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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은 ‘권력 분산형’ ‘긴밀 생태계’로 판 키워라

삼성의 도전, 한국의 과제 ③가상현실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VR은 ‘권력 분산형’ ‘긴밀 생태계’로 판 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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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3D가 ‘보는’ 것이라면 VR은 ‘들어가는’ 것”
  • ● ‘삼성 언팩’에 나타난 저커버그…그래도 ‘갑’은 페이스북?
  • ● 해상도, 헤드트래킹, 멀미 현상…아직 갈 길 먼 VR
  • ● “인간을 더 인간답게 하는 기계”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은 미래의 플랫폼이다.”(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스페인 바르셀로나 MWC(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2016 개막 전날인 2월 21일 열린 삼성전자 갤럭시S7 언팩(Unpacked) 행사에 저커버그가 깜짝 등장한 이후 VR이 대세로 떠올랐다. 이 행사는 갤럭시S7을 처음 선보이는 자리였지만, 주인공은 단연 ‘기어VR’이었다. 저커버그가 직접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한 장이 그 ‘증거’로 통한다. 기어VR을 쓰고 가상현실을 체험하느라 바쁜 관객들은 자신 옆으로 ‘IT 스타’ 저커버그가 지나가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MWC 2016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VR 기기 기어VR과 ‘LG 360 VR’을 선보였다. 기어VR이 머리 앞에 VR 디스플레이를 부착하는 HMD(Head Mounted Display)형 제품이라면, LG 360 VR은 귀에 걸치는 안경형이라는 차이가 있다. 가상현실로 ‘입장’하려면 기어VR에 갤럭시S7을 장착하거나 LG전자의 새 스마트폰 G5와 LG 360 VR을 유선으로 연결하면 된다.

이들 VR 기기를 착용하면 ‘진짜 현실’과 차단된 가상세계가 사방(四方), 그리고 위, 아래로 펼쳐진다. 기어VR로 에버랜드 ‘T-익스프레스’를 체험하면, 고개를 돌려 내 뒷좌석에 앉아 소리 지르는 승객을 볼 수 있다. 고개를 들면 경기 용인의 파란 하늘이 펼쳐진다. LG전자 관계자는 “LG 360 VR로 여성 아이돌 그룹의 공연을 봤는데, 내가 무대 한가운데 서 있고 대여섯 명의 소녀가 내 앞과 뒤, 양옆에서 춤을 추더라”며 “현장감이 뛰어나다”고 놀라워했다. 한국VR산업협회장을 맡고 있는 현대원 서강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3D(3차원 영상)가 ‘보는’ 것이라면 VR은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VR의 원년

‘2016년은 VR의 원년’이라는 말도 요즘 회자되는데, 이는 VR 기술이 올해 본격화했다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구매할 만한 VR 기기가 올해부터 보급되기 시작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VR 기술은 20, 30년 전부터 존재해왔다. 하지만 2012년 설립된 ‘오큘러스VR’이 사람의 눈처럼 2개로 나뉜 렌즈를 통해 영상을 전달하는 단순한 기술을 내놓은 덕분에 저렴한 VR 기기를 개발할 수 있게 됐다. 기어VR은 99달러로 출시되며, LG 360 VR 출시 가격은 20만 원 안팎으로 점쳐진다. 고성능 PC게임에 특화된 오큘러스 리프트는 599달러에 출시될 예정이다. ‘폭풍마경’ 등 3만~4만 원에 불과한 중국산 VR 기기도 여럿이다. 조립식 카드보드인 구글의 VR 기기는 몇 천 원 수준이다.

VR 시장 성장세에 대한 전망치는 기관마다 다르지만, 빠르게 성장할 것이란 점에서는 모두 견해를 함께한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TrendForce)는 가장 낙관적으로 예측하는 축에 속하는데, 올해 VR 기기가 1400만 대까지 판매되고 2020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합친 전체 VR 시장이 700억 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새로운 게임을 남보다 앞서 즐기는 ‘하드코어 유저’가 아니라면 VR 기기를 사기에는 아직 이르다. 아직 VR 콘텐츠가 많지 않을뿐더러, 기기 성능도 더 향상될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기어VR을 통해 접한 가상현실은 옛날 TV를 보듯 뿌옇게 느껴졌다. ‘픽셀’이라고 하는 디스플레이 상의 점들도 보였다. 류한석 류한석기술문화연구소장은 “VR 기기는 눈에 바로 장착하는 것이라 다른 디바이스보다 높은 해상도를 갖춰야 실감이 난다”며 “VR 기기 해상도가 8K(7680×4320), 다소 양보하면 UHD인 4K(3840×2160) 정도는 돼야 사용자가 만족스러워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존하는 스마트폰 중 해상도가 가장 뛰어난 갤럭시S7의 해상도는 FHD와 UHD 사이인 QHD(2560×1440)이고, LG 360 VR의 해상도는 HD 수준(960×720)이다. 사용자가 고개를 돌리는 대로 화면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헤드트래킹(Head Tracking) 성능도 더 발전해야 한다. 이길행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차세대콘텐츠연구본부장은 “낮은 해상도와 헤드트래킹 성능 등은 VR을 체험할 때 발생하는 멀미 현상의 원인 중 일부”라며 “앞으로 2년 정도면 기술이 향상돼 멀미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견해를 밝혔다.



