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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근의 古傳幻談 | 예로부터 전해진 기이한 이야기

칼의 가족

  • 윤채근|단국대 교수

칼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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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칼에 얽힌 기이한 인연 혹은 눈먼 원한에 관한 이야기다. 1760년 봄, 평양 관기 모란은 들떠 있었다. 그녀가 애호하던 한시창(한시에 곡조를 붙인 노래) ‘관산융마(關山戎馬)’의 작가 신광수가 평양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평안도관찰사가 베푼 연광정 연회에 불려나간 그녀는 ‘추강(秋江)이 적막(寂寞) 어룡냉(魚龍冷)허니~’로 시작되는 ‘관산융마’를 부르며 상석에 앉은 손님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녀가 찾는 신광수는 시문에 능한 평안도 성천 기생 일지홍을 옆에 끼고 이미 취해 있었다. 모란은 구성지고 처연하게 이어지던 상조(商調)의 곡조를 바꿔 씩씩한 우조(羽調)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신광수는 그제야 정색하며 모란 쪽에 눈길을 줬다.

오래도록 선망해온 시인을 목격한 직후 연정을 품게 된 모란은 신광수가 묵는 객관으로 편지를 띄워 독대를 간청했다. 답신이 없었다. 모란은 관찰사가 사사로이 아끼는 기녀였다. 제아무리 서도 지역을 풍미하던 ‘관산융마’의 작가라도 함부로 그녀를 취할 순 없었다. 소외받던 남인 출신 신광수는 과거에 합격하고도 변변한 벼슬을 받지 못해 이리저리 떠도는 신세였다.

모란은 꾀를 냈다. 관찰사의 대동강 뱃놀이 날, 일지홍을 대동해 나타난 신광수의 배에 슬쩍 올라탄 것이다. 관찰사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부벽루 쪽으로 앞서 나아갔다. 모란이 일지홍에게 빠르게 속삭였다.

“홍이는 잠자코 있거라. 내 선비님과 잠시 마음이라도 나누려 한다.”

모란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일지홍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광수 앞자리에 마주 앉은 모란은 흔들리는 배의 움직임에 가락을 맞춰 ‘관산융마’를 불렀다. 그녀가 부르는 ‘관산융마’는 평양 제일의 서도창으로 유명했다. 소리는 넓게 퍼져나가며 강물소리마저 잠재웠다. 신광수가 물었다.



“당돌하다. 저번에는 상조 아닌 우조로 부르더구나?”

웃음기를 거둔 모란이 멀리 모란봉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관산은 변방을 뜻하는데 평양이야말로 조선의 변방 아니겠습니까? 씩씩하게 불러봤습니다. 이제 다시는 가까이 모실 수 없겠사오니 한 번 더 부르고 배를 갈아타겠습니다.”

모란은 혼신을 다해 연거푸 두 번 창하고 목례했다. 따사로운 햇살을 타고 온 봄바람이 그녀의 귀밑머리를 가늘게 흔들었다. 관찰사가 승선해 있던 배로 옮겨 탄 모란이 마지막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강녕하소서. 인연 있으면 죽기 전에 뵙겠습니다.”


‘관산융마’ 최고의 명창, 모란

모란을 보낸 신광수는 전에 겪어보지 못한 쓰라린 슬픔에 휩싸였다. 조선팔도 제일의 명창을 마주하고도 그녀 손목조차 붙잡을 수 없었다. 그는 분노와 질투로 뒤범벅이 되어 취해버렸고 한동안 객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가 기력을 되찾고 평양을 떠나려 할 즈음 모란이 보낸 기녀 한 명이 밤에 찾아왔다. 추강월이라는 검무기(劍舞妓)였다.

추강월의 검무는 ‘가을 강의 달’이라는 그녀 이름처럼 아름다웠다. 다만 그녀가 구사하는 보법이 매우 특이해 신광수가 물었다.
“네 검의 놀림은 우아하지만 발걸음은 난폭하다. 살기가 있구나. 모란이 널 보낸 뜻이 그것이더냐? 날 베어 갖고 싶다는 것이겠지?”

신광수가 내민 술잔을 받아 단숨에 마신 추강월이 잔을 올리며 대답했다.

