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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유승민, 도대체 이해 안 돼”

조윤선 前 청와대 정무수석이 털어놓은 黨-靑 충돌 비화

  • 조성식 기자 | mairso2@donga.com

“유승민, 도대체 이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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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으려 몽마르뜨 공원(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오르자 사방이 툭 트인다. 까칠한 햇살이 헐벗은 나무들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산책 나온 주민들이 그를 알은체한다.
조윤선(50)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웃음은 언제 봐도 싱그럽다. 웃음은 실력, 언변과 더불어 그의 주무기 중 하나다. 소통과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 데 한몫했음이 분명한.
첫 여성 청와대 정무수석이던 그는 지난 5월 공무원연금법 개정을 둘러싼 당(黨)-청(靑) 충돌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취임 11개월 만이었다. 여당이 공무원연금법 개정에 국민연금법 개정을 연계하자는 야당의 요구를 들어주려다 빚어진 파행이었다. 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했기에 그의 갑작스러운 사퇴는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경질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침묵하던 그가 ‘신동아’ 인터뷰에서 처음 입을 열었다.  
▼ 대통령과 얘기가 돼서 출마하기로 한 건가.  
“그걸 내가 어떻게 얘기하나(웃음).”
▼ 대통령이 싫어하는 일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 지금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건 국회에서 뒷받침하는 거다.”
띠 모양의 금색 목걸이가 독특하기에 물어보니, 도금한 쇠라고 한다. 남대문시장에서 1만 원에 샀다나.
현 정부에서 여성가족부 장관과 청와대 수석을 지낸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불렸다. 대통령선거 때 당 대변인으로 활약한 데 이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을 맡았다. 이명박 정부 때는 비례대표 의원을 지내면서 최장수 당 대변인 기록을 세웠다. 2002년 16대 대선 때 이회창 후보 공동대변인을 맡은 경력을 포함하면 대변인으로 일한 기간이 1000일이 넘는다.
“인수위 대변인으로서 정부 조직, 대선공약을 국정과제로 전환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첫 번째 내각에서 장관으로 일한 다음 정무수석으로서 국정 전반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이 정부에서 나처럼 정권 창출에서부터 국정과제 완수까지 죽 이어서 일한 사람이 없다. 큰 자산이다. 당에 돌아가 정권 재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경험과 능력을 가졌다고 자부한다.”



하룻밤 새 달라진 합의문

▼ 김무성 대표와의 관계는?
“지난 대선 때 총괄본부장과 대변인으로 만났다. 2002년 대선 때도 함께 일한 인연이 있다. 정무수석 할 때는 대통령과 김 대표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도록 애썼다.”
▼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떤 일을 한 건가.
“대통령께서 꼭 하고자 하는 개혁과제가 뭔지를 대표에게 분명하게 전달하고 설득했다.”
▼ 어떤 과제?
“공무원연금 개혁을 비롯해 노동 개혁, 교육 개혁 등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처음엔 당에서 누구도 손대지 않으려 했다. 총선에서 패배하는 길이라며. 정무수석에 임명된 게 2014년 6월인데, 8월부터 공무원연금 개혁을 논의했다. 당시 세월호 국정조사, 정부조직법 개정과 더불어 최대 현안이었다. 두 가지는 연내에 마무리됐다. 하지만 공무원연금 개혁은 당의 반대로 계속 늦춰졌다.”
그는 김 대표의 리더십을 높게 평가했다.
“내가 공무원연금법 논란으로 물러나자 경질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그때 김 대표가 명쾌하게 정리해줬다. 공무원연금 실무기구에서 국민연금까지 손댄 것은 월권이다, 청와대는 (국민연금 연계에) 끝까지 반대했다, (여야) 당 대표 간 합의문에는 그런 내용이 없기에 나의 정치적 결단으로 국민연금 문제는 제외했다, 따라서 정무수석이 책임질 일 없다고 했다. 당시 김 대표가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확인하고 의원 전원 발의로 공무원연금법(개정안)이 국회에서 처리되도록 리더십을 발휘한 데 대해 무척 고맙게 생각한다.”
▼ 그런데 왜 물러났나. 문책성 아니었나.
“아니다. 내가 마련한 사임의 변을 청와대 대변인이 발표한 것이 그 사인이다.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같이 있는 자리에서 한 글자 한 글자 합의문을 축조 심의했다. 앞으로 국민연금도 개혁해야 하는데 (야당이 주장하는 대로) 소득대체율을 상향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선언적 의미의 초안을 논의했다. 그걸 대통령께 보고한 뒤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음 날 합의문이 어떻게 작성됐는지 당에서 누구도 얘기를 안 해줬다. 실무기구에 참여한 의원들에게 물어보니 아무도 보여주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표 수리하셔야 합니다”

