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호

특집 | 다시 읽는 대만(臺灣)

“그대들은 모두 華人 兩岸 번영 기원합니다”

‘대만 역풍’ 맞은 JYP처럼 안 되려면?

  • 최창근 | 대만 관련 저술가, 한국외국어대 박사과정 caesare21@hanmail.net

    입력2016-02-25 10:3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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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개 ‘샤오펑유’만 있는 ‘부분승인국’
    • 98%가 ‘혈연적 중국계’이지만 대만인 정체성 강해져
    • ‘대만 독립’ 대화는 피하는 게 상책
    • 대만을 엄연한 나라로 존중해야
    ‘내동생 곱슬머리, 개구쟁이 내 동생,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 (…) 어떤 게 진짜인지, 몰라몰라, 몰라.’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불러봤음직한 동요 ‘내 동생’이다. ‘쯔위 사건’과 8년 만의 정권 교체로 짧은 시간이나마 한국인들의 관심을 끈 대만이라는 ‘나라’에 대해 생각할 때면, 엉뚱하게도 ‘내 동생’ 노랫말이 떠오른다. 대만의 현실이, 어떤 호칭이 진짜인지 모르는, 이 동요 속 아이와 닮았기 때문이다.
    세계지도를 펼쳐 한반도를 찾는다. 동쪽으로는 일본, 서쪽으로는 거대한 중국 대륙이 있다. 익숙한 두 이웃 나라는 잠시 잊고, 시선을 아래로 옮겨보자. 필리핀과 중국 사이에 고구마 모양의 섬이 있다. 이 섬(‘영토’)에는 약 2300만 명의 사람(‘국민’)이 살며, 대통령과 비슷한 총통(總統)과 정부(‘주권’)가 존재한다. 영토, 국민, 주권. 사회 시간에 배운 ‘국가의 3요소’를 온전히 갖췄다. 그럼에도 대만은 나라라고 하기에도, 아니라고 하기에도 어려운, 모호한 처지에 놓여 있다.



    영토·국민·주권 갖췄지만…

    ‘대만이라 불리는 나라’의 진짜 이름은 ‘중화민국(中華民國)’이다. 1911년 신해혁명의 결과 1912년 성립한 아시아의 첫 민주공화국이다. ‘대만(臺灣)’은 엄밀히 말하면 지명이다. 이 밖에도 대만을 가리키는 용어는 몇 개 더 있다. 올림픽, 아시아경기대회 등 국제행사에 참여할 때는 ‘중화타이베이(中華臺北, Chinese Taipei)’를 쓴다. 서구에서는 이 섬에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으로 ‘포모사(Formosa)’란 애칭을 붙여줬다. 동서냉전 시기에는 중공(中共)에 대비되는 자유주의 우방이라는 뜻으로 ‘자유중국(自由中國, Free China)’이라 불렸다. 이처럼 대만이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가 된 데는 복잡다단한 사연이 있다.
    1912년 1월 1일, 영화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의 나라 청(淸)을 타도하고 세워진 중화민국은 국부(國父)로 추앙받던 쑨원(孫文)이 1925년 세상을 떠난 후 둘로 쪼개졌다.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과 마오쩌둥(毛澤東)·저우언라이(周恩來)가 이끄는 공산당은 전쟁(국공내전)과 합작(국공합작)을 반복하며 대륙의 패권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1946년 재개된 내전에서 완패한 국민당은 1949년 12월 대만으로 쫓겨났다. 두 달 앞선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은 베이징 톈안먼(天安門)에서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건국을 선언했다.
    대만 섬으로 쫓겨났지만 중화민국 정부는 멸망하지 않았다. 중화민국은 유엔 창설 멤버이자 안전보장이사회 5대 상임이사국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미국을 비롯한 ‘자유세계’ 국가들은 여전히 중화민국을 ‘정통성 있는 정부’로 인정하며 외교관계를 유지했다.



