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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다시 읽는 대만(臺灣)

“그대들은 모두 華人 兩岸 번영 기원합니다”

‘대만 역풍’ 맞은 JYP처럼 안 되려면?

  • 최창근 | 대만 관련 저술가, 한국외국어대 박사과정 caesare21@hanmail.net

“그대들은 모두 華人 兩岸 번영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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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2개 ‘샤오펑유’만 있는 ‘부분승인국’
  • ● 98%가 ‘혈연적 중국계’이지만 대만인 정체성 강해져
  • ● ‘대만 독립’ 대화는 피하는 게 상책
  • ● 대만을 엄연한 나라로 존중해야
‘내동생 곱슬머리, 개구쟁이 내 동생,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 (…) 어떤 게 진짜인지, 몰라몰라, 몰라.’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불러봤음직한 동요 ‘내 동생’이다. ‘쯔위 사건’과 8년 만의 정권 교체로 짧은 시간이나마 한국인들의 관심을 끈 대만이라는 ‘나라’에 대해 생각할 때면, 엉뚱하게도 ‘내 동생’ 노랫말이 떠오른다. 대만의 현실이, 어떤 호칭이 진짜인지 모르는, 이 동요 속 아이와 닮았기 때문이다.
세계지도를 펼쳐 한반도를 찾는다. 동쪽으로는 일본, 서쪽으로는 거대한 중국 대륙이 있다. 익숙한 두 이웃 나라는 잠시 잊고, 시선을 아래로 옮겨보자. 필리핀과 중국 사이에 고구마 모양의 섬이 있다. 이 섬(‘영토’)에는 약 2300만 명의 사람(‘국민’)이 살며, 대통령과 비슷한 총통(總統)과 정부(‘주권’)가 존재한다. 영토, 국민, 주권. 사회 시간에 배운 ‘국가의 3요소’를 온전히 갖췄다. 그럼에도 대만은 나라라고 하기에도, 아니라고 하기에도 어려운, 모호한 처지에 놓여 있다.



영토·국민·주권 갖췄지만…

‘대만이라 불리는 나라’의 진짜 이름은 ‘중화민국(中華民國)’이다. 1911년 신해혁명의 결과 1912년 성립한 아시아의 첫 민주공화국이다. ‘대만(臺灣)’은 엄밀히 말하면 지명이다. 이 밖에도 대만을 가리키는 용어는 몇 개 더 있다. 올림픽, 아시아경기대회 등 국제행사에 참여할 때는 ‘중화타이베이(中華臺北, Chinese Taipei)’를 쓴다. 서구에서는 이 섬에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으로 ‘포모사(Formosa)’란 애칭을 붙여줬다. 동서냉전 시기에는 중공(中共)에 대비되는 자유주의 우방이라는 뜻으로 ‘자유중국(自由中國, Free China)’이라 불렸다. 이처럼 대만이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가 된 데는 복잡다단한 사연이 있다.
1912년 1월 1일, 영화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의 나라 청(淸)을 타도하고 세워진 중화민국은 국부(國父)로 추앙받던 쑨원(孫文)이 1925년 세상을 떠난 후 둘로 쪼개졌다.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과 마오쩌둥(毛澤東)·저우언라이(周恩來)가 이끄는 공산당은 전쟁(국공내전)과 합작(국공합작)을 반복하며 대륙의 패권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1946년 재개된 내전에서 완패한 국민당은 1949년 12월 대만으로 쫓겨났다. 두 달 앞선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은 베이징 톈안먼(天安門)에서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건국을 선언했다.
대만 섬으로 쫓겨났지만 중화민국 정부는 멸망하지 않았다. 중화민국은 유엔 창설 멤버이자 안전보장이사회 5대 상임이사국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미국을 비롯한 ‘자유세계’ 국가들은 여전히 중화민국을 ‘정통성 있는 정부’로 인정하며 외교관계를 유지했다.