▼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가 그렇게 시켰다는 건가.  
“그건 모른다. 하여간 소관부처 실무자가 카카오톡으로 보내줘 문서를 봤는데, 듣도 보도 못한 내용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민주노총에서 만든 초안을 토대로 만든 것이었다. 완전히 다른 문서에 합의하려 한 것이다, 유 원내대표가. 이거나 저거나 같다면서.”
그는 “같긴 뭐가 같으냐”면서 얘기를 이어갔다.
“우리가 동의한 건 앞으로 국민연금도 실무기구를 만들어 개정을 위해 노력하자는 정도였다. 그런데 민노총 안은 공무원연금 실무기구에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못 박자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입법하라면서. 그게 어떻게 같은 문서인가. 나는 그때 분명히 반대했다. 월권이라고. 그걸 여당 원내대표가 보증해준 건 (야당에) 대문을 열어준 거다.”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올리자는 야당 안은 사실상 국민연금의 고갈을 전제로 한 것이다. 2060년경 기금이 바닥나는 현실을 인정하고 차라리 그때까지 수령액을 늘려 빈곤층 노인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자는 주장이다. 반면 기금 고갈 시기를 최대한 늦추려는 정부와 여당은 소득대체율을 상향 조정하려면 현재 9%인 보험료율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 안대로라면 현재의 수령자는 금액이 커져 좋지만, 2060년부터는 납입자가 25% 이상의 보험료를 내야 연금제도가 유지된다. 야당에서 국민연금 연계를 요구하자 여당은 이를 수용하려 했다. 그러자 조 수석이 ‘사퇴’라는 강수를 둔 것이다.
다시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야당 요구를 들어주면 2016년 총선 때 포퓰리즘이 판을 칠 게 빤했다. 난 그게 굉장히 위험하다고 보고 김 대표를 설득했다. 김 대표가 합의문에서 그걸 떼어내자 야당에서 ‘왜 합의해놓고 딴소리하느냐’며, 이것을 국회법시행령에 넣어야 한다고 난리를 쳤다. 그래서 대통령께 ‘내가 사표를 내지 않으면 국민연금 연계 논란을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사표를 수리하셔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다행히 공무원연금법 개정은 잘 됐기에 걱정이 없었다.”



▼ 사퇴하지 않으면 안 됐나.
“그런 식으로 국민연금을 연계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사임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제동을 걸 수 없을 것 같았다.”
▼ 사퇴한 효과를 봤나.
“국민연금 불은 껐다. 그런데 이후 논쟁이 국회법(개정안)으로 번졌다.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조사 인원에 대한 특별법 시행령을 놓고 충돌이 빚어졌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에 합의해주면서 온갖 것을 끼워 넣으려는 야당의 자세는 개혁을 하지 말자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얘기가 좀 길어지긴 하나,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의 갈등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라 더 들어볼 필요가 있겠다.
▼ 당시 여당 지도부는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야당에 어느 정도 맞춰줄 수밖에 없다는 태도였는데.
“그렇긴 하지만 결국 해내지 않았나.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어렵긴 하지만, 우리에게 명분이 있고 국민이 지지하면 밀고나갈 수 있다.”
▼ 박 대통령 표현처럼 원내대표가 ‘자기 정치’를 했다고 보나.
“그건 모르겠다.”  
▼ 유 전 원내대표가 왜 그랬을까.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서로 다른 두 안을 같다고 생각했다면 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만약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어차피 안 될 것으로 생각하고 합의해줬다면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합의라는 건 지킨다는 걸 전제로 하는 것 아닌가. 그것도 아니면 진짜 국민연금을 고갈시킬 생각이었는지, 하여간 이해가 안 된다.”
▼ 여당 지도부가 막판에 청와대를 배제하고 독자적으로 결정하려다 사달이 난 것 같다.
“지도부라고 하면 안 된다. 구분해야 한다.”





김무성과 유승민의 차이

▼ 콕 집자면, 원내대표?
“김 대표는 조금 달랐다.”
그의 말화살은 유 전 원내대표를 겨냥했다.
“대통령께서 사표를 수리한 시점을 주목해야 한다. 유 대표가 ‘정무수석이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탓’이라고 (나한테) 뒤집어씌운 사실이 김 대표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증언으로 밝혀지고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국민연금 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후다.”
▼ 사실이 밝혀졌다면 굳이 사퇴할 필요가 있었나.
“그건 좀 설명하기가….”



