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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친문계’, 산업화 ‘친박계’ 끝났다

중도 무당층이 정치권 태풍 일으킨다

  • 이종훈 정치평론가 rheehoon@naver.com

민주화 ‘친문계’, 산업화 ‘친박계’ 끝났다

  • ● ‘조국 사태’는 내년 총선 세대교체 태풍 발원지
    ● ‘공정사회 열망’한 촛불로 집권한 진보의 민낯
    ● 핵심 지지층 급격한 이탈, 진보 분열…총선 완패 우려
    ● ‘파우스트’ 유시민, ‘햄릿’ 진중권, ‘프로메테우스’ 김경율
    ● 의석 하나 없는 39세 마크롱이 대통령에 당선한 이유
10월 14일 사의를 표명한 조국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스1]

10월 14일 사의를 표명한 조국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스1]

한때 ‘꽃보다 조국’이던 시절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 ‘청와대 F4’ 중에서도 조국은 꽃 중의 꽃이었다. 수려한 외모에 깔끔한 이미지, 그는 정말 문재인 정부의 꽃이자 황태자였다. ‘조국이 그럴 줄 몰랐다’는 말이 진보 진영에서조차 터져 나올 줄, 그땐 정말 몰랐다. 나도 몰랐고, 너도 몰랐다.


그날 이전 - Before

인간은 절대 완벽할 수 없다. 그래도 누군가는 완벽에 가깝길 기대한다. 그런 사람을 존경하고 따른다. 수많은 진보 지식인 중에서도 조국은 특히 그런 사람이었다. 조국마저 이중적일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않았다. 너무 의외여서 모두가 심각한 정신적 혼돈 상태에 빠졌다. 진보 지식인들이 더 그러했다. 결국 유파(流派)가 나뉘고 말았다. ‘유시민류’와 ‘진중권류’와 ‘김경율류’다. 

노무현재단 이사장 유시민은 ‘파우스트’가 되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영혼을 파는 한이 있더라도 목표를 달성하고야 말겠다는 부류다. 동양대 교수 진중권은 ‘햄릿’처럼 결정 장애에 빠지고 말았다. 목표 달성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부류다. 단, 이들은 적극적으로 반대 행동에 나서지도 못한다. 참여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출신의 회계사 김경율은 ‘프로메테우스’의 길을 가기로 한 것 같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하고, 불이익조차 감수하는 부류다. 김경율은 지난 9월 말 조국 당시 장관을 옹호하는 진보 진영 내 지식인들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참여연대로부터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조국은 이처럼 진보 지식인을 갈라놓고 말았다. 조국이 남긴 상처 중에서 으뜸은 바로 이것이다. 진보 지식인 사회가 분열하면서, 진보 지지층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어떤 유파를 따를 것인가. ‘유시민류’는 서울 서초동 집회로 몰렸다. 조국에 불만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검찰개혁이라는 목표는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는 이들이다. ‘진중권류’는 관망했고, ‘김경율류’는 조국이 사퇴하는 것이 오히려 검찰개혁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진보 지지층의 분열은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도 반영됐고,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급기야 문 대통령의 대선 당시 득표율 41.09%조차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조국 카드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10월 7∼8일과 10∼11일 전국 성인 남녀 25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4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가 이런 추이를 잘 보여준다(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0%포인트,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첫째,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41.4%였다. 둘째,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지지율 격차가 0.9%포인트로 문재인 정부 수립 이후 가장 좁혀졌다. 셋째, 진보층의 문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가 74.1%로 전주 대비 2.9%포인트 하락했다. 넷째, 진보층의 민주당에 대한 긍정평가가 63.1%로 전주 대비 3.2%포인트 하락했다.


조국을 포기한 결정적 이유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14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조국 사태와 관련 “송구스럽다”며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14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조국 사태와 관련 “송구스럽다”며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서초동 집회로 진보 세력의 결집도가 더 높아졌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오히려 반대였던 것이다. 핵심 지지층의 이탈 조짐은 결코 간단하게 볼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이것이 조국을 포기하게 한 결정적 이유였을지 모른다. 

‘이탈 속도’도 문제였다. 같은 조사에서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가 2주 사이에 무려 11.4%포인트나 하락했고, 민주당에 대한 긍정평가는 불과 1주일 사이에 6.7%포인트나 하락했다. 

한국갤럽이 10월 둘째 주 전국의 만 19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에 대한 호감도는 호남을 제외한 모든 권역에서 비호감도보다 낮다. 지난해 8월 같은 조사에서는 대구·경북을 제외한 모든 권역에서 호감도가 비호감도보다 높았다(두 조사 모두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가 ±3.1%포인트,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이런 흐름으로 가면, 내년 총선 호남권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완패’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민주당 국회의원들로서는 이런 상황을 방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들이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강기정 정무수석을 만나 ‘조국 정리’를 요청했다는 소리도 들리지만, 어디 그뿐이었을까. 수시로 자체 여론조사를 실시하며 내년 총선 전반을 기획 중인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역시 심각성을 인지했을 것이고, 문 대통령이나 청와대 비서진과 상황을 공유했을 것이 분명하다.


‘촛불 에너지’ 다 날려버려

10월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집회 모습. [뉴시스]

10월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집회 모습. [뉴시스]

조국은 다시 한번 진보의 이중성을 확인해줬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이은 연타석 홈런이었다. 성폭력에 이어 입시 비리까지 바닥을 모두 드러낸 셈이다. 이제 더는 보수 세력에 비해 도덕적 우위를 주장할 수 없는 처지로 전락했다. 진보 지식인과 정치인의 최대 강점은 도덕성이다. 그 근본을 상실했으니 앞으로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 길이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조국은 그런 점에서 누구보다 진보 지식인과 정치인에게 큰 빚을 졌다. 