중국의 ‘不可分的一部分’

‘대만의 중화민국(中華民國在臺灣)’이 국제사회의 고아로 전락한 것은 1970년대다. 냉전체제에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파트너가 필요한 미국은 ‘죽(竹)의 장막’을 넘어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971년 헨리 키신저는 중국을 방문,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를 만났다. ‘핑퐁 외교’의 개막이다. 미-중 데탕트와 함께 같은 해 10월 유엔 총회에서는 종전의 ‘중국대표권’을 중화민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넘기는 ‘제2758호 결의안’이 통과됐다.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도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넘어갔다.
유엔 퇴출 이후 중화민국은 고립돼갔다. 전 세계 국가 대부분이 대만과 관계를 끊고 중국과 손잡았다. ‘중화민국’이라는 진짜 이름은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쓸 수 없고, ‘대만’이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통상국호로 불리게 됐다. 그러나 중국은 이 통상국호조차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중국에서 떨어진 독립된 실체’를 의미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만은 ‘중화(中華)’에 ‘타이베이(臺北)’를 합친 ‘중화타이베이’라는 이름을 쓴다. 국제경기에서 대만 대표팀은 중화민국도, 대만도, 타이완(Taiwan)도 아닌 중화타이베이(Chinese Taipei)의 약자 ‘CT’ 로고가 박힌 유니폼을 입고 나온다.
유엔 퇴출과 ‘단교(斷交) 쓰나미’ 이후 대만의 처지는 외롭다. 공식 수교국이 22개국에 불과한데, 그마저 국토가 작고 인구가 적고 경제력이 약한 나라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들 ‘샤오펑유(小朋友, 작은 친구)’들과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은탄외교(銀彈外交)’라 불리는 ‘수표책 외교’에 매년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기 때문이다. 돈으로 우정을 사는 셈이다.
대만이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에는 유엔 퇴출로 인한 대표권 상실과 더불어 1933년 체결된 몬테비데오 협약이 있다. 이 협약은 국가의 요건으로 영구적 주민(국민), 명확한 영역(영토), 정부와 더불어 ‘타국과 외교관계를 맺는 능력’을 명시한다. 이에 따르면 유엔 비회원국이자 고작 22개 소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대만의 중화민국은 나라라고 하기에도,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처지다.
이러한 대만은 지난날 한국과 형제의 나라, 혹은 혈맹(血盟)이라고 할 정도로 가까웠다. 그러나 1992년 8월 24일, 한중수교와 동시에 이뤄진 대만과의 단교로 양국의 공식 관계는 끝났다. 한국이 대만의 손을 놓고 중국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중국의 대외정책 원칙 ‘하나의 중국정책(一個中國政策, One China Policy)’이 자리한다.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회의에서 저우언라이가 천명한 것으로, 중국은 하나이며 베이징의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만이 전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게 골자다. 대만과 관련해서는 ‘(대만은) 나눌 수 없는 (중국의) 일부분(不可分的一部分)’이라는 옵션이 붙는다.




타이완에 왕이 있다고?

