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호

유통 인사이드

여론이 만든 ‘착한 기업’ 삼양식품의 민낯

‘없는 담합’ 자인하고 회삿돈 빼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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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19-03-0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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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면가격 담합 없었다” 판결에 묵묵부답

    • 공정거래 이슈로 해마다 구설

    • 최근엔 횡령 혐의로 회장 법정구속

    • 삼양식품 측 “따로 드릴 말씀 없다”

    비즈니스의 세계는 정글이다. 아귀다툼이 횡행하고 마타도어가 난무한다. 업계 패권을 쥐기 위해 온갖 병법과 술수가 활개 친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질기게 이어지다 6년 6개월 만에 최종 결론이 난 ‘라면가격 담합 논란’도 비즈니스 세계의 문법을 피해가지 못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법원을 사이에 두고 라면 4강(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한국야쿠르트) 사이에서 ‘담합했다’와 ‘담합 안 했다’는 주장이 핑퐁처럼 오고 갔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담합했다’고 유일하게 자인한 삼양식품만 체면을 구겼다.


    “삼양만 리니언시로 과징금 면제”

    1월 14일 농심과 오뚜기는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법원으로부터 가격담합 관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담합이 없었다는 승소 판결을 받았다고 각각 공시했다. 앞서 2013년 7월 미국 대형마트 더 플라자 컴퍼니(The Plaza Company)는 농심과 오뚜기, 삼양식품 등을 상대로 라면가격 담합 관련 손해배상 및 행위금지명령 청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후 미국 수입업자와 소비자 등 직·간접 구매자 측이 동일한 내용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삼양식품은 원고 측에 적극 협조한다는 조건으로 150만 달러에 합의를 봐 피고에서 빠졌다.

    당초 라면가격 담합 논란은 2012년 7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한국야쿠르트 등 라면 제조업체 상위 4사에 가격담합 과징금을 부과한 데서 시작됐다. 공정위는 4개 업체가 2001년부터 2010년 2월까지 6차례에 걸쳐 각사 라면가격을 서로 알려주는 식으로 담합했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농심에 1080억 원, 오뚜기에 98억 원, 삼양식품에 120억 원, 한국야쿠르트에 62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삼양식품은 한국에서도 ‘나 홀로 행보’를 펼쳤다. 2001년 1월에 리니언시(leniency·자진신고 감면제도)를 신청한 것이다. 리니언시는 담합 사실을 신고한 업체에 과징금 전액을 면제해주고, 2순위 신고자에게는 과징금의 절반을 면제해주는 제도다.

    하지만 삼양식품의 리니언시는 자료 불충분을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삼양식품은 이듬해 2월에 재차 리니언시를 신청해 과징금을 면제받았다. 반면 농심과 오뚜기, 한국야쿠르트는 공정위 결정에 불복해 과징금부과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직접 증거가 없다”

    상황은 급반전했다. 2015년 12월 24일 대법원은 농심 측에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어 이듬해 1월 26일에는 오뚜기와 한국야쿠르트 측에 패소 판결한 원심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 선고를 내렸다. 삼양식품은 ‘담합했다’면서 자진신고까지 했는데, 대법원은 ‘담합했다고 단정하기 힘들다’고 결론 내린 셈이다.

    대법원 판결 직후 공정위는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명령을 직권취소했다. 결과적으로 삼양식품 측 진술에만 의지해 1000억 원대의 과징금을 징수했다가 수십억 원의 이자를 더해 환급했다.

    대법원은 라면업체들이 가격인상 날짜나 내용에 관한 정보를 교환한 사실은 인정했다. 이에 대해 라면업계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각사 영업 담당 직원들끼리 월 매출이 얼마인지, 신제품이나 가격이 얼마고 중량이 어느 정도인지 정도의 정보는 교환했었다”면서도 “과거만 해도 시장조사기관이 많지 않아 시작된 관행이다. 삼양식품이 리니언시 과정에서 ‘담합했다’고 내민 증거가 영업사원들이 주고받은 e메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정보교환이었다. 그나마 공정위 신고 이후에는 아예 없어졌다. 공정위가 가격담합을 잡아내는 데 최고의 전문가들 아닌가. 첫 조사부터 과징금 부과까지 총 4년이 걸렸는데 물증을 못 찾았다면 상식적으로 ‘담합이 없었다’고 판단해야 맞지 않나. 삼양식품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아직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법원은 정황만으로는 가격인상을 담합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직접 증거는 리니언시를 신청한 삼양식품 측 진술뿐이었는데, 이마저 숨진 A상무의 진술 내용을 옮긴 식이었다.

