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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로 본 중국 | 윈난성

샹거리라엔 샹그릴라가 없다?

云 ‘세상의 끝, 새로운 세계’

  • 글 · 사진 김용한 | yonghankim789@gmail.com

샹거리라엔 샹그릴라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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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1월 말, 윈난성 쿤밍(昆明)에 사는 친구의 초대를 받았다. 추위에 시달리던 터라 반갑게 응했다. 일기예보를 보니 한국은 맑은 날 최고기온이 5℃를 넘을까 말까 한데, 쿤밍은 최저기온이 6℃, 최고기온은 20℃를 넘나들었다. 한국의 가을 날씨니까 시원하게 보낼 수 있겠지.
그런데 웬걸? 쿤밍은 의외로 쌀쌀했다. 낮은 괜찮았지만, 밤이 문제였다. 남중국은 난방 없이도 겨울을 버틸 만하기에 난방을 전혀 하지 않는다! 북방은 난방을 잘하기에, 밖은 추워도 안은 따뜻하다. 남방인과 결혼한 북방인들이 춘절에 남방집이 춥다며 가기 싫어하는 심정이 이해가 됐다. 그래도 따사로운 낮은 참 좋았다. ‘영원한 봄의 도시(春城)’라는 별명답게 날씨는 화창했고 도처에 꽃이 만발했다.



꿈과 낭만의 무대

윈난(雲南)성의 약칭은 ‘구름 운(云, 번체는 雲)’자다. 아득히 먼 구름보다도 더 남쪽에 있는 곳. 속세를 벗어난 신비로운 느낌마저 주는 곳. 꽃구름 피어오르는 남쪽 땅(彩雲之南). 윈난성은 중국인에게 꿈과 낭만을 불러일으키는 곳으로, 소설 속에서 환상적인 무대로 곧잘 등장한다. 그래서 제갈량은 독천(毒泉)을 넘고 맹수부대와 등갑병을 격파해 남만(南蠻)을 평정했고, 대리단씨(大理段氏)는 절세무공 육맥신검(六脈神劍)과 일양지(一陽指)를 구사하며, 오독교(五毒教)의 먀오족은 맹독을 능수능란하게 다룬다.
윈난성은 지질학적으로 유라시아판과 인도판이 충돌한 경계지대다. 히말라야부터 바다로 가는 중간에 있어 해발 76.4m에서 6740m까지 다양한 지형이 펼쳐지고, 그 위에 북회귀선이 지나간다. 사시사철 어느 때고 열대부터 한대까지 모든 기후를 만날 수 있다. ‘산 하나에 사계절이 다 있고, 십리만 가도 날씨가 다르다(一山有四節,十里不同天)’고 할 만큼 윈난의 기후는 변화무쌍하다.
운귀고원(雲貴高原)에 발달한 대표적인 도시는 성도 쿤밍과 대리국의 근거지 다리(大理)다. 두 도시는 산과 호수를 끼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북쪽의 산은 매서운 북풍을 막아주고, 남쪽의 호수는 뜨거운 남풍을 식혀준다. 여름은 선선하고 겨울은 따뜻해서, 1년 내내 봄처럼 꽃이 피니 농사짓기도 좋다. 거대한 호수는 깨끗한 물과 풍부한 물고기를 선사한다.
살기 좋은 만큼 일찍부터 사람이 모여들었다. 쿤밍의 뎬츠(滇池) 호수 부근에서 발견된 위안머우(元謀)원인은 약 200만 년 전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유명한 베이징원인의 생존 추정 시기는 70만 년 전에 불과하다. 윈난의 역사가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다.
윈난은 오랜 세월 중국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독자성을 지켜왔다. 춘추전국 말기 초장왕의 후예 장교(莊蹻) 장군이 윈난을 정벌했으나 진이 초를 치는 바람에 귀국할 수 없었다. 이에 장교는 ‘옷차림을 바꾸고 그곳 풍속을 따라 그들의 우두머리가 됐다.’(사마천, ‘사기’, 서남이열전(西南夷列傳)). 중국의 장군이 토착세력을 정복한 뒤 현지 문화를 받아들이고 지도자가 된 것은 위만조선, 조타의 남월과 유사한 사례다. 장교는 전왕(滇王)을 자칭했다. 쿤밍 일대를 지칭한 ‘땅 이름 전(滇)’자는 윈난의 또 다른 약칭이다. 전국시대 말기부터 헤아려봐도 20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담은 이름이다.



