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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라는 새장에 갇힌 자유로운 영혼

황승경의 Into the Arte➇ 뮤지컬 ‘모차르트!’

  • 황승경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천재라는 새장에 갇힌 자유로운 영혼

  • ● 음악 아닌 인생에 집중…초연 10주년 기념작
    ● 극작가 쿤체와 작곡가 르베이의 콤비
    ● 자유롭고 빛나는 모차르트의 고단한 삶
    ● 서양음악사 유일한 천재의 그림자
뮤지컬 ‘모차르트!’ 2014년 공연 광경.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모차르트!’ 2014년 공연 광경.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는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클래식 작곡가다. 인류 역사상 모차르트만큼 탁월한 천재성을 보인 예술가도 드물다. 35년이라는 짧은 인생에도 관현악, 피아노곡, 가곡, 오페라, 종교곡, 합창곡 등 600여 곡을 작곡했다. 그는 인간 한계를 넘어 신의 선택을 받은, 서양음악사에서 유일한 천재라고 칭송받는다. 

그는 유럽 절대왕정에서 시민사회라는 새로운 조류가 유입되던 격동기에 활동했다. 당시 유럽 귀족 사회는 프랑스대혁명(1789)이라는 허리케인이 몰려오기 직전으로, 마치 ‘폭풍의 눈’처럼 다가올 혼란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들은 향락에 빠져 화려했지만 민중은 도탄에 빠져 암담했다. 모차르트가 시대정신을 지향한 지식인이었는지, 자유로운 영혼의 아티스트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귀족 사회의 혜택을 받은 예술가였지만 끓어오르는 민중의 가슴속 열망을 음악으로 표현하려 한, 당시 유일한 작곡가임에는 틀림없다. 그동안 우리는 ‘인간 모차르트’보다 그의 음악, 혹은 모차르트와 그를 시기한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경쟁 구도로 그를 접했다.

아버지의 희생, 아들의 천재성

어린 아마데와 모차르트의 2010년 공연 모습.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어린 아마데와 모차르트의 2010년 공연 모습.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모차르트!’(6월 16일~8월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는 오롯이 인간 모차르트에 집중한다. 그의 음악이 아닌 다른 이의 음악으로 그를 재조명했다. 이 뮤지컬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먼저 모차르트와 아버지 레오폴트의 관계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는 천재 아들을 둔 아버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천재를 있게 한 주인공이었다. 서양의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가 따로 없다. 천재 아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고스란히 바쳤다. 그는 늦은 나이에 성당에서 음악을 연마했다. 거의 독학으로 배웠다. 배움에 목말랐던 그는 자신의 경험이 자식에게는 대물림되길 원치 않았다. 

그는 태어날 아이를 위해 태교 단계에서부터 맞춤형 영재교육을 했다. 그의 영재교육 성과는 모차르트뿐 아니라 다섯 살 많은 모차르트의 누이 난넬에게서도 발휘된다. 다만, 당시는 여성에게 많은 제약이 있던 시대라 난넬 대신 37살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 모차르트로 관심을 집중했을 뿐이다. 여섯 살 아들이 남다른 천재성을 보이자 그는 영국과 이탈리아 등 전 유럽을 떠돌며 연주 여행을 다녔다. 음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의도대로 더 넓은 세상에서 최고의 거장들을 접할 수 있었고, 바로크 예술의 엄숙함과 로코코 예술의 화려함을 고전주의 테두리 안에서 균형 있게 조화시켜 나갔다. 

이 뮤지컬은 ‘음악신동’이라는 영광 뒤에 드리워진 모차르트의 그늘을 보여준다. 위세 높은 권력층의 마음을 녹이며 사랑을 받던 모차르트는 나이가 들며 더 는 꼭두각시가 되길 거부한다. 당시 작곡가들은 왕실이나 귀족 가문에 소속돼 그들의 입맛에 맞는 곡을 작곡하고 그들만을 위한 공연을 해야 했다. 물론 잦은 연주 여행 탓도 있었겠지만, 모차르트의 아버지도 궁정악장이 되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잘츠부르크 궁정부악장에 만족하며 잘츠부르크 왕실과 교회를 위해 일했다. 그에게 아버지는 유년 시절을 함께한 환상의 콤비이자 단짝이었지만 성인이 될수록 아버지의 강요가 부담스러웠다.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뮤지컬 ‘모차르트!’는 이 여정을 거치는 모차르트의 인간적인 면모와 모든 것을 음악으로 빚어낸 그의 인생에 포커스를 맞춘다.



