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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근의 고전환담古傳幻談

낙랑공주傳

왕자 호동에게 띄운 편지

  • 윤채근 단국대 교수

낙랑공주傳

고구려 고분 무용총 벽화. 뿔나팔을 부는 사람이 그려져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고구려 고분 무용총 벽화. 뿔나팔을 부는 사람이 그려져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낙랑국 공주인 나 최이란은 고구려의 왕자 호동에게 이 답신으로 영결을 고한다. 왕자는 이 글을 다 읽기 전 한 번은 기쁠 것이며 다른 한 번은 슬플 것이다. 나아가 이 모든 일이 왕자가 자초한 것임을 깨닫는다면 그대는 끝내 내 시신 앞에서 통곡하리라. 

왕자가 옥저의 들에서 나의 부왕을 만난 건 전혀 우연이 아니었다. 부왕께선 그대가 사냥 나온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함정을 팠다. 그건 왕자도 마찬가지였을 테니 과연 함정이라 불러도 좋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대는 낙랑 병탄을 도모할 기회를 엿보고자 부왕에게 접근해왔고 교활하게도 함정 안으로 한쪽 발을 슬쩍 집어넣었다. 그대는 살해당할 수 있음에도 부왕을 따라 낙랑의 궁성에 들어왔다.


독배를 버린 까닭

왕자를 위한 연회가 벌어지기 직전, 부왕께선 두 개의 잔을 들고 고민하셨다. 하나는 독배였다. 독살한 왕자의 목을 고구려로 보내 우리의 의지를 천명하고 미구에 벌어질지 모를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셈이었다. 참수된 왕자의 목보다 쓸모 있는 게 어디 있겠는가? 다른 하나는 최면제를 탄 잔이었다. 부왕께선 잠자리에 능한 궁녀들로 그대를 농락하고 타락시킬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고 계셨다. 

그날 밤, 쾌활하고 씩씩한 왕자에게 매료된 부왕께선 두 개의 잔을 모두 포기하셨다. 나는 더없이 절망했다. 우리 집안은 딸만 여섯이요 배가 다른 막내아들은 타고난 백치였다. 똑똑한 아들에 목마르셨던 부왕께선 왕자의 매력에 흔들려 아무 결단도 내리지 못하셨다. 그대를 살해하려는 뜻을 마지막까지 굽히지 않은 건 바로 나였다. 

주방으로 달려간 난 독배를 들고 그대 앞에 다가서서 고구려와 고구려왕의 장수를 빌었다. 기억하는가? 그대는 술에 반쯤 취해 내가 건넨 잔을 받아 들었지만 부왕께서 잔을 쳐 아까운 독주는 바닥만 적시고 말았다. 부왕을 노려본 난 포기하지 않고 이번엔 최면제를 잔뜩 탄 잔을 기어코 그대 입안에 쏟아 부었다. 과음하신 부왕께서 졸기 시작하실 무렵 그댄 이미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고 난 수월하게 그대를 내 침실로 옮길 수 있었다. 



그렇게 그대 목숨은 잠시 내 손에 놓여 있었다. 궁녀들을 내보낸 난 그대 목에 날카로운 검을 갖다 대고 잠시 즐거웠다. 고구려가 우리 낙랑을 얼마나 괴롭혔던가? 잘 생각해보라. 우리는 한의 황제 무제가 파견한 요동 낙랑군의 유민 출신이다. 낙랑군이 해체되기 시작하자 반은 조선족화된 우린 중원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우리가 반도로 옮겨와 삶의 터전을 일군 것은 낙랑군처럼 한의 첨병 기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우린 그저 조용히 지내며 우리의 정체성이 소멸해갈 어떤 시점까지 연명하면 그뿐이었다. 우린 고구려에 한 줌의 위협조차 되지 않았다. 

한데 그대들은 우리 낙랑을 병탄하려 온갖 패악과 모략을 일삼았고 그대의 부왕은 노골적인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우린 고구려의 위협 탓에 하루도 편히 잔 적이 없다. 그 순간 나는 거의 그대 목을 베기 직전이었다. 칼을 거두게 한 것은 겨우 술에서 깨어나 혼비백산 달려오신 나의 부왕이었다. 그분께선 이상하고 괴이한 말로 날 설득하셨다. 

“이란아. 네가 호동왕자와 혼인하면 우리 낙랑은 고구려와 동맹국이 되는 거다. 훗날 왕자가 고구려왕이 된다면. 생각해보아라. 고구려는 낙랑의 부마국이니 어찌 우릴 함부로 대하겠니? 이보다 슬기로운 꾀가 있으면 말해보아라. 영특한 넌 알아들을 거야.” 

