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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의 미술과 마음 이야기

앤디 워홀 - 200개의 수프 깡통 8명의 엘비스

  • 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앤디 워홀 - 200개의 수프 깡통 8명의 엘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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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가수 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화제가 됐습니다. 그가 지은 가사에 담긴 문학성이 인정을 받은 거지요. 하지만 다수의 문학인이 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듯합니다. 시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시는 곧 노래였기에 밥 딜런의 가사 역시 시로 볼 수 있겠지만, 시의 영역을 너무 넓게 확장한 게 아니냐는 비판인 듯합니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저는 이중적인 생각을 합니다. 한편으로는 가사 역시 시의 하나라는 주장에 공감합니다. 인간이 갖는 느낌과 생각을 함축적인 운율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 시라면, 가사가 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충분합니다. 밥 딜런의 가사는 현실에 대해 날카로운 풍자를 담았으면서도 인생에 대한 심오한 메시지를 안겨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밥 딜런 말고도 훌륭한 시인이 많은데 가수로서 인기와 부를 누리는 그에게 노벨 문학상까지 주는 게 적절한지 의구심이 듭니다. 노벨 문학상만큼은 인기와 부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랜 시간 시인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이들에게 주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술성 + 대중성 

밥 딜런의 노벨상 수상에 대한 이러한 문제 제기는 자연스럽게 미술과 화가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미술의 역사를 살펴볼 때 미술가로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동시에 대중적인 성공을 크게 얻은 이는 르네상스 시대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를 비롯해 그 숫자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는 전통적인 기법으로 작품을 제작한 이들이니 밥 딜런과는 다릅니다. 작품의 예술성도 인정받으며 대중적 인기도 누린 현대 화가를 꼽으라면 미국의 앤디 워홀(Andy Warhol·1928~1987)이 떠오릅니다.



워홀은 상업미술로 시작해 팝 아트 운동을 주도했고 패션 디자이너이자 영화제작자로 활동한 인물이지요. 미술을 대중화하는 데 천재적인 역량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부와 명성도 거머쥐었습니다. 영향력 또한 지대했기에 포스트모더니즘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은 그에게서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워홀은 슬로바키아 이민자의 후예로 태어났습니다. 카네기멜론대에서 상업미술을 공부한 뒤 잡지·광고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곧 팝 아트 운동을 이끄는 작가로 활동했습니다.

팝 아트란 1950년대 중반 이후 미국과 영국에서 등장해 196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 미술 운동입니다. 팝 아트 작가들은 추상표현주의에 내재한 과도한 주관성에 반대해 미술이 현실 세계로 돌아와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졌습니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등장한 대량 소비사회의 풍경이었고, 그들이 소재로 삼은 것은 수프 깡통이나 코카콜라 병 등과 같은 대량소비 상품, 연재만화, 신문 사진이나 광고 등이었습니다. 그들은 평범하고 진부한 것들을 재발견해 일반 시민에게 다가가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팝 아트를 대표하는 이들로는 로이 리히텐슈타인, 재스퍼 존스 등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작가는 워홀입니다. 워홀은 에드워드 호퍼와 함께 20세기 미국적인 미술을 대표하는 이로 손꼽힙니다. 호퍼가 20세기 전반을 대표했다면, 워홀은 후반을 대표하는 셈이지요.

여기서 ‘미국적인 미술’이란 미국 사회의 특징을 반영하는 미술을 의미합니다. 미국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 국가들과 비슷하면서도 상당히 다릅니다. 미국은 이주민들이 세운 나라입니다. 이들은 종교적 자유를 얻기 위해, 그리고 더 잘살기 위해 유럽을 떠난 사람들인 동시에 엘리트층이 주도하는 유럽 사회에 반감을 지녔습니다.



똑같지만 독립된

흔히 미국을 대중문화가 가장 발전한 사회라고 말합니다. 미국에서 대중문화가 번성하게 된 데에는 유럽을 위시해 세계 각지에서 이주해 온 대규모의 인구가 원인이 됐지만, 미국으로 이주한 이들의 반(反)엘리트주의에서도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태생적으로 대중사회에 친화적이었고, 미국 영화와 TV 등은 대중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웠습니다. 엘리트가 아닌 대중이 사회와 문화를 주도하는 게 미국 사회의 중요한 특징이 됐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 미술이 대중으로부터 멀어졌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추상파와 초현실주의에서 볼 수 있듯 현대미술은 너무 전위적이거나 과도하게 심오했습니다. 추상파나 초현실주의가 유럽적 미술 전통의 맥락에선 자연스러운 발전 과정이었을지도 몰라도 대중사회를 지향하는 미국인의 시선에는 매우 난해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잭슨 폴록이 주도한 추상표현주의가 상당한 관심을 모았지만, 대중이 추상표현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 팝 아트가 등장하자 대중은 열광했습니다. 팝 아트 작가들은 추상적인 소재가 아닌 구체적인 소재에 주목했습니다. 일상에서 흔히 보는 것을 화폭에 담아 미술과 대중 간의 거리를 좁히려고 했습니다. 존스는 미국 국기를 캔버스에 담았고, 리히텐슈타인은 만화의 한 장면을 캔버스에 옮겨놨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워홀의 ‘200개의 수프 깡통’(200 Soup Cans·1962)은 팝 아트를 대표하는 작품입니다. 캔버스를 가득 채운 것은 당시 미국에서 유명하던 캠벨사의 수프 통조림입니다. 똑같은 수프 깡통을 200개나 그려 넣은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이것도 미술 작품일까’ 싶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며 ‘일상에서 우리가 늘 만나는 수프 깡통도 작품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거야’ 하고 되뇌었지만 여전히 궁금했습니다. 왜 똑같은 것을 그렇게 많이 그렸을까.

