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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반도체 전쟁

日 도발 추동한 국내 정치용 ‘反日 프레임’

경보음 울리는데도 8개월간 무방비 방치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日 도발 추동한 국내 정치용 ‘反日 프레임’

  • ● 극악하면서도 저열한 정치적 목적의 보복
    ● 韓 쥐락펴락하겠다는 아베의 도발
    ● 日 6년 전부터 보복 준비…“삼성도 하루 만에 괴멸할 것”
    ● “NL 민족주의에서 일본은 주요 타격 방향”
    ● “나는 善, 너는 惡 ‘도덕주의’로는 해결 못 해”
    ● “대통령이 신뢰하는 책임감 있는 특사 보내야”
    ● “현자(賢者)들로 구성된 위원회에 결정 위임하는 것도 방법”
[동아일보]

[동아일보]

일본이 한국을 향해 칼끝을 들이밀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독설을 내뱉으며 한국을 모욕한다. 일본은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 강화 이유로 북한까지 들먹였다. 대화, 협상 의지 없이 두 손 들라는 투로 도발한다. 

한일관계는 “복합다중골절 상태”(신각수 전 주일대사)다. 군데군데가 부서진 데다 악순환이 이어진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 상황이다. 북한 핵무장에 대응하는 한미일 군사 공조도 바람 앞 등불이다. 

일본은 “안보 우려를 바탕으로 한 수출 통제”라는 억지 논리를 내세운다. “일본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우리 경제에 타격을 주는 조치를 취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대로 ‘정치 보복’이다. 

주일대사를 지낸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통상은 갈등 관계에 있는 두 나라의 분쟁을 막는다. 통상하는 나라들 간에는 전쟁하지 않는다는 게 ‘통상 평화론’이다. 일본 연호 레이와(令和)는 아름다운 평화를 뜻한다. 연호를 고안한 나카니시 스스무는 ‘백제인의 평화사상이 담겨 있다’고 했다. 일본의 이번 조치는 레이와에 담긴 사상에 어긋나고 아베 총리가 주창해온 ‘적극적인 평화주의’와도 맞지 않는다. 통상을 가로막는 것은 평화롭게 지내지 않겠다는 태도다.” 



익명을 원한 전직 외교부 고위 관료는 “일본이 안보 문제를 경제 보복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앞으로 한국을 적성국으로 다루겠다는 뜻”이라면서 “역보복, 추가보복이 이어지면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수훈 전 주일대사는 7월 1일 페이스북에 “한일관계가 날로 악화돼 마음이 불편하다”면서 “갈등의 원인이 되는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만들어낸 게 아니라 불행한 과거사로부터 이어져 나온 것”이라고 썼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문재인 정부는 옳건 그르건 박근혜 정부가 타결한 국가 간 합의(위안부 합의)를 무력화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렸는데도 8개월 동안 외교적 해결 노력을 등한시했다.


1965년 ‘한일협정’을 보는 2개의 시선

1965년 6월 22일 한일협정 문서에 서명하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 [동아일보]

1965년 6월 22일 한일협정 문서에 서명하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 [동아일보]

한일관계가 악화된 것은 이명박(MB) 정부 시절인 2012년부터다. 2012년 대법원이 1·2심을 깨고 강제징용 피해자의 배상 청구권을 인정하는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1965년 한일관계 정상화 이후 한일 역대 정부의 인식과는 어긋나는 결정이었다. 2013년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일본 기업에 피해자 1인당 8000만~1억 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일본 기업은 불복해 재상고했다. 2018년 10월 대법원이 2013년 파기환송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하면서 가해 기업의 한국 내 재산 압류 절차가 이뤄졌다. 

일본은 한국이 위안부 합의에 이어 1965년 청구권 협정마저 무력화하려는 것으로 봤다. “국가 간 약속도 지키지 않는, 신뢰할 수 없는 상대”라고 아베 총리는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는 사실상 사안을 방치하면서 “대법원 판결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한일 청구권협정은 1965년 일본 도쿄에서 체결됐다. 제1조에서 일본은 한국에 10년 동안 3억 달러를 무상 제공하고, 2억 달러의 차관을 주기로 했다. 제2조에서 “양국 및 그 국민(법인 포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는 것으로 합의했다. 