투쟁과 반란의 땅

한 무제와 제갈량이 남만을 정벌했을 때도 토착지배층을 제거하지 않고 자치권을 인정했다. 삼국지 팬들은 제갈량이 윈난의 우두머리 맹획을 일곱 번 잡고 일곱 번 풀어줬다는 칠종칠금(七縱七擒)이 진짜냐 아니냐 논쟁하곤 한다. 그러나 핵심은 제갈량의 유화정책에 있다. 오는 노련한 사섭이 죽자마자 교주를 점령하는 등 적극적인 정복정책을 폈고 현지인들의 격심한 반발을 샀다. 반면 제갈량은 촉한이 절대 우위임을 현지인에게 각인시키면서도, 관리 파견도 주둔군 배치도 없이 곱게 물러난다. 오히려 현지인들의 신망을 얻던 맹획을 어사중승(감사원 사무총장급)이란 요직에 앉히고 윈난의 자치권을 보장했다.
윈난의 독자적 발전은 당송시대에 절정에 이른다. 250년 남조(南詔)와 300년 대리국 등 500년 넘게 독립왕조가 이어졌다. 당나라와 토번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며 당 현종의 10만 대군 원정을 두 차례나 격파하는 등 만만찮은 역량을 과시했다. 불교가 융성하며 윈난의 대표적 문화재인 법계통령명도승탑(法界通靈明道乘塔)을 세우고 고유 문자를 만드는 등 문화의 꽃도 활짝 피었다.
그러나 무적의 몽골군을 이기지는 못했다. 쿠빌라이는 남송을 포위 공격하려 대리국을 멸망시켰다. 원대에 이르러 쿠빌라이 서자 혈통의 왕이 윈난을 다스렸지만, 대리 단씨의 영향력은 여전히 남아 있어 연합정권적인 면을 보인다. 원나라가 몰락하며 윈난은 다시 독립을 꿈꿨지만, 명 태조 주원장은 윈난의 은광산을 탐내 윈난을 무력으로 복속시켰다. 이때부터 한족 이주민이 많아지고 윈난은 중국과 일체화한다. 조선 개국 때만 해도 독립성을 유지하던 지역이 결국 중국에 편입된 것이다.




하지만 명 이후에도 윈난의 독특한 자립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청초, 청말 윈난은 반란의 거점이 된다. 평서왕 오삼계는 윈난에서 군사를 일으켜 순식간에 중국 대륙의 절반을 휩쓸었다. 운귀·양광·복건 세 지역의 반란, 즉 삼번의 난(三藩之亂)은 강희제에게 최대의 시련을 안겼다. 청말에는 국정이 문란해지자 윈난 역시 가혹한 토지세와 금은광 분쟁에 시달렸다. 회족 두문수(杜文秀)는 베이징에 가서 탄원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회족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윈난 전체도 장악하지 못한 채 끝나기는 했지만 두문수는 술탄을 자처하며 16년 동안 회족 독립국을 운영했다.
항일전쟁 시기 장제스는 충칭을 임시 수도로, 윈난을 후방 지원기지로 삼았다. 후방기지의 임무 중 하나는 인재 양성이다. 서남연합대학은 피난온 베이징대, 칭화대 등 당대 최고 명문대 교수와 학생이 한자리에 모인 인재의 요람이었다. 운남육군강무당은 중국의 주더·예젠잉, 한국의 이범석, 북한의 최용건, 베트남의 보응우옌잡 등 4개국의 국방부 장관과 많은 전쟁영웅을 배출했다.



