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호

[윤채근 SF] 차원이동자(The Mover) 10-1

반(反)나치 조직원의 정체

  • 윤채근 단국대 교수

    .

    입력2020-06-29 17:5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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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탁월한 이야기꾼 윤채근 단국대 교수가 SF 소설 ‘차원 이동자(The Mover)’를 연재한다. 과거와 현재, 지구와 우주를 넘나드는 ‘차원 이동자’ 이야기로, 상상력의 새로운 지평을 선보이는 이 소설 지난 회는 신동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편집자 주>

    1

    베를린 지하에 매설된 폭탄을 터뜨리라는 히틀러의 명령이 하달됐을 때 히펠 소령은 이를 거부했다. 독일군 내에서 암약하던 반(反)나치 조직원인 소령은 기폭장치를 모두 제거한 직후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는 패전 직후 미군에 투항해 적극 협조했던 다른 조직원들과 다른 기이한 행동이었다. 

    히펠은 패전 이듬해인 1946년 여름 베를린 외곽 포로수용소에서 발견됐다. 독일군 일반 포로들 속에 숨어든 고위급 전범을 색출하던 미군은 히펠을 빼내 CIA의 전신인 미군 전략정보대(SSU)로 이첩했다.

    2

    “아돌프 아이히만을 추적하고 있었다고?” 

    미군 정보대 소속 대위는 연신 담배 연기를 뿜어대며 천천히 영어로 물었다. 히펠이 고개를 끄덕이자 다가온 대위가 담뱃갑을 내밀었다. 럭키 스트라이크였다. 한 개비 꺼낸 히펠이 담배를 입에 물자 대위가 불을 붙여주며 다시 물었다. 

    “토마스 하이체크를 아나?” 



    연기를 깊이 들이마신 히펠이 지하 취조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대위가 조금 강압적인 악센트로 또 속삭였다. 

    “하이체크는 폴란드에 불시착한 뒤 소련군으로 넘어갔어. 그 친구 러시아계였다지? 애초부터 코뮤니스트였던 게 틀림없어! 히펠, 당신도 자유세계의 적인가?”

    3

    친위대 소속이던 히펠은 전시에도 베를린 이동이 자유로웠다. 그는 크림힐트라는 암호명으로 불리던 에바 브라운과 반나치 저항 조직 사이를 잇는 유일한 끈이었다. 그런 그조차 조직의 수장 토마스 하이체크를 직접 만나본 적은 없었다. 조직원들은 점으로 흩어진 채 개별적으로만 지령을 하달 받았다. 

    히펠이 조직에 가담한 건 1943년 봄이었다. 베를린에 저항 조직이 존재한다는 소문은 이미 파다했지만 독일군 방첩대를 따돌리고 그들과 접선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히펠은 조직 말단 세포였던 방공호 관리자에게 접근해 자신의 투신 의사를 전달했다. 문지기로 불리던 조직 말단 세포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노출한 만큼 의심도 많았다. 그들은 자신이 접촉한 상대가 스파이임이 밝혀지는 즉시 조직에서 절단돼 버려질 존재였다. 

    히펠은 1년 이상 조직의 이런저런 잔심부름을 성실히 수행하고 나서야 가입이 허용됐다. 가입 후 그에게 떨어진 첫 임무가 총통의 애인 에바 브라운을 포섭하는 것이었다. ‘크림힐트 작전’으로 불린 이 비밀 작전을 끝내 성공시킨 히펠은 조직 수장의 친필 메시지도 처음 받아볼 수 있었다. 나치 안에 넓은 인맥을 지닌 군납업자로 알려진 수장은 ‘토마스 하이체크’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4

    “본명은 게르하르트 쿠쉬코프지. 아버지가 러시아 혈통이고.” 

    말을 마친 대위가 볼을 씰룩이며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히펠의 어깨를 스치고 제자리로 돌아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군납업자였던 건 맞아. 하이체크 말이야. 나머진 다 거짓투성이지. 코뮤니스트는 원래 다 그래.” 

    담배 연기를 상대방 쪽으로 훅 분 대위가 히펠의 눈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덧붙였다. 

    “나치와 싸웠다고 다 우리 편은 아니야. 소련 놈들도 나치와 싸웠지만 우리에겐 잠재적 적이지. 이제 진실을 말해봐. 왜 미군에 오지 않고 잠적했나?”


    윤채근
    ●1965년 충북 청주 출생
    ●고려대 국어국문학 박사
    ●단국대 한문교육학과 교수
    ●저서 : ‘소설적 주체, 그 탄생과 전변’ ‘한문소설과 욕망의 구조’ ‘신화가 된 천재들’ ‘논어 감각’ ‘매일같이 명심보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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