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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판사

그리운 옛날 짜장면

짜장면도 ‘구관이 명관’이더라

  • 정재민 전 판사, 작가

그리운 옛날 짜장면

  • 재판은 상처로 시작해서 상처로 끝난다. 당사자들 상처에 비할 순 없지만 판사도 상처를 입는다. 그럴 때면 나는 혼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곤 한다. 정갈한 밥 한 끼, 뜨끈한 탕 한 그릇, 달달한 빵 한 조각을 천천히 먹고 있으면 울적함의 조각이 커피 속 각설탕처럼 스르륵 녹아버리고 위로를 받는다. 그러면서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고 해서 법정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맞은편 빈자리에 앉은 누군가에게 한다.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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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했다. 고작 길 하나 건너에 있는 아파트로 옮겼을 뿐이지만 여태껏 이사 중 가장 고됐다. 집주인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베토벤을 닮은 그을린 얼굴에 다부진 체격이 강한 인상을 풍기는 남성이었다. 다만 발음이 부정확하고 사투리가 심해서 말을 할 때마다 그 강한 인상이 연기처럼 흩어져버리곤 했다.


어머니의 밥

부동산 중개사와 함께 처음 그 아파트를 보러 갔을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거실에는 각종 채소가 마치 밭처럼 널려 있었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호박과 메주 덩어리도 쌓여 있었다. 메주 위에는 오랜만에 보는 빨간색 직사각형 파리채가 놓여 있었다. 집주인은 주방 바닥에 주저앉아 상을 펴놓은 채 밥을 먹고 있었다. 밥상에는 우엉, 김, 상추, 고추, 콩자반 같은 반찬과 감자조림이 올라가 있었다. 거실에 널린 채소도 들어가 있을 터였다. 거실 소파는 너무 낡은 나머지 곰보빵처럼 가죽 표면이 갈기갈기 터져 있었다. 노모가 그 위에 앉아 자기가 차려준 밥을 먹는 아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자식에게 밥을 먹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난히 말이 많고 자기 종교를 자주 드러내는 부동산 중개사 아저씨는 집이 남향이고, 볕이 잘 들고, 전망이 좋고, 집을 담보로 은행에 융자받은 것도 없다는 뻔한 말에다, 깍쟁이로 가득한 각박한 도시에서 순박한 분들이 사는 집에 들어가는 것이 복이라면서 선택을 부추겼다. 

며칠 뒤 아파트 상가 부동산 중개소에서 전월세 계약서를 쓰고자 집주인과 마주 앉았다. 그에게 나는 월세를 조금 깎거나 보증금을 조금 낮춰줄 수 없는지 물어보았다. ‘을’에 걸맞은 어정쩡한 자세와 조심스러운 말투로. 그러나 ‘갑’님은 나를 쳐다보지 않고 부동산 중개사를 향해 “제가 말했잖아요. 가격 같은 기본적인 사항은 미리 다 정하고 계약하는 거라고!”라고 말했다. ‘갑’에 걸맞은 가슴을 쫙 편 자세와 우렁찬 목소리로. 내가 못 미더웠는지 부동산 중개사에게 이런 말도 덧붙였다. “월세를 두 번 이상 못 내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빨간색으로 계약서에 적어주세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내 행색이 월세도 못 낼 정도로 보인단 말인가. “표준계약서에 이미 그런 조항이 들어가 있고, 법적으로는 빨간색이나 검은색이나 효력이 같습니다”라는 판사 직업병에서 비롯된 말이 자동적으로 머릿속에서 떠돌아다녔을 뿐, 나는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을’답게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집주인이 유일하게 해주기로 한 건 도배였다. 아내는 자비로 필름지도 바르고 싶어 했다. 필름지를 바르고 도배를 하고 입주청소를 하려면 입주 전에 적어도 사흘이 필요했다. 집주인은 사흘 전에 집을 비워주기로 약속했다. 부동산 중개사가 그에게 잔금을 안 받고 나갈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그건 제가 알아서 할 일이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역시 ‘갑’답게 단호하게 말했다. 단지 나가기로 한 날짜가 손 없는 날인지만 거듭 확인했다. 

