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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학 이슈와 학맥

“커튼 뒤 정부가 악순환 자초” vs “대안 없이 시장에 맡겨서야”

구조조정, 누가 주도할 것인가

  • 윤영호 | 동아일보 출판국 기획위원 yyoungho@donga.com

“커튼 뒤 정부가 악순환 자초” vs “대안 없이 시장에 맡겨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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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

11월 29일 해고 통보를 받은 한진해운 벌크선사업부 임직원 40여 명은 소줏잔을 기울이다 회사 얘기만 나오면 이 노래를 들으며 슬픔을 달래곤 한다. 국내 언론의 주요 뉴스를 간단히 정리해 보내주던 회사 홍보 담당자는 해고 통보 다음 날 ‘오늘부로 뉴스 서비스를 중단한다’면서 마지막 보고서 대신 이 노래를 전달했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최근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정권에 밉보여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밀려난 사실이 드러났는데, 한진해운 법정관리도 이런 차원에서 이뤄진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경제 논리보다는 정치 논리로 해운업 구조조정이 이뤄진 게 아니냐는 의심이다.

열심히 일만 해온 한진해운 전·현직 임직원들이야 회사가 공중분해된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음모론이 싹틀 토대는 갖춰진 셈. 그러나 이런 음모론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 현대상선이 살아남은 것은 현대그룹이 사재 출연과 감자(減資)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반면 조양호 회장은 이를 거부했다.

구조조정은 해당 기업의 주주, 채권자, 임직원 등 이해관계자가 워낙 많기에 그 과정에서 뒷얘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구조조정 때마다 음모론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구조조정을 시장에 맡기지 않고 정부가 개입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구조조정 필요” 한목소리 

정부는 2016년 들어 구조조정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여파로 두 업종의 거점지역인 부산·경남의 실업률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이에 따라 해당 지역 자영업자들도 1997년 말 외환위기 때보다 더한 한파를 겪는다고 하소연한다. 조선·해운업뿐만 아니라 철강·건설·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도 경쟁력 저하로 ‘구조조정 터널’에 진입했다.  

정부의 구조조정 추진을 두고 경제학계에서는 진보, 보수 가리지 않고 한목소리를 낸다. 경제학자들은 구조개혁에 대해 한결같이 “때늦은 감은 있지만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다음은 한국경제학회장인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의 진단이다.

“현 정부는 처음 2년여 동안은 경기 부양에 매달려 이해하기 힘든 행보를 보였지만, 뒤늦게 구조조정과 규제 개혁에 나서는 등 방향은 제대로 잡았다. 그러나 정치 시스템 문제 때문에 제대로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금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잠재성장률이 1% 이하로 내려간다. 이렇게 되면 청년 실업률은 더 높아지고, 늘어나는 노인 인구 부양비는 급증할 텐데 우리 사회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표적인 재벌 개혁론자인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도 “단기적인 성장률 목표에만 매달리면 지금처럼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 돈을 쏟아부어야 하지만 그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시간만 낭비하고 언젠가는 재정도 바닥나게 돼 있다”고 했다.  

“대통령이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1%대로 떨어졌다고 국민에게 솔직하게 얘기하고 구조를 바꿔서 새 출발해야 한다고 설득해야 한다. 이걸 숨기면서 임기 동안에 성장률만 올리려 했다간 우리 경제의 미래는 없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전도사를 자처하는 보수 학자인 김영용 전남대 경영학부 교수는 “때늦은 감이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구조조정은 상시적으로 해야 한다. 정부가 실업률 상승 등의 정치적 부담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가 한꺼번에 추진하려다 보니 구조조정 비용만 올라가게 됐다.”

구조조정 원칙이나 방식을 두고도 큰 틀에서 한목소리를 낸다.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씩 뉘앙스가 다르다. 보수적 경제학자들은 구조조정에서 정부 역할을 강조하고, 진보적 학자들은 일관되게 시장 중심을 강조한다.


“한국판 양적 완화는 꼼수”

정부는 “채권은행 주도로 구조조정을 한다”고 강조하지만 이를 믿는 학자는 거의 없다. 시장 메커니즘에 의한 구조조정을 주장하는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책은행이 채권은행이니 정부가 커튼 뒤에서 국책은행을 조종하는 식으로 진행한다”고 비판했다.