윈난은 그대로인데…

윈난의 역사는 이처럼 만만찮은 투쟁의 기록으로 가득하다. 멀고도 험한 변방, 사나운 이민족, 풍토병 등에 대한 중원인의 두려움은 소설에 적나라하게 투영됐다. 닿기만 해도 죽는 독천(毒川), 창으로 찔러도 죽지 않는 등갑병. 야만인들은 맹수를 부리고, 오독교는 거미, 지네, 두꺼비, 뱀, 전갈 등 기괴망칙한 동물의 독을 쓴다. 사악한 독을 쓰는 윈난 먀오족은 광명정대한 검법과 권법을 쓰는 중원의 명문정파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21세기 삭막한 현대화에 시달리는 중국은 사유의 전환을 겪는다. 윈난은 잃어버린 인간미와 파괴된 자연을 되찾고 힐링할 수 있는 곳이 됐다. 이에 따라 야만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이해 못할 차이는 신비로움으로, 독천으로 상징되던 거친 환경은 깨끗한 자연으로 이미지가 180도 변했다.
실제로 윈난의 아름다운 자연과 개성적인 문화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해발 5000m가 넘는 위룽쉐산(玉龍雪山)과 하바쉐산(哈巴雪山), 그 사이에 낀 18km의 대협곡 후탸오샤(虎跳峽), 히말라야의 마지막 봉우리 창산(蒼山), 아름다운 호수 얼하이후(洱海湖)와 루구후(瀘沽湖).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삼강병류(三江並流) 지역에 나란히 흐르는 세 강은 장강의 원류 진사강(金沙江), 메콩강의 원류 란창강(蘭滄江), 중국과 미얀마를 관통하는 누강(怒江)이다.
다채로운 카르스트 지형은 창검이 도열한 듯한 석림(石林), 거대한 지하세계를 방불케 하는 구향동굴을 빚었다. 대리석 문양이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해 중국인은 말한다. “베이징에 가면 만리장성에 올라야 하고, 시안에 가면 진시황릉의 보물을 봐야 한다. 상하이에선 사람을, 쑤저우·항저우에선 여자를 구경해야 한다. 그리고 윈난에서는 돌을 감상해야 한다.”
변화무쌍한 기후와 복잡한 지형은 다양한 식생을 낳았다. 또한 ‘민족전시장’이라 불릴 만큼 많은 소수민족이 살고 있어 다채로움을 더한다. 윈난의 500년 중심지 다리엔 바이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도시 리장엔 나시족, 루구후엔 모계사회의 전통을 이어가는 모숴족, 라오스 접경지대 시솽반나엔 타이족, 다랑논으로 유명한 위안양엔 하니족이 산다.
하지만 이들이 옛날에는 없었나? 천하 정복을 위해 웬만한 풍광은 다 봤을 법한 쿠빌라이조차 “황제가 아니라면 윈난왕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왜 최근에야 각광을 받고 있는가. 윈난은 예전과 다름없되 중국인의 시선이 변한 것이다.



무릉도원의 그림자

산업화에 신물 난 서양인들이 오리엔털리즘의 시선으로 동양을 동경했듯이, 현대화한 중국인은 윈난을 동경한다. 이런 시각이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샹그릴라다. 샹그릴라(Shangri-La)는 원래 소설가 제임스 힐턴이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창조한 가상의 공간이다. 가상의 공간이기에 실존 여부를 따질 수도 없건만, 중국은 대대적인 탐사대를 파견하더니 윈난의 중뎬(中甸)이 바로 샹그릴라라며 이름마저 샹거리라(香格里拉)로 고쳐버렸다. 김윤식 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는 일찍이 무릉도원이라는 멋진 이상향을 창조해낸 중국인들이 어째서 “그 좋은 자기 것을 헌신짝 모양 버리고, 한갓 케임브리지 대학생이 지어낸 ‘샹그릴라’에 매달리고 있는 것일까”라고 탄식했다. 이제 속세에서 벗어난 이상향 샹그릴라는 단체관광객들로 바글대는 관광지로 변했다.
그러나 현지인들이 돈에 영혼을 팔아먹었다고 개탄하기도 힘들다. 중뎬은 낙후한 오지 마을로 인근 신도시로 인구가 빠져나가 텅빈 유령마을로 변할 위기에 있었다. 샹거리라로 개명하고 관광지로 변질되긴 했지만, 어쨌거나 없어질 뻔한 마을이 화려하게 부활한 셈이다.


