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호

“활동가인지, 영업사원인지…정의연 사태 보고 기시감 들어 아찔”

[사바나] 2030 청년 활동가 시민단체를 말하다

  • 김우정 기자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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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2020-06-30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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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사원처럼 일하다 월급날 깨닫는 ‘난 시민단체 활동가’

    • 586 유명 활동가 ‘네트워크’에 기대기 십상

    • “번듯한 직함은 중년 남성, 실무는 여성·청년 몫”

    *사바나 초원처럼 탁 트인 2030 놀이터.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GettyImage]

    [GettyImage]

    “평소에는 사기업 직원처럼 강도 높게 일한다. 난 월급날에만 시민단체 활동가였다.” 

    김모(28) 씨가 지난 2년 동안의 생활협동조합(생협) 상근 근로자(상근자) 생활을 떠올리며 말했다. 지역 활동가를 꿈꾸며 생협에 들어갔지만 안에서 겪은 시민단체는 김씨의 생각과 달랐다. 김씨는 “사기업과 조직 문화가 별반 다르지 않다. 회식에 빠지면 선배 활동가가 눈치 주는 비민주적 ‘꼰대’ 문화가 있었다. 차이라면 월급날 들어오는 월급 액수가 적은 것뿐”이라고 털어놨다.

    “당신처럼 늙지 않겠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시민사회활동가 대나무숲’에 게시한 글. [페이스북 화면 캡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시민사회활동가 대나무숲’에 게시한 글. [페이스북 화면 캡처]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에 따르면, 전국 시민단체 활동가의 평균연령은 43.4세였고 20대의 비율은 7.4%에 그쳤다. 기성세대의 틈바구니 속 고충을 호소하는 청년 활동가는 김씨만이 아니다. 

    2016년 11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페이스북에 ‘시민사회활동가 대나무숲’이란 페이지가 생겼다.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2030세대의 고민을 올리는 익명 게시판이다. 현재(6월 13일) 팔로어는 3311명이다. 팔로어들은 “돈 생각 말고 여성운동만 생각하라”는 기성세대 활동가에게 “그런 꼰대 마인드로 새로운 활동가가 배출되길 바라는 건 뭔 심보지?”라고 일갈하거나, 후배에게 ‘넌 명문대 안 나와서 일 못한다’고 핀잔 주는 교육운동가에게 “당신처럼 늙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청년 활동가들은 시민단체 내 세대갈등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 상임활동가 황법량(25) 씨는 지난 5월 다른 시민단체가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해당 단체의 중년 사무국장이 젊은 활동가를 앞에 세워두고 큰 소리로 면박을 준 것이다. 

    황씨는 “젊은 활동가가 장소를 잘못 알아 좀 늦게 도착한 모양이더라. 의견다툼도 아닌 일방적으로 ‘혼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돈 부족해 기부금 전용, 정의연 사태에 기시감”

    황씨는 4년째 광주광역시에서 학벌주의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에 몸담고 있다. 그는 기성세대 활동가의 권위적 태도가 특정 개인이 아닌, 시민사회 전반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황씨는 “다른 지역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라며 광주 시민사회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시 차원에서 각종 위원회가 많이 생겼다. ‘위원’처럼 번듯한 직함을 갖고 활동하는 이들은 대개 전남대·조선대 등 특정 대학 운동권 출신 중년 남성들이다. 반면 직접 피켓 들고 시위에 나서거나 농성장을 지키는 등 현장 실무는 여성이나 젊은 활동가의 몫이다.” 

    젊다는 이유로 일을 떠넘기는 것은 김씨가 일하던 생협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활동가에게 주로 SNS 등 뉴미디어 관련 업무를 맡겼다고 한다. 

    “밑도 끝도 없이 영상을 만들란다. 카메라나 마이크도 없어 겨우 휴대전화로 촬영해 만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젊은 애가 이런 것도 못 만드냐’고 핀잔을 줬다. 영상 제작에 필요한 장비를 살 권한을 달랬더니 그건 또 안 된다더라.” 