부동산 사무실에서 나와 곧바로 상가 지하에 있는 음식점에 갔다. 라면부터 된장찌개, 부대찌개, 계란찜 정식, 삼겹살까지 이런저런 음식을 집밥처럼 해주는 곳이었다. 나 혼자 먹기도 하고 온 가족과 함께 먹기도 하는 단골 식당이다. 맛은 그저 밋밋하다. 그런데 바로 그 밋밋함 때문에 질리지 않는다. 식당 사장님 성품도 그런 듯하다. 느릿느릿 움직이며 욕심 없는 웃음을 머금은 주인아저씨는 언제나처럼 나와 아내를 친절하게 맞아주셨다. 우리는 이제 이사를 간다며 그동안 잘 먹었다고 인사를 했다. 사장님은 허허 웃으며 그래도 자주 오라고 하더니 잠시 후 공깃밥을 한 그릇 서비스로 갖다 주셨다. 아내와 나는 계란찜 정식을 나눠 먹었다. 우리 딸 말에 따르면 백열등처럼 노랗게 따뜻하고, 개미집 같은 구멍이 송송 나 있고, 이불처럼 보들보들한 계란 덩어리가 숟가락을 댈 때마다 사르르 뭉개졌다. 이제 자주 오지 못할 식당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계란찜이 특별하게 밋밋했고 그래서 더 좋았다. 밥을 먹으면서 우리는 하루빨리 집을 마련해 월세를 못 낼까 봐 의심받는 서러움을 면하자고 다짐했다.


참을 수 없는 집주인의 특별함

며칠 뒤 토요일 새벽 6시 반경에 전화가 왔다. 눈을 비비며 전화기를 들었더니 집주인이었다. 동네 도배 가게를 전부 돌아다니면서 다른 곳보다 10만 원 더 싸게 할 수 있는 가게를 찾았으니 거기 가서 원하는 색상을 말하라고 했다. 차를 타고 30분은 가야 할 정도로 먼 곳이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자신은 종일 들판에 나가 있어서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할 말 있으면 문자로 남기라고 했다. 강남 아파트 소유자에게는 기대치 못했던 언행이었다. 아내는 들판이 골프장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물었다. 

주인이 집을 비워주기로 한 날 아침 일찍 필름지를 바르는 업자들과 집으로 갔다. 그런데 가구나 가전제품이 벽에서 떨어져 방, 거실 가운데 모여 있을 뿐 짐이 대부분 그대로 있었다. 두 방에는 이부자리까지 펼쳐져 있었다. 나는 집주인에게 오늘 아침까지 이사를 나가기로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집주인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 벽에서 물건을 떼어놓았으니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인테리어나 도배하는 분은 짐을 다 빼지 않은 상태로는 일을 할 수 없다고 버텼다. 옆에 있던 노모는 별안간 우리를 향해 돈도 안 주고 사람을 내쫓느냐, 내 집에 아무것도 붙이지 말고 손도 대지 말아라, 쏘아붙였다.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집을 둘러보던 아내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변기 전체에 누런 자국이 눌어붙어 있었다. 싱크대 안쪽도 변기처럼 색이 바랜 상태였다. 그런 점을 지적해도 집주인은 사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집주인은 나에게 자필로 적은 A4 용지를 내밀었다. 제일 윗줄에 ‘집 사용법’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고 그 아래 7개 항목이 나열돼 있었다. 예컨대 이런 것이었다. 첫째, 세면대 물이 잘 안 내려갈 수 있으니 일주일에 한 번씩 세면대 ‘미테’ 파이프를 꺼내서 머리카락 뭉치를 제거해주면 된다. 둘째, 가끔 한 번씩 차단기가 내려가 집의 전기가 차단될 수 있다. 그때는 5분 정도 있다가 다시 차단기를 올리면 된다 등등. 이것은 ‘집 사용법’이 아니라 ‘하자 목록’이었다. 

집주인은 식기세척기, 오븐, 음식물쓰레기 건조기는 아파트 신축 이래 20년간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면서 “되는지 안 되는지 잘 모르지만 안 써도 문제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상 잘 되는지 여부가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선언이었다. 집주인은 형광등을 가리키면서 불을 간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불빛은 호롱불이 흔들리는 것처럼 어두침침했고, 바닥도 강화마루라서 아주 좋다고 했지만 농작물 습기가 장시간 배서인지 나뭇결이 손상된 부분이 너무 많았다.


변기 소송

나는 집주인에게 지금까지 짐을 다 빼주지 않은 것은 계약 위반이라고 했다. 그러자 집주인은 지금 당장 이사를 하면 될 것 아니냐고 했다. 내가 지금 당장 이사업체를 어떻게 부르냐고 하자 집주인은 용달차 하나 불러서 혼자서 이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일단 짐을 복도나 아파트 입구에 쌓아놓겠다고 했다. 혼자서? 입이 딱 벌어졌다. 집주인은 정말로 이내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노모가 신발을 신으라고 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맨발로 짐을 날랐다. 그러면서 부동산 중개사에게도 도와달라고 했다. 부동산 중개사는 복비를 조금이라도 덜 떼이고자 마지못해 짐을 나르면서 자기 집 이사를 할 때도 힘을 써본 적이 없다며 투덜거렸다. 우리는 다음 날 다시 필름업자를 불러야 했고 그만큼 비용이 더 들었다. 집주인은 그러고도 이틀을 더 그 집에서 노모와 먹고 잤다. 그 기간 관리비는 우리에게 내라고 했다. 

