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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다시 읽는 대만(臺灣)

“그대들은 모두 華人 兩岸 번영 기원합니다”

‘대만 역풍’ 맞은 JYP처럼 안 되려면?

  • 최창근 | 대만 관련 저술가, 한국외국어대 박사과정 caesare21@hanmail.net

“그대들은 모두 華人 兩岸 번영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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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에 왕이 있다고?

“그대들은 모두 華人 兩岸 번영 기원합니다”

타이베이 국립국부기념관의 쑨원 동상. 대만은 중화민국을 세운 쑨원을 국부(國父)로 추앙한다. 김용한

단교 이후 한국에서 대만에 대한 관심은 급속하게 식었다. 그렇다 보니 대만 이야기가 나오면 웃지 못할 일이 종종 벌어진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각종 중국어 인명, 지명 표기를 현지 발음에 가깝게 하면서 대만에 대해서도 ‘타이완’이라는 현지식 표기를 병행해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타이완과 타이(Thai, 태국)가 헷갈려 “타이완 여행을 다녀왔어요. 국왕이 있는 줄 알았더니 대통령이랑 비슷한 총통이 있다고 해서 놀랐네요” 하는 식의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대만에서 3년간 공부한 나만 해도 지인들에게 대만에 대해 설명하자면 답답하다. 살짝 화가 날 때도 있다. 대만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고 하면 대개 이런 말을 한다. “그럼 대만어 잘하겠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한국에서 한국어를 쓰듯 대만이니 ‘대만어’를 쓰고, 거기서 살았으니 어느 정도 구사하지 않겠느냐는 뜻이라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대만에서 공용어로 사용하는 언어는 대만어가 아니라 본토에서 보통화(普通話)라고 하는 베이징 표준어다. 현지에서는 보통 ‘대만어’라고 하는 푸젠계 방언 민남어(?南語), 객가어(客家語), 그리고 중국어와 전혀 상관없는 대만 원주민어도 쓰인다. 나는 대만의 국어인 베이징 표준어만 배우고 쓸 줄 알 뿐, 대만어라고 하는 현지어는 전혀 할 줄 모른다. 이런 사연을 한참 설명하다 보면 대개 나오는 반응은 이렇다. “아…. 대만에서도 중국어를 쓰는구나….” “대만은 광둥(廣東)어를 쓰는 줄 알았지, 옛날 홍콩 영화에 나오는….”
대만은 민주주의 체제를 갖췄고, 5권(행정·입법·사법·고시·감찰) 분립제 헌법 아래 대통령과 유사한 총통과 단원제 국회를 두며, 경제 수준도 비슷하고, ‘한강의 기적’에 버금가는 ‘대만의 기적’을 일궜고, 오랜 권위주의 체제를 거친 후 경제 발전과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고…. 대만이 한국과 정말 비슷한 나라임을 설명하자면 날이 샐 정도다. 그러나 단교 이후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남을 시간 동안 한국에서 대만의 존재감은 거의 없어졌다. 1980년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에겐 더욱 그렇다. 가끔 대만에서 반한 감정이 터져 나오거나 쯔위 사건 같은 돌발변수가 발생할 때만 ‘아니, 쟤네는 왜 그래?’ 하는 반응이 나올 뿐이다.



쯔위 후폭풍

이런 현실에서 발생한 쯔위 사건은 결과적으로 대만의 처지도 알리고 존재감도 부각시켰으니, 의도치 않은 노이즈 마케팅에 성공한 셈이다. 다만 사건의 발생부터 파장 ‘효과’까지 지켜보는 마음은 씁쓸하기만 하다. 쯔위 사건도 다수 한국인의 중국 및 대만에 대한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왜 대만 국적 아이돌 가수가 자국 국기를 흔든 것이 문제가 될까. 국기는 국가(國歌)와 더불어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다만 대만은 기구한 처지 탓에 국제사회에서 공식 국호 및 통상국호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국기도, 국가도 사용할 수 없다. 올림픽 등 국제행사에서는 공식 국기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旗)’ 대신 오륜기에 ‘푸른 하늘’ 청천(靑天) 문양을 넣은 ‘중화타이베이올림픽위원회기’를 사용한다. ‘삼민주의(三民主義) 우리 당의 목표…’라는 구절로 시작해 ‘삼민주의가(三民主義歌)’라 불리는 국가 대신 국기가(國旗歌)’를 부른다.
사실 대만 국기가 논란이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중국과 대만은 국제 무대에서 국호와 더불어 국기 사용 문제를 두고 치열하게 싸워왔다. 근래의 일로는 2012년 런던 올림픽 대만 국기 철거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런던올림픽조직위원회 측의 실수로 청천백일만지홍기가 런던 시내에 세계 여러 나라의 국기들과 함께 걸렸다. 중국 당국의 항의로 대만 국기는 내려지고 중화타이베이올림픽위원회기가 대신 걸리자 이번에는 대만 민심이 들끓었다. 런던 올림픽 실무진의 실수로 생긴 해프닝이 가뜩이나 국제사회에서 나라 대접을 못 받는 대만 국민의 설움을 자극하는 결과로 이어져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다.  
“중국은 하나이며 양안(兩岸)은 한 나라입니다. 저는 항상 자신을 중국인이라 생각해왔습니다.”
쯔위의 사과 동영상에서 대만 여론을 들끓게 한 워딩은 세 가지다. ‘중국은 하나’, ‘양안은 한 나라’, 그리고 ‘중국인’이란 표현이다.



共匪의 나라, 蔣幇의 나라

양안 분단 이후 대만의 중화민국과 본토의 중화인민공화국은 ‘누가 중국을 대표하는가’를 두고 대립해왔다. 정부의 정통성과 합법성을 둘러싼 싸움이다. 중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하면서 중화민국이 멸망했다고 간주한다. 그러나 중화민국은 대만 섬에서 엄연하게 존재하는 정치적 실체다. 제한적이나마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받는다. 이 점에서 ‘중국은 하나’ ‘양안은 한 나라’라는 쯔위의 발언은 ‘대만은 중국과 분리된 사실상의 다른 나라’라고 여기는 대다수 대만 국민을 자극할 만했다.
장제스는 대만으로 밀려난 뒤에도 자신과 중화민국만이 중화의 정통을 잇는 정부라고 주장했다. 그가 내세운 명분은 ‘한적불양립(漢賊不兩立)’이었다. ‘선제(유비)께서 말씀하시기를 한을 훔친 역적과는 함께 설 수 없고, 왕업은 천하의 한 모퉁이를 차지한 것에 만족해 주저앉아 있을 수 없다 여기시어 신에게 역적을 칠 것을 당부했습니다(先帝慮漢賊不兩立 王業不偏安 故託臣以討賊也)’. 장제스는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제갈량의 ‘후출사표(後出師表)’에 등장하는 이 표현을 빌렸다. 자신을 촉한(蜀漢), 마오쩌둥을 한을 찬탈한 위(魏)의 조조(曹操)에 비유한 것이다.
이에 마오쩌둥도 지지 않았다. 1971년 중국을 방문한 키신저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대만에서는 당신을 ‘공비(共匪, 공산비적떼)’라고 하던데, 당신은 대만을 뭐라 부르나요?” “우리는 저들을 ‘장방(蔣幇, 장제스 패거리)’라 하지요.” 저우언라이와 관련해서는 이런 일화가 있다. 한 서방 기자가 물었다. “총리, 중국에도 창녀가 있나요?” “물론 있죠. 저 바다(대만해협) 건너편에 있답니다.” 기자의 짓궂은 질문을 피해가면서도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임을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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