보수적인 학자들은 현실론을 인정한다. 보수 시민단체 바른사회를위한시민회의 사무총장을 지낸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공적자금관리위원장 겸임)는 “시장 주도 구조조정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현실에선 정부가 국책은행 주도로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구조조정에는 비용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부실기업에 대출해준 자금을 떼이게 된 채권은행은 자체적으로 자본 확충을 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이게 여의치 않으면 1997년 외환위기 직후처럼 정부가 공적자금을 조성해 메워줘야 한다. 금융 시스템이 흔들리면 국민 경제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어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두 업종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해온 KDB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의 추가 손실이 불가피하다. 이에 두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을 지원할 목적으로 2016년 7월 한국은행과 기업은행이 각각 10조 원, 1조 원을 대출해 자본확충펀드를 설립했다. 이른바 한국판 양적 완화 정책이다. 

이를 두고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우선 용어부터 꼬집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선임 경제연구원으로 근무한 윤택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FRB처럼 불과 몇 년 사이에 대차대조표를 3~4배 늘릴 정도가 돼야 양적 완화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창현 교수도 “정치권에서 이목을 끌려고 한 말일 뿐”이라고 거들었다. 이처럼 많은 경제학자가 한국판 양적 완화를 꼼수라고 지적한다. 박상인 교수의 주장을 들어보자.

“국회 동의를 받지 않으려고 한국은행 팔을 비틀어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을 두고 한국판 양적 완화라고 우긴다. 지금까지의 구조조정 정책은 기본적으로 국가 재정으로 채권은행의 부실을 메워주고, 채권은행은 부실 기업의 부채를 탕감해주고, 부실 기업은 연명하고, 대주주와 경영자는 자리를 보존하는 식이었다. 기업 부실의 책임과 부담을 국민, 국책은행, 주주, 대주주 순서로 지는 구조조정이 이뤄졌으며, 이는 대주주, 경영자, 국책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해왔다.”

학자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GM의 구조조정 방식을 벤치마킹할 만하다고 말한다. 빈기범 교수는 “당시 미국은 의회 승인을 받아 국채를 발행해 GM의 기존 기업을 청산하고 새로 설립한 기업에 공적자금을 투입했다”며 “우리도 국회 동의를 받아 공적자금을 조성해야 정부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산업은행은 정권 전리품?

구조조정과 관련한 또 다른 논란거리는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기능과 위상이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이 5조5000억 원대 영업 손실을 발표하자 해양플랜트 공사와 관련된 2조6000억 원대 손실을 숨기다 뒤늦게 재무제표에 반영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면서 산업은행 책임론이 제기됐다.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과 유착해 경영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경제학계엔 산업은행 폐지론자에서 산업은행 중심의 구조조정을 주장하는 학자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진보적인 학자들일수록 폐지론을 강하게 주장하는 데 비해 보수적인 학자들은 현실론에 기운다. 국책은행 폐지론자인 박상인 교수의 주장부터 들어보자.


박정희 시대의 유산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을 그대로 두고는 관치금융과 공적자금을 남발하는 현행 구조조정 방식을 벗어날 수 없다. ‘산업은행을 잘 감시하자’ ‘산업은행 지배구조를 개혁하자’고 하는데, 웃기는 얘기다. 사회적 압력이나 관심이 높을 때는 잠시 조심하지만, 그 시점이 지나면 정치권이나 관료들이 그 커다란 이권을 절대 그냥 놔둘 리 없다. 지금 정권을 다 잡은 것처럼 행동하는 야당은 ‘국책은행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이권이 얼마나 큰지 잘 아는 야당이 실제로 정권을 잡은 후에 그걸 놓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다.”

역시 산업은행 폐지론자인 빈기범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간다.

“산업은행은 박정희식 개발연대 시대의 유산이다. 우리 경제가 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 없이 성장했으면 지금보다 더 맷집이 좋았을 것이다. 산업은행의 존재 자체가 기업에 ‘경영 사정이 안 좋아지면 도움을 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나쁜 사인을 준 측면이 있다. 국책은행 지원 같은 게 없었다면 기업들은 시장에서 스스로 생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훨씬 치열하게 경영했을 것이다. 산업은행을 통해 망할 기업을 도와주다 보니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해온 측면이 크다.”

미국에는 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이 없다. 중소기업도 아닌 대기업에 산업은행이 자금을 지원해주는 것은 반(反)시장적이다. 자유무역협정(FTA)의 상대국이나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김대중·이명박 정부도 이런 점을 감안해 한때 산업은행 폐지를 검토했으나 현실론에 밀린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주의 경제학을 주장하는 보수적 경제학자인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산업은행의 민영화를 주장했다. 더 이상 기업에 나쁜 사인을 주지 않도록 하루속히 산업은행에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는 것.