소액재판을 할 때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 분쟁을 심심찮게 재판했었다. 더러운 변기가 문제 된 경우도 있었다. 세입자인 원고는 집주인이 청결한 변기로 바꿔줄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증거로 변이 덕지덕지 눌어붙은 변기의 컬러 사진을 확대해 제출했다. 이에 대해 집주인을 대리한 피고 변호사는 밥그릇은 몰라도 변기는 반드시 깨끗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변기는 볼일을 보고 물을 내렸을 때 변이 내려가면 통상적인 기능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원고는 다시 변기가 너무 더러우면 앉을 수조차 없다면서 통상적으로 기능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맞섰다. 너무 더러운 변기는 통상적인 기능을 갖추지 못한 것인가. 이런 문제는 법률 교과서나 논문에 나오지 않는다. 대법원 판결도 없다. 

하필 그날 점심으로 법원장님이 카레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카레밥을 입에 넣을 때마다 카레 모양 똥과 똥 모양 카레 중 어느 쪽이 더 역겨운가, 카레는 똥처럼 더럽게 보여도 맛만 있으면 통상적인 기능을 다한 것인가 따위의 잡념이 머리통에 흘러넘쳤다. 결국 그 사건은 변기 철거비는 집주인이 부담하고 새로운 변기 값은 세입자가 부담하는 것으로 조정했다. 

이삿날 오전 부동산 중개소에서 마지막으로 집주인을 만나 잔금을 주고 집 열쇠를 받았다. 집주인이 뜻밖에도 “잘 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돈이 없어서 그래요”라고 말했다. 이사를 혼자서 하느라 몸에 성한 곳이 없다고도 했다. 그 말끝에 먼 산을 쳐다보는데 눈물이 글썽이는 것 같았다. 나는 측은한 마음이 들기 시작해서 그와 나의 경제적 갑을관계를 망각할 뻔했으나 이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말했다. “그래도 저희보다 훨씬 부자이시잖아요. 이런 아파트도 있고.” 집주인 쪽 중개사는 집주인이 가면서 자신에게 험한 말만 하고 복비도 주지 않고 가버렸다고 했다. 

반면 우리 쪽 중개사는 말은 그렇게 많으면서 우리가 제기한 문제 중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다. 대개 상대편 중개사에게 일을 넘기고 심지어 우리 연락을 피하기도 했다. 그러고는 이사가 끝나자 수백만 원의 복비를 달라고 요구했다. 손해액 일부를 공제하고 보냈더니 돈을 더 달라며 우리 부부 직장을 검색해 문자메시지로 보내거나 ‘넬라 판타지아’ 가사를 적어 보내 아연하게 만들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무궁무진하다. 

우여곡절 끝에 사흘에 걸친 이사를 마쳤다. 포장이사업체 사람들이 돌아가자 피로가 한꺼번에 찾아왔다. 나는 단골 중국음식점에 짜장면과 탕수육을 주문했다. 그런데 새집 주소를 말했더니 배달이 안 된다고 했다. 길 하나 건넜을 뿐이지만 행정구역상 동이 바뀌었기 때문이라 했다. 이럴 수가.


이제는 옛날 짜장면집 배달이 안 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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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짜장면으로는 드물게 맛있는 집이었다. 짜장 점도가 지나치게 묽지도 건조하지도 않았다. 역한 조미료 맛이 나지도 않았다. 면발도 적당히 쫄깃했다(딴 가게에서 배달시키면 면발 전체가 떡이 져서 한 젓가락으로 들어 올릴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서비스로 오는 군만두도 먹을 만했다. 할 수 없이 새 동네에 있는 중국음식점에서 배달시켜 먹었지만 예전 그 집만 못했다. 

우울해졌다. 사실 짜장면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종합적인 상실감을 겪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살던 집, 그 집에 살면서 보낸 소중한 인생의 한때를 잃게 된 것이 아쉽고 불안한 것이었다. 소년이나 청년 때는 중년이 되면 상실에 초연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중년이 돼보니 예상과 달랐다. 중요하지 않은 것을 잃을 때는 젊을 때보다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지만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면 더 휘청거린다. 얼마나 나이를 더 먹으면 상실에 초연해질 수 있을까. 새집에는 얼마 더 있으면 적응할 수 있을까. 얼마가 지나면 옛날 짜장면을 잊고 새 짜장면을 더 좋아할 수 있을까.


그리운 옛날 짜장면


정재민 | 혼밥을 즐기던 전직 판사이자 현 행정부 공무원. ‘사는 듯 사는 삶’에 관심 많은 작가. 쓴 책으로는 에세이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소설 ‘보헤미안랩소디’(제10회 세계문학상 대상작) 등이 있다.




신동아 202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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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Opinion Leader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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