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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장기 집권 피로감… 아베 꺾고 첫 여성 총리?

고이케 도쿄도지사 일본 정계 태풍 되나

  • 장원재|동아일보 일본특파원

시민들 장기 집권 피로감… 아베 꺾고 첫 여성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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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을 떠날 때 버렸다”

그런데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정계에 발을 들이며 집안이 몰락했고, 이후의 삶도 달라졌다. 고민하던 그는 아랍어가 유엔 공용어로 지정된다는 기사를 읽고 대학을 중퇴한 뒤 이집트로 유학을 떠났다. 고이케 지사는 이후 한 인터뷰에서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시집가는 그런 인생 계획은 유학을 떠날 때 버렸다”고 밝혔다.

고이케 지사는 현지에서 제4차 중동전쟁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하면서 나름의 철학을 갖게 됐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유학 경험을 통해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세계가 얼마나 기만에 가득 차 있고 현실적인 판단이 필요한지 등을 배웠다”고 돌이켰다. 이런 ‘현실주의’는 이후 고이케 지사의 정치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됐다.

대학 시절 일본인 유학생을 만나 결혼했다가 같이 산 지 1년여 만에 이혼한 경력도 있다. 이후 지금까지 혼자다. 그는 “결혼생활을 미리 경험한 덕분에 나중에 초조해하지 않게 됐다. 다만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후회가 나중에 생겼다”고 돌이켰다. 졸업 기념으로 기모노를 입고 피라미드 위에서 다도(茶道)에 따라 차를 마셨다는 일화도 있다.

졸업 후 귀국해 통역으로 활동하던 그는 1978년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등의 인터뷰를 연이어 성사시키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방송국 뉴스 앵커를 맡으며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정계의 러브콜을 받던 그는 40세에 막 창당한 일본신당에 들어갔고, 참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며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신생 정당을 고른 이유에 대해 그는 훗날 “정치를 바꾸려면 큰 중고차를 수리하는 것보다 작은 신차가 좋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후 신진당, 자유당, 보수당, 자민당을 거치며 ‘정치 철새’라는 비판도 받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때는 환경상으로 발탁됐다. 한국에서도 일반화된 ‘쿨 비즈’는 당시 고이케 환경상이 공모를 통해 만든 신조어다. 그는 로고, 네이밍, 포스터 등을 직접 정하며 공을 들였고 대성공해 ‘고이즈미 정권의 광고탑’으로 불렸다. 2006년 발족한 아베 1차 내각에서는 총리보좌관을 거쳐 여성 첫 방위상에 임명됐다. 2008년 총리를 꿈꾸며 여성 최초로 자민당 총재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경험도 있다.



기회주의자? 개혁가?

화려한 경력을 쌓던 그에게 시련이 찾아온 것은 2012년이었다.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선두를 달리던 이시바 시게루 편에 섰는데 1차 투표에서 뒤진 아베 총리가 결선에서 역전 당선된 것이다. 방위상까지 시켜줬는데 라이벌을 지지한 것에 배신감을 느낀 아베 총리에 의해 이후 그는 철저한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아베 총리와의 ‘악연’이 시작된 것도 이 때부터다.

고이케 지사는 개혁적 이미지로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정계에는 ‘기회주의자’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있다.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등 당대의 권력자 편에 붙었다가 상황이 바뀌면 재빨리 돌아서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본 정계에서 여성 정치인으로 상황에 맞게 ‘생존의 길’을 찾았을 뿐이란 반론도 있다.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일에만 열중하는 ‘포퓰리스트’라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자민당 내부에선 그에 대해 “이미지와 퍼포먼스만 있지 경험과 실행력이 없다”는 평가를 내리는 이도 많다.

우익 성향도 강하다. 지난해 도지사 취임 직후 “여기는 일본이고 도쿄”라며 전임자가 약속한 한국학교 신설 계획을 백지화했다. 2005년에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고 2007년에는 미국 의회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까지 날아가 로비를 했다. 2014년에는 위안부 강제연행을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 담화’에 대해서도 “재검토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고이케 지사는 2009년 소속 자민당이 야당이 되자 “정권 탈환 때까지 머리를 깎지 않겠다”며 1년 9개월 동안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당시 이를 스스로 ‘와신상담 헤어’라고 명명해 화제가 됐다. 올 초에는 “이길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겠다”며 ‘와신상담 금주’를 선언하고 도의원 선거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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