단교 이후 한국에서 대만에 대한 관심은 급속하게 식었다. 그렇다 보니 대만 이야기가 나오면 웃지 못할 일이 종종 벌어진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각종 중국어 인명, 지명 표기를 현지 발음에 가깝게 하면서 대만에 대해서도 ‘타이완’이라는 현지식 표기를 병행해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타이완과 타이(Thai, 태국)가 헷갈려 “타이완 여행을 다녀왔어요. 국왕이 있는 줄 알았더니 대통령이랑 비슷한 총통이 있다고 해서 놀랐네요” 하는 식의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대만에서 3년간 공부한 나만 해도 지인들에게 대만에 대해 설명하자면 답답하다. 살짝 화가 날 때도 있다. 대만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고 하면 대개 이런 말을 한다. “그럼 대만어 잘하겠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한국에서 한국어를 쓰듯 대만이니 ‘대만어’를 쓰고, 거기서 살았으니 어느 정도 구사하지 않겠느냐는 뜻이라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대만에서 공용어로 사용하는 언어는 대만어가 아니라 본토에서 보통화(普通話)라고 하는 베이징 표준어다. 현지에서는 보통 ‘대만어’라고 하는 푸젠계 방언 민남어(?南語), 객가어(客家語), 그리고 중국어와 전혀 상관없는 대만 원주민어도 쓰인다. 나는 대만의 국어인 베이징 표준어만 배우고 쓸 줄 알 뿐, 대만어라고 하는 현지어는 전혀 할 줄 모른다. 이런 사연을 한참 설명하다 보면 대개 나오는 반응은 이렇다. “아…. 대만에서도 중국어를 쓰는구나….” “대만은 광둥(廣東)어를 쓰는 줄 알았지, 옛날 홍콩 영화에 나오는….”
대만은 민주주의 체제를 갖췄고, 5권(행정·입법·사법·고시·감찰) 분립제 헌법 아래 대통령과 유사한 총통과 단원제 국회를 두며, 경제 수준도 비슷하고, ‘한강의 기적’에 버금가는 ‘대만의 기적’을 일궜고, 오랜 권위주의 체제를 거친 후 경제 발전과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고…. 대만이 한국과 정말 비슷한 나라임을 설명하자면 날이 샐 정도다. 그러나 단교 이후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남을 시간 동안 한국에서 대만의 존재감은 거의 없어졌다. 1980년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에겐 더욱 그렇다. 가끔 대만에서 반한 감정이 터져 나오거나 쯔위 사건 같은 돌발변수가 발생할 때만 ‘아니, 쟤네는 왜 그래?’ 하는 반응이 나올 뿐이다.



쯔위 후폭풍

이런 현실에서 발생한 쯔위 사건은 결과적으로 대만의 처지도 알리고 존재감도 부각시켰으니, 의도치 않은 노이즈 마케팅에 성공한 셈이다. 다만 사건의 발생부터 파장 ‘효과’까지 지켜보는 마음은 씁쓸하기만 하다. 쯔위 사건도 다수 한국인의 중국 및 대만에 대한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왜 대만 국적 아이돌 가수가 자국 국기를 흔든 것이 문제가 될까. 국기는 국가(國歌)와 더불어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다만 대만은 기구한 처지 탓에 국제사회에서 공식 국호 및 통상국호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국기도, 국가도 사용할 수 없다. 올림픽 등 국제행사에서는 공식 국기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旗)’ 대신 오륜기에 ‘푸른 하늘’ 청천(靑天) 문양을 넣은 ‘중화타이베이올림픽위원회기’를 사용한다. ‘삼민주의(三民主義) 우리 당의 목표…’라는 구절로 시작해 ‘삼민주의가(三民主義歌)’라 불리는 국가 대신 국기가(國旗歌)’를 부른다.
사실 대만 국기가 논란이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중국과 대만은 국제 무대에서 국호와 더불어 국기 사용 문제를 두고 치열하게 싸워왔다. 근래의 일로는 2012년 런던 올림픽 대만 국기 철거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런던올림픽조직위원회 측의 실수로 청천백일만지홍기가 런던 시내에 세계 여러 나라의 국기들과 함께 걸렸다. 중국 당국의 항의로 대만 국기는 내려지고 중화타이베이올림픽위원회기가 대신 걸리자 이번에는 대만 민심이 들끓었다. 런던 올림픽 실무진의 실수로 생긴 해프닝이 가뜩이나 국제사회에서 나라 대접을 못 받는 대만 국민의 설움을 자극하는 결과로 이어져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다.  
“중국은 하나이며 양안(兩岸)은 한 나라입니다. 저는 항상 자신을 중국인이라 생각해왔습니다.”
쯔위의 사과 동영상에서 대만 여론을 들끓게 한 워딩은 세 가지다. ‘중국은 하나’, ‘양안은 한 나라’, 그리고 ‘중국인’이란 표현이다.