제1조와 제2조를 직접적으로 연결 짓는 조항은 없다. ‘배상’이라는 낱말도 명시돼 있지는 않다. 일본은 대가 없이 돈을 주고 한국은 대가 없이 청구권을 없앤 격이다. 이에 대해 2018년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무상 3억 달러와 차관 2억 달러가 배상이 아니라고 보면서 국내법과 국제조약이 충돌하게 됐다. 

한국 정부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한일협정도 구속력 있는 국제조약이다. 정부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면서도 한일협정을 무력화하지 않는 절충점을 찾고자 일본과 협의해야 했다. 미국 같은 패권 국가를 논외로 하면 국가 간 대립하는 외교 문제를 국내법으로 다룰 수는 없는데도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일본을 소 닭 보듯 했다. 박정희 정부 이래 역대 한국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징용 배상 문제는 종결됐다”는 입장이었다. 

2005년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 외교문서가 전면 공개됐을 때 노무현 정부가 이 사안을 다시 들여다본 적이 있다. 이해찬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민관합동위원회는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이 사실상 소멸됐다”고 결론지었다. ‘청구권 자금 무상 3억 달러가 징용 피해 보상이 감안된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역대 한국 정부 판단 뒤집은 판결

이명박 정부는 2012년 대법원이 징용 피해자의 배상 청구권을 인정하면서 1·2심을 깨고 파기환송했을 때 외교적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임기 말이었던 터라 차기 정부로 사안을 떠넘기는 모양새였다. MB는 역대 대통령 최초로 독도를 방문했으며 일왕에게 한국을 방문하고 싶으면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반일 포퓰리즘을 임기 말 국내 정치에 활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골치 아픈 숙제는 이렇게 박근혜 정부로 넘어왔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에도 한일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박근혜 정부는 초기 3년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에 다가서는 정책을 취했다. 2015년 9월 중국의 항일전승 70주년 열병식 때 박근혜 대통령이 톈안먼(天安門) 망루에 오르면서 한중관계는 정점을 찍는다. 

이 같은 과정에서 일본은 한국이 중국에 기울었다는 ‘중국 경사론’을 고자질하듯 워싱턴으로 퍼 날랐다. 중국에 경사되는 듯하던 박근혜 정부는 한미일 공조로 되돌아갔다. 2015년 12월 일본과 위안부 합의를 맺으면서 한일관계 회복에 나섰다. 중국이 사드 보복에 나서면서 한중관계는 얼어붙었다.


‘양승태 대법원’ 적폐청산에도 활용

박근혜 정부에서 외교안보 부처 장관을 지낸 인사는 “위안부 합의는 안 하겠다는 대통령을 설득해 어렵사리 이뤄낸 일”이라고 했다.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 체결 시에는 불거지지 않은 사안으로 한일 간 합의가 필요했다. 2015년 12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합의를 일본과 맺으면서 부실 합의 논란이 일었다. 박근혜 정부는 이렇듯 중국과 일본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종잡을 수 없는 외교 행태를 보였다. 

‘대통령 박근혜 탄핵’으로 2017년 5월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좌우파를 막론하고 모든 후보가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를 공약했다. 국가 간 맺은 합의를 깰 명분을 내놓은 후보는 1명도 없었다. 표를 얻으려면 반일 정서에 올라타야 했다. 

강제징용 판결은 대법원 적폐청산 과정에서도 활용됐다. 2018년 검찰은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해 2013년 9월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을 압수했다. 문건에는 판사의 해외 파견을 담당하는 외교부에 강제징용 소송 과정에서 ‘절차적 만족감’(재판 지연)을 주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므로 ‘재판 거래’가 있었는지 확언할 수는 없으나 박근혜 정부는 한일관계를 고려해 재상고 기각이나 지연 판결을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 정권으로 골치 아픈 숙제를 떠넘기려고 한 것일 수도 있다. 

