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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新東亞-한국경제학회 공동기획 | 한국 경제학계 이슈와 학맥

사회참여 강조한 변형윤·조순 학맥

경제민주화와 진보 경제학자의 뿌리

  • 윤영호 | 동아일보 출판국 기획위원 yyoungho@donga.com

사회참여 강조한 변형윤·조순 학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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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가 2012년 대통령선거에 이어 여소야대 상황인 20대 국회 들어 다시 핫이슈가 되고 있다. 야당 의원들은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잇따라 발의했다. 이번에도 경제민주화 논의를 주도하는 인물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다. 그는 7월 4일 재벌 총수의 전횡을 견제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잘 알려진 대로 김 대표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설계했다. 이후 박 대통령과 소원해진 김 대표는 지난 1월 20대 총선을 3개월 앞두고 더민주당 비대위원장으로 영입됐다. 그는 1987년 개헌 때 신설한 헌법 119조 2항 경제민주화 조항의 ‘저작권자’ 격이다. 김 대표 주변에선 “김 대표가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에 관심이 많았을 것이고, 여기에서 경제민주화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이에 앞서 6월 28일 김 대표의 측근인 더민주당 최운열 의원도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법률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 등을 고발할 수 있는 권한인 전속고발권을 가졌지만 그간 이를 소극적으로 행사해왔다는 비판을 들었다. 최 의원은 기자에게 “공정위에 전속고발권이 있는 한 기업은 ‘공정위만 포섭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기에 폐지하려는 것”이라고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대신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공정위 정원을 늘려 공정위가 일을 제대로 하도록 국회 차원에서 뒷받침하겠다는 것. 최 의원은 “공정위만 일을 제대로 해도 경제민주화의 80% 이상은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계에서는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발의에 대해 ‘기업 옥죄기’라고 반발한다.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울 때는 기업이 세계 무대에서 뛸 수 있도록 도와야지 규제로 손발을 묶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정부나 정치권이 반(反)시장적 조치를 남발했다간 경제에 부담만 될 뿐이라는 주장이다.  





“노벨상 수상자도 못 버틸 것”

정치권과 재계의 경제민주화 공방의 근원에는 경제학계 내부의 논쟁이 있다. 경제학계 전체를 놓고 보면 경제민주화 반대파가 찬성파보다 많다는 게 중론이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그만큼 한국 경제학자들이 보수적인 편”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어떤 경우엔 미국 경제학자들보다 더 보수적이다. 한국 시장경제가 미국보다 훨씬 불완전한데도 우리 경제학자들이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주장하는 걸 보면 특히 그렇다. 나도 1984년 미국에서 돌아온 직후에는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점차 한국의 현실에 눈뜨게 되면서 달라졌다.”

경제민주화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경제학자 대부분이 스스로 인정하는 더 큰 아쉬움은 한국 경제 현실에 관심 있는 학자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회과학의 제왕’이라는 경제학이 한국 경제 현실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자성도 나온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다음은 경제학계 원로 윤석범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의 말이다.

“현재의 대학 평가 시스템하에서 조교수→부교수, 부교수→정교수로 승진하려면 연구 논문 발표 실적이 필요한데, 이때 외국 유명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을 더 높게 평가한다. 문제는 이런 학술지가 한국 경제 문제를 다루는 논문을 잘 받아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한국의 비중이 작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국 경제학자들이 한국 경제보다는 미국 경제 연구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다.”

봄 학기에는 연세대에서, 가을 학기에는 미국 로체스터 대에서 강의하는 장용성 교수는 “현재와 같은 평가 시스템에서는 199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루카스, 200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에드워드 프레스콧 같은 석학도 한국에서 대학교수가 될 수 없다는 얘기를 농담처럼 한다”고 귀띔했다. 장 교수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미국에서는 뛰어난 논문 한 편을 쓰면 평생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데, 한국에선 대개 발표한 지 3년이 지나면 연구 업적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논문은 아예 쓸 생각을 할 수 없고 논문 편수 채우는 데 급급해진다. 논문 편수 중심의 평가 시스템으로는 결코 노벨상을 받을 수 없다. 노벨상위원회는 논문을 몇 편 썼는지보다는 그 논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얼마나 바꿨는지를 더 중요하게 평가한다.”

경제학 교수들의 논문 발표 실적 스트레스는 실로 엄청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주테야테 교수’(낮에는 테니스 치고, 밤에는 텔레비전 보는 교수)란 말이 회자됐지만 지금은 옛이야기다.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부교수는 “비슷한 또래의 부교수들에게 새벽 1시 넘어 카톡을 보내면 바로 답이 올 정도로 밤늦도록 연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요즘 분위기를 전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이런 상황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연구는 논문 발표 실적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교수 승진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서울대 경제학부 84학번으로, 미국 예일대 경제학 박사인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책학 교수의 얘기다.

“정교수 승진 이후엔 대체로 세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외국의 유명 학술지에 좋은 논문을 써온 이들 중엔 계속 그쪽으로 노력하는 부류와 ‘이제 좀 쉬겠다’는 부류가 있다. 나머지 한 부류는 뒤늦게 한국 경제를 열심히 들여다보려는 이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막상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들 한다.”

