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호

구글 ‘제미나이’에 숨겨진 인간의 친구 되고픈 열망

[브랜드가 된 신화] 아테네 영웅 아카데모스에서 비롯된 ‘아카데미상’

  • 김원익 홍익대 문과대 교수·㈔세계신화연구소 소장

    입력2026-06-09 1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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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카데미’는 플라톤 학교의 영어식 이름

    • 우주비행사를 2인으로 줄인 ‘제미니 계획’

    • 형제애의 표상인 폴리데우케스와 카스토르

    • 선원들을 수호하는 별자리인 ‘쌍둥이자리’

    아카데미상 트로피(오른쪽)와 구글 제미나이 로고. 뉴시스, 구글코리아 블로그

    아카데미상 트로피(오른쪽)와 구글 제미나이 로고. 뉴시스, 구글코리아 블로그

    우리 주변엔 ‘아카데미(Academy)’라는 명칭의 교육 단체가 아주 많다. 대개 학원이다. 특히 1927년 설립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국 영화협회 이름에도 ‘아카데미’가 들어 있다. 정확한 이름은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다. 이 협회가 매년 전 세계 최고의 영화인들에게 주는 상 이름이 ‘아카데미상(Academy Awards)’이고, 이 상의 별명이 ‘오스카상(Oscars)’이다. 

    그런데 아카데미 시상식 때 영화인들이 받는 금박을 입힌 청동 기사 입상인 트로피의 별명도 ‘오스카’다. 오스카의 기원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중 가장 유력한 것은 1945년부터 1971년까지 무려 26년 동안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의 사무총장직을 수행한 마거리트 헤릭 여사가 트로피를 처음 대면하는 순간 자신의 삼촌 오스카를 빼닮아 그때부터 그렇게 불렀다는 설이다. 

    아테네 영웅 아카데모스의 활약

    그렇다면 ‘아카데미’라는 개념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그것은 바로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이 BC 386년경 고대 그리스 아테네 근교에 세웠던 학교 ‘아카데미아(Akademia)’ 혹은 ‘아카데메이아(Akademeia)’의 영어식 이름이다. 아울러 아카데미아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아테네의 영웅 아카데모스(Akademos)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영웅 아카데모스의 활약은 당시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의 모험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테세우스는 언젠가 절친 페이리토오스와 자신들의 용기를 증명할 요량으로 각각 제우스의 딸을 납치하기로 의기투합했다. 형뻘이던 테세우스가 먼저 스파르타의 공주 헬레네를 지목했다. 당시 헬레네는 열 살이나 열두 살에 불과했다. 테세우스는 페이리토오스의 도움으로 쉽게 헬레네를 납치했다. 그는 그녀를 아티카의 아피드나이로 데려가 어머니 아이트라에게 맡긴 다음 페이리토오스의 납치를 도우러 갔다. 헬레네는 이처럼 메넬라오스의 아내일 때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납치되기 전 이미 어린 나이에 테세우스에게 납치당한 적이 있었다. 

    페이리토오스는 수많은 제우스의 딸 중에서 하필이면 지하 세계의 왕 하데스의 왕비 페르세포네를 지목했다. 테세우스는 내키지 않았어도 페이리토오스를 따라 지하 세계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서로 돕기로 맹세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중에 헤라클레스가 그런 것처럼 펠로폰네소스반도 끝자락 타이나론 곶 아래에 있던 동굴을 통해 지하 세계로 내려갔다.



    페이리토오스가 찾아온 용건을 말하자 하데스는 묵묵히 듣고만 있다가 그들에게 친절하게 자리를 권하며 시종에게 신선한 음료를 가져오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하데스가 가리킨 돌의자에 앉자마자 더는 일어날 수 없었다. 이윽고 지하 세계에 온 목적뿐 아니라 모든 기억을 잊어버리고 죽음과도 같은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그것은 ‘망각의 의자’였기 때문이다.

    테세우스는 아마 헤라클레스가 아니었다면 지하 세계에 그대로 영원히 머물렀을 것이다. 헤라클레스가 열두 번째 과업으로 머리가 셋 달린 괴물 개 케르베로스를 데리러 지하 세계로 왔을 때였다. 그가 녀석을 어깨에 메고 막 돌아서는 순간 의자에 앉아 곯아떨어져 있는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를 발견했고, 웬일인지 페이리토오스는 그대로 두고 테세우스만 흔들어 깨워 지상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테세우스가 지하 세계에서 잠들어 있던 사이 헬레네의 오라비인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 쌍둥이 형제가 그녀를 구하러 군대를 이끌고 아테네로 쳐들어왔다.