    판결문(대법원, 2015.12.24., 2013두25924)에 따르면 A상무로부터 ‘가격담합 논의’를 들은 사람은 당시 삼양식품 B사장과 영업본부 C고문이다. 하지만 정작 망자인 상무의 진술이 담긴 직접 증거는 없다. B사장은 진술서에 “A상무로부터 대표자회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라면가격 좀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이야기도 나왔고, 농심이 먼저 올리면 따라 올리는 것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는 취지의 보고를 받았다”고 썼다.

    하지만 대법원은 “전문(傳聞) 진술로 대표자회의의 정황과 논의된 내용이 정확지 않다”고 봤다. 이어 “당시 라면가격을 장기간 올리지 못하던 상황에서 원고가 먼저 가격인상을 주도해주었으면 하는 점에 공감하는 분위기 정도만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한국에서 라면이 가진 의미는 작지 않다. 인스턴트 제품이지만 생필품으로 꼽히는 터라 업체가 가격을 조정할 때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다. 이 때문에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가격에 개입해왔다. 이런 정황은 대법원 판결문에서도 오롯이 드러난다.

    대법원은 “삼양식품이 라면업계 선두를 점하던 1980년대를 포함해 2001년 이전에도 선두업체가 가격을 인상하면 나머지 사업자들은 유사한 수준으로 가격을 추종해온 것으로 보이고, 이는 라면가격에 대한 정부의 통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부는 시장점유율 1위 업체인 원고(농심)와 대표 품목 한두 개의 개략적인 인상률 상한을 정하는 방식으로 가격인상 협의를 진행해왔다”고 판단했다.


    “라면가격 사실상 정부가 관리”

    서울 용산구 한 대형마트에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의 라면 제품(왼쪽부터)이 진열돼 있다.

    서울 용산구 한 대형마트에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의 라면 제품(왼쪽부터)이 진열돼 있다.

    라면업계 사정에 정통한 또 다른 관계자의 말이다.

    “라면가격은 사실상 정부가 관리한다고 봐야 해요. 담합을 하려야 할 수가 없습니다. 2008년 첫 담합 조사가 이뤄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요. 당시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 물가 안정이 화두가 됐어요. 이에 공정위가 라면가격 담합 조사를 펼쳤는데, 혐의를 찾지 못하고 물러났습니다. 그러다 2010년 1월에 재차 조사를 벌였는데, 삼양식품이 두 번에 걸쳐 리니언시를 신청한 겁니다.”

    유통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공정위의 주요 주시 대상 중 하나가 유통업계다. 라면, 소주, 맥주, 과자가 ‘스크린’ 대상이라는 걸 업계가 오히려 더 잘 안다”면서 “유통업계 종사자 입장에서는 상식적인 판단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공정거래 분야 전문가 네트워크인 공정거래실천모임은 2018년 3월 ‘2017년에 공정거래법 위반을 많이 한 기업 및 기업집단’을 발표하며 그중 하나로 삼양식품을 꼽았다. 그전에도 삼양식품은 해마다 ‘공정위발’ 구설에 올랐었다.