共匪의 나라, 蔣幇의 나라

양안 분단 이후 대만의 중화민국과 본토의 중화인민공화국은 ‘누가 중국을 대표하는가’를 두고 대립해왔다. 정부의 정통성과 합법성을 둘러싼 싸움이다. 중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하면서 중화민국이 멸망했다고 간주한다. 그러나 중화민국은 대만 섬에서 엄연하게 존재하는 정치적 실체다. 제한적이나마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받는다. 이 점에서 ‘중국은 하나’ ‘양안은 한 나라’라는 쯔위의 발언은 ‘대만은 중국과 분리된 사실상의 다른 나라’라고 여기는 대다수 대만 국민을 자극할 만했다.
장제스는 대만으로 밀려난 뒤에도 자신과 중화민국만이 중화의 정통을 잇는 정부라고 주장했다. 그가 내세운 명분은 ‘한적불양립(漢賊不兩立)’이었다. ‘선제(유비)께서 말씀하시기를 한을 훔친 역적과는 함께 설 수 없고, 왕업은 천하의 한 모퉁이를 차지한 것에 만족해 주저앉아 있을 수 없다 여기시어 신에게 역적을 칠 것을 당부했습니다(先帝慮漢賊不兩立 王業不偏安 故託臣以討賊也)’. 장제스는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제갈량의 ‘후출사표(後出師表)’에 등장하는 이 표현을 빌렸다. 자신을 촉한(蜀漢), 마오쩌둥을 한을 찬탈한 위(魏)의 조조(曹操)에 비유한 것이다.
이에 마오쩌둥도 지지 않았다. 1971년 중국을 방문한 키신저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대만에서는 당신을 ‘공비(共匪, 공산비적떼)’라고 하던데, 당신은 대만을 뭐라 부르나요?” “우리는 저들을 ‘장방(蔣幇, 장제스 패거리)’라 하지요.” 저우언라이와 관련해서는 이런 일화가 있다. 한 서방 기자가 물었다. “총리, 중국에도 창녀가 있나요?” “물론 있죠. 저 바다(대만해협) 건너편에 있답니다.” 기자의 짓궂은 질문을 피해가면서도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임을 강조한 것이다.


