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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文, 安, 黃 속도 내는 대선열차

“변호사 문재인, 인권 담을 그릇 안 돼”

‘인권 동지’ 원형은의 작심 비판

  • 배수강 기자 | bsk@donga.com

“변호사 문재인, 인권 담을 그릇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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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인권위 文 발언은 이해

▼ 노 전 대통령의 후보 시절에도 돕지 않았나요?

“종교특위위원장도 하고 몇 개를 맡았죠. 당시 문재인 변호사가 선배 목사에게 ‘목사 20명과 부산에서 간담회를 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어요. 대선 후보 간담회를 하는데 20명이 뭡니까. 그래서 내가 그랬죠. ‘DJ 때는 750명을 모았는데, 최소한 100명은 돼야 언론도 관심을 갖는다’고. 간담회에 130명 정도 모았어요. 그때 사회를 보면서 ‘대통령 되시면 측근정치를 끝내달라’고 했더니 내 손을 잡으며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하셨어요. 어느 정권이든 측근 정리가 중요한데, 우리나라에선 측근정치가 관행이 돼 있어 문제가 커요. 권력자와 조금만 연이 있으면 청탁 전화가 옵니다. 비상임 인권위원이 뭐라고 제게도 그런 전화가 왔으니까.”

▼ 그렇군요. 2007년 11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북한인권결의안을 놓고 ‘북한에 물어보고 기권했다’는 이른바 ‘송민순 회고록’이 논란이 됐는데요.

“그 부분은 (문 전 대표 발언이) 이해가 돼요. 당시 국가인권위 내부 회의를 할 때 나도 표결 반대한 사람입니다. 왜냐? 남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당시 김정일은 인권위를 ‘미국 제국주의 국가인권위’라고 비판했는데, 어떤 실효성이 있기에 관여하느냐, 국가기관이 끼어들지 말자는 취지였죠. 권력을 잡은 문 전 대표도 실효성을 따져본 거죠.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하는 처지였는데 상대를 자극해놓고 북한에 갈 순 없잖아요.”

2005년 9월 26일 국가인권위 회의록을 보면 원 위원은 “북한 스스로가 자발적이고 자주적 차원에서 (인권 개선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북한 인권에 대한 접근은 어떤 정치적 목적성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진보 정권은 북한 인권을 말하길 꺼리죠.

“보수는 우리 인권이 북한보다 낫다 하고, 진보는 그쪽 얘긴 하지 마라고 하죠. 그러니 갑론을박보다는 실효성이 뭔지 따져야죠.”



표현의 자유와 인권선언 30조

“변호사 문재인, 인권 담을 그릇 안 돼”

노무현 대통령과 송기인 신부. [동아일보]

▼ 최근에는 표창원 의원이 주최한 국회 전시회가 논란이 됐는데요. 박근혜 대통령을 나체로 묘사한 그림 때문에 여성인권단체들이 반발했고요.

“표 의원이 ‘오버’한 거죠. 전시회가 ‘속 시원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현상은 나와 성격이 맞지 않다고 해서 마구 도발할 성질이 아닙니다. 표 의원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지만, 세계인권선언 30조는 ‘어떤 권리와 자유도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를 짓밟기 위해 사용될 수 없다. 어느 누구에게도 남의 권리를 파괴할 목적으로 자기 권리를 사용할 권리는 없다’고 규정해요. 표 의원은 문 전 대표의 ‘인재 영입 1호’ 인물이니 문 전 대표도 곧 유감을 표하더군요. 이건 우리나라의 큰 병입니다. 과거 성균관(成均館)의 교육을 보면 공동체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 임금에 대한 충성, 애국 같은 공동체 교육을 강조했는데, 지금은 그런 교육이 없어요. 모두들 ‘나만 잘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표 의원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처럼 ‘내가 내 권리 찾는데 왜 그러느냐’고 해요. 우리 사회가 인권감수성 교육이 안 된 겁니다. 역대 정부에서 인권단체가 싹을 못 틔웠다가 민주화운동과 결부되면서 2000년 들어 담론이 형성되기 시작했지만, 15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어요.”

인터뷰는 문 전 대표의 정계 진출로 흘렀다.

“2005년 초 문 전 대표가 청와대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만났을 때도 ‘청와대 있어 보니까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추접다’(더럽다의 부산 방언)고 했어요. 노무현 정부가 끝나고 나서도 ‘나는 정치 안 한다’고 했는데, 어느 날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쪽에서 ‘대권 전초전’으로 국회의원에 입문하라고 쑤시더니 2012년 4·11 총선에서 부산 사상에 출마하더군요. 나는 그때 문 전 대표가 출마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곳 몇 곳에서 야당이 이겼을 거라고 봐요.”