이 질문에 대해 제 나름대로 내린 답은 이렇습니다. 이 그림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닮았습니다. 기계화, 대중화한 문명 속에서 우리는 세계를 이루는 한 부속물처럼 살아갑니다. 우리 일상도 저 깡통들처럼 늘 반복되는 지루한 것이지요. 그렇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림 속 깡통은 모두 똑같은 수프 깡통이지만 사실은 하나하나가 다 독립돼 있습니다. 깡통 하나하나가 각자의 자리에서 의미가 있듯, 우리 일상도 다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요.



일상의 옹호, 경계 허물기

워홀이 이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일상의 옹호’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수프 통조림은 일상에서 소중한 것은 아닐지라도 필요한 것입니다. 일상을 상징하는 수프 깡통을 캔버스에 담음으로써 워홀은 미국적 대중사회의 일상을 보여주고 그것에 담긴 문화적 의미를 묻는 듯합니다. 심오한 천상에서 내려와 평범한 일상을 주목해 전후 막 열리기 시작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사회의 현실을 알리고 재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미술의 대상은 미술가가 살던 사회의 발전을 반영합니다. 종교적 성화나 추상화와 같은 작품은 시간의 구속에서 벗어나 있지만, 풍경화와 인물화와 같은 작품은 화가가 살던 시대의 구속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미술가들의 작품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호퍼의 그림이 20세기 전반 도시 생활의 풍경을 다채롭게 재현했다면, 워홀의 작품은 20세기 후반 대중사회의 도래를 직접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미술과 비(非)미술 간의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이 ‘경계 허물기’에 있다면, 워홀은 미술과 광고 사이의 경계 허물기를 선구적으로 실천했습니다. 워홀을 위시로 한 팝 아트 작가들은 사진이나 광고, 그리고 만화도 의미 있는 미술 소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8명의 엘비스(Eight Elvises·1963)’는 워홀의 팝 아트가 갖는 매력을 잘 드러내는 또 하나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캔버스에 실크스크린으로 작업한 것입니다. 워홀은 영화 ‘플레이밍 스타’의 홍보 포스터에 나오는, 총을 든 카우보이 포즈를 한 엘비스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배치했습니다. 8명의 동일 인물이 반복해 나타나는 것을 제외하곤 영화 홍보 포스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이 작품은 영화 포스터를 변형한 것 역시 미술 작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워홀의 작품에서는 순수예술과 대중문화, 전통미술과 상업미술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허물어집니다. 더불어 이 작품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이미지입니다. 이 작품은 실제의 엘비스의 모습이 아닌, 가수이자 영화배우인 엘비스의 이미지가 더 중요한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대중문화가 생산하는 이미지를 끝없이 소비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대중사회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새로움과 진부함

흥미로운 건 워홀이 상품의 대량생산처럼 미술 작품도 공장처럼 운영해 생산했다는 점입니다. 그가 운영한 ‘팩토리’(the factory, 스튜디오 이름)에서 조수들 역시 작품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최종 완성품에서 자신의 손길을 지워버렸습니다. 원본의 실제보다 복제본의 이미지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이라면, 그는 이를 자신의 작품 활동에서 실천했습니다.

워홀의 작품들은 새로움과 진부함을 동시에 안겨줍니다. 게다가 파격적입니다. 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고 우리 삶에 밀착한 미술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신선합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진부합니다. 곰곰이 곱씹을 만한 매력적인 스토리도 안 보이고, 눈부신 자연이나 역동적인 인물도 없습니다. 그저 대중적 이미지가 반복됩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워홀의 작품이 지금도 사랑받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삶이란 늘 신선하고 새로운 것을 꿈꾸다가도 일상 속에서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찾는 과정이 아닐까요. 새로움의 다른 이름이 희망이고 진부함의 다른 이름이 편안함이라면, 이 둘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게 행복한 삶이 아닐까요. 새로움과 진부함의 의미를 동시에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워홀은 여전히 문제적인 작가입니다.



박 상 희

● 1973년 서울 출생
●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문학박사,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방문학자
● 現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JTBC ‘사건반장’ 고정 패널
● 저서 : ‘자기대상 경험을 통한 역기능적 하나님 표상의 변화에 대한 연구’ 등






신동아 201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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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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