▼ 정무수석을 그만둘 타이밍을 찾다 사표 낸 것 아닌가.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그랬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건 주변에서 다 안다.”
▼ 전혀 사실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었다면 그렇게 대책 없이 나오진 않았을 거다. 기관장과 참모는 완전히 다르다. 장관은 자기가 속한 기관을 키워 조직원이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국민에게 기관의 존재감을 알려야 한다. 여성가족부 장관 할 때 그런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유능한 참모는 보스에게 선택의 지렛대를 준다. 보스의 얼굴을 살려주는 게 중요하다.”
▼ 사퇴에 그런 뜻도 있다는 건가.
“대통령께서 개혁과제를 추진하는 데 힘이 돼드릴 방법이 뭔지 생각했다.”
▼ 신임하던 참모가 사퇴하면 대통령도 타격을 받지 않을까.  
“대통령께 선택권을 드린 거다.”
그를 인터뷰하면 꼭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다.
▼ 가까이에서 지켜본 박 대통령과 김 대표 관계는 어떤가. 애증관계인가.
“내가 할 얘기는 아니다.”
▼ 둘 사이 신뢰가 어떤가.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 대통령과 당 대표의 불협화음이 자주 노출됐다. 어떤 문제가 있었나.
(그가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한 가지, 김 대표에 대해 아쉽게 느낀 건 있다. 언론에 보도된 사소한 언행으로 자신의 노고가 희석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참 안타까웠다. 그런 보도가 없었다면 그분이 얼마나 애쓰고 수고하는지 대통령에게 잘 전달됐을 텐데….”
▼ 그런 보도가 나오면 김 대표 쪽에 항의하거나 진의를 확인했나.
“(김 대표) 주변 사람들이 ‘본의가 아니다’라는 설명을 나한테 여러 차례 했다.”
▼ 납득이 되던가.
“언론 보도와 사적 소통은 맥락이 다르다. 일단 언론에 보도되면 기정사실화하기에 진의가 아니라도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5년 단임제가 원인?

조윤선 전 수석과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김행 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 등이 총선 출마 의사를 밝히자, 언론에서 ‘박근혜의 여자들’이라는 칭호를 붙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사람은 여러 중책을 수행한 조 전 수석이다.  
“‘박근혜의 여자’라는 표현은 이상하지 않나. ‘동생’이면 몰라도(웃음). 아무튼 큰 정치인을 가까운 거리에서 모시면서 여러 가지를 배운 게 큰 자산이다.”
▼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진다.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이라는 게 부담스럽지 않나.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생각하는 건 옳지 않다. 앞으로 정치인 조윤선이 하는 일로써 평가받겠다.”
▼ 청와대 참모들이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다는 여론이 있다. 핵심 참모였던 사람으로서 책임을 느끼나.
“그렇게 센 질문을…. 미처 준비 못했다.”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 마음속 생각을 얘기하면 된다.
“너무 가까이에서 일하다 보니….”
▼ 가까이에 있으면 오히려 단점을 잘 못 볼 수 있다.
“대통령이 어떻게 하면 좋겠나.”
▼ 일단 질문에 답을 하시라.
“어떻게 하면 좋을까….”
▼ 한 시대 지난 리더십이라는 비판도 있다.
“음… 5년 단임제에 원인이 있는 게 아닐까. 임기 중 큰 성과를 내서 국민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에 쫓기다 보면….”
▼ 핀트가 안 맞는 답변 같다.
“(웃음) 대답을 잘 못하겠다.”
▼ 여론이 악화된 데는 참모들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많이 악화됐나.”



▼ 우선 언론을 보면 알지 않나. 보수 언론도 많이 비판한다. 집권 초와 달리.
“초기에도 감싼 것 같지는 않은데….”
그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공주 카산드라 얘기를 끄집어냈다. 태양의 신 아폴론은 예언력을 지닌 카산드라가 자신의 구애를 받아들이지 않자 설득력을 빼앗아버렸다. 그러자 카산드라가 아무리 정확하게 예언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바른말을 하는 것보다 바른말을 듣게 하는 것이 더 어렵다. ‘한비자’에도 그런 고사가 나온다. 어떤 신하가 3년간 산해진미로 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후 비로소 진언을 시작한다. 대통령께 직언한다며 공개적으로 말하는 건 자신의 말을 듣게 하는 방법은 아닌 것 같다.”
▼ 유 전 원내대표는 대통령을 위한다면서 그러지 않았나.
“과연 자신의 말을 듣게 하려 그랬을까. 원내대표가 대통령께 얘기할 기회는 많다.”
▼ 전화도 차단됐다는 것 아닌가.
“무슨 차단이 되나. 그리고 전화 아니면 얘기할 방법이 없나. 정말 자기 말을 듣게 하려는 건지, 아니면 자기가 이런 바른말 했다고….”
▼ 조 수석은 대통령에게 모든 얘기를 편하게 할 수 있었나.
“수시로 상의했다.”