상업적인 샹거리라가 마뜩지 않던 미국 작가 마크 젠킨스는 진정한 샹그릴라를 찾겠다며 관광객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깊숙한 오지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만난 스너는 17세 소녀이지만, 3개월 된 아기의 엄마이기도 했다. “한쪽 팔로는 아기를 안고 젖까지 먹이면서 동시에 화로에 땔감을 넣고, 밥이 잘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야크버터차를 저으며, 감자껍질을 난간 아래 돼지들에게 던져주고, 설거지를 하고, 고추를 고르면서 얘기까지 나눈다.” 깜깜한 새벽부터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고, 아기는 정체불명의 병을 앓고 있다. 스너는 마크의 샹그릴라를 떠나 샹거리라 시에 가고 싶어 했다. 또래 친구들과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곳, 주말에는 친구의 팔짱을 끼고 쇼핑할 수 있는 곳으로.
동부 티베트 직업훈련소를 운영하는 호주국립대의 벤 힐만 교수는 동양에 대한 서양인의 환상이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꼬집었다. “경제개발 덕분에 전통문화가 관심을 받기 쉽지만, 이런 관심이 결국은 문화를 왜곡시킨다. 일종의 문화 엘리트주의다. 오지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소수의 운 좋은 부자들이 동물원에 동물을 가두듯 지역색 담긴 볼거리가 보존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시족 여인을 아내로 맞는 것이 노새 열 마리를 사는 것보다 낫다’는 리장 속담이 있다. 그만큼 나시족 여성들이 과중한 노동에 시달린다는 말인데, 이런 걸 전통문화니 미풍양속이니 말하기도 힘들다.



동남아로 가는 관문

2013년 1월, 태국 치앙마이에서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고 있었다. 평소처럼 느긋하게 아침 먹고 산책하다가 ‘云’ 번호판을 단 윈난 자동차들이 기차놀이하듯 줄지어 도로를 달리는 것을 봤다. 태국은 ‘여행자의 천국’인 만큼 전에도 중국 관광객들이 오긴 했지만 2012년 말부터 부쩍 많아졌다. 태국을 배경으로 한 중국 코미디 영화 ‘로스트 인 타일랜드(人再囧途之泰囧)’가 2012년 12월 12일 개봉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영화 한 편이 히트하자마자 중국인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직감했다. ‘다음에 다시 태국에 오면 지금과는 달라져 있겠지.’
슬픈 예감은 왜 틀리는 법이 없을까. 2014년 12월 다시 치앙마이를 찾았다. 채 2년도 안 되는 사이 치앙마이 풍경은 완연히 달라졌다. 거리 곳곳마다 중국인을 위한 여행사, 상점들이 들어섰다. 작은 노점들도 중국어 팻말을 놓았다. 전에는 영어가 공용어였으나 어느새 중국어가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중국인들이 사랑하는 훠궈 식당도 곳곳에 보였다. 노천무대의 태국 가수는 ‘첨밀밀(甜蜜蜜)’을 불렀다. 태국인이 중국인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역시 지갑 앞에 장사 없다. 2011년에서 2013년 사이 태국 풍경은 별로 변하지 않았지만, 2013년에서 2014년 사이에는 크게 달라졌다. 중국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주변국의 풍경까지 변한다. 중국이 무섭긴 무섭다.
중원의 관점으로 보면, 윈난은 세상 끝에 있는 변방이지만, 실상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곳이다.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과 국경이 맞닿아 있고, 인도도 멀지 않다. 다양한 사람과 나라가 만나는 곳이라 일찍부터 교역이 발달했다. 서남 실크로드는 아시아의 양대 대국인 중국과 인도를 이었고, 차마고도(車馬古道)는 윈난의 푸얼차와 티베트의 명마를 교환했다.
한 무제가 윈난을 정벌한 것도 교역 때문이다. 한 무제는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 장건을 대월지(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로 파견했다. 장건은 현지에서 촉의 옷감을 발견하고 신기하게 여겼다. 흉노 때문에 교역로가 막혔는데 어떻게 중국 물건이 흘러들어왔을까. 알고 보니 윈난이 쓰촨과 인도를 잇는 중계무역지였고, 다시 인도에서 대월지까지 비단이 흘러간 것이었다. 한 무제는 서남 실크로드를 장악하기 위해 윈난을 정벌한다.
제국주의 시대 윈난의 가치는 더더욱 커졌다. 동남아시아를 장악한 프랑스는 윈난을 중국 진출의 발판으로 여기고 베트남 하노이와 윈난을 연결하는 전월(滇越) 철도를 건설했다. 철도 개통식을 본 윈난육군강무당 교장은 학생들에게 말했다. “전월철도가 개통됐으니 이제 윈난은 프랑스 세력 범위 안에 들어가 재난이 코앞에 닥쳤다. 모두들 오늘을 잊지 마라.”