“선비님 떠나시기 전 쓸쓸한 밤 건너시도록 얘기 한 자락 펼쳐 보여드리라는 난이 부탁이었습니다. 들어보시려는지요?”

신광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추강월이 주안상 앞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속삭였다.

“이건 임진왜란이 끝나고 수십 년 흐른 어느 해, 강원도 외딴 절을 찾은 한 과객이 겪은 실화입니다. 웃지 마시고 들어주소서.”

신광수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다음과 같은 신기한 사연을 펼쳐냈다.

강원도 외딴 절에서 글을 읽던 과객 옆엔 밤마다 노승 한 명이 따라붙어 시중을 들곤 했다. 노승은 과객의 글 읽는 소리 듣기를 무척 좋아했다. 늘 곁을 지키던 노승이 딱 한 번 자리를 비운 날, 과객은 밤새 흐느끼는 곡소리에 잠을 설쳐야 했다. 다음 날 만난 노승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과객이 물었다.

“불가에서는 제사는 지내되 곡은 하지 않는다 들었거늘 그대의 지난밤 통곡 소리는 어찌된 건가? 남모를 비밀이라도 있는 것인가?”

한참을 망설이던 노승이 긴 탄식을 내뱉고 대답했다.

“어제는 제 스승님의 제삿날이었습니다. 소승 나이 이제 여든을 바라보니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습니다. 내년 오늘 울고자 한들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리 애통히 울었던 것입니다.”

과객이 연민의 빛으로 바라보자 노승이 말을 이었다.

“이 나이에 무얼 더 숨기겠습니까? 소승은 일본 사람입니다. 빈도의 기구했던 과거 얘기 들어보시렵니까?”

읽던 책을 덮은 과객이 고개를 끄덕이자 호롱불 심지를 돋운 노승이 다음과 같은 신기한 이야기를 펼쳐냈다.


검승 이야기를 전한 추강월

노승의 본명은 사토 아키에(佐藤秋江). 임진년 조선전쟁 당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예하 특수부대 소속이었다. 사토는 엄혹한 검술과 격술 시험을 통과해 가토 부대 선봉대에 편제됐다. 함경도로 침투해 한반도 이북을 유린한 그의 부대는 의주로 몽진한 조선 왕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비극은 해안가를 통해 북상하던 어느 날 일어났다.

바닷가 높이 솟구친 암석 위에 도롱이를 걸친 조선 검객 한 명이 앉아 있었다. 대부분 20대 전후였던 왜병들은 검객을 향해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검객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왜병들이 조총을 난사하고서야 칼을 빼들었다. 한 마리 학이 내려앉듯 지상으로 낙하한 검객은 왜병들 어깨를 타고 움직이며 목을 베기 시작했다. 그는 낫으로 잡초를 베는 농부처럼 보였다. 참수를 마치고 착지한 검객 앞엔 단 두 명의 왜병만이 생존해 있었고 사토는 그중 한 명이었다.

살아남은 사토와 다른 왜병은 검객이 적에게 베푼 작은 온정의 표시이자 살육의 전리품이었다. 고민 끝에 두 왜병을 제자로 거둔 검객은 이후 20여 년 동안 조선 전역을 정처 없이 떠돌았다. 한 지역에서 반년 이상 머물지 않던 검객은 흡사 쫓기는 자였으며 달밤에 나무를 베고 바위를 내리치던 모습은 영락없이 원한에 찬 광인이었다. 그렇게 셋은 차츰 친밀해졌고 검객은 사토와 다른 왜병에게 자신의 검술까지 전수했다. 세 사람은 진짜 가족이 되었다.

사토의 스승은 검객의 본능으로 절대 등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어느 날 아침 단 한 번 방심해 신발 끈을 묶기 위해 제자들 앞에서 몸을 숙였다. 그 짧은 빈틈, 스승이 손에서 칼을 놓은 일순의 공백을 파고든 다른 왜병이 자신의 칼집에서 발검해 스승을 참수한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스승을 살해한 왜병이 소리쳤다.

“사토. 이자는 우리 원수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자.”