확정 판결이 미뤄진 것은 대법원이 국제법적 문제를 고려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미국을 비롯한 다수 국가에서는 법원이 제대로 알기 어려운 국제법 쟁점 사건에서는 외교 담당 부서가 정부 의견서(amicus brief)를 제출한다. 

강제징용 사건 재상고심 때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일한 주진열 부산대 로스쿨 교수는 지난해 9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첫 상고심 판결의 국제법적 문제점을 지적하며 재상고심이 지연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강제징용 건은 단순 민사 손해배상 문제가 아니라 법원이 친숙하지 않은 국제법 쟁점이 얽혀 있는 사건이다. 재상고심에서 뒤늦게 사안의 심각성을 알게 된 대법원으로서는 전원 합의체로 첫 판결의 법리를 변경하고 파기환송해야 했으나, 마치 손바닥 뒤집는 모양새가 돼 엄청난 부담감을 가졌고 장기 미제로 남게 된 것이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같은 해 9월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한 후 재상고심은 속도를 냈다. 

문재인 정권은 반일(反日) 포퓰리즘과 친일 프레임을 국내 정치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누구 못지않게 진보 세력을 아끼는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정치적 목적을 위한 기획일 뿐”이라며 “관제 민족주의(official nationalism)”라고 비판했을 정도다. 역사를 망각한 일본의 우경화 행태와 반일 포퓰리즘을 국내 정치에 활용한 여권의 반일 감정 부추기기가 착종(錯綜)해 상승작용(synergism)을 일으켰다. 한국의 반일, 일본의 혐한이 충돌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역대 한일 정부 견해와 배치되는 판결을 최종 확정했는데도 문재인 정부는 외교적 해결 노력을 사실상 방기했다. 여권 인사들은 ‘토착 왜구’니 ‘칼 찬 순사’니 하면서 반일 포퓰리즘을 즐겼다. 야당 원내대표에게 ‘나베’라는 모욕적 별명을 붙인 이도 있었다.


“한국의 급소를 찌른다!”

지난해 11월 한국은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립된 화해·치유재단 해산 방침을 발표했다. 해산 등기 절차는 7월 3일 마무리됐다. 일본이 보기에는 국가 간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이었다. 일본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한 중재위원회 개최를 요구했으나 한국은 불응했다. 한일 청구권협정 제3조는 “협정의 해석과 적용에 관한 한일 양국 분쟁은 우선 외교 교섭에 의해 해결을 시도하고 여의치 않으면 중재위원회를 구성해 중재 방식으로 분쟁을 해결한다”고 돼 있다. 일본은 한국이 협정을 지키지 않는다고 봤다. 일본 외무성은 7월 13일 “한국이 징용 배상 중재위를 거부하면 대항 조치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은 양국 기업이 공동으로 보상금을 마련하자는 안을 뒤늦게 내놓았으나 일본이 거부했다.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취임해 한국의 3대(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를 상대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9월~2007년 9월에도 총리를 지냈다. 아베 총리는 징용 문제와 관련한 경제 보복을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2013년 11월 일본 유력 주간지 슈칸분슌(週刊文春)은 ‘한국의 급소를 찌른다!’ 제하 기사에서 아베 총리가 측근에게 “‘중국은 이성적인 외교가 가능하지만 한국은 협상조차 할 수 없다’며 ‘더는 참을 수 없다’고 했다”면서 “아베 총리 측근들이 새로운 정한(征韓·한국 정벌)론을 제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슈칸분슌은 “삼성도 하루 만에 괴멸할 것”이라는 전문가의 견해를 함께 전했다. 

아베 총리는 역사를 망각한 극우 성향의 민족주의 우파다. 아베 총리의 자민당은 혐한 감정을 보수를 결집하는 데 활용한다. 개헌을 비롯한 우경화 어젠다에 대한 지지를 높이는 데 활용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는 7월 21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나왔으며 선거 유세 과정에서도 활용됐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는 무역규제, 투자 제한 및 수출통제를 이용해 중국을 윽박지르는 트럼프를 모방한 것 같으면서도 19세기 정한론의 그림자마저 떠올리게 한다. 경제보복 양태는 치밀한 데다 저열하기까지 하다. 한국을 주저앉히거나 쥐락펴락하겠다는 의도마저 느껴진다.