아이러니는 계속된다

항일전쟁 시기 영국은 인도·미얀마에서 윈난으로 보급품을 지원했다. 이때 건설된 것이 미얀마의 라시오부터 쿤밍까지 장장 1000km에 달하는 버마 로드다. 16만 명의 중국인이 투입돼 별다른 건설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산을 깎아 만들었다. 일본이 동남아를 장악해 육로가 차단되자 미국은 인도에서 쿤밍까지 화물기로 보급을 지원했다.
국공내전 시기 윈난의 국민당 패잔병들은 미얀마를 거쳐 태국 북부의 산골로 도망쳤다. 살아남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이들은 마약을 재배했다. 이들이 만든 태국의 중국인 마을 도이 매살롱은 마약 산지가 됐고, 이들이 기른 소년 장치푸(張記福)는 골든 트라이앵글을 지배한 마약왕 쿤사가 됐다. 훗날 태국 왕실은 강경책과 회유책을 병행해 마약상을 토벌하는 한편, 마약밭을 녹차밭으로 바꾸게 했다. 아편전쟁으로 망한 중국을 되살리려던 국민당의 정규군이 마약상인이 됐고, 마약으로 탄생한 마을은 오늘날 녹차마을로 명성을 떨친다.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분투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낳는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계속된다. 근대 제국주의 열강은 동남아에서 중국으로 진출하기 위해 철도를 놓았지만, 현대에는 중국이 동남아로 진출하기 위해 동남아에 길을 닦고 있다. “길이 있으면 사람, 물건, 돈이 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흐르기” 때문이다. 도로, 철도뿐만 아니라 전력망, 석유·가스 파이프라인 등의 인프라까지 설치하고 있다. 윈난과 싱가포르를 잇는 축을 중심으로 삼고 메콩강 유역과 광시성 베이부만(北部灣) 경제권을 양 날개로 삼는 일축양익(一軸兩翼, One Axis, Two Wings) 전략이 추진 중이다. 윈난-미얀마 교통망 확충에도 공을 들인다. 미얀마 회랑을 건설하면 인도양이 직접적인 세력권으로 들어오고 남중국해로 우회하던 물류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윈난과 동남아의 연계가 강해짐에 따라 동남아 진출을 노리는 많은 기업이 쿤밍에 자리 잡고 있다.



중화주의의 기막힌 기상

윈난의 급속한 개발은 주변 국가들의 환경마저 크게 바꾸고 있다. 태국 북부 반팍잉 마을의 주민들은 중국 일기예보를 본다. 중국 남부에 폭우가 내려 중국 댐에서 물을 방류하면 자기네 마을이 침수되기 때문이다. 이 마을은 원래 어업으로 먹고살던 마을이지만 중국 댐 건설로 유량이 줄어들자 어선을 팔고 옥수수와 담배를 재배하고 있다.
윈난의 란창강(蘭滄江)은 바로 동남아의 젖줄 메콩강이다. 중국,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등 6개국을 흐르는 메콩강은 9000만 주민의 생존과 직결된다. 중국은 20년간 란창강에 7개 대형 댐을 건설했고, 5개 댐이 추가 건설 중이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중국의 댐 건설로 메콩강의 유량과 흐름이 변화하고 수질 악화와 생물 다양성 파괴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라고 경고했다. 중국의 동남아 원조는 메콩강 유역국의 반발을 무마하는 측면도 있다.