아마데와 볼프강, 운명과 자유

만약 모차르트가 대장장이나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면 자신의 천부적 재능을 죽을 때까지 몰랐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복을 타고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뮤지컬은 천재적인 예술성을 지니고 헌신적인 아버지를 둔 모차르트가 진정 행복했을까 되묻는다. 그는 동년배들과 사회성을 기를 기회가 없었다. 엘리트 의식과 이타적 선민 사상은 넘쳤지만 공동체 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경제관념은 제로에 가깝고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돌출적이고 타인과 융화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그가 인생에서 유일하게 이해한 것은 음악뿐이었다. 자신의 음악을 가두려는 계급사회에 저항했고, 자신을 고용한 잘츠부르크의 콜로레도 대주교와 번번이 부딪쳤다. 따라서 더 자유로운 세상을 갈망하던 모차르트에게 빈은 무릉도원이었다. 모차르트는 넓은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뮤지컬에서는 아마데(아마데우스)와 볼프강 두 명의 모차르트가 등장한다. 극작가 미하엘 쿤체(Michael Kunze)는 어린 모차르트인 아마데를 또 다른 자아로 등장시켜 서로 대립시키며 극의 긴장감을 높였다. 모차르트는 아버지 레오폴트의 강력한 반대에도 결혼과 빈 이주를 강행한다. 천재성을 상징하는 어린 시절의 자아 아마데는 점점 악마로 변해 모차르트의 목을 죈다. 운명과 자유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차르트는 운명을 극복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을 노래한다. 천재라고 마냥 행복한 것도 아니다. 자유롭고 빛나는 청년 모차르트가 비극적이고 쓸쓸한 죽음에 이르는 고단한 삶은 관객에게 많은 생각을 안긴다.

독일어권 뮤지컬의 신선함

뮤지컬 ‘모차르트!’는 쿤체가 그의 ‘콤비’인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Sylvester Levay)와 1999년에 세상에 내놓은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2010년 초연됐다. ‘모차르트!’는 독일, 스웨덴, 일본, 헝가리 등 세계 240만 명의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하며 천재 음악가의 인간적 고뇌와 갈등을 음악으로 풀어낸 수작으로 꼽힌다. 가슴 뭉클한 선율이 일품인 뮤지컬 넘버와 수려한 무대미술도 빼놓을 수 없는 관람 포인트다. 모차르트가 살아생전 이 멜로디를 들었으면 뭐라고 했을까. 

극작가 쿤체와 작곡가 르베이는 ‘엘리자벳’(1992) ‘레베카’(2006) ‘마리 앙투아네트’(2006) 등을 대히트시키며 30년간 독일어권 뮤지컬 전성시대를 이끌고 있다. 미국 브로드웨이와 영국 웨스드엔드 작품들이 주류인 국내 뮤지컬 시장에 2010년 독일어권 뮤지컬 ‘모차르트!’가 처음 상륙하자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연일 매진 행진을 이어갔다. 화려한 무대와 의상, 귀에 꽂히는 멜로디 라인과 관객을 사색하게 만드는 드라마 구성으로 그해 각종 뮤지컬 시상식에서 11개 부문을 석권했다. 올해 공연은 초연 10주년 기념작이자 통산 6번째 공연이다. 250년 동안 세상을 감동시킨 모차르트의 영롱한 울림은 색다른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황승경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 디플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성균관대 공연예술학 박사
● 국제오페라단 단장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 ‘문화와 사회’(공저)



신동아 2020년 7월호

황승경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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