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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립 前 수경사 보안반장 육필수기 음모와 암투

‘노태우 의리 테스트’ 술상 뒤엎은 김복동

  • 김충립 | 前 수도경비사령부 보안반장 kimchoonglib@naver.com

‘노태우 의리 테스트’ 술상 뒤엎은 김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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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규 “나를 제물 삼아라”

5월 13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지시를 받은 이학봉 수사국장은 학원 시위 근절을 위해 ‘배후세력’으로 지목된 국민연합 및 복학생 조직 민주청년협의회, 전국총학생회장단 핵심 간부에 대한 사법처리를 단행한다. 5월 15일에는 권정달 정보처장과 협조해 학생 소요 배후인물인 ‘국기문란자’와 3공화국 정부 ‘부정축재자’ 명단을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보고했고, 다음 날에는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주영복 국방부장관에게 보고했다.

5월 15, 16일 시위 주도 학생들에게 군이 출동할 것이라는 정보가 전해지자 학생들은 시위를 자제했다. 군부는 5월 17일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소집해놓고 있었다. 학생 소요가 잠잠해지자 계엄을 확대할 명분이 사라졌지만, 학생들의 동향을 예의 관찰하면서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울역 앞에서 학생 시위가 격렬해지면서 경찰 2명이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 때문에 5월 17일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5월 17일 오후 10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청와대로 가 최규하 대통령에게 전국비상계엄 확대, 국기문란자와 부정축재자 검거, 국회 해산,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설치 등을 건의했다. 최 대통령은 국기문란자와 부정축재자에 대한 조사는 재가하고, 국회 해산 안건은 부결했으며, 국보위 설치 안은 보류했다. 이에 따라 DJ는 오후 11시경 자택에서 체포됐고, 김상현 전 의원은 다음 날 오전 4시 제주도의 친지 집에서 체포됐다. 김영삼(YS) 신민당 총재는 5월 20일 가택 연금을 당했다.

보안사는 JP와 이후락 등 권력형 부정축재자 10여 명을 연행했고, 중앙정보부는 국기문란자로 DJ, 예춘호, 문익환, 김동길, 인명진, 이영희 등 26명을 연행 조사한 후 이들 중 24명을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 관련자’로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에 회부했다. 전두환 정권 수립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는 여야 인사들을  5·17 계엄확대조치로 정치권에서 제거해버린 것이다. 이후 5·18의 진행 과정은 잘 알려진 대로다.





‘부정축재자 박정희’

‘노태우 의리 테스트’  술상 뒤엎은 김복동

1980년 5월 17일 열린 전군지휘관회의. 신군부는 계엄확대, 국회해산, 국보위 설치 등을 역설했다. [동아일보]

권력형 부정축재자를 국기문란자와 함께 검거한 것은 반정부 시위자들의 요구를 들어준 측면도 있지만, 유신 정권 권력자들을 심판해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얻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하지만 더 깊숙이 들어가면, 차기 정권 수립에 장애가 될 수 있는 인물들을 제거하려는 목적이 컸다. 당시 박종규 전 청와대 경호실장이 전 보안사령관 측에 유신정권 인사인 자신을 제물로 삼아 JP와 이후락을 사법처리한 뒤 전두환이 정권을 잡도록 조언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이 이야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로 확인됐다. 1981년 1월, 북한에서 석탄을 싣고 인천항으로 들어온 재일교포 나카야마 야스지(한국명 박영수)가 박종규 전 경호실장과 접촉하는 과정에서다. 박영수는 북한에서 산 석탄을 중국을 경유해 인천항으로 들여와야 했으나, 박 전 실장의 힘을 믿고 곧장 인천항으로 입항했다.

이 문제를 예의주시하던 필자는 박 전 실장과 수차례 만났고, 그 과정에서 그로부터 앞에 기술한 얘기를 듣게 됐다. 박영수는 이후 한국프로사이클연맹 회장으로 있으면서 한국에 경륜사업을 도입하려고 하다가 무산되자 1994년 한국 정·관계에 50억 엔 로비를 했다고 폭로한 인물이다.

당시 정치권에선 5·17 계엄확대조치가 일종의 ‘무혈 쿠데타’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전 보안사령관이 차기 대통령이 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에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계엄사는 3공 시절 권력형 부정축재 조사 대상자 명단을 발표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을 포함시켰다. 박 대통령을 부정축재자로 조사한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필자가 “새로운 지도자를 부각하려는 의도로 이미 서거한 전직 대통령을 조사한다는 것은 인륜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실제로 조사할 경우 (큰딸인) 박근혜 양을 조사하겠다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니 즉각 시정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다음부터는 박정희 대통령을 언급하는 일이 없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1년 어느 날, 필자는 이학봉 당시 수사국장에게 박정희 대통령을 거론한 경위를 물었다. 그는 “언론에서 의도적으로 박 대통령을 추가한 것이지 우리가 발표한 것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발표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 유가족에게 큰 충격을 줬고,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 측근들에게 배신감을 갖게 된 것은 확실해 보였다.

계엄사 합동수사본부는 6월 18일 “5월 17일 검거한 부정축재자 처리 결과, 이들은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고 정치 활동을 일절 하지 않을 것이며, 국회의원직을 자진 사퇴한다는 조건으로 형사처벌은 유예하고 석방한다”고 발표했다. 헌납한 금액은 JP 216억 원, 이후락 194억 원 등 총 853억 원이다. 이들은 공직 및 국회의원직 사퇴서가 수리된 후인 7월 2일, 구속된 지 46일 만에 석방됐다.

이런 상황을 지켜본 최규하 대통령은 7월 중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기로 결심하고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사의를 표한 뒤 8월 16일 하야했다. 정치권에서는 전 사령관의 압박으로 최 대통령이 물러났다는 여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광주 시민과 학생들은 DJ 등 재야인사를 구속하고 YS를 가택 연금시킨 데 대해 강력하게 반발했다. 정부와 군부의 예상대로 이들이 5·17 계엄조치에 항거해 DJ를 석방하라며 거리에 나서자 특전사 병력이 투입됐다. 진압 과정에서 퇴로를 열어주지 않고 모조리 검거하려는 특전사 병력의 과잉 진압에 광주 시민들은 예비군 무기를 들고 맞섰고, 전남도청은 학생과 시민군에 의해 점거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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