    중국의 ‘不可分的一部分’

    ‘대만의 중화민국(中華民國在臺灣)’이 국제사회의 고아로 전락한 것은 1970년대다. 냉전체제에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파트너가 필요한 미국은 ‘죽(竹)의 장막’을 넘어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971년 헨리 키신저는 중국을 방문,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를 만났다. ‘핑퐁 외교’의 개막이다. 미-중 데탕트와 함께 같은 해 10월 유엔 총회에서는 종전의 ‘중국대표권’을 중화민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넘기는 ‘제2758호 결의안’이 통과됐다.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도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넘어갔다.
    유엔 퇴출 이후 중화민국은 고립돼갔다. 전 세계 국가 대부분이 대만과 관계를 끊고 중국과 손잡았다. ‘중화민국’이라는 진짜 이름은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쓸 수 없고, ‘대만’이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통상국호로 불리게 됐다. 그러나 중국은 이 통상국호조차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중국에서 떨어진 독립된 실체’를 의미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만은 ‘중화(中華)’에 ‘타이베이(臺北)’를 합친 ‘중화타이베이’라는 이름을 쓴다. 국제경기에서 대만 대표팀은 중화민국도, 대만도, 타이완(Taiwan)도 아닌 중화타이베이(Chinese Taipei)의 약자 ‘CT’ 로고가 박힌 유니폼을 입고 나온다.
    유엔 퇴출과 ‘단교(斷交) 쓰나미’ 이후 대만의 처지는 외롭다. 공식 수교국이 22개국에 불과한데, 그마저 국토가 작고 인구가 적고 경제력이 약한 나라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들 ‘샤오펑유(小朋友, 작은 친구)’들과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은탄외교(銀彈外交)’라 불리는 ‘수표책 외교’에 매년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기 때문이다. 돈으로 우정을 사는 셈이다.
    대만이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에는 유엔 퇴출로 인한 대표권 상실과 더불어 1933년 체결된 몬테비데오 협약이 있다. 이 협약은 국가의 요건으로 영구적 주민(국민), 명확한 영역(영토), 정부와 더불어 ‘타국과 외교관계를 맺는 능력’을 명시한다. 이에 따르면 유엔 비회원국이자 고작 22개 소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대만의 중화민국은 나라라고 하기에도,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처지다.
    이러한 대만은 지난날 한국과 형제의 나라, 혹은 혈맹(血盟)이라고 할 정도로 가까웠다. 그러나 1992년 8월 24일, 한중수교와 동시에 이뤄진 대만과의 단교로 양국의 공식 관계는 끝났다. 한국이 대만의 손을 놓고 중국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중국의 대외정책 원칙 ‘하나의 중국정책(一個中國政策, One China Policy)’이 자리한다.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회의에서 저우언라이가 천명한 것으로, 중국은 하나이며 베이징의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만이 전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게 골자다. 대만과 관련해서는 ‘(대만은) 나눌 수 없는 (중국의) 일부분(不可分的一部分)’이라는 옵션이 붙는다.