경보음 무시하고 소 닭 보듯 방치

박태성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이 7월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일본 측이 제기한 일본산 불화수소의 북한 유출 의혹에 대해 일본산 불화수소가 북한을 포함한 유엔 안보리 결의 제재 대상국으로 유출된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뉴시스]

박태성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이 7월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일본 측이 제기한 일본산 불화수소의 북한 유출 의혹에 대해 일본산 불화수소가 북한을 포함한 유엔 안보리 결의 제재 대상국으로 유출된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뉴시스]

현재까지의 보복은 주먹을 든 수준이다. 역보복을 비롯한 한국의 대응을 보고 추가 보복에 나서겠다는 태도다. 안보 문제와 관련한 ‘전용 가능성’을 이유로 일본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품목이 1100개가 넘는다. 그중 상당수가 일본이 원천기술을 가진 품목이다. 기술을 무기로 이웃 나라를 겁박하는 것은 문명국이 할 짓이 아니다. 일본의 이번 조치에서는 극악한 제국주의의 행태마저 아른거린다. 

문재인 정부가 반일을 국내 정치에 활용한 게 이번 사태를 불러온 직접적 원인은 아니지만 추동한 측면은 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4월 3일 ‘신동아’ 인터뷰에서 “정치권의 반일 포퓰리즘이 사회를 분열시키고 대외정책의 왜곡을 일으키고 있다”면서 “6월 오사카에서 G20 정상회담이 열리는데 그때까지 상황이 풀리지 않으면 더 나빠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면서 “반도체용 불화수소 수출 금지가 거론되는데 불화수소가 없으면 반도체 생산이 중단된다. 과거에만 머물러 그거만 곱씹고 있으면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하자는 얘기냐”고 개탄했다. 

이렇듯 경보음이 도처에서 울리는데도 집권 측은 자기만의 세상에서 사는 듯 문제 해결을 방기했다. “일본과 관계 개선을 하자는 얘기는 정권을 향해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인식이 팽배했다”고 한 외교·안보 부처 관계자는 전했다. 

대법원이 징용 배상을 확정한 지난해 10월부터 정부가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거나 일본의 경제보복 시 대응 방안을 마련한 흔적은 찾기가 어렵다. 현 정권의 한가한 상황 인식은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와 경제는 다르다”는 3월 28일 발언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3월 28일 청와대에서 ‘외국인투자 기업인과의 대화’라는 주제로 간담회가 열렸다. 일본 기업인들 모임인 서울재팬클럽의 모리야마 도모유키 이사장이 “업계 차원에서 보면 저희는 현재 한일 간의 관계에 대해 우려를 가지고 있다”면서 “적절한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믿고 있다”고 했다.


‘민족주의 좌파’의 현실 인식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적 교류는 정치와 다르게 봐야 한다”면서 “한 해 양국을 오가는 인원이 1000만 명에 이른다. 이런 인적 교류가 민간 영역으로 확대돼 기업 간 경제교류가 활발해지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정권 밖 전문가들은 “일본이 경제보복을 준비하고 있다”고 우려하는 상황에서 순진하게까지 느껴지는 인식을 밖으로 내보인 것이다. 

1980년대 민족해방(NL) 계열 운동권이 골간(骨幹)을 형성한 문재인 정부는 흔치 않은 ‘좌파 민족주의’ 성향이다. 좌파 민족주의자에게 1965년 한일협정은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 이름)의 매국 행위”로서 극복해야 할 역사다. 

NL은 ‘품성론’과 ‘도덕주의’로 무장했다. 제국주의에 수탈당한 민족의 비극적 피해자성을 강조하면서 개인보다 전체를 앞에 뒀다. NL 계열 운동권을 가로지르는 정서는 서구식 민주주의와 충돌하는 측면이 있다. 민경우 전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은 “제발 곡해가 없기를 바란다”면서 이렇게 밝힌다. 