    절체절명의 순간 아테네의 장군 아카데모스가 나서서 테세우스가 헬레네를 숨겨놓은 곳을 그들에게 알려주고 정중히 사과하며 쌍둥이 형제의 분노를 달래주었다. 그 덕분에 헬레네의 오라비들은 아테네를 전혀 파괴하지 않고 누이와 테세우스의 어머니 아이트라만 헬레네의 유모로 쓰기 위해 데려갔다. 그러자 아테네 시민들은 아카데모스를 아테네의 구원자이자 수호자로 칭송하다가 그가 죽자 아테네 북서쪽에 있는 성스러운 올리브 숲에 무덤을 조성하고 아카데미아라고 명명했다. 

    가문·신분 따지지 않은 아카데미아

    플라톤은 BC 387년 그 숲을 매입해 ‘예술의 여신’ 무사이(Mousai·뮤즈) 아홉 명을 위한 성소를 짓고 철학 수업을 하기 시작했는데,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아카데미아 숲의 이름을 자신의 철학 학교 이름으로 쓰게 됐다. 아카데미아 수업은 주로 올리브 숲속이나 근처의 체육관에서 거행됐다. 수업이 어떤 체계로 구성됐고, 어떤 형태로 진행됐는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많다.

    하지만 학생들이 아카데미아에 수업료를 전혀 내지 않았다는 점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학업에 드는 비용은 모두 후원자들의 기부금으로 충당했다. 또한 입학 조건에 가문이나 신분을 따지지도 않았는데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그래서 여자들도 아카데미아에 들어갈 수 있었다. 플라톤과 그의 후계자였던 스페우시포스의 여자 제자 중 특히 플레이우스 출신의 악시오테아와 만티네이아 출신의 라스테네이아가 잘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 아카데미아에서 연구와 교수는 아주 자유로웠다. 플라톤의 후계자로서 학교를 이끌어갈 학교장도 학생들이 선출했다. 그래서 플라톤과 대립하던 학자들의 학설도 자유롭게 소개하고 토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우는 학생이나 가르치는 교수 모두 플라톤의 근본 이념은 공유했다. 만약 그러지 못하면 아리스토텔레스처럼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아카데미아와 아카데미는 ‘뮤즈아카데미아’나 ‘서울댄스아카데미’처럼 주로 업종 뒤에 붙여 상호를 만든다. 물론 드물게 ‘아카데미아어학원’이나 ‘아카데미하우스’처럼 ‘아카데미’를 어떤 업종 앞에 붙이기도 한다. 만약 아카데미나 아카데미아 뒤에 ‘학원’을 첨가하면 학원은 아카데미와 똑같은 뜻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동어반복이다. 

    ‘머큐리 계획’ ‘제미니 계획’ ‘아폴로 계획’

    구글의 인공지능(AI) 이름은 ‘제미나이(Gemini)’다. ‘제미나이’는 라틴어로 ‘게미니’라고 발음하는데 ‘쌍둥이’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제미니’라고 발음하는데 하늘의 별자리 ‘쌍둥이자리’를 뜻한다. 구글 AI는 왜 이런 이름을 지니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구글 AI가 ‘구글 딥마인드’와 ‘구글 브레인’이라는 마치 쌍둥이 같은 두 회사가 합병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냉전시대 미국과 옛 소련(현재 러시아)의 달 탐사 경쟁과 깊은 관련이 있다. 당시 미국은 소련에 한참 뒤진 우주선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머큐리 계획’ ‘제미니 계획’ ‘아폴로 계획’이라는 3단계 프로젝트를 세워 연구에 매진했다. 그 결과, 미국은 아폴로 계획 기간인 1969년 마침내 소련을 제치고 우주선 ‘아폴로 11호’를 쏘아 올려 세계 최초로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 주지하다시피 머큐리(Mercury)와 아폴로(Apollo)는 각각 그리스신화 ‘전령의 신’ 헤르메스(Hermes)와 ‘태양의 신’ 아폴론(Apollon)의 영어식 이름이다. 

    이 과정에서 제미니 계획은 우주비행사를 3인에서 2인으로 줄이는 등 아폴로 계획의 성공에 획기적인 발판을 마련했다. 제미니라는 이름은 이 계획의 핵심 과업이 우주비행사를 2인(쌍둥이)으로 줄이는 것이었기에 붙인 것이다. 구글이 자사 AI에 Gemini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과거 우주산업에서 제미니 계획이 이뤄낸 괄목할 만한 성과를 미래 AI 산업에서도 똑같이 이뤄내겠다는 의도다.

    구글 AI가 제미나이라는 이름을 지니게 된 명시적 이유는 위의 두 가지다. 하지만 그 이름에는 또한 구글이 정말 담고 싶었을 아주 중요한 세 번째 이유가 숨어 있다. 바로 구글 AI가 쌍둥이처럼 인간의 진정한 친구가 되겠다는 열망이다. 다시 말해 앞서 아카데미의 기원을 설명할 때 등장한 별자리인 쌍둥이자리의 주인공이자, 헬레네의 오라비 폴리데우케스와 카스토르 쌍둥이 형제가 보인 우애처럼 인간에게 정말 유용한 이상적인 파트너가 되겠다는 강한 의지다. 