일부 진보 지식인이 조국을 감싸느라 함께 망가진 점 또한 진보 세력으로서는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유시민류’다. 앞으로도 이들은 목청을 높이겠지만 영향력은 예전만 못할 것이다. 오히려 시간이 좀 흐르고 진보 세력 모두가 냉정을 되찾고 난 뒤엔 퇴출 압박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너무 달렸으니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진영을 떠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기 시작하면 망조(亡兆)가 들기 마련이다. 반면 소득도 없지 않으니, 그것은 ‘건전 진보’가 자연스럽게 가려진 점이다. 그런 점에서 배신자로 매도된 ‘김경율류’에 대해서는 재평가가 이뤄져야 하고 또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 

조국 정국에서 촛불이 둘로 갈라졌다. 어떻게 이것을 다시 합쳐낼 수 있을 것인가. 이로 말미암아 지불한 사회적 비용도 엄청나다. 앞으로 지불해야 할 추가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 무형의 자원을 건설적으로 사용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문재인 정부는 합쳐진 촛불의 힘으로 집권했다. 그 힘으로 엄청난 사회적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지만, 결국 다 날려버렸다. 조국은 그 대미를 장식했다. 문 대통령도 지금쯤은 후회스러울 것이다. 물론 ‘본전 생각’도 날 것이다. 누구 탓할 것 없다. 조국을 믿어도 너무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돌이켜보면, 손절을 할 기회는 많았다. 인사검증 논란이 한창 벌어졌을 당시에도, 과거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 비위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에도, 야당들은 조국 경질을 가열 차게 요구했다. 지난 4월에는 ‘조조라인’ 경질 요구까지 불거졌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조현옥 인사수석만 교체했다. 만약에 그때 조국을 경질했더라면 어떠했을까. 

법무부 장관 내정 뒤에도 기회는 많았다. 의혹이 이미 차고 넘칠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주장만 앵무새처럼 되뇌다가 진보 세력 내에서도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나서야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고 한 번 사과했을 뿐이다. 조국보다 훨씬 경미한 의혹만으로도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난 과거 국무총리, 장관 후보자가 많았음에도 이 사실은 애써 끝내 외면했다. 만약에 그때 조국이 사퇴했더라면 어떠했을까. 문 대통령이 조국에 대한 지명 철회를 했더라면 어떠했을까. 

문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는 조국 장관 임명 강행으로 상황이 종료될 것으로 기대한 듯하다. 오판이었다. 촛불혁명의 힘으로 집권했지만 촛불정신을 오독(誤讀)한 탓이다. 국민의 주권 의식은 더 강해졌고, 공정 사회에 대한 열망은 더 커졌다. 공정을 해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난 조국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 국민 대다수는 이미 ‘김경율류’를 선호하는 쪽으로 기호가 변했다. 더는 개, 돼지가 되길 거부한다. 지지율이 속절없이 하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날 이후 - After

조국은 결국 사퇴했다. 하지만 많은 과제를 남겼다. 특히 조국 정국에서 여과 없이 드러난 ‘정치 실종’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민주당 지도부는 서초동 집회에서, 한국당 지도부는 광화문 집회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지지층 선동도 서슴지 않았다. 내란이나 쿠데타 같은 표현을 예사롭게 입에 올렸다. 양당정치가 양극정치로 돌변했다. 준(準)내전 상태였다. 내전을 벌일 요량이면, 의회정치 따위는 발로 걷어차면 그만이다. 하지만 6·25전쟁을 다시 치를 생각이 아니라면, 총칼 들고 좌우가 싸우던 해방 정국으로 되돌아갈 생각이 아니라면, 모든 다툼의 종착지는 의회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 복원이 필요하지만, 현재 국회는 자격이 없다는 것이 국민 생각이 아닐까 한다. 최근 무당층이 증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여론조사업체 칸타코리아가 SBS의 의뢰를 받아 10월 9~11일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1026명을 상대로 실시해 지난 9월 12일 발표한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38.5%가 ‘지지 정당이 없다’고 답했다. 지난 5월 같은 조사 대비 8.6%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조국 정국을 거치면서 무당층은 더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세대교체’ 태풍 발원지

이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세대교체다. 산업화 세대를 대변하는 친박계도 민주화 세대를 대변하는 친문계도 아닌, 새로운 세대 말이다. 사실 세대교체는 이미 각 당에서 화두다. 진보 진영에서도 보수 진영에서도 세대교체 주장이 터져 나오고 있기도 하다. 정말 세대교체가 가능할까. ‘저들이’ 주도하는 한 세대교체가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래서 무당층은 주체의 교체가 선행돼야 한다는 생각도 할 것이다. 조국 정국에서 민낯과 바닥을 본 까닭이다. 

경제계에서는 몇 해 전부터 ‘초격차’와 ‘퀀텀점프’가 관심사다. 이번에 이뤄져야 하는 정치계의 세대교체는 바로 이런 질적 변화여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이 당선된 것이 2017년 5월 10일이다. 그 3일 전인 5월 7일 프랑스 대선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승리했다. 1977년생, 당시 나이 불과 39세였다. 더욱이 그가 속한 중도좌파 정당 ‘앙 마르슈(En Marche·전진)’는 불과 1년 전에 창당한, 의석 하나 없는 신당이었다. 그런 일이 내년 총선에서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무당층의 증가는 마치 열대성 저기압이 태풍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역설적으로, 조국 정국이 이런 격변을 추동 중이란 생각이다.




신동아 2019년 11월호

이종훈 정치평론가 rheeh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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