‘7시간 행적’의 진실

▼ 정무수석 하면서 힘에 부친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


“몸이 10개라도 모자란다는 생각은 했다. 당정 간 정책 조율 외에 행정, 치안, 종교, 국민소통 등 정말 많은 분야 업무를 다뤘다. 세월호 사건을 맡은 것도 해경이 치안 영역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국정조사에 이어 (정윤회) 문건사건, 성완종 게이트… 정말 엄청 바빴다.”  
그는 이른바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며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세월호 사건 당일 대통령의 행적이 논란이 된 후 당시 안보실장과 관계부처 장관, 수석들한테 일일이 확인해봤다. 대통령께 보고한 전화보다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전화가 많았다. 거의 20분 간격으로 상황을 확인하고 지시한 것이다. 그날 점심식사 끝날 때까지 다들 ‘전원 구조’로 알았다. 나도 그랬고. 밑에서 허위보도가 올라온 탓이다. 오후 1시 넘어 대통령께서 사망자 숫자가 잘못된 걸 알고 곧바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로 가려 했다. 그런데 경호팀이 먼저 가서 준비해야 하는 데다 중대본에서 사망자 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보고 준비가 안 됐다. 그 바람에 2시간이 지체됐다. 그래서 (중대본 도착이) 늦어진 거다.”
세월호 사고 때 그는 여성가족부 장관이었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지만, 3주간 매일 안산에 내려가 유가족 46가정을 방문했다. 아이 잃은 부모의 얘기를 들어주고 아이 사진을 보면서 함께 울었다. 그리고 실질적 도움을 줬다. 식사를 못하는 이들에게 도시락 후원 기업을 알선하고, 보육을 지원하고, 일자리를 주선했다. 생존 학생들에게는 무료 인터넷 강의와 특강 혜택을 줬다. 그런 일을 하다 6월 중순 정무수석으로 옮겨갔다.
▼ 정윤회 문건 사태의 진실은 뭔가.
“형사재판으로 밝혀진 내용이 진실이다.”
▼ 안 믿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언론에서도.
“찌라시가 다 그렇지.”
▼ 최소한 3인방과 정윤회 씨 관계는 사실 아닌가.
“그건 모르겠다. 보좌관·비서관으로 10여 년 같이 일한 사이니까….”
▼ 대통령이 3인방에 너무 의존하니 그들이 월권한다는 것인데….
“나는 그렇게 느낀 적 없다. 대통령께서 굉장히 정확하게 일을 지시하고 챙기기 때문에 월권할 기회가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로 업무를 챙긴다. 밤에도 주말에도. 만약 그분들 얘기만 듣는다면 그럴 수 없지 않나.”
▼ 장관한테서 대면보고를 안 받는 이유는 뭔가.
“장관 나름이다. 가만히 지시만 기다리는 장관은 만날 일이 없다. 하지만 창의적으로 적극적으로 일하는 장관과는 대화와 소통이 잘됐다.”  
정무수석을 그만둔 후 조용히 지내던 그는 몇 달 전부터 활발하게 움직인다. 자신의 저서 ‘문화가 답이다’를 주제로 곳곳에 특강을 다니고, 성신여대 석좌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멘토링 경험도 했다.
“4년 전 책을 냈을 때와 비교하면 문화와 창조산업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대학, CEO 모임, 지역 소모임 등에서 강연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 성신여대에서는 학생 22명을 몇 개 조로 나눠 4주간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났다. 내 경험을 얘기하고 학생들의 관심사를 들어주고 네트워킹으로 실질적 도움도 줬다.”



‘국민의 행복’이 가장 중요한 사회

그는 “지역구 국회의원을 한다면 나도 남들처럼 오래 살아온 고향에서 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4년 전 총선 때도 ‘고향 출마’를 꿈꿨으나, 당의 전략공천 방침에 뜻을 접어야 했다.
그는 “어떤 정치를 하고 싶나”는 질문에 “국민이 행복하게 사는 걸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답했다. 문화와 창조산업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발전동력이 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도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차에 오르는 그의 뒷모습이 말에 올라타는 몽골 처녀처럼 경쾌하고 날렵해 보였다.



신동아 201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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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기자 |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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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도대체 이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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