    2014년 공정위는 2008년 1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대형 할인점에 라면을 공급하면서 내츄럴삼양을 거래단계에 넣어 중간 마진, 이른바 통행세를 받도록 하고, 총 73억4000만 원을 부당 지원했다고 발표하면서 과징금 27억여 원을 부과했다. 이듬해 공정위는 삼양식품에 3억여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1995년부터 2015년 3월까지 약 20년간 회사 임직원 13명에게 에코그린캠퍼스의 업무를 맡기고(인건비 지급) 관광사업에 필요한 셔틀버스를 연평균 450대씩 공짜로 빌려줘 총 20억 원에 이르는 부당지원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공정위는 2016년에도 내츄럴삼양의 자산 규모가 커져 2012년 1월 1일부로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로서 신고해야 하나, 삼양식품이 신고하지 않아 규제를 회피했다고 판단해 심사보고서를 전원회의에 상정했다.

    다만 삼양식품 측은 ‘신동아’에 “이른바 ‘통행세’와 관련해 삼양식품은 고등법원에서 법정 다툼을 통해 승소해 과징금 전액을 돌려받았다”고 밝혔다. 또 “에코그린캠퍼스(삼양목장)의 경우, 관리나 유지를 위해 예전이나 지금이나 일부 관광으로 벌어들이는 수익 외에는 다른 사업적 방법이 없어 부득이 삼양식품에서 인원과 버스를 무상 지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더불어 “내츄럴삼양의 지주회사 신고는 인지하지 못해 누락한 것”이라면서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고의성이 없었고 위반행위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취한 바 없다”고 밝혔다.


    “회삿돈으로 개인 주택 수리”

    하지만 구설은 ‘공정거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1월 25일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이성호)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등 혐의로 지난해 4월 재판에 넘겨진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전 회장의 부인인 김정수 사장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80시간을 명령했다.

    전 회장 부부는 2008년부터 2017년 9월까지 삼양식품이 계열사로부터 납품받은 포장 박스와 식품 재료 중 일부를 자신들이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로부터 납품받은 것처럼 꾸며 총 49억 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아왔다. 법원은 이들 부부가 “약 10년 동안 허위로 서류를 작성해 49억 원을 적극적으로 횡령했다”면서 “(특히) 개인 소유 주택 수리비용, 승용차 리스 비용, 카드 대금 등 (회삿돈을) 지극히 사적으로 사용했다. 사회적으로 비난 가능성이 크고 사회에 부정적 영향도 크게 끼쳤다”고 판단했다.

    삼양식품이 2018년 11월 14일 금융 당국에 공시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2018년 1월 1일~2018년 9월 30일) 전 회장의 보수는 12억5239만 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김 사장은 5억5834만 원을 수령했다. 막대한 액수를 회사에서 수령함에도 다른 한쪽에서는 개인 소유 주택을 수리하기 위해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는 것.

    ‘신동아’는 라면가격 담합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전인장 회장 법정구속에 대해 삼양식품 측에 입장을 물었지만 “두 건과 관련해서는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정직과 신용”

    삼양식품의 분기보고서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다. 

    “1961년 창업한 삼양식품은 ‘정직과 신용’을 추구하는 기업으로 외길을 걸어왔습니다.” 

    분기보고서의 말마따나 삼양식품은 한동안 ‘착한 기업’으로 꼽혔다. 미국산 소고기 반대 촛불집회, 이른바 ‘광우병 논란’이 거셌던 2008년 6월 온라인에서 때 아닌 ‘삼양라면 사주기 운동’이 일어났다. 이에 1만4500원 수준이던 삼양식품 주가가 보름 만에 4만1000원대까지 폭등했다. 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 6월 ‘조선일보’에 삼양식품을 비판하는 기사가 실린 게 계기가 됐다. 이를 두고 진보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조선일보에 광고를 하지 않아 보복을 당한 것’이라는 뉘앙스의 글이 빠르게 확산됐다. 여론이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낸 셈이다. ‘삼양라면 사주기 운동’ 11년 만에 되돌아온 건 불법과 편법이다. 

    강보라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은 “매스미디어 시대에는 기업 스스로가 PR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었다. 미디어 환경이 바뀐 지금은 대중 스스로가 온라인 공간에서 특정 브랜드에 대해 이미지를 만들 수 있고, 또 이게 확대재생산되기도 쉬워졌다”면서 “하지만 현실과 지나치게 괴리된 브랜드 이미지는 언제든지 잠재적인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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