이미 오큘러스가 대세?

한때 TV 방송 등 콘텐츠 시장을 뒤흔들 것처럼 요란했던 3DTV는 사그라지고 말았다. 3DTV가 안 팔린 것은 아니지만, 3DTV로 3D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3D 기능을 프리미엄급 TV 위주로 삽입하는 LG전자는 이런 제품을 일부 축소한다는 방침이고, 삼성전자는 앞으로 출시하는 신형 TV에 아예 3D 기능을 빼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3D 영상을 구현하는 점에서 3DTV와 닮은 VR 역시 ‘소문만 무성한 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TV를 볼 때 3D 안경을 착용하는 게 영 못마땅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결국 VR기기를 쓰는 불편함을 극복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양병석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연구원은 “3DTV가 3차원처럼 ‘보이게끔’ 한 것이라면, VR은 데이터 자체가 실제 3D이다. 또 VR에서 ‘모니터’ 크기는 360도 공간에 깊이감까지 더해 무제한의 크기로 확장된다”며 “이런 점에서 VR은 3D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3D 안경을 쓰지 않는다고 TV를 못 보는 건 아니다. 게다가 안경을 벗고 2D로 봐도 3D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VR 기기는 다르다. VR기기를 쓰지 않으면 가상현실 세계를 조금이라도 맛볼 수 없다. 양 연구원은 “반드시 모니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필요’ 때문에 컴퓨터로 문서 작업 등을 하듯, VR이 차원이 다른 몰입감과 필요를 준다면 VR은 PC, 스마트폰에 이어 또 하나의 필수 기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VR은 인류의 필수품이 되기 위한 ‘존재 증명’을 이제 막 시작했다. VR 콘텐츠 제작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회사는 오큘러스VR(페이스북이 2014년 3월에 인수했다)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때 소프트웨어 운영체제(OS)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VR 콘텐츠를 만들 때도 OS가 필요하다.

지난해 3월 GDC(게임개발자콘퍼런스)가 실시한 한 조사에 따르면 2016년을 목표로 VR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는 응답이 16%였고, 이 가운데 70%가 오큘러스 SDK(Software Development Kit)를 활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VR 콘텐츠는 애플 앱스토어와 같은 ‘오큘러스 스토어’에서 유통된다. 현 시점에서 가장 강력한 VR 콘텐츠 ‘플랫폼’은 오큘러스인 셈이다.


하드웨어 앞지를 소프트웨어

삼성전자도 이런 오큘러스VR과 손을 잡았다(기어VR에는 ‘Powered by oculus’라고 표기돼 있다). 기어VR 사용자는 오큘러스 스토어를 통해 VR 콘텐츠를 공급받는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택한 삼성전자 스마트폰이 구글에 의존했듯, VR에서는 오큘러스에 의존하는 셈.

한 IT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페이스북 처지에선 삼성전자만큼 VR 기기를 잘 만들 수 있는 제조업체가 없지만, 향후 샤오미 등으로 하드웨어 파트너를 바꾸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며 “이번에 저커버그가 삼성 행사에 출연했다 하더라도 페이스북이 삼성보다는 ‘갑’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LG전자의 VR 기기는 구글 앱스토어인 플레이스토어를 활용한다.

현대원 교수는 “2014년 9월에 기어VR을 첫 출시한 삼성전자는 2015년 내내 VR 시장을 관망하며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며 “지난해 삼성전자가 자체 SDK를 개발해 개발자들에게 적극 배포했더라면 삼성이 VR 플랫폼을 선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페이스북이 VR 파트너로 애플이 아닌 삼성전자를 택한 이유에 대해 “삼성전자가 플랫폼을 쥐려는 욕심을 내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애플은 하드웨어를 제조·판매하는 동시에 플랫폼의 힘을 제대로 알고 있기에 페이스북에는 경쟁자라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트렌드포스의 예측에서도 알 수 있듯 초기 VR 시장은 하드웨어 중심이지만, 향후 규모 면에서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크게 앞지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부는 VR 분야에 올해 616억 원을 포함해 향후 3년간 1850억 원을 투자하기로 하면서 그 초점을 ‘VR 콘텐츠 양성’에 두기로 했다.