서울대 경제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신현호 국회 기획재정위 및 운영위 수석전문위원(국민의당 지명)은 “한국 경제 현실을 놓고 고민하는 학자가 드문 탓인지, 당 차원에서 경제정책을 두고 조언을 구하고 싶어도 경제학을 전공한 나조차 마땅한 학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한국 현실에 관심을 갖고 경제민주화를 적극 주장해온 경제학자도 적지 않다.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 제자 그룹을 첫손에 꼽을 수 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서울대 교수직에서 쫓겨난 그가 2년 후 개인적으로 설립한 학현연구실, 이를 확대 개편해 1993년 설립한 서울사회경제연구소는 경제민주화 연구의 중심으로 이른바 ‘학현학파’의 산실이다.



‘인간에 관한 연구’

‘선생님의 한국 경제에 관한 평소의 철학은 경제민주화였다. 모든 분야에서 민주적 운영이 이뤄질 때 의사 결정권의 분산과 시장경쟁의 확대, 그리고 그 전제가 되는 소유의 분산을 기할 수 있고, 이것이 실현돼야 한국 경제의 민주화가 진전될 것이라고 가르쳤다.’

1992년 3월 변형윤 교수의 서울대 교수 정년퇴임 기념으로 그의 제자들이 펴낸 공동 논문집 ‘경제민주화의 길’ 헌정사의 한 대목이다. 변 교수의 한 제자는 “김종인 대표가 경제민주화 주장으로 각광을 받지만, 경제민주화를 누가 먼저 주장했느냐는 논란은 아주 사소한 것이고, 경제민주화의 실제 내용을 완성해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1927년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난 변 교수는 구순(九旬)인 지금도 거의 매일 서울 종로구 필운동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사무실에 출근할 정도로 이 연구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그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창시자인 알프레드 마셜이 ‘경제학원리’에서 ‘경제학은 부의 축적에 관한 연구인 동시에 인간에 관한 연구의 일부’라는 명언을 남겼듯, 경제학은 인간 중심의 학문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학현학파가 이목을 끈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이 시기에 학현연구실 출신인 강철규 전 우석대 총장(규제개혁위원장, 부패방지위원회 초대위원장, 공정거래위원장 역임), 김태동 성균관대 명예교수(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이진순 숭실대 명예교수(한국개발연구원장), 윤원배 숙명여대 명예교수(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요직에 등용됐다.

변형윤 교수는 이에 대해 “어디까지나 개인 자격으로 김대중 정부에 참여한 것이지 연구소와는 조직적인 관련이 없었다”고 밝혔다(‘변형윤 대화록, 냉철한 머리 뜨거운 가슴을 앓다’). 다만 이들이 성장과 분배가 양립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기에 연구소와 지향하는 바가 같았을 뿐이었다는 것.



학현학파, 서강학파

변 교수는 이들을 ‘학현학파’라고 부르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언론이 ‘서강학파’에 빗대 흥미 위주로 붙인 이름이기 때문이다. 케인스 학파나 시카고 학파처럼 철학과 이론을 공유한, 원래 의미의 학파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현장에 남아 묵묵히 연구를 계속하는 학자들이 학파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강학파는 1970~80년대 성장 위주 경제정책에 깊이 관여한 서강대 교수 출신의 경제학자들을 일컫는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 이승윤 전 경제부총리, 김만제 전 경제부총리 등이 대표적이다.

서강대 경제학과 석좌교수인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이들은 일찍이 미국의 근대 경제학을 공부하고 와서 서강대에서 미국식 경제학을 가르친 학자들로, 박정희 정부에 참여해서도 가격 메커니즘을 중심으로 경제개발 계획을 운영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시장 중시론자들”이라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 캠프의 국민행복추진위원회 힘찬경제추진단장으로 활약한, 박근혜 정부 탄생의 일등공신이다.

서강학파는 김대중 정부 이후 뚜렷한 족적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영향력은 아직도 대단하다. 한 고위 경제관료는 “경제관료들은 아직도 심정적으로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성장 모델인 불균형 성장을 신봉한다는 점에서 서강학파라 할 수도 있다”면서 “이런 점 때문에 노무현 정부의 균형성장 정책에 관료들의 저항이 심했다고 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조순, 정운찬의 제자들

경제민주화 논란에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학자들이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제자들이다. 두 사람의 제자 중엔 경제이론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뛰어난 논문을 쓴 학자도 많지만, 한국 경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주장해온 학자도 적지 않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부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조순 교수는 1967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서울대에서 최초로 미국식 근대 경제학을 가르치면서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정운찬 전 총장도 그가 가장 아끼는 제자 중 한 사람이다.

