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호

심층취재

남북 철도·도로 연결 내막

“나서는 기업 미국에 찍혀 망할 것” 〈정병국 의원〉

  • 허만섭

    mshue@donga.com

    입력2018-11-28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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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핵화 안 됐는데 막대한 비용 다 부담”

    • “22조~33조 원 투자…큰 폭 적자 날 듯”

    • “다른 데 써도 알 수 없어”

    • “유엔 승인 가능성 희박”

    • ‘대북 퍼주기, 예산 전용, 한미관계 훼손’ 논란

    두만강 철로를 지나고 있는 북한 화물열차(위). 1월 25일 경의선 도로를 통해 입경하는 북측 동계올림픽 선수들과 관계자들(아래). [동아DB]

    두만강 철로를 지나고 있는 북한 화물열차(위). 1월 25일 경의선 도로를 통해 입경하는 북측 동계올림픽 선수들과 관계자들(아래). [동아DB]

    “남과 북은 금년 내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갖기로 하였다.”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합의한 내용이다. 이렇게 ‘평양공동선언’에서 “철도” “도로” “금년 내” “착공”을 못 박음으로써 이 문제는 한반도 정세의 핵심 이슈가 됐다.

    동해선은 동해안을 따라 강원도 양양에서 함경북도 안변을 잇는 800km 노선이고, 경의선으로 불리는 서해선은 서울-개성-평양-신의주를 잇는 430km 철도다. 이 남북 철도·도로 이슈는 대북 퍼주기, 예산 전용, 한미관계 훼손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대북 퍼주기 논란과 관련해, ‘경협기반(무상)·경협기반(융자) 비공개 사업 내역’이라는 통일부 문건은 ‘경협기반(무상)’ 항목의 2019년 예산안에서 철도 협력에 707억3400만 원을, 도로 협력에 950억 원의 예산을 뒀다. 이어 ‘경협기반(융자)’ 항목의 2019년 예산안에선 철도 협력에 633억7500만 원을, 도로 협력에 452억80억 원을 뒀다.


    “무상철도 700억, 무상도로 600억”

    내년부터 북한 내 철도·도로 건설에 정부가 상당한 액수의 공사비를 무상 혹은 융자로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정치권에선 “내년은 시작에 불과하다. 북측 철도·도로 공사비를 거의 한국이 부담하게 될 것 같다”는 추정도 나온다.

    불투명한 예산 집행 논란과 관련해, 올해 기타경제협력사업 비공개 예산 2350억 원 중 1300여억 원은 금강산 피해기업 지원 같은 대남 지원에 쓰인 것으로 돼 있었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원래 계획과 다른 곳에 대북 예산이 전용된 것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내년엔 불투명성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정부가 내년 남북경협 관련 사업에 편성한 예산은 1조977억 원인데 이 중 38%인 4172억 원이 사용처를 밝히지 않은 비공개 예산이다. 이 돈은 “깜깜이 예산”으로 불린다. 전체 예산 대비 비공개 예산 비율이 지난해보다 2배 더 많아졌다.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 소장은 ‘유튜브’에서 “‘내년 대북 예산 중 상당 부분을 편성 목적과 다르게 전용해 쓰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가 나온다”고 주장했다.

    ‘철도·도로 연내 착공’을 놓고 한국과 미국 간 균열이 생기는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정부는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을 이행하기 위해 연내 착공한다는 입장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을 합의대로 올해 내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반면, 미국은 철도·도로 관련 물자가 북측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 대북제재에 구멍을 낸다며 못마땅해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9월 17일 철도·도로 연결 연내 착공에 대해 “한미 간 사전 논의가 없었다”면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 장관은 이 점을 어느 정도 인정했다. 남북 공동 북측 철도 현지 조사는 추진되지 못했다. “미국의 반대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미 간 워킹그룹에 대해서도 미국 워싱턴 외교가 인사들은 “그간 이견이 얼마나 심했으면 이런 걸 만들겠나?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대북사업을 집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미국 정부의 제어판”이라고 말한다.


    “쉽게 가려다 자기모순 빠져”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을 조사해온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은 ‘신동아’에 “정부안대로 하면, 비핵화가 안 되는데도 우리가 북측 철도·도로 건설비를 모두 부담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 내년도 남북 철도·도로 연결 예산이 공개됐는데.

    “(정부가) 선제공제라고 2400억 원인가를 만들어놓고 임의로 쓰겠다고 했다가 저희에 의해 문제 제기를 받는 상황이다.”

    - 내년부터 북측 철도·도로 공사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겠다는 것으로 봐도 되나?

    “내년 예산엔 이 세목이 2000억 원 정도 증액됐다. 정부 예산이 470조 원인데 이 정도 증액은 심대한 재정 부담을 가져오지 않는다. 남북관계에 막대한 예산이 들어갈 경우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으라고 돼 있으므로 이 정도는 비준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정부가 비준동의를 받겠다고 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

    - 당장 1년치 내년 예산만 놓고 보면 그렇지만.

    “물론 장기적으로, 북한 내 철도·도로를 완성할 때까지 들어가는 돈을 따져보면 수조 원 이상 투입될 것이다. 이런 경우엔, 비준동의를 받아야 한다. 결국 정부가 국회에 비준동의를 받기 위해 수천 억원만 갖고 와선 안 된다. 북한에 들어갈 총액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가 쉽게 가려다 자기모순에 빠진 거다.”