미래창조과학부 디지털콘텐츠과 관계자는 “VR 기기 성능은 CPU 등 컴퓨터 성능에 달렸기에 하드웨어 제조업체에서 잘할 수 있는 것”이라며 “정부는 콘텐츠 제작 및 유통 관련 플랫폼에 중점을 둘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 VR기술 관련 전문가는 “해상도, 헤드트래킹뿐만 아니라 VR 기기의 무게를 줄이고 배터리도 더 오래가게 해야 하는 등 풀어야 할 기술 문제도 아직 많다”며 “정부가 VR 콘텐츠에만 주력할 게 아니라 원천기술 투자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대원 교수는 “VR 플랫폼은 독점적 형태가 아니라 ‘권력 분산형’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생태계를 잘 만들어 VR 산업을 키운다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PC는 마이크로소프트(MS) 운영체제가 독점하다시피 하고, 스마트폰은 애플 iOS와 구글 안드로이드OS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하지만 VR 시장은 디즈니에서부터 넷플릭스, tvN까지 다양한 주체가 활약하고 있는 영화 및 방송콘텐츠 시장과 유사한 형태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VR과 인공지능이 결합하면

정부와 민간이 호흡을 맞추기 위해 지난해 9월 설립된 한국VR산업협회는 콘텐츠(Contents)-플랫폼(Platform)-네트워크(Network)-디바이스(Device) 간 긴밀한 협조로 탄탄한 VR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제1의 목표로 삼는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디바이스’, KT 등 ‘네트워크’, 지상파 3곳과 CJ E&M, 게임 등 중소 콘텐츠 개발사 등 ‘콘텐츠’, 그리고 학계 전문가들이 이 협회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플랫폼’으로 분류되는 네이버, 카카오 등 포털업체는 빠진 상태다. 카이스트 유비쿼터스·가상현실 연구실(UVR LAB)을 이끄는 우운택 교수는 “C·P·N·D가 모두 갖춰져야 VR 산업이 살아난다”며 “국내 포털업계가 웹 기반 콘텐츠를 넘어 VR, 나아가 증강현실(AR) 콘텐츠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VR은 인류의 일상에 조금씩 젖어들기 시작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가상현실 콘텐츠 제작사 Vrse와 손잡고 뉴스리포트를 VR로 만들어 독자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콘텐츠는 ‘난민(The Displaced)’. VR 기기를 쓰고 이 영상을 플레이하면 독자는 자신의 집 거실이 아니라 레바논 난민촌에 사는 시리아의 어린 소녀들이 일하는 오이밭 한가운데에,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에서 뛰노는 우크라이나 소년들 사이에 서게 된다. 영화감독 출신 크리스 밀크 Vrse CEO는 TED 강연에서 “인류의 문제를 VR로 접하게 되면 더 깊이 공감하게 될 것”이라며 “VR은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기계(a machine that makes us more than human)”라고 했다.

실사(實寫)를 바탕으로 한 VR 콘텐츠보다 만들기 더 까다로운 것은 VR 게임과 같은 3D 모델링 콘텐츠다. 현대원 교수는 “미국은 2년 전부터 이러한 VR 콘텐츠를 개발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제 곧 완성도가 상당히 높은 콘텐츠가 나올 시점이 됐다”고 전했다. 이러한 게임은 1인칭 슈팅게임(FPS)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것까지 시도되고 있다. 일본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용 VR게임으로 VR 기기를 장착한 사람이 술래가 되고 다른 사람들은 도망 다니는 술래잡기, 역시 VR을 장착한 사람이 괴물이 되어 다른 사람들과 맞서는 ‘거실용’ 게임을 선보일 예정이다.

VR은 앞으로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과도 결합한다. 한상기 세종대 교수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던 : 중력의 낙원’에 등장하는 홀로그램 아이를 예로 든다. 죽은 아이의 특성과 DNA 및 성격 데이터를 기반으로 ‘태어난’ 가상의 아이는 부모와 얘기를 나누며 집 안에서 뛰어논다. 한 교수는 “수많은 센서 데이터와 과거 온라인 활동, DNA 정보 등을 활용해 우리가 기억하고 간직하고픈 사람들을 다시 현실 공간에 나타나게 할 수준이 된다면, 인공지능 기술과 결합한 가상공간과 실제공간을 구별하기 힘든 시대로 들어선다”며 “인간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콘텐츠 기술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가상현실, 증강현실의 킬러 콘텐츠는?’, 한국인터넷진흥원 Power Review 2015년 8월).


“독점할 필요가 없다”

한국은 ‘IT 강국’이지만 그간 선진 진영을 뒤쫓아가는 데서만 두각을 나타냈다. 더욱이 성과는 각 분야가 합세한 것이라기보다는 개별 기업이 독자적으로 이룬 것에 가까웠다. 그 이유에 대해 우운택 교수는 “독식하려고만 했기 때문”이라며 “VR 산업에선 독점할 필요 없이 각자 잘 하는 분야를 서로 공유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기어VR은 갤럭시S7, LG 360 VR은 G5에만 사용할 수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갤럭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고객들에게 특별한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 기어VR의 가장 큰 목적”이라고 말했다. 우 교수는 “그런 사고로는 VR의 ‘판’이 커지지 않는다는 것을 기업들도 공감하기 시작했다”며 “현재 카이스트는 삼성전자, 네이버, SKT 최고기술경영자(CTO) 등과 VR 플랫폼을 만들기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중인데 잘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대원 교수는 “VR 시장이 무르익어가면서 기술표준 이슈가 계속 제기될 것인데, VR 기술표준을 한국에 유리한 쪽으로 끌어오려면 국내 VR 산업이 탄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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