그러나 보수 학자인 윤창현 교수는 현실론을 주장했다. 구조조정을 시장에만 맡기기에는 아직 현실적인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에 산업은행 주도의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과거에 효과를 발휘한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중심의 지원 체제를 지금에 와서 먹히지 않는다고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난센스다. 구조조정을 하는 PEF(사모펀드)나 헤지펀드 등의 대안 체제가 제대로 정착된 다음에 장기적으로 고쳐나가야 한다. 현재로선 가령 조선산업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전문가가 산업은행 담당자인데 어떻게 민간에만 맡길 수 있겠나.”



주주권 행사의 險路

그렇다면 시장 주도의 구조조정은 어떻게 가능할까. 여기서부터 진보와 보수의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시장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무엇보다 자본시장 기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수적인 학자들은 역시 현실론을 강조한다. 이 때문에 부실에 책임이 있는 기존 경영진까지 옹호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시장 중심을 강조하는 빈기범 교수는 “자연스럽고도 자발적으로, 그리고 사전에 기업이 최상의 가치를 유지하도록 자동적인 압박을 가하는 게 자본시장이 가진 기업 구조조정 기제”라고 설명했다. 그게 안 되면 기업 외부적으로 적대적인 인수·합병(M&A)이 이뤄지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 현실에선 이런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무엇보다 기업 내부적으로 주주권은 있으나마나 한 수준이다. 기업이 아무리 망가져도 주주들이 들고 일어나 ‘최소한 최고경영자(CEO)라도 교체하자’는 문제 제기조차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재벌 기업뿐 아니라 KT나 KT&G 등 민영화한 공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외환위기 이후 주주권을 강화하긴 했지만 아직도 멀었다는 게 중론이다. 소액주주들의 문제 제기로 경영진이 교체된 사례는 없다.

“소액주주들의 문제 제기는 결국 법원에서 판단하는데, 법원은 그동안 기존 경영진 손을 들어주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런 상황에 어떤 소액주주가 자기 돈까지 들여가며 법원에 문제 제기를 하겠는가.”(빈기범 교수)

기업 내부적으로 주주권 발동을 통해 구조조정을 이루지 못할 때 등장하는 게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하는 펀드다. 2004년 SK와 경영권 분쟁을 일으킨 소버린펀드가 대표적이다. 빈기범 교수는 “당시 이사회에 사외이사를 파견하겠다는 소버린의 요구가 실현됐다면 SK 이사회는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소버린 같은 주주행동주의 펀드의 문제 제기가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 ‘국부 유출 차단’ ‘토종 자본 보호’ 등의 명분을 내세워 국수주의적인 국민 정서를 자극한 결과였다. 당시 소버린의 요구를 받아들였다면 이후 최태원 SK 회장이 회삿돈 600억 원을 횡령하는 등의 ‘사고’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국부 유출 논란

빈 교수는 “보수적인 일부 경제학자들이 ‘국부 유출’ 등을 주장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한 엘리엇매니지먼트 사태 때나 소버린 사태 때 진정 자유주의 경제학자라면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맞는데도 느닷없이 토종 자본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는 것이다.

“외국 자본과 국내 자본을 구분하는 것도 경제학 논리가 아니다. 외국 자본이 없다면 우리 경제가 버틸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 그런데도 외국 자본이 조금만 돈을 벌어 나가면 국부 유출 운운한다. 외국 자본도 이익을 봐야 투자를 할 것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대우조선해양을 중국 자본에 매각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 돈으로 고부가가치 산업에 투자하는 게 오히려 경제 논리에 맞다.”

빈 교수는 구조조정을 위한 PEF에 대한 인식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간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이나 우리은행 매각 추진 과정에 PEF가 관심을 보일 때마다 “경영 능력이 검증도 안 된 PEF에 어떻게 그런 중요한 기업을 넘길 수 있냐”는 반응을 보였다. 빈 교수는 “그렇다면 왜 PEF를 도입했느냐”며 앞뒤가 안 맞는 처사라고 꼬집었다.

한국 경제는 구조조정의 기나긴 터널에 들어섰다. 조선·해운업에서 구조조정의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우느냐는 한국 경제의 앞날에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한국 경제가 구조조정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하려면 경제학계뿐 아니라 정부도 경제 논리에 더 충실해야 할 듯하다.





신동아 201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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