왜병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토는 망설임 없이 칼을 빼 상대 목을 끊어버렸다. 스승과 벗을 동시에 잃은 사토는 오래도록 앉아 생각에 잠겼다. 밤이 왔고 아침이 왔으며 또다시 사방에 노을이 내렸다. 흩뿌리는 핏빛 햇살 속에 그는 갈 곳이 없었다. 사토는 고향 가까이에서 죽고자 동해안으로 이동했다. 바다에 몸을 던졌지만 파도가 사토를 바닷가로 밀어냈다. 죽지 못할 운명이었다. 그는 강원도 산골 암자로 숨어들어 삭발하고 중이 되었다.



검승의 진짜 정체

긴 이야기를 마친 사토 아키에는 흐느꼈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과객이 물었다.

“자네 스승은 누구였나?”

고개를 숙인 노승이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성도 이름도 모릅니다.”

한참 침묵이 흐르고 호롱불에 비친 상대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하던 과객이 속삭였다.

“내 나이 아직 젊지만 왜인들 풍속은 좀 알지. 이름이 아키에? 그건 남자 이름이 아닌데.”

과객의 말을 들은 사토는 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지난밤처럼 통곡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사토가 마저 털어놓은 사연은 슬프고도 기이했다.

사토 아키에는 가고시마 출신 무장의 딸로 태어났다. 가고시마는 천주교가 가장 활발히 전파된 지역으로 사토 집안은 그녀가 태어나기 전 이미 개종한 상태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같은 천주교도이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휘하로 들어가며 일곱 살 딸 아키에를 여성 사무라이로 주군에게 바쳤다. 그로부터 10년 뒤, 고니시 부대 예하 온나부게이샤(女武芸者)로 성장한 그녀는 임진년 조선전쟁에 출정하기 직전 남성으로 가장하고 가토 기요마사가 모집하고 있던 특수부대에 잠입했다. 여성 전사인 온나부게이샤는 남성과 대등한 전투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아키에는 모험심 넘친 소녀였다. 그녀는 주군 고니시의 경쟁자 가토가 창설한 특수부대의 조선 내 이동 동선을 보고할 밀정이었다.

낯선 조선 검객에게 부대 전체가 몰살되던 운명의 날, 그녀는 전투에 소극적이었던 덕분에 가까스로 생존했다. 신묘한 검술을 지닌 조선 검객은 그녀와 그녀의 동료 이시다를 살해하지 않았다. 여성인 아키에가 밀정으로 선발된 건 마지막 항전 수단으로 미인계를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살아서 귀국하기 위해 기꺼이 최후의 수단을 사용했다. 아키에는 검객의 연인이 되었고 조금씩 상대의 검술을 사랑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제자가 되었다. 어릴 때 즐겨 읽던 군담소설 ‘헤이케모노가타리(平家物語)’의 여전사 도모에 고젠(巴御前)을 숭상하던 그녀는 도모에가 주군 미나모토노 요시나카(源義仲)를 따르듯 검객에게 충성했다.

문제는 이시다였다. 질투에 눈이 먼 이시다는 스승의 검법은 물론 그의 정부까지 독차지할 야심을 오랜 세월 간직하고 있었다. 이시다의 야욕은 칼로 맺어진 가족을 몰락시켰다. 마침내 모든 걸 잃어버린 아키에는 돌이킬 수 없는 고독에 빠져 다시 남장한 채 승려가 됨으로써 과거와 연결될 유일한 다리를 잘라버렸다.



어머니의 이름으로

강원도 외딴 절에서 어떤 과객이 들었다는 일본 승려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말을 마친 추강월은 사뿐히 일어나 한 번 더 검무를 췄다. 그녀의 유연한 운검과 폭발적인 보법을 주시하던 신광수가 춤을 중지시키고 물었다.

“네 본명이 무엇이냐?”

다시 다가앉은 추강월이 맑은 눈망울로 신광수를 한참 바라보다 살며시 웃었다.

“추강월입니다.”

상대의 당돌한 대답에 한숨을 쉰 신광수가 얼굴을 대동강 쪽으로 돌리고 콧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흥얼거리던 콧노래는 이윽고 절주를 갖춰가며 어음을 획득했고 ‘관산융마’로 변해갔다. 시창의 혁명을 일으키며 한양을 발칵 뒤집은 ‘관산융마’를 작자의 육성으로 직접 듣게 된 추강월은 감격해 숨을 멈췄다. 그녀는 노래가 끝나길 기다려 세 번 절하고 거듭 헌수의 잔을 올렸다. 전국의 이름 있는 기녀 모두가 흠모하던 풍류가객은 마침내 취기가 돌아 속삭였다.

