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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근의 古傳幻談 - 예로부터 전해진 기이한 이야기

비밀서가

  • 윤채근|단국대 교수

비밀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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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바귀꽃 아래 봉인된 기억

규장각에 근무하던 젊은 시절, 정약용은 놀랍도록 호학한 정조에게 자신을 서학으로 이끈 라틴어 성서를 진상했다. 천주교에 빠져 있다는 정적들의 공격에 시달리던 그로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행동이었다. 정조는 한동안 정약용을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비밀스러운 독대가 있던 날, 정약용은 선비의 신념으로 천주교를 믿을 권리를 허락받았다. 정조는 정약용의 믿음을 허용했다. 대신 정조는 서학을 활용해 거대한 개혁을 완수할 사명도 그에게 부여했다.

천주교도 가운데에는 정약용이 속했던 남인이 많았다. 기득권자들인 노론에게 이들은 가장 위험한 저항세력이었다. 무자비한 탄압이 잇따랐고 남인들은 끝까지 서학을 수호한 신서파(信西派)와 노론에 붙어 천주교 탄압에 앞장선 공서파(攻西派)로 쪼개졌다. 남인 내부 실정에 밝은 공서파는 노론보다 두려운 대상이었다. 정약용은 자신의 라틴어 스승이던 조신선, 또 그가 이끄는 지하조직과 모든 인연을 끊었다. 대신 노론과 최후의 대결을 준비하던 정조의 팔다리가 됐다.

정조는 화성 천도를 통해 기성 관료들을 거세하고 그들의 간섭 없이 백성들과 직접 소통하고자 했다. 정약용은 그런 왕을 모시고 서양의 과학기술과 평등사상에 대해 열정적으로 토론했다. 하지만 너무 무모한 계획이었다. 정조는 수구세력에 가로막혀 길을 잃었다. 어느 날 정조는 라틴어 성서를 숨길 것을 명했고 개화의 비밀스러운 상징이던 책은 원래 주인인 조신선에게 되돌아갔다.
씀바귀꽃은 바람에 날려 사라지고 여유당 앞 강변은 이제 완전히 어둠에 잠겼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 정약용은 멀리 정조가 누워 있는 건릉 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가 속삭였다.

“레퀴에스카트 인 파케!”

이번엔 조선어로 속삭였다.



“평화롭게 잠드소서!”

경신년 가을밤, 라틴어 성서를 되찾은 정약용은 건릉을 향했더랬다. 정조 사후 그와 그의 형제들의 목숨은 경각에 달려 있었다. 어쩌면 장렬히 순교해야 할 시점이었다. 정약용은 배교를 택했다. 그는 주님과 더불어 주군마저 가슴에 묻고 개혁가로서 이승의 소임을 더 이어가기로 결심했었다. 그리하여 그의 삶에 기적처럼 펼쳐졌던 두 번의 은혜를 잊기 위해, 배교와 배덕으로 이루어진 망각의 강을 건너기 위해 성서를 파묻어야만 했다. 어두운 건릉 한가운데 서서 그는 주군에게 속삭였었다. Requiescat in pace! 그의 기억과 함께 성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 매장됐다. 어쩌면 조선 최초의 개화군주가 될 뻔했던 왕이 잠든 건릉의 씀바귀꽃 아래.



비밀서가

경기 화성에 있는 건릉. 조선 22대 왕 정조의 무덤이다. [동아 DB]


※각설 : 개혁군주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다산 정약용은 정조가 사망한 직후인 1801년, 역모를 꾀했다는 구실로 천주교도에게 가해진 정치적 탄압 사건인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유배형에 처해졌다. 1818년 해배돼 남양주시 여유당으로 귀환한 그는 관직을 단념한 채 평생 저술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이 작품은 해배 후 노년의 정약용이 지은 ‘아언각비’라는 어학서와 ‘조신선전’이라는 산문 그리고 젊은 시절 천주교도로서의 그의 이력을 결합한 팩션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조신선의 정체와 개화군주로서의 정조 이미지는 상상력에 기초한 소설적 가설이다.
고전환담


비밀서가

윤채근
● 1965년 충북 청주 출생
● 고려대 국어국문학 박사
● 단국대 한문교육학과 교수
● 저서 : ‘소설적 주체, 그 탄생과 전변’  ‘한문소설과 욕망의 구조’ ‘신화가 된 천재들’ ‘논어 감각’ ‘매일같이 명심보감’ 등




신동아 201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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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근|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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