그러니까 부왕께선 나보고 그대를 홀려 통혼의 허락을 받아내란 것이었다. 처음엔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의심했고 그다음엔 딸의 재능과 포부도 몰라보는 부왕께 분노했으며 마지막엔 한없이 슬펐다. 부왕께선 나 최이란을 그 어떤 왕자보다 용맹하고 현명하게 키워놓으시고는 정작 당신의 왕위가 누란지위에 처하자 친딸을 버리고 적국의 아들에게 눈길을 주셨다. 나는 아버지의 연약한 셈법이 초래할 결과를 꿰뚫어보았지만 부왕의 말씀을 따랐다. 내가 순종하는 공주라서? 천만에 그 반대였다. 

나는 굳게 결심했다. 어차피 고구려군과 최후의 일합을 겨뤄야 한다면 여자로서 지닌 내 모든 걸 무기로 쓰겠다고. 내가 아는 고구려는 통혼한 국가라고 봐줄 그런 나라가 아니므로 차라리 우리 낙랑이 통혼을 빌미로 고구려를 방심하게 만든 뒤 먼저 공격하면 될 일이었다. 난 그날 새벽 그대 옆에 누워 아침을 맞이했다.


달콤한 언약

아침 햇살에 눈뜬 그대는 간밤의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자기 옆에서 잠든 내 얼굴을 바라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대는 나를 깨웠고 지난밤 자신이 정중한 남자였는지 물었다. 나는 그러했다 대답하고 거짓 눈물을 흘렸는데 믿을 수 없게도 눈물은 그치지 않았고 나는 정말 스스로 왜 그러는지 알지 못한 채 서럽게 울고 말았다. 왕자여. 그날 아침의 눈물을 기억하는가? 난 까닭 없이 찾아온 슬픔의 광기에 당황해 공주로서의 위엄을 잃고 말았다. 

사람은 왜 다른 이를 연모하는 걸까?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또 그로 인해 멈출 길 없이 깊이 고뇌하며 때론 자기 삶마저 파괴하는 이유는 무얼까? 왕자는 그 이유를 아는가? 나는 안다. 너무나 소중한 게 내 밖에 있기에 마음이 병드는 것이다. 

난 열일곱 해를 낙랑성 안에서만 살았다. 내게 정녕 귀중하고 가치 있으며 잃을 수 없는 것들은 모두 성에 있었다. 성만 지키면 내가 아끼는 세상 전체를 지키는 셈이었다. 왕자는 나의 것을 훔치려 성에 잠입한 낯선 도둑인데도 난 그 아침 그댈 미워하기 힘들었다. 그대는 내 침실에 썩 잘 어울렸으며 그냥 낙랑성에 계속 머물러도 좋겠다고, 그래서 내가 지켜줄 것 중 하나여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눈 감으면 연못 위로 불던 바람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꽃말을 처음 외우며 정원을 달릴 땐 우주가 너무 작을까봐 걱정했다. 달리고 달리면 달의 여신 항아가 사는 궁궐에 닿을 줄 알았다. 온갖 아름다운 것들이 왜 내게만 보였을까? 달콤한 향초 냄새는 어찌 내 코에만 이르렀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고통 없던 열 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아무것도 그대와 나누지 않고 어떤 좋은 기억도 나 혼자만 가지고 살고 싶다.


운명의 눈빛

충남 공주 석장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낙랑의 투구와 벽돌.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충남 공주 석장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낙랑의 투구와 벽돌.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궁궐을 산책하며 그대가 내 귓가에 했던 언약들을 기억하는가? 난 그대가 한 약속의 말들을 믿어서가 아니라 그 말들을 지어낸 그대 정성에 즐거웠다. 세 치 혀의 솜씨만으로 날 어쩌지 못할 것임을 알았을 텐데도 그대는 무던히 우리의 앞날을 치장하기 바빴다. 그러다 문득 왕자 역시 결코 찾아오지 않을 가공의 미래를 덧없이 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걸 깨달았다. 그제야 그대 눈빛이 슬퍼 보였고 그대의 화려한 말에 담긴 진심을 들을 수 있었다. 왕자여. 그댄 자신에게 속지 말라고, 자신의 거짓말로부터 빨리 달아나라고 내게 외치고 있었다. 