▼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그때 부산에서 오랫동안 노력한 재야인사가 많았는데 그들을 도와야 할 노사모 회원들이 다 사상으로 몰렸어요. 또 갑자기 문성근 씨가 부산(북강서을)에 내려와 문 후보와 손잡고 ‘낙동강 벨트’에서 바람을 일으키겠다고 하니 언론도 그쪽만 집중했죠. 사실 그 사람이 부산에 무슨 연고가 있어 내려왔는지 의아했어요. 오랫동안 재야에서 선거 준비한 사람들은 ‘낙동강 오리알’ 되고…. 문 전 대표면 친하더라도 내려오지 말라고 해야죠. 그리고 ‘낙동강 벨트’라면 당연히 낙동강 하구가 지역구이고, 당시 부산 유일 야당 의원이던 조경태 자유한국당 의원(당시 민주통합당 사하을 국회의원)과 벨트를 이뤄야지, 그쪽(조 의원)은 싫다는 거예요. ‘친문(친문재인) 패권’이 그런 겁니다. 요즘 보니 문 전 대표와 생각이 다르다고 그 지지자들이 ‘문자폭탄’과 ‘후원금 18원’ 보내는 게 문 전 대표에게 득이 될까요. 그 사람들이 ‘반문(반문재인)’이죠.”

그는 ‘이렇게 인터뷰하면 나도 문자폭탄 받겠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 캠프 말씀하시니 문 전 대표의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이 떠오르네요.

“지난해 10월엔 500명 정도로 출범했는데 갈수록 늘고 있다고 해요. 요즘 분위기 좋으니까요. 그런데 그분들 면면을 보니 ‘이건 변화가 아니다’ 싶어요.”

▼ 최근에는 900명 정도로 늘었다던데요.

“캠프 핵심 인사 상당수가 과거 권력 맛을 본 사람들입니다. 캠프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고 정책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같은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 토론이 되겠어요? 그쪽 주변 사람들 얘길 들어보면, 대선 승리 후 논공행상(論功行賞)도 돼 있다는 식으로 말해요. 과거 한번 ‘해먹은’ 경험이 있으니 (문 전 대표가 대통령) 당선된 후 시나리오도 어느 정도 정리돼 있다는 거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오면 ‘자기 자리’ 빼앗길까봐 발길질을 한다는데, ‘한자리’ 하겠다는 생각에 참여한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우려스러워요.”



“누군 장관, 누군 시장…”

▼ 논공행상이 정해졌다고요?

“(대선 이후) 누군 장관 하고, 누군 부산시장 출마하고, 그렇게 말하더군요. 문 전 대표 의중은 모르지만 그런 말 나온다는 자체가 쓴웃음을 짓게 하죠.”

▼ 문 전 대표가 ‘대세’이긴 하지만 지지율 30%에서 머물러 있는데요. 안희정 충남지사의 추격세도 만만치 않고.

“표 확장성, 그게 한계예요. 내가 전문가가 아니어서 책임감 없이 말한다면, 본인 의지 문제 아니겠어요. 사람은 영물(靈物)입니다. 말은 안 해도 감은 잡아요. 자신(문 전 대표)은 ‘준비됐다, 대세다’라고 말하지만, 남이 볼 때는 ‘좀 더 기다려보자’는 거죠.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국민은 더욱 현재의 정치권을 못 믿고 있고,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어느 날 갑자기 인물이 나타날 거라는 기대감이죠. ‘정치 안 하겠다’던 문 전 대표는 ‘바람을 타서’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권에 들어갔잖아요. 지금도 그분이 정치하는 게 자기 마음과 맞을까 의심이 들어요. 이재명 성남시장이 촛불집회 때 강성발언으로 지지율이 오르자, 문 전 대표도 강성발언을 했지만 발언 이후 철회하고, 물러나고 하는 걸 보면 자기 마음이 아니라 주변의 마음을 말하는 게 아닌가 하는….”

▼ 문 전 대표가 현재 ‘대세’인데, 찍힐 거 같은데요.

“인권과 사회개혁 관점에서 보면 저렇게 가는 게 우려스러워요. 현재까진 나도 ‘문 전 대표’ 편이지만, 앞으로 변화 의지가 안 보이면 편을 바꿀 수 있죠(웃음).” 





신동아 2017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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