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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미술관

덴마크 예술 황금기와 프랑스 인상파를 만나다

오드럽가드 미술관

덴마크 예술 황금기와 프랑스 인상파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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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미술에 재미를 붙인 한센은 인상파 이전과 이후의 작품도 사 모으기 시작했다. 덕분에 우리는 오드럽가드에서 낭만주의의 들라크루아, 바비종파의 테오도르 루소, 사실주의의 쿠르베, 모더니즘의 마네, 상징주의의 고갱 등을 고르게 감상할 수 있다. 한센은 코로에서 세잔까지 작가별로 12점씩 구입하겠다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프랑스 작품을 구입할 때는 당시 프랑스 최고 비평가였던 두레(Theodore Duret· 1838~1927)의 조언을 많이 받았다. 두레는 인상파 화가의 친구이면서 그들의 후원자였다. 한센의 컬렉션은 당시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작품을 종합적으로 조견할 수 있는 구성이 됐다. 처음에는 집 안을 장식하는 그림이었지만 지금은 미술관의 훌륭한 소장품으로 남아 있다.

한센은 개인적으로도 미술품을 좋아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스칸디나비아 국가에도 미술품 애호가가 많이 늘어나야 한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전시기획자라도 탁월한 수완을 발휘해 1930년에는 대규모 로댕 조각 전시회를 기획하기도 했다. 오드럽가드 미술관은 특별히 빌헬름 하머소이(Vilhelm Hammershoi·1864~1916)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그는 덴마크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작가로, 마치 햇살을 손에 잡힐 듯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미술관에 전시된 ‘피아노와 여자(Interior with Piano and Woman in Black·1901)’는 이런 하머소이의 화풍과 스타일을 대표하는 그림이다. 미술관에는 이런 그림이 많이 걸려 있다.



덴마크 출신 화가 하머소이 재조명

덴마크 예술 황금기와 프랑스 인상파를 만나다

‘피아노와 여자’ [REX]

‘피아노와 여자’에서 왼쪽 창으로 햇볕이 밝게 쏟아져 들어오는 모습은 베르메르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베르메르 작품처럼 여인도 관람자에게는 무심하다. 베르메르의 영향을 직접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머소이는 서유럽에서 공부할 때 베르메르 작품을 많이 접했다고 한다. 그림에서 여인은 뒷모습만 보이는데 이것은 베르메르보다 더 관람자를 무시하는 태도다. 하머소이의 많은 작품에서 여인은 뒷모습만 보여준다.



그림은 여인에게도 그 옆의 가구에도 어떤 심각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는 않다. 관람자 마음대로 해석하라는 것이다. 피아노, 액자, 책장은 각기 음악, 미술, 문학을 나타낸다.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해석하면 좋을 것 같다. 서 있는 여인이 사랑을 의미한다면 이 그림은 사랑과 예술이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은 보는 사람이 그렇게 해석하면 그만이다. 관람자에게는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해석할 권리와 자유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시에 대해 공부할 때 나는 의문과 불만이 많았다. 시 한 구절 한 구절에 선생님이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강요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실제로 그렇게 의도한 것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시험에 그렇게 출제하니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시가 지금은 전혀 다른 감흥으로 다가온다.

모든 문학 작품과 예술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면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완전 자유의 몸이 된다. 보는 사람이 마음대로 느끼고 해석하면 그만이다. 작가에게 확인할 필요도 없다. 하머소이 작품도 보이는 대로 느끼고 해석하면 된다. 싫으면 그냥 외면해버리면 되고.  

하머소이는 재능이 탁월한 화가였다. 여덟 살 때부터 체계적인 그림 교육을 받았고 열다섯 살에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했다. 덴마크 황금기의 미술 전통 속에서 교육받았지만 결코 어느 하나의 화풍에 얽매이지 않았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예술을 추구했다.

하머소이는 자기가 직접 디자인한 자택 인테리어를 많이 그렸는데 그때 아내의 뒷모습을 자주 등장시켰다. 그의 아내는 화가인 오빠의 그림에도 곧잘 모델이 됐다. 오빠는 하머소이의 친구이자 사업 파트너이고 동료였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2001년 두 사람의 작품을 함께 전시한 회고전을 개최했다.

하머소이는 한때 스칸디나비아에서만 알려진 작가였으나 이제 세계적인 작가가 됐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과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영국 왕립미술학교에서는 2008년 하머소이 개인전을 열었다.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는 그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2005년에는 영국 BBC에서 그의 생애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로 방영했고, 2012년 런던 소더비에서 그의 작품 한 점이 30억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덴마크 작가의 작품으로는 최고 기록이었다.



재정위기에도 계속된 컬렉션

한센은 그림을 더 효율적으로 구입하기 위해 1918년 컬렉터, 딜러 등과 함께 그림 구매를 위한 컨소시엄을 만들었다. 이 컨소시엄은 프랑스 작품을 구매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컨소시엄을 통해 그림을 대량 구입해 각자 나눠 가졌고, 배정받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팔면 됐다. 이런 방식으로 더 좋은 그림을 더 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

한창 컬렉션 재미에 빠진 1922년 한센은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었다. 컨소시엄에 돈을 대던 은행이 파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한센은 대출금을 급히 상환해야 했고 이를 위해 프랑스 작품 82점을 팔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한센이 수집한 프랑스 작품의 절반이 넘는 것으로 아끼고 있던 세잔, 마네, 고갱 등의 작품이 포함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컬렉터가 애장품을 팔아야 한다는 것은 큰 고통이 아닐 수 없다.

한센이 내놓은 작품은 코펜하겐의 칼스버그 미술관과 일본인 사업가가 샀다. 일본은 이때 벌써 훌륭한 컬렉터가 있었고 덴마크에까지 가서 작품을 샀다.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때 일본인 사업가가 구입한 작품이 현재 도쿄 우에노공원 내 국립서양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한센은 비상수단을 총동원해 가까스로 재정위기를 극복하자마자 다시 컬렉션에 몰두했다. 1923년부터 1933년까지 새롭게 프랑스 작품을 사 모았고 이 그림들은 지금도 오드럽가드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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