“1967년 2학기부터 강의를 한 조순 교수는 당시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의 이홍구, 노재봉, 구영록 교수 등과 함께 일약 ‘스타 교수’로 떠올랐다. 강의도 명쾌했을뿐더러 동양 고전에도 밝았기 때문이다. 동기들 사이엔 ‘우리도 미국 유학 가서 조순 교수처럼 되자’는 분위기가 일었다. 그래서인지 경제학과 동기 50명 중 상당수가 대학교수가 됐다.”(정운찬 전 총장)

미국 유학을 마치고 1978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한 정 전 총장도 제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그의 영향 때문인지 첫 제자들인 78학번을 비롯해 1980년대 초반 학번까지의 제자들 가운데 학계로 진출한 사람이 많다. 다음은 그의 애제자로 통하는 김상조 교수의 말이다.

“조순 교수와 정운찬 전 총장은 늘 ‘현실 참여는 지식인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현실 참여란 게 꼭 정치를 하라는 뜻이 아니라 경제학도로서 현실과 유리된 채 연구실에만 앉아 있어선 안 된다는 의미였다. 적어도 사회과학도라면 현실 문제에 대한 충분한 연구를 바탕으로 발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사회과학도로서 갖춰야 할 철학적 기초 및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했을 뿐 아니라 학문적 기반도 넓고 깊었다. 그래서 두 분 주변에 제자들이 모였다.”



정 전 총장의 제자들이 1989년 설립한 공부 모임이 금융연구회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학번 제자들이 초기 멤버였다. 지난 4월 총선 당시 더민주 총선정책공약단 부단장으로 활약한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 서근우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김상조 교수,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정지만 상명대 경제학과 교수, 원승연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 등이 그들이다. 금융에 관한 좀 더 현실적인 문제를 토론해보자는 목적으로 모였다.

비공식 모임이던 이 연구회는 2009년 사단법인 한국금융연구센터로 전환했다. 문호도 개방했다. 연구회 시절부터 계속한 월례 토론회는 지금도 계속하고, 1년에 두 번씩 정책 심포지엄도 연다. 김상조 교수는 “학자들만 참여하는 다른 연구 모임과 달리 금융정책 당국자나 금융실무 종사자도 발표자, 토론자로 적극 참여하는 게 특징”이라고 했다.  

조순-정운찬 학맥에서 다소 ‘특이한’ 인물이 김상조 교수다. 김 교수는 1994년 출범한 참여연대에 몸담은 후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와 함께 소액주주운동을 이끌면서 재벌의 편법·불법 상속과 전근대적 지배구조 등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해 ‘재벌 저격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가 현재 소장을 맡고 있는 경제개혁연대의 뿌리도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다.  



점진적 변화 vs 구조적 개혁

참여연대는 1997년 제일은행 주주 대표소송을 시작으로 소액주주운동을 본격화했다. 한보그룹 불법 대출로 제일은행을 부실 은행으로 만든 이철수 전 행장 등이 당시 대표소송 대상이었다. 이듬해 3월엔 삼성전자 주주총회에 참석해 변칙적인 경영권 승계를 문제 삼아 13시간 30분이라는 사상 최장 주주총회 기록을 세웠다.

김상조 교수는 “소액주주운동은 소수 주주의 권익 보호 목적보다는 재벌개혁의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벌의 불법 부당한 행위에 대해 법률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이를 교정해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려는 차원의 운동이었다는 것. 김 교수는 “실망스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변화의 누적을 통해 재벌의 인식과 행동을 변화시켜왔다고 자부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런 방법론에 대해선 비판도 따른다. 박상인 교수가 대표적 비판론자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 시절 변형윤, 조순, 정운찬 교수 등의 지도를 받긴 했지만,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아서라기보다는 주류 경제학의 방법론을 이용해 한국 경제 현실에 대한 독자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로 재벌개혁론자가 됐다”고 말한다.

박 교수가 재벌개혁 문제를 심도있게 연구한 것은 2006년 권오승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이 재벌 규제를 전면 재검토해달라고 연구 용역을 의뢰한 것이 계기였다. 경제학자와 법학자로 팀을 꾸려 8개월간 의욕적으로 연구한 끝에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 제도 전환 유도 등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노무현 정부 때 재벌 규제는 오히려 퇴보했다. 박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경제민주화의 선결 요건인 재벌개혁을 위해 김대중, 노무현 정부 이래 미국식 회사법 취지에 맞게 사외이사제, 주주 대표소송 같은 행위 규제를 도입했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행위 규제를 통해 재벌 팔 비틀기를 해봐야 그때뿐이고, 감시 비용도 많이 든다. 왜 바뀌지 않는지에 대한 반성도 없이 또 다른 행위 규제를 도입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개혁을 고민해야 할 때다. 현실을 인정하고 조금씩 바꾸자는 것은 결국 개혁을 하지 말자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분화하는 진보 진영

김상조 교수와 박상인 교수의 논쟁은 진보 진영 내부도 재벌개혁 방법론을 두고 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이 주장하는 재벌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 어떤 지점에서 이들의 주장이 갈리는 걸까. 또한 경제민주화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왜 이런 주장이 나오게 됐을까. 이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어떤 이론적 배경을 가졌을까. 다음 호에서 이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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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호 | 동아일보 출판국 기획위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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