부분과 관련해서 신호를 주고받다가 나 자신에게 화를 낸 것이다. 그래도 중계 중인 TV를 의식해서 조심했어야 했다. 나의 인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고민도 많이 했다. 처음에는 그런 시각으로 날 바라보는 시선이 원망스러웠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고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내 잘못이기 때문이다.”

# 김태형 감독

두산 베어스가 전임 송일수 감독을 단 1년 만에 경질하고 김태형 감독을 영입한 건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김 감독은 두산에 14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안겼다. 그리고 국내 최초로 선수(1995년, 2001년)와 감독(2015년)으로 한 팀에서 우승한 야구인이 됐다. 유희관이 생각하는 김태형 감독은 어떤 사람일까.

“감독님이 처음 부임했을 때 선수들을 모아놓고 ‘두산다운 야구를 하자’고 하셨다. SK 코치로 있을 때 두산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며 ‘허슬 두’의 이미지가 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스프링캠프 때도 야구장에서 야구장으로 이동할 때 모두 뛰어다녔다. 선수들에게 농담도 잘하고 유머러스하지만 내면의 카리스마가 대단한 분이다. 시즌 개막 전까지만 해도 ‘초보 감독’이란 꼬리표 때문에 감독님에 대해 불안한 시선이 많았지만, 두산 출신 감독이다 보니 팀에 대한 이해가 깊고 선수들을 잘 배려하셨다.

내가 정규시즌 후반기 접어들면서 부진을 거듭할 때 다른 감독이라면 날 아예 엔트리에서 제외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나를 한국시리즈까지 끌고 가신 걸 보면 인내심이 엄청난 것 같다. 내가 성적을 내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다가오셔서 ‘고개 들어라. 우승은 하늘이 정해주는 거니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마라. 네가 18승을 못했다면 두산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어깨를 다독여주셨다.”

# ‘니느님’ 니퍼트

더스틴 니퍼트는 2011년 두산 베어스와 계약한 후 해마다 두 자리 승수를 올렸다. 그러나 올 정규 시즌에선 6승5패, 평균자책점 5.10으로 부진했다. 게다가 부상 등으로 3개월가량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올해 연봉이 150만 달러. 역대 외국인 최고 몸값이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에서 발군의 활약으로 두산 마운드를 지켜냈다.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7이닝 2실점, 플레이오프 1차전과 4차전, 한국시리즈 2차전과 5차전에선 무실점 완벽투로 분투했다.

“니퍼트는 우리한테 외국인 선수 그 이상이다. 배울 점도 많고 선수들을 대하는 행동에서도 베테랑다운 무게감이 묻어난다. 두산과 5년째 인연을 맺어 오면서 선수들도, 니퍼트도 서로 가족 같이 여긴다.

니퍼트는 내게도 중요한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줬다. 2013년 5월 4일, 상무에서 제대한 후 첫 복귀전을 치른 날이다. 원래 그날은 니퍼트가 선발로 나설 예정이었다. 그런데 니퍼트가 감기 몸살로 몸져눕는 바람에 갑자기 내가 선발로 나가는 행운을 얻었다. 잠실 라이벌 LG와 ‘어린이날 더비’로 갖는 중요한 경기였다. 두산 팬들은 니퍼트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다가 내가 선발로 마운드에 오르니 여기저기서 실망하는 소리가 들렸다. 솔직히 나도 내 공에 자신이 없었다. 상무에서 좋은 활약을 했지만 프로 마운드이고, 제대 후 복귀전 첫 무대라 절로 긴장됐다. 그런데 그 경기에서 무실점으로 프로 데뷔 5년 만에 첫 승을 챙겼다. 그날 경기를 본 LG 팬들이 ‘야, 도대체 유희관이 뭐 하던 애냐?’고들 했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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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 스포츠 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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