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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통신

대형마트 1200만 달러 배상한 앉을 권리 소송 내막

계산원은 1만4000달러만…

  • 글·사진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대형마트 1200만 달러 배상한 앉을 권리 소송 내막

  • 실리콘밸리 일대의 대표적인 대형마트가 내년 초부터 계산원이 앉을 수 있는 의자를 제공할 예정이다. 해당 업체가 법 규정에 따라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할 의자를 내주지 않는다며 한 계산원이 낸 소송에서 법원이 계산원 손을 들어준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앉을 의자 하나 없이 서서 일하는 계산원의 근무 환경도 점차 변화할 전망이다. 현재 그들의 근무 환경을 둘러봤다.
대형마트 1200만 달러 배상한 앉을 권리 소송 내막
11월 3일 오후 5시, 미국 실리콘밸리 남부도시 새너제이의 세이프웨이(Safeway) 매장. 필자가 즐겨 찾는 이곳은 한국의 대형마트와 유사하게 식료품부터 각종 생활용품까지 판매한다. 매장 안에 약국도 있고 24시간 문을 연다. 대다수 식료품점이나 약국이 문을 닫는 밤 시간에 세이프웨이를 찾는 이도 적지 않다. 캘리포니아에만 매장이 240개 있는 대형마트 체인으로 본사는 샌프란시스코 시청에서 출발할 경우 자동차로 1시간가량 걸리는 플레전턴(Pleasanton)시에 있다. 

일요일 오후, 매장 안은 다가오는 한 주 동안 사용할 음식 재료와 생활용품을 장만하러 나온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물건을 잔뜩 담은 카트와 함께 서 있는 중년 남녀, 음료와 과자를 손에 든 젊은 고객 등이 계산대 앞에 줄을 섰다. 계산원은 상품 바코드를 찍고, 채소·과일 등은 일일이 무게를 재서 가격을 입력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는 내내 서서 일했다. 앉을 의자도 없었다. 바로 이 의자 때문에 세이프웨이는 배상금 140억 원을 물어주게 됐다.


“앉을 권리 보장받지 못했다” 소송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 있는 한 세이프웨이 매장계산대. 계산원이 앉을 수 있는 의자는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 있는 한 세이프웨이 매장계산대. 계산원이 앉을 수 있는 의자는 없다

세이프웨이는 최근 전 직원이 제기한 ‘의자 소송’과 관련해 1200만 달러(약 140억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2011년 실리콘밸리 도시 샌타클래라 세이프웨이 매장 계산원으로 근무했던 에바 샤프(Eva Sharp)는 ‘법 규정에 따르면 앉아서 근무할 수 있는 의자를 제공해야 하는데 회사가 이를 어겼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직원들과 집단소송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캘리포니아주 노동법에 따르면 대형유통매장을 운영하는 업체는 업무 성격상 의자를 사용할 수 있는 직원에게 적합한 의자를 제공해야 한다. 앉아서 일할 만한 환경에 있지 않은 종업원을 위해서는, 짬짬이 쉬는 시간에 이용할 수 있도록 근무 장소 근처에 의자를 제공해야 한다. 

샤프의 소송 제기 후 7년 만인 지난해 7월 샌타클래라 지방법원은 원고의 집단소송 요구가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이런 내용은 당시 법원이 제공한 판결문에 잘 나타나 있다. 이후 1년 3개월 만인 10월, 회사와 샤프는 배상금 지급에 합의했다. 세이프웨이는 샤프가 소송을 철회하는 조건으로 1200만 달러를 지급하고 내년부터 최소 2년 동안 3만 명가량의 계산원에게 의자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소송이 길어지면 변호사 비용을 포함해 회사 측의 법률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데다 법원이 집단소송 요구를 들어주기로 하면서 승산도 낮아 보이니 법정 밖 합의로 사건을 마무리한 것이다. 법원도 웬만하면 이런 식으로 합의해 끝내기를 권고한다. 

이번 합의로 샤프가 큰 부자가 된 건 아니다. 10월 21일 현지 언론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보도를 보면, 배상금 1200만 달러 가운데 약 560만 달러는 근로자 권익 보호를 위한 주정부 기금에 들어간다(캘리포니아 주법은 이런 소송에 이기거나 합의금을 받으면 일정 부분을 주정부 기금에 떼어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캘리포니아 주정부 몫이다. 나머지 중에서 약 440만 달러는 원고 측 변호사 몫이다. 또 집단소송 성격이었기 때문에 남은 금액 중 약 180만 달러는 샤프와 같은 피해를 본 세이프웨이 계산원들에게 분배된다. 개인이 받는 액수는 근무 기간에 따라 정해진다고 한다. 이것저것 다 떼고 나서 실제 소송을 제기한 샤프가 받은 돈은 1만4000달러였다. 



이런 소송이 가능하게 된 건 2004년부터 캘리포니아에서 시행된 PAGA(Private Attorneys General Act) 덕분이다. 이 법은 노동법을 위반한 기업 때문에 피해를 본 직원이 혼자, 또는 집단으로 해당 기업 상대의 민사소송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과거엔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나서서 노동법 위반 기업을 상대로 소를 제기했다.