나는 운명의 눈빛을 피하는 사람이 아니다. 날 아껴 놓아주려던 왕자뿐 아니라 날 이용해 낙랑을 함락시키려는 왕자도 내가 아는 그 사람이기에 난 둘을 분리할 수가 없다. 왕자가 낙랑을 지키는 열두 가지 방어 장치와 그것들에 연결된 자명고 얘기를 꺼냈을 때, 실은 그대가 내 답을 기다리고 있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평소의 나라면 말꼬리를 돌려 다른 얘기를 꺼냈겠지만 그날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우리의 거짓말 놀이는 어차피 언젠간 끝나야 했다. 내가 자명고의 비밀을 말하려 하자 그댄 어두운 표정으로 날 말렸고 내가 목청을 돋워 자명고를 부수겠다고 외쳤을 때 왕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우리에게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자명고 이야기를 멀고먼 뒷날의 일로 미룬 채 부부처럼 살 수 있었을까? 왕자는 고구려를 버리고 내 옆에서 늙어갈 마음이었을까? 그렇지 않았다면 후회하지도 미련을 갖지도 말라. 나는 거짓으로 쌓은 성에선 행복할 수 없고 차라리 진실 앞에 정직한 영혼으로 죽고 싶다. 

고구려로 돌아가던 날 그대는 하루빨리 청혼하러 돌아오겠노라 약조했다. 하지만 난 묻고 싶다. 왜 날 데리고 떠날 생각은 하지 않았는가? 왜 낙랑을 버리라 권하지 않았던 것인가? 한족 여인과의 국혼이 힘들다면 함께 멀리 도망가자는 얘긴 왜 못했단 말인가? 그대가 떠나고 성문이 닫힐 때 내 마음의 문도 닫혔고 겁 없던 젊음도 끝나버렸다. 그대가 사라진 성의 뜰을 홀로 지키며 난 노심초사하는 사람이 됐으며 하루에도 몇 번이고 자명고가 안전한지 살피지 않곤 버틸 수 없었다. 

왕자가 보낸 전령이 도착하던 밤, 목간을 펼치던 내 손은 사정없이 떨렸고 마침내 그대의 속마음을 확인하고는 자결을 결심했다. 그대는 이렇게 말했다. “공주여. 자명고를 찢고 기다려라. 고구려 선봉장이 돼 그대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달려가리라. 이는 나의 뜻이자 나의 부왕의 뜻이기도 하니 부디 금석의 언약을 지켜주기 바란다.” 그대에게 나의 가치란 고작 자명고를 찢는 데 있었더란 말인가? 왕자여. 말해보라. 고구려군의 말발굽에 폐허가 된 낙랑을 바라보며 내가 그대와 행복할 수 있겠는가? 

목숨을 끊고자 성루 꼭대기에 올라섰을 때 나는 무한한 허전함으로 내가 태어난 의미를 물었다. 하늘의 별자리는 누가 만들었나? 어쩌다 나는 이역만리 외로운 성의 공주로 태어났을까? 내가 사라진 세상에도 여전히 바람이 불고 꽃은 피겠지?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한나라 주사위는 누구 품에 들어갈까? 왕자여. 나는 그런 한심한 고민에 젖어 지는 놀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그러다 자명고를 부수겠다던 그대와의 약속이 떠올랐고 나는 죽음을 잠시 미뤄야 했다.


부질없는 싸움

국립발레단이 2011년 공연한 ‘왕자 호동’ 의 한 장면. [뉴시스]

국립발레단이 2011년 공연한 ‘왕자 호동’ 의 한 장면. [뉴시스]

오늘밤 아버님 침전 옆 자명고를 찢고 돌아온 난 그대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다. 왕자는 정녕 기쁜가? 나는 북을 망가뜨린 내 손이 한없이 미우며 이 대역죄를 스스로 용서할 길이 없다. 죽음으로 참회하고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자처럼 세상에서 사라지리라. 다만 왕자에게 부탁할 것이 하나 남아 있나니 혹여 들어줄 수 있겠는가? 

나의 아버지 최리(崔理)는 낙랑국의 왕이라 불리셨지만 스스로를 성주라 여기셨다. 낙랑군 태수의 막료였던 우리 가문은 이 땅으로 이주해 제후국으로 독립했지만 황제의 인가를 받은 바 없었다. 장안으로 파견된 사신은 돌아오지 않거나 방어진을 구축하고 칙서를 기다리라는 형식적인 답서만을 지닌 채 돌아오곤 했다. 황제는 요하의 낙랑군과 내지의 낙랑국을 구별조차 못 했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린 고립무원으로 잊히고 있었다. 