“나는 중국인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뿌리를 ‘중국’에 둔 국민당과 공산당은 ‘중국은 하나’라는 원칙에 동의해왔다. 단지 어느 쪽이 중국을 대표하는지를 두고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다. 그러던 중 등장한 것이 ‘199 2컨센서스(九二共識)’다. 1992년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와 대만 해협교류기금회 대표가 홍콩에서 회담을 열고,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중화민국(대만)이 각자의 해석에 따른 명칭을 사용(一中各表)하기로 했다. 즉 하나의 중국은 맞는데, 서로 상대방을 인정할 수는 없으니, ‘중국’이 중화민국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중화인민공화국을 뜻하는지 각자 알아서 정하도록 한 것이다. 실로 창조적이지만 모호한 합의다.
‘양안’이라는 어휘도 모호하긴 매한가지다. 이 단어는 ‘바다나 하천을 사이에 놓고 있는 양쪽 기슭(兩岸)’이란 뜻이다. 즉, 양안관계란 대만과 중국이 서로 상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표현인 셈이다.
쯔위의 ‘중국인’ 발언이 대만 사회, 특히 대만 젊은이들을 들끓게 한 것은 이들은 더 이상 자신들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만 정부 공식 통계에 따르면 대만 국민의 98%는 혈연적으로 중국계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이후 자신의 정체성을 중국인이 아닌 대만인에서 찾는 국민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1992년부터 국립정치대학 선거연구센터에 의뢰, 매년 1만 명을 표본으로 정체성 조사를 실시한다. 1996년에는 ‘대만인이기도 하고, 중국인이기도 하다’고 답한 비율이 49.3%였는데, 19년이 지난 2015년 조사에선 ‘대만인일 뿐 중국인이 아니다’라고 답한 비율이 59%를 차지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이런 경향이 두드러져, 다수는 ‘나는 온전히 대만인이다’라고 생각한다.
대만 유학 시절, 대만 친구들과 대화 중 ‘Chinese’라는 표현을 쓰면 반응은 대개 이랬다. “난 대만인이지, 중국인이 아니거든. 너한테 ‘북한 사람’이라고 하면 기분 좋겠어?” 이런 형편인데도 대만 국적임이 분명한 쯔위가 “저는 항상 자신을 중국인이라 생각해왔습니다”라고 했으니, 대만의 젊은이들이 이른바 ‘열폭’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게다가 정황상 쯔위의 사과는 소속사의 강요에 의한 것으로 비쳤고, 안 그래도 나라 대접 못 받아 서러운데 대만인에게 ‘중국인’이라고 얘기하게 했으니, 한국에 서운하고 화나는 감정이 생기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결과적으로 쯔위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는 대만 총통·입법원 동시 선거 기간에, 더욱이 궁극적으로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민주진보당의 집권이 유력하게 전망돼 중국 당국의 심기가 매우 불편할 때, 양안 문제를 잘못 건드려 매를 번 셈이다.
그러면 우리는 중국, 대만 사람들을 상대할 때 어떻게 해야 본전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양안관계에서 가장 난감한 문제는 ‘대만을 국가로 인정할 것인가’다. 앞서 설명했듯 대만은 일부 국가에만 국가 승인을 받은 ‘부분승인국’이다. 그러나 중화민국이라는 실체는 분명 존재하므로 대만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제대로 된 나라 대접을 해야 한다. 더불어 1992년 단교할 때 명동 대사관을 중국에 내준 문제 등에 대해선 “한국인으로서 미안하다. 다만 국제법상 불가피한 일이었다” 정도로 얘기하는 게 좋다. 국제정치, 국제법상 문제로 공식석상에서 대만을 온전한 나라로 인정해주지 못하는 점에 대해서도 이해를 구해야 한다.
반면 ‘대만은 중국의 나눌 수 없는 일부이며, 하나의 성(省)에 불과하다’고 철저히 ‘세뇌’된 중국인을 만났을 때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중국’을 존중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다만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이 ‘중화민국’ 대만과 오랜 유대관계를 맺어왔음을 상기시키며, 다수의 한국인은 대만을 실질적인 독립국가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인지시킬 필요가 있다.
물론 가장 ‘현명한’ 처세는 중국·대만 사람들과는 양안관계, 대만 독립문제 등 골치 아픈 주제로 대화하지 않는 것이다. 피치 못하게 이런 얘기가 나온 상황에 놓인다면, 게다가 그 자리에 대만인과 중국인이 함께 있다면, 내가 추천하는 모범답안은 이렇다. “양안관계는 복잡한 문제라 쉽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양안 문제는 기본적으로 내정(內政) 문제이기 때문에 외국인인 내가 참견하는 것은 주제넘는다고 생각한다. 양안이 지혜를 모아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해나가리라 믿으며 양안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한다.” 매우 외교적인 수사(修辭)이지만, 이것이 정답이라고 본다.



‘용의 후예’ 공통 인식

덧붙여 쓸 수 있는 표현은 ‘화인(華人)’이다. 화이(華夷)사상에 입각해 중국인이 스스로를 중화(中華)라 부르는 것은 주변 국가·민족에 대한 우월감이 내포되어 있기에, 한국인으로서 달갑지 않은 표현이다. 그렇지만 중국인, 대만인, 홍콩인, 싱가포르인 등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어휘다.
따라서 그들이 중국인, 대만인 어쩌고 하며 싸우면서 당신에게도 ‘동참’을 요구할 경우에는 “당신들 모두 화인 아니냐?” 정도로 넘기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 범중화권인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은 역사, 정치체제, 경제·사회 발전 수준이 서로 다르고, 그 결과 서로 다른 국적 및 정체성을 지니게 됐지만, 이들 모두 ‘용의 후예(龍的傳人)’라는 사실을 부정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2015년 11월 싱가포르에서 마잉주 대만 총통을 만난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를 강조한 바 있다.

최 창 근


● 1983년 경남 고성 출생
●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대만 국립정치대 석사(커뮤니케이션학)
● 한반도선진화재단 연구원, ‘월간중앙’ 타이베이 통신원
● 現 한국외국어대 행정학 박사과정, 동 대학 아시아학통섭포럼 총무이사
● 저서 : ‘대만 : 우리가 잠시 잊은 가까운 이웃’ ‘ 대만 : 거대한 역사를 품은 작은 행복의 나라’ ‘타이베이 : 소박하고 느긋한 행복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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