    “나는 중국인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뿌리를 ‘중국’에 둔 국민당과 공산당은 ‘중국은 하나’라는 원칙에 동의해왔다. 단지 어느 쪽이 중국을 대표하는지를 두고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다. 그러던 중 등장한 것이 ‘199 2컨센서스(九二共識)’다. 1992년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와 대만 해협교류기금회 대표가 홍콩에서 회담을 열고,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중화민국(대만)이 각자의 해석에 따른 명칭을 사용(一中各表)하기로 했다. 즉 하나의 중국은 맞는데, 서로 상대방을 인정할 수는 없으니, ‘중국’이 중화민국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중화인민공화국을 뜻하는지 각자 알아서 정하도록 한 것이다. 실로 창조적이지만 모호한 합의다.
    ‘양안’이라는 어휘도 모호하긴 매한가지다. 이 단어는 ‘바다나 하천을 사이에 놓고 있는 양쪽 기슭(兩岸)’이란 뜻이다. 즉, 양안관계란 대만과 중국이 서로 상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표현인 셈이다.
    쯔위의 ‘중국인’ 발언이 대만 사회, 특히 대만 젊은이들을 들끓게 한 것은 이들은 더 이상 자신들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만 정부 공식 통계에 따르면 대만 국민의 98%는 혈연적으로 중국계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이후 자신의 정체성을 중국인이 아닌 대만인에서 찾는 국민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1992년부터 국립정치대학 선거연구센터에 의뢰, 매년 1만 명을 표본으로 정체성 조사를 실시한다. 1996년에는 ‘대만인이기도 하고, 중국인이기도 하다’고 답한 비율이 49.3%였는데, 19년이 지난 2015년 조사에선 ‘대만인일 뿐 중국인이 아니다’라고 답한 비율이 59%를 차지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이런 경향이 두드러져, 다수는 ‘나는 온전히 대만인이다’라고 생각한다.
    대만 유학 시절, 대만 친구들과 대화 중 ‘Chinese’라는 표현을 쓰면 반응은 대개 이랬다. “난 대만인이지, 중국인이 아니거든. 너한테 ‘북한 사람’이라고 하면 기분 좋겠어?” 이런 형편인데도 대만 국적임이 분명한 쯔위가 “저는 항상 자신을 중국인이라 생각해왔습니다”라고 했으니, 대만의 젊은이들이 이른바 ‘열폭’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게다가 정황상 쯔위의 사과는 소속사의 강요에 의한 것으로 비쳤고, 안 그래도 나라 대접 못 받아 서러운데 대만인에게 ‘중국인’이라고 얘기하게 했으니, 한국에 서운하고 화나는 감정이 생기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결과적으로 쯔위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는 대만 총통·입법원 동시 선거 기간에, 더욱이 궁극적으로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민주진보당의 집권이 유력하게 전망돼 중국 당국의 심기가 매우 불편할 때, 양안 문제를 잘못 건드려 매를 번 셈이다.
    그러면 우리는 중국, 대만 사람들을 상대할 때 어떻게 해야 본전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양안관계에서 가장 난감한 문제는 ‘대만을 국가로 인정할 것인가’다. 앞서 설명했듯 대만은 일부 국가에만 국가 승인을 받은 ‘부분승인국’이다. 그러나 중화민국이라는 실체는 분명 존재하므로 대만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제대로 된 나라 대접을 해야 한다. 더불어 1992년 단교할 때 명동 대사관을 중국에 내준 문제 등에 대해선 “한국인으로서 미안하다. 다만 국제법상 불가피한 일이었다” 정도로 얘기하는 게 좋다. 국제정치, 국제법상 문제로 공식석상에서 대만을 온전한 나라로 인정해주지 못하는 점에 대해서도 이해를 구해야 한다.
    반면 ‘대만은 중국의 나눌 수 없는 일부이며, 하나의 성(省)에 불과하다’고 철저히 ‘세뇌’된 중국인을 만났을 때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중국’을 존중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다만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이 ‘중화민국’ 대만과 오랜 유대관계를 맺어왔음을 상기시키며, 다수의 한국인은 대만을 실질적인 독립국가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인지시킬 필요가 있다.
    물론 가장 ‘현명한’ 처세는 중국·대만 사람들과는 양안관계, 대만 독립문제 등 골치 아픈 주제로 대화하지 않는 것이다. 피치 못하게 이런 얘기가 나온 상황에 놓인다면, 게다가 그 자리에 대만인과 중국인이 함께 있다면, 내가 추천하는 모범답안은 이렇다. “양안관계는 복잡한 문제라 쉽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양안 문제는 기본적으로 내정(內政) 문제이기 때문에 외국인인 내가 참견하는 것은 주제넘는다고 생각한다. 양안이 지혜를 모아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해나가리라 믿으며 양안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한다.” 매우 외교적인 수사(修辭)이지만, 이것이 정답이라고 본다.



    ‘용의 후예’ 공통 인식

    덧붙여 쓸 수 있는 표현은 ‘화인(華人)’이다. 화이(華夷)사상에 입각해 중국인이 스스로를 중화(中華)라 부르는 것은 주변 국가·민족에 대한 우월감이 내포되어 있기에, 한국인으로서 달갑지 않은 표현이다. 그렇지만 중국인, 대만인, 홍콩인, 싱가포르인 등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어휘다.
    따라서 그들이 중국인, 대만인 어쩌고 하며 싸우면서 당신에게도 ‘동참’을 요구할 경우에는 “당신들 모두 화인 아니냐?” 정도로 넘기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 범중화권인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은 역사, 정치체제, 경제·사회 발전 수준이 서로 다르고, 그 결과 서로 다른 국적 및 정체성을 지니게 됐지만, 이들 모두 ‘용의 후예(龍的傳人)’라는 사실을 부정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2015년 11월 싱가포르에서 마잉주 대만 총통을 만난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를 강조한 바 있다.

    최 창 근


    ● 1983년 경남 고성 출생
    ●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대만 국립정치대 석사(커뮤니케이션학)
    ● 한반도선진화재단 연구원, ‘월간중앙’ 타이베이 통신원
    ● 現 한국외국어대 행정학 박사과정, 동 대학 아시아학통섭포럼 총무이사
    ● 저서 : ‘대만 : 우리가 잠시 잊은 가까운 이웃’ ‘ 대만 : 거대한 역사를 품은 작은 행복의 나라’ ‘타이베이 : 소박하고 느긋한 행복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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