코스트코 매장 출입구 직원의 소송

새너제이에 있는 한 코스트코 매장 계산대. 직원들이 손님이 컨베이어벨트에 올려놓은 물건을 계산하고 있다.

새너제이에 있는 한 코스트코 매장 계산대. 직원들이 손님이 컨베이어벨트에 올려놓은 물건을 계산하고 있다.

세이프웨이 매장에 가기 하루 전 그 근처에 있는 코스트코 매장을 찾았다. 세이프웨이보다 규모가 2배 이상 크고 대용량 제품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판매하는 곳이라 평일, 휴일 구별 없이 손님들로 붐빈다. 24병 묶음 물 2박스, 24알 계란 두 판, 사과 한 상자, 소고기 한 팩, 연어 한 팩 등 필요한 물건을 카트에 담아 계산대로 향했다. 

코스트코에서 손님들은 가벼운 물건 몇 개만 컨베이어벨트 위에 올려둘 뿐, 부피가 좀 크거나 무거운 물건은 카트에 그대로 뒀다. 무선바코드인식기를 이용해 그것들의 바코드를 찍고 정산하는 건 계산원의 일이었다. 계산대에 서 있는 계산원 뒤로는 물건을 실은 카트가 연신 빠져나갔다. 계산원이 앉을 의자는 보이지 않았고, 의자를 가져다 둘 공간도 없었다. 바빠서 앉을 틈도 없어 보였다. 

근무 환경으로 볼 때 코스트코가 계산원에게 세이프웨이처럼 의자를 제공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당장 법 규정을 적용하기 애매한 측면이 있다. ‘업무 성격상 의자를 사용할 수 있는 직원에 해당하느냐’ 문제가 걸린다. 세이프웨이 매장의 경우 손님이 계산대 위에 올려놓은 물건들을 계산원이 앉아서 계산할 수도 있는 환경이다. 반면 코스트코는 계산원이 카트에 담긴 물건 바코드를 찍어가며 일하는 환경이다. 다만 계산원이 앉아서 근무할 수 있도록 시스템 자체를 바꾸라고 요구할 수는 있겠다. 

그런데 출입구에서 드나드는 고객을 확인하고 안내하는 직원은 경우가 좀 달라 보였다. 업무 성격상 굳이 앉지 못할 이유가 없어 보인 것이다. 코스트코 샌타클래라 매장 출입구에서 근무하던 한 직원이 2013년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 소송은 아직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5월 미국 캘리포니아북부 연방지방법원 새너제이 지원은 원고의 소송 근거가 약하다며 약식 재판으로 처리해달라는 코스트코 측 요구를 기각했다.


앉아서 일할 권리

새너제이 홀푸즈마켓 매장(왼쪽). 계산대에서 두 명의계산원이 등을 맞대고 선 채 일하고 있다.

새너제이 홀푸즈마켓 매장(왼쪽). 계산대에서 두 명의계산원이 등을 맞대고 선 채 일하고 있다.

코스트코 매장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홀푸즈마켓(Whole Foods Market) 매장에도 가봤다. 유기농식품을 비롯해 신선하고 품질 좋은 제품을 판매하는 식료품점 체인 홀푸즈마켓도 현재 ‘의자 소송’에 걸려 있다. 로스앤젤레스 지방법원에서 진행되는 이 소송은 계산대에서 일하던 전 직원이 제기한 것으로 세이프웨이 사례와 유사하다. 매장에 들른 김에 나초를 만들 때 사용할 치즈 제품 한 봉지를 사서 계산대 앞에 섰다. 자세히 살펴보니 계산원 두 명이 등을 맞대고 일하는 공간이 비좁았다. 그래도 잘만 하면 의자를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의자를 제공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만 놓고 근무 환경을 평가할 수는 없다. 임금과 각종 보험 등의 혜택을 고려해 전체적으로 파악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분히 앉아서 일할 수 있는 직원에게 앉을 권리를 허락하지 않는 건 인권을 따지지 않더라도 법 규정 위반이다. 세이프웨이 소송으로 기업이 막대한 배상금을 물고 계산원에게 의자를 제공하기로 함에 따라 캘리포니아, 나아가 미국 전역에서 ‘앉아서 일할 권리’는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 2011년 7월 개정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80조(의자의 비치)에 관련 규정이 있다.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노동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때는 의자를 비치하도록 사업주에게 의무를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자율규정이라 사업자의 관리감독 의무는 없다. 안 지킬 경우 처벌 조항도 없다. 

세이프웨이 매장에서 커피 원두 두 봉지를 집어 들고 계산대 앞에 줄을 섰다. 마침 집에 커피가 떨어진 참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일대의 터줏대감 같은 브랜드 피츠커피의 대표 블렌드 커피를 골랐다. 차례가 돼 계산을 하면서 직원에게 “의자가 아직 없네요?”라고 말을 건넸다. 그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직은 없어요. 앉으면 좋긴 한데, 당장은 의자가 있어도 바빠서 앉을 틈이 없겠지만요.” 

이제 2020년부터 이 매장 계산대에도 의자가 제공될 것이다. 조만간 이 직원도 시시때때로 앉아 일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신동아 12월호]




신동아 2019년 12월호

글·사진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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