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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발굴

울도(蔚島) 전투

한반도에서 벌어진 태평양전쟁

  • 권주혁 | 남태평양연구소장, 국제정치학박사

울도(蔚島)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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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4, 울도 해상 추락

울도(蔚島) 전투

미군은 태평양전쟁 때 B29 폭격기를 띄워 일본 본토를 폭격했다.

전투는 오전 10시 30분에 시작돼 11시 35분에 끝났다.  B24가 투하한 폭탄이 일본군 수송선에 명중될 때 생긴 파편이 조종실 창문을 뚫고 들어와 러새터 대위가 부상을 입었으나 상태가 심각하지 않아 폭격기를 조종할 수 있었다. 러새터 대위는 북상해 오후 12시 30분 울도 상공에 도달했다.

B24는 울도 서남쪽 2.8㎞(동경 125도 59분 2초, 북위 36도 59분 3초) 해상에서 일본 선박 2척을 발견하자마자 저공비행으로 공격에 들어갔다. 상선 호에이마루(豊榮丸)와 834t 유조선 제7호에이마루였다. B24는 이때도 고도 60m까지 내려와 두 선박을 공격했다. B24가 공격해오자 일본 선박들은 대포로 응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국, 일본 등 교전국의 민간 선박도 대포나 기관총을 장착했다.

B24는 제7호에이마루에 피해를 입혔으나 일본 선박이 쏜 대포에 맞은 후 전투 시작 10분 뒤(12시 40분) 울도 서남방 해상에 추락해 승무원 전원이 전사했다. 제7호에이마루도 화염을 내뿜었다. 이 배는 5월 7일 울도 동북쪽 10㎞에 위치한 선갑도(仙甲島) 남쪽 5.5㎞ 해상에서 결국 침몰했다. 전투에서 살아남은 호에이마루는 그해 7월, 제주도와 목포 사이 해상을 항해하다 미군기의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러새터 대위의 B24가 어느 선박에서 발사한 포탄에 맞아 격추됐는지는 알 수 없다. 전투가 끝난 후 일본 선박 두 척의 선원들은 각각 자신들의 배가 미군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전투가 벌어질 때 울도에 파견돼 있던 일본 경찰이 산 위 초소에서 쌍안경으로 전투 장면을 목격했다. 울도분교에 근무하던 교직원과 섬 주민 30~40명도 B24가 비행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일본 측 기록에는 분교가 산 중턱에 있었다고 씌어 있으나 필자가 울도를 방문해 확인해보니 분교는 해안에 있었다. 섬에서 가장 연로한 정광성(80), 정현희(79) 씨에게 물어보니 자신들이 어릴 적에 다니던 학교는 산 중턱에 있었다고 했다.

옛 학교 건물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자리엔 조개와 생선을 건조하는 공간이 있었다. 섬에서 가장 높은 당산(등대가 있는 곳)에서 능선을 따라 서쪽으로 300m 떨어진 곳에 일제강점기 일본군(또는 경찰)이 만들어놓은 감시초소가 있는데, 현재는 초소의 기초 부분인 붉은 벽돌만 남아 있다. 이곳에서 일본 경찰이 망원경으로 전투 장면을 목격한 것으로 추측된다.



1945년 5월 7, 8일 인천에서 파견된 일본 경찰과 헌병대원이 울도에 도착해 B24가 추락한 해상을 수색했으나 짙은 안개와 험한 파도, 강한 해류 탓에 수색 작업을 포기하고 인천으로 돌아갔다.

일본 자료는 B24 폭격기가 울도 인근 상공을 저공비행하며 일본 선박과 전투하는 장면을 목격한 섬 주민 중에 김동옥(10여 년 전 울도에서 사망), 김공순(15년 전 울도에서 사망) 씨 등이 있다고 밝힌다. 앞서 언급한 울도 주민 정광성 씨는 11세 때(1947년) 인근 섬에서 울도로 이주해 B24 폭격기의 전투 장면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으나 김동옥 씨로부터 선갑도 남쪽 해상에서 일본 배가 연기를 내뿜었으며 미군 비행기가 선갑도에서 울도 바로 북쪽에 있는 지도 상공을 나는 것을 목격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국가의 치욕

일본 본토가 미군의 대규모 폭격을 받을 때인 1945년 4월 15일 일본군 대본영은 제주도에 미국이 상륙하는 것을 격퇴하고자 ‘결(決) 7호 작전’을 준비했다. 본토 방위를 위해 외곽 방위선인 제주도에 제58군 사령부를 설치하겠다는 것이었다.

오키나와를 점령한 미군이 일본과 만주를 잇는 전략적 위치에 있는 한반도의 일본군을 타격 목표에 넣는 것은 당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한반도에 대한 미군의 폭격은 대(大)편대를 동원해 일본을 폭격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미약했다. 당시 미군의 폭격 목표가 가능한 한 많은 일본인을 살상하고 군사·산업시설을 초토화해 일본 군부 및 국민의 전쟁 수행 의지를 꺾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강제노동, 강제징집, 강제위안부로서 일제의 전쟁에 동원된 사실은 대부분의 국민이 알고 있지만, 미국과 일본의 직접 전투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나라가 힘을 잃으면 타국에 주권을 빼앗기는 치욕을 당하며, 남의 나라 군대가 우리 국토를 마음대로 휘젓는다는 사실을 울도 해상 전투를 연구하면서 새삼 실감했다. 한국에서도 태평양전쟁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신동아 2016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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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혁 | 남태평양연구소장, 국제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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