“모란을 처음 보고 놀랐지. 이상한 기녀였어. 나를 노려보며 우조창을 할 땐 심장에 화살이 박히는 것 같더군. 내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어.”

추강월이 말없이 다시 잔을 따라 올렸다. 신광수가 그녀를 주시하며 다시 물었다.

“네 본명이 추강월이라면, 그렇다면 넌 사토 아키에의 후손이겠구나?”

추강월은 대답 대신 이별 노래인 서도민요 ‘배따라기’를 구성지게 뽑았다. 노래를 마친 그녀가 달을 바라보며 창백한 슬픈 얼굴로 말했다.

“맞습니다. 사토 아키에가 이시다를 살해할 때 그녀는 이미 스승의 아이를 잉태한 상태였습니다. 끝내 자살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였지요. 늦은 나이의 난산이었지만 그녀는 용감하게 홀로 아이를 낳았고 함께 데리고 출가했습니다. 아들이었답니다. 그 아이는 환속해 어머니의 이름 추강을 성으로 썼지요.”

“줄여서 추씨가 되었겠구나?”

추강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묵묵히 추강월을 바라보던 신광수가 재차 물었다.

“그럼 모란은 누구냐?”

추강월이 두손을 가슴에 모으고 대답했다.

“‘관산융마’의 작자를 연모해온 기녀 모란은 제 여동생입니다. 추모란. 저희는 사토 아키에가 조선에 남기고 간 흔적이지요.”

신광수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들의 정체를 밝힌 사토 아키에의 후손들을 동정하지도 혐오하지도 않았다. ‘관산융마’를 듣고 그 노래를 사랑해버린 그녀들은 어쩌면 ‘관산융마’의 작자야말로 자기들을 이해해줄 유일한 조선인이라 여겼을지도 몰랐다. 그는 취했고 그 와중에 대동강 물결 소리가 넘실대며 온몸을 휘감았다. 변경의 삶을 이해한 자이자 전란 속의 고독을 노래한 시인 신광수는 임진년 조선전쟁의 상흔인 사토 아키에의 기억을 품고 쓰러져 잠들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1772년 임진년, 환갑을 넘긴 신광수는 탕평책을 펼치던 영조의 눈에 들어 기로과(耆老科)로 늦은 급제를 했다. 비로소 당상관이 된 그는 한양에 와 있던 평양 기생 모란을 만나 회포를 풀었다. 모란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 다시 한 번 ‘관산융마’를 불렀다.

※각설 : 1746년 한양에서 치러진 과거시험에 응시한 30대의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는 자신의 인생작을 답안으로 제출했다. 후대 한시창의 대명사가 된 ‘관산융마(關山戎馬)’였다. 두보의 ‘등악양루(登岳陽樓)’를 원용하며 변경의 전란을 다룬 이 아름답고 처연한 시는 곧바로 서도 지역까지 퍼져나가 평양 기녀들의 애창곡이 되었다. 하지만 소외된 남인 출신 신광수는 진사시에 합격하고도 변변한 벼슬을 받지 못해 이리저리 떠도는 신세로 전락했다. ‘검승전(劒僧傳)’은 그가 이 시기의 불우함을 무명의 조선 검객과 일본인 제자의 이야기로 가탁해 지은 소설이다. 위의 이야기는 신광수의 실제 생애를 그가 지은 소설 내용과 결합시킨 팩션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성천 기생 일지홍, 평양 기생 모란, 검무기 추강월은 실존인물이다. 특히 모란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과 1772년의 재회는 사실에 입각해 있다. 하지만 일본 출신인 검승의 실체가 남장여자 사토 아키에라는 설정은 허구다.
고전환담



윤 채 근
● 1965년 충북 청주 출생
● 고려대 국어국문학 박사
● 단국대 한문교육학과 교수
● 저서 : ‘소설적 주체, 그 탄생과 전변’  ‘한문소설과 욕망의 구조’ ‘신화가 된 천재들’ ‘논어 감각’ ‘매일같이 명심보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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