“우리가 그들과 다르다는 신념 체계는 대체로 ‘어머니 조국’ ‘신성한 자연’으로 상징된다. 2012년 이후 위안부가 그에 해당하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역사와 위안부 문제는 빈곤한 사상을 메우고 386세대 전체를 아우를 마음의 고향이었다.”(‘평등의 역습’ 162쪽) 

NL계열 3대 조직 중 하나인 자민통(자주·민주·통일) 리더였던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원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박근혜 정부도 잘한 게 없으나 문재인 정부는 다양한 형태로 외교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그중 하나가 대일 외교다. 북한에 친화적인 운동권 세력은 한미동맹에 비판적이다. 한미동맹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면 지지 기반이 떨어져나가 고립된다. 한미일 공조의 약한 고리가 일본이다. 운동권식으로 얘기하면 주요 타격 방향인 일본을 집중 타격하면서 한미동맹을 이완시키려는 것이다. 그 결과 최악의 상태로 가 있는 게 한일관계다.”


“1998년 김대중에게 배워라”

1998년 10월 8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왼쪽)과 오부치 게이조 당시 일본 총리가 도쿄에서 ‘21세기 새 시대를 위한 공동선언’에 서명하고 있다. [동아일보]

1998년 10월 8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왼쪽)과 오부치 게이조 당시 일본 총리가 도쿄에서 ‘21세기 새 시대를 위한 공동선언’에 서명하고 있다. [동아일보]

김대중 정부에서 주일대사를 지낸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는 “일본의 추가 경제보복과 한국의 일본 기업 압류 자산 현금화 조치가 이어지면 한일 관계는 회복 불능에 빠질 수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도덕주의(moralism)는 사태를 특히 정치적 현상을 선악(善惡) 이분법으로 보는 관점이다. 선 아니면 악이라고 세상을 나누면 정치나 외교 문제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없다. 정치와 외교를 ‘도덕화’하지 말라는 것은 정치철학의 기본 명제다. 피해자는 도덕적 우위에 있다. 도덕적 우위에서 상대를 보면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이분법적 사고가 바탕에 깔린다. 문재인 정부가 일본을 보는 관점이 그런 것 같다. 상호 인정을 바탕으로 국가 이익을 다루는 협상과는 맞지 않는 사고방식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이 관대하면 양보의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 대표적 사례다.” 

최 전 대사는 한일관계의 새 이정표로 평가받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에 관여했다. 

“일본 보수 주류의 자민당 총리가 한국 대통령 앞에서 처음으로 ‘사죄’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며 DJ는 ‘화해’라는 낱말로 화답했다. 한국 대통령이 화해라는 표현을 쓴 것도 그때가 처음이다. DJ는 일본 의회에서 ‘일본의 35년 식민통치와 임진왜란에서 정유재란까지 7년의 비참한 역사가 있으나 그것은 채 50년이 되지 않는다. 1500년의 꾸준한 교류와 그 역사의 무게를 생각하자’는 취지의 말을 했다. 두 나라 국민이 협력하면 시너지가 얼마나 크겠냐고도 강조했다.”


“文 대통령이 바뀌면 된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바뀌면 된다. 문 대통령이 결심한 후 자신이 신뢰하는 책임 있는 특사를 보내 풀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여야가 공히 인정하는 소수의 인사로 위원회를 구성해 그 사람들이 결정하는 것을 따르는 형식으로 해결하자. 사명감을 가진 이들을 잘 활용하면 국민 통합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트럼프의 ‘자국 이기주의’, 제국주의를 연상케 하는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 아베의 ‘극우 민족주의’가 국제 분업과 세계 질서에 파열음을 내는 상황에서 한국이 ‘고비’를 맞았다. 고비가 ‘위기’로, 위기가 ‘국익 파탄’으로 이어지지 않게 의연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신동아 2019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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