    - 통일부 문건에 철도·도로 무상지원으로 돼 있다. 무상지원은 한국이 북한에 철도와 도로를 무상으로 건설해준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 철도·도로사업 대북 융자에 대해서도, ‘사실상 거저 주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다.

    “무리한 말은 아니다. 우리가 북한에 빌려준 3조 원, 추가적으로 받아야 하는 1조 원, 지금 못 받은 채 그대로 있다.”


    “면피하면서, 감춰가면서”

    - 무상지원과 유상융자를 통해 한국이 북한 내 철도·도로 공사비를 다 부담하는 것인가?

    “다 부담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만 완전히 제거된다면 부담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비핵화가 전제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국민이 자꾸 브레이크를 거는데, 정부는 퍼주기를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는 면피를 해가면서, 감춰가면서, 이 사업을 추진하려고 애쓰는 듯하다. 이게 요점이다.”

    - 북한 내 철도·도로 연결 예산의 세부 내역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

    - 돈이 철도·도로 건설에 집행되는지 아니면 김정은의 통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가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세부 내역을 달라고 하는 거다. 국회의 동의를 받으려면 구체적 안을, 비용추계를 제시하라는 것이다.”

    정 의원은 “예산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아 판문점 선언에 대한 비준도 해줄 수 없고 대북 예산도 통과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 북한이 남북 철도·도로 연결에 집착하는 것에 대해 그는 “원산을 관광지로 개발하고 신의주에 특구를 만들려면 일단 접근이 가능해야 한다. 자기네 돈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사업이다. 한국 돈으로 사회간접자본을 깔아놔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비무장지대를 관할하는 유엔사령부는 철도 관련 물자가 북한에 올라가는 것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진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내 허락 없이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제재를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 의원은 “유엔사를 실질적으로 지휘-통제하는 건 미군이다. 미국 자체 규제에도 걸리니 미국이 동의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철도·도로 연결이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 2397호에도 저촉된다고 보나?

    “당연히 저촉된다. 민간 기업이 이 사업을 해야 하는데, 어느 기업이라도 북한에 들어가면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제재를 받는 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 기업, 은행, 정부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는 방안)에 걸려 회사가 망한다. 정부가 직접 하면 나라가 망한다.”

    - 정부는 한미관계가 불편해지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철도에 의욕을 보이는데.

    “돌파구를 마련해보겠다는 그런 의지는 좋다. 그러나 의지만 갖고 되는가?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속도를 조절해가면서 하라는 것이다.”

    정 의원은 “대북 예산을 편성만 해놓고 쓰지 않은 과거 정부와 달리, 현 정부는 남북 합의에 의해 대북 예산을 실제로 쓸 수 있다. 국회가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비공개예산 편성이 관행이라고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한미 간 의견 충돌과 관련해,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전 국립외교원 교수)도 ‘신동아’에 “철도공사가 진행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이 안 된다고 할 때 우리가 진행하면 우리가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신 센터장은 “정확하게 해두자면, 철도는 사회간접자본이므로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 2397호의 면제 사유가 된다. 다만 유엔 내 ‘대북제재위원회’가 면제해줘야 하는데, 이 위원회를 주도하는 미국은 면제해줄 의사가 없다. 비핵화 조치가 선행돼야 철도·도로 연결도 가능하다고 인식하는 것 같다. 면제받기 전까진 제재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 엄청난 재정적 부담”

    여당 의원들이 10월 25일 경기 파주시 경의선 남방한계선 통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동아DB]

    여당 의원들이 10월 25일 경기 파주시 경의선 남방한계선 통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동아DB]

    한국이 북한 내 철도·도로 건설비를 거의 다 부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모양새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재훈 한국교통연구원 전략혁신기획단장은 ‘경의선 경제적 효과’ 문서에서 “남한은 자본과 기술을 투자하고 북한은 노동력과 토지를 제공하며 광물자원으로 투자비를 보상”하는 투자방식을 제시했다. “이런 남북한 비용 ‘분담’ 방식이 아닌 한국만의 비용 ‘전담’ 방식으로 남북 철도·도로 연결이 진행되면, 공공부문 부채 1036조 원을 떠안고 있는 한국에 큰 재정적 부담을 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북한 철도·도로 사정은 매우 열악하다. 평양-신의주 간 경의선 열차 운행속도는 경부선 무궁화호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이 떠안을 북한 철도·도로 개선비용이 경이적으로 치솟을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2012년 남북통합교통망 구축에 22조~33조 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교통연구원은 2005년 한 보고서에서 “경의선 복선전철화에 9조1000억 원이, 동해선 단선전철화에 10조 원이 들어갈 수 있다”고 계산했다. 윤성학 고려대 러시아CIS연구소 교수에 따르면, 선박에 비해 철도의 운송 효율이 낮아 북한 경의선과 동해선은 한국 자본에 의해 개선되더라도 큰 폭의 적자를 면치 못할 것으로 추정됐다.


    “협상전략 차원에서”

    ‘대북 퍼주기, 깜깜이 예산’ 논란과 관련해 통일부는 “북한과의 협상전략 차원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신범철 센터장은 “유엔 승인이 나지 않은 지금 단계에서 공개할 이유는 없다. 다만 투명한 대북정책을 펴기 위해 통일부는 국회와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신동아’는 통일부 해당 부서의 견해를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통일부 측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미국이 남북 철도 연결에 반대한다는 주장에 대해 외교부는 “폼페이오 장관이 격분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모든 과정에서 미국 측과 긴밀히 협의해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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