중국의 동남아에 대한 영향력 확대는 과연 경제에만 머무를까. 2014년 7월 27일, 서울 신촌에서는 태국의 송크란을 본뜬 물총축제가 열렸다. 신촌 거리에 모인 사람들과 서로 물을 쏘아대고 맞아가며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고 재미있게 보냈다. 중국의 SNS인 웨이신 펑유취안(微信朋友圈)에 “신촌 물총축제는 태국의 포수제(潑水節)를 모방하긴 했지만 꽤 재밌었다”고 글을 올리니, 중국 친구 한 명이 즉각 답을 달았다. “태국의 포수제가 아니라 타이족(泰族)의 포수제야!” 중국인에게 포수제란 시솽반나에서 타이족들이 물을 뿌리는 축제로 중국 소수민족의 문화다.
참으로 떨떠름했다. 물론 일리는 있다. 송크란은 남중국에서 동남아 북부 일대의 주민들이 제일 더운 4월에 물을 뿌리며 노는 행사다. 타이족이 중심인 태국에서 가장 크고 유명하게 벌어지기는 하지만, 타이족은 윈난, 미얀마, 라오스 등지에도 퍼져 살고 이들이 모두 송크란을 즐긴다. 따라서 송크란이 태국만의 문화는 아니다. 한데 그렇다고 중국이 송크란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건 더욱 웃긴다. 타이족은 중국 소수민족 중에서도 존재감이 약한 편인데, 이들을 빌미로 포수제는 중국 것이다?
소수민족도 곧 중국인이니, 이들의 문화도 다 중국문화라고 주장하는 중화주의의 기상은 정말 기가 막힌다. 아리랑이 중국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문화라며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중국의 행보가 떠올랐다. 중국이 이웃 국가에 진출할 때 지역주민과 동족인 소수민족은 확실히 훌륭한 첨병이 되겠지.



리장의 여인, 아름다운 밤

복잡한 속사정이야 어떻건 윈난은 중국에선 확실히 때가 덜 묻은 곳이다. “생활이 불만스럽고 지금 있는 곳이 싫어지면 다리로 가요”라는 ‘다리로 가요(去大理)’ 노랫말처럼 많은 중국인이 윈난을 찾는다. 더러는 코믹 영화 ‘신화루팡(心花路放)’처럼 로맨스를 꿈꾸기도 하면서. 윈난 사람들은 순박하고 여행객들도 이곳에서는 마음이 열려 로맨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어땠냐고? 쿤밍에서 다리로 가는 기차 침대칸에서 리장의 자매를 만났다. 언니가 임신 3개월인데, 보다 정확한 진찰을 받기 위해 성도 쿤밍까지 왔다가 돌아가는 중이었다. 동생은 리장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연락처를 줬다. 다리 여행 후 리장에 가서 그를 다시 만났다. 다소 늦게 나온 그는 헐레벌떡 뛰어와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하루 종일 리장 곳곳을 안내했고 저녁에 바에서 맥주를 함께 마셨다. 다리 특산 맥주인 ‘풍화설월(風花雪月)’이었다. 시원한 바람, 향기로운 꽃, 새하얀 눈, 아름다운 달. 아마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맥주 이름이리라. 바에는 가수가 있었는데 손님이 노래하고 싶다면 반주를 해주기도 했다. 그는 류뤄잉의 ‘나중에(後來)’를 부르고는 내게 말했다. “딱히 오빠 때문에 부른 거 아냐. 그냥 이 노래가 하고 싶었을 뿐이야.” 누가 뭐랬나.
중국어를 모를 때였다. 노래 가사처럼 나중에, 정말 나중에야 가사의 뜻을 알았다. “나중에야 난 마침내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알았어요. 안타깝게도 당신은 이미 멀리 떠나 사람들 속으로 사라져버렸죠. 나중에야 마침내 눈물 속에서 깨달았어요. 누군가는 일단 놓치면 다시 찾을 수 없다는 걸.”
오랜만에 가사를 음미하며 서정적인 노래를 들으니 여행의 추억, 아름다운 리장의 밤, 다정하던 그가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졌다.
윈난에서는 돌을 봐야 한다고? 윈난에서도 봐야 할 것은 사람이었다. 만나야 할 것은 사람이었다.




김 용 한
● 1976년 서울 출생
● 연세대 물리학과, 카이스트 Techno-MBA 전공W
● 前 하이닉스반도체, 국방기술품질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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