    시민단체 재원이 충분치 않으니 ‘아찔한 상황’도 많았단다. 김씨는 “구입한 물품 대금이 부족해 신생 시민단체 지원을 위해 모금한 돈을 전용하는 것을 봤다. 최근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사태를 보며 기시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모(30) 씨는 청소년을 지원하는 시민단체에서 4년째 일하고 있다. 최씨는 “안 그래도 시민단체 기부금이 줄어 걱정이었는데, 정의연 사태로 후원이 더 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후원금이 줄면 그만큼 최씨의 업무 부담도 늘어난다. 기부금이 줄면 단체 본연의 업무가 아닌, 후원자를 찾으러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최씨는 “후원자를 발굴하기 위해 애쓰다 보면 내가 활동가인지 영업사원인지 헷갈릴 정도”라며 씁쓸해했다. 

    열악한 환경에 활동가들이 시민단체를 등졌지만 인력 충원은 없다. 남은 최씨의 업무 부담은 더 늘었다. 최씨는 “일손이 줄어들어 일이 늘지만 급여는 그대로다. 사명감만으로 감당해야 한다. 출근을 앞둔 일요일만 되면 우울해진다”고 토로했다.

    청년 활동가 ‘번 아웃’ 상태

    지난해 11월 고정근 환경정의연구소 부소장은 ‘공익활동가들의 지속 가능한 삶과 활동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같은 해 9월 전국 시민단체 활동가 853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5.1%가 스트레스와 절망감을 많이 느낀다고 답했다. 자신이 건강하다고 생각한 비율은 42.3%에 그쳤다. 젊은 활동가일수록 절망감에 시달리거나 자신이 건강하지 못하다고 답한 비율이 높았다. 청년 활동가의 ‘번 아웃’(burn out·심신 탈진) 현상이 드러난 셈이다. 

    청년 활동가의 불안한 현실에 고모(32) 씨도 공감했다. 고씨는 청년 빈곤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에서 4년간 활동했다. ‘가난이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시민단체 생활을 시작했지만 활동가에게도 생활고는 풀기 어려운 문제였다. 고씨가 상근자로 일할 때도 보수는 식비조로 받은 월 30만 원이 전부. 인맥으로 시민단체·정당 행사 진행 등 일일 알바를 해서 용돈에 보태 썼다. 

    그는 시민단체의 많은 청년 활동가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일단 시민사회운동에 투신하면 또래와 달리 취업 준비 경로에서 이탈한 셈이기 때문이다. 

    고씨는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될까, 걱정됐다. 내가 나이 들어서도 ‘인수인계서’ 한 장만 있으면 누구나 대체할 수 있는 일을 할까 두려웠다. 너무 슬프더라. 지금도 비슷한 걱정에서 자유롭진 못하다”고 씁쓸해했다. 

    시민단체를 이끄는 586세대 명망가는 이런 불안감을 해소해 줄 한 줄기 희망이다. 이들이 대학 운동권 시절부터 쌓아온 인적 네트워크는 단체와 활동가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고씨가 몸담은 시민단체의 활동가는 모두 2030세대였다. 기성세대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지만 단점도 있었다. 고씨는 시민단체가 586세대 명망가를 필요로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시민단체에 유명한 활동가가 없으면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586세대 활동가가 있으면 이들의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다. 단체로선 기부금 모금이 수월해진다. 젊은 활동가는 더 큰 단체로 자리를 옮길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청년 활동가만 있어선 획득할 수 없는 무형의 자원이다.”

    “시민단체 행태 ‘열정페이’ 결정판”

    이에 대한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의 지적이다. 

    “일부 시민단체의 행태는 ‘열정페이’ 강요의 결정판이다. 기성세대 내부의 암묵적 동의로 젊은이를 자기희생으로 몰아가는 것이 근본적 문제다. 권력과 유착한 ‘엘리트 시민단체’의 586세대 활동가가 정부 지원금을 독점하고 단체 내에선 비(非)민주적 행태를 일삼는 등 문제가 적잖다. 시민사회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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