어릴 적 부왕께선 내 손을 잡고 성곽 주변을 돌며 당신이 만든 목책이며 모래 아래 설치한 철제 가시들의 쓰임새를 길게 설명하셨다. 밤이면 한나라 문자서인 ‘창힐편(蒼頡篇)’을 목간에 일일이 적게 하셨는데 덕분에 난 어떤 서기보다 공문을 요령 있게 잘 쓸 줄 안다. 이런 얘기를 길게 하는 것은 오늘밤 내가 포기한 것들이 나와 내 가문에 얼마나 소중한 것들이었는지 알려주고 싶어서만은 아니다. 

왕자여. 우리가 왜 끝까지 성문을 열 수 없었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어린 난 부왕이 지키고자 하는 모든 걸 잘 지켜내고 싶었고 언젠간 그분이 그토록 원하시던 황제의 분봉 교지를 받아내고 싶었다. 나의 부왕께선 황제가 내린 신임장인 부월(斧銊)이 없었기에 당신이 직접 정성스레 흉내 낸 한나라 관인을 사용하셨다. 거기엔 ‘낙랑성주 최리’라고만 적혀 있었다. 고구려왕은 걸핏하면 우리에게 투항을 요구했지만 자신을 변방의 일개 성주라 여기신 부왕께선 그럴 권한이 애초에 없으셨던 것이다. 

황제에게 버림받은 우리 낙랑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 부질없는 싸움에 지치신 부왕께서도 고구려와의 화친으로 명예롭게 물러나고 싶어 하셨다. 이제야 진실을 말하건대 그대에게 줄 독배는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고구려 왕자를 독살하겠다던 부왕의 호기는 식언에 불과했고 막상 그대를 마주하자 증오는 순식간에 호의로 뒤바뀌었다. 그대를 죽이겠다던 나의 용기 역시 알고 보면 절망이었고 그대 목을 겨눴던 칼은 실상 나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황제는 성을 버리라고도, 그렇다고 끝까지 사수하라고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엉거주춤 방어진을 구축한 채 언제 올지 모를 교서를 기다려야만 했다. 이제 부왕을 대신해 내가 그 미련한 고통을 끝내려 한다. 부왕께 이 행동은 불효일지나 낙랑의 백성들에겐 구원일 수도 있으리라. 부디 손쉽게 거둔 대승에 교만하지 말며 낙랑의 국체와 부왕 최리의 목숨만은 보존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다음 생이 있다면

낙랑은 한의 신민으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이제 살육 없이 청사에서 퇴장한다. 불효하고 불충한 이 선택은 왕자 없이 불가능했으니 이는 그대와 부부로서 함께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선택이기도 한 것인가? 세월이 좋았다면 난 그대 아내가 되어 매일 서로 검술을 겨룰 수도, 아이 한 명씩을 등에 업고 말 달리며 궁술 시합을 할 수도 있었으리라. 아! 세월이 좋았다면 우린 정말 부부가 되어 나라의 일들일랑 남에게 맡겨두고 천하를 유람하며 애틋하게 살 수도 있었으리라. 이 모든 것이 덧없는 꿈이라는 게 그댄 믿어지는가? 다정했던 왕자여. 그대가 이번에 어떤 인생을 살든 나처럼 오지 않을 서신이나 이뤄지지 않을 약속에 얽매이진 말지라. 나 이란은 다음 생엔 남자로 태어나 그대 곁에서 활 쏘고 말 달려보리라. 활 쏘고 말 달리며 성 밖에서의 생을 온전하게 살아보리라.


※ 이 작품은 낙랑공주의 시선을 통해 고구려 3대 대무신왕 때의 한반도 정치 상황을 조망했다. 대무신왕의 둘째 비 소생이었던 왕자 호동은 불리한 왕권 경쟁에서 우위에 서고자 낙랑 침략의 최전선에 나섰던 것으로 보인다. 요동 한사군 중 하나였던 낙랑군의 중국 유민들이 한반도 북부에 건설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낙랑국은 강력한 요새였고 저절로 울리는 북과 뿔로 방어되고 있었다고 한다. 소위 자명고와 자명각이 그것들이다. 이 방어 장치들을 풀어 호동 왕자의 군대를 불러들인 낙랑공주는 패전 직후 부왕의 손에 살해당했다. 한편 호동 왕자는 훗날 고구려 왕권 경쟁에서 형에게 밀리다 정비의 모함에 빠져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낙랑공주傳

윤채근
● 1965년 충북 청주 출생
● 고려대 국어국문학 박사
● 단국대 한문교육학과 교수
● 저서 : ‘소설적 주체, 그 탄생과 전변’ ‘한문소설과 욕망의 구조’ 
‘신화가 된 천재들’ ‘논어 감각’ ‘매일같이 명심보감’ 등




신동아 2019년 6월호

윤채근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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