    경쟁의식 강했던 두 쌍의 쌍둥이 형제 

    그리스신화에서 폴리데우케스와 카스토르는 신들의 왕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로 형제애의 표상이다. 제우스는 언젠가 스파르타의 왕 틴다레오스의 아내 레다의 미모에 반해 그녀가 좋아하는 백조로 변신해 사랑을 나누었다. 열 달 후 레다는 백조 알 두 개를 낳았고, 시간이 흐르자 두 알이 부화해 그 속에서 각각 1남 1녀씩 총 네 명의 쌍둥이가 태어났다. 그들의 어머니는 물론 레다 하나였지만 아버지는 둘이었다.

    알 하나에서 태어난 폴리데우케스와 헬레네의 실제 아버지는 제우스이고, 다른 알에서 태어난 카스토르와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실제 아버지는 틴다레오스였다. 그래도 두 아들은 모두 ‘제우스의 아들들’이라는 뜻의 ‘디오스쿠로이(Dioskuroi)’로 불렸다. 그런데 틴다레오스의 형제이자 메세니아의 왕 아파레우스에게도 아내 아레네와의 사이에 링케우스와 이다스라는 쌍둥이 아들이 있었다. 아마 쌍둥이가 잘 태어나는 유전자를 지닌 가문이 있는 모양이다.

    사촌지간인 두 쌍의 쌍둥이 형제는 경쟁의식이 너무 강했다. 디오스쿠로이가 사촌들의 약혼자였던 레우키포스의 두 딸 포이베와 힐라에이라를 스파르타로 납치해 아내로 삼을 정도였다. 워낙 졸지에 당한 일이라 링케우스와 이다스는 손을 쓸 틈도 없이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구러 세월이 흘러 쌍둥이 사촌들은 과거의 안 좋았던 기억을 씻어 버리고 함께 힘을 합해 아르카디아 지방의 가축을 훔친 다음 그것을 배분하는 방법을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이때 이다스가 묘안이 떠올랐다며 말 한 마리를 잡아 균등하게 네 부분으로 나눈 뒤 가장 먼저 먹는 사람이 가축의 반을 가져가고, 두 번째로 빨리 먹는 사람이 나머지 반을 가져가는 걸로 하자고 제안했다. 말하자면 가축을 네 사람 중 두 사람에게 몰아주자는 것이다. 이윽고 말고기가 구워지고 쌍둥이 사촌들 사이에 먹기 시합이 벌어졌는데, 무슨 술수를 부렸는지 링케우스와 이다스가 각각 1, 2등을 차지해 가축을 모두 가져갔다. 

    디오스쿠로이는 집으로 돌아와서야 자기들이 사촌들에게 철저히 농락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마 후 치밀한 계획을 세운 다음 메세니아로 잠입해 사촌들의 가축을 훔쳤다. 뒤늦게 가축이 없어진 것을 알아차린 이다스와 링케우스가 추적에 나섰다. 링케우스는 엄청난 투시력을 타고났다. 마치 현대의 엑스레이처럼 벽과 나무 속이나 동물의 피부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어둠 속이나 땅 밑에 무엇이 있는지도 볼 수 있었다. 독일의 문호 괴테도 링케우스의 투시력을 높이 사 ‘파우스트’에서 그를 외부의 침입을 감시하는 탑지기로 활용할 정도였다.

    어쨌든 그의 투시력 덕분에 결국 디오스쿠로이의 은신처가 밝혀지고 쌍둥이 사촌들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이 싸움에서 카스토르가 링케우스에게 죽임을 당하자 분노한 폴리데우케스가 링케우스에게 덤벼들어 그를 해치웠다. 이어 이다스가 폴리데우케스에게 달려들어 목숨을 앗아가려는 순간 그의 친아버지인 제우스가 번개를 쳐 이다스를 죽인 다음 부상당한 폴리데우케스를 올림포스 궁전으로 데려갔다.

    이때부터 하늘의 올림포스 궁전에서 신들과 함께 살게 된 폴리데우케스는 늘 죽은 카스토르를 그리며 슬퍼했다. 급기야 어느 날 아버지 제우스에게 차라리 죽은 카스토르가 있는 지하 세계로 보내달라고 간청했다. 그야말로 형제애의 표상이 아닐 수 없다. 이에 감동한 제우스는 폴리데우케스에게 카스토르와 함께 하루씩 번갈아 가며 하늘과 지하 세계를 오가며 살도록 했다. 그 후 폴리데우케스가 남은 수명을 다하자 제우스는 형제를 밤하늘에 쌍둥이자리라는 별자리로 박아 선원들의 수호신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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