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호

페미니즘 시각에서 옷 비교해보니…性차별 관행으로 여성복 불편!

여성복 주머니는 작거나 없고 안감은 두껍다

  • 최희진 고려대 미디어학부 3학년

    gmlwls3520@naver.com

    입력2020-07-2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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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바나]

    • 남성복, 시원한 안감에 주머니 터지지 않게 ‘바텍’ 처리

    • 겉감, 허리둘레 조절 고무줄 유무도 달라

    • 여성복에는 봉제선만 박은 ‘페이크’ 주머니

    • “디자이너들, 여성이 주머니 안 쓰리라 짐작”

    • “업계에서 배운 대로 옷 만들며 관행 답습”

    [GettyImage]

    [GettyImage]

    평소 여성복 품질에 불만이 많은 최서영(24) 씨는 남성복 바지를 처음으로 구매해 입어보고 깜짝 놀랐다. 남성복 바지에는 주머니가 4개나 달려 있었다. 주머니 깊이도 여성복 바지 주머니와 비교해 훨씬 깊어 소지품을 수납하기에도 편했다. 휴대전화도 채 들어가지 않는 크기의 주머니 두 개만 달린 여성복을 입어온 그에게 남성복의 편리함은 너무 낯설었다. 

    김도하(22) 씨는 여성복 티셔츠에서는 볼 수 없던 봉제 방식을 유니섹스 티셔츠에서 발견했다. 여성복 티셔츠 대부분은 한 번만 박음질하면 완성되는 ‘오버로크’ 방식으로 시접이 처리돼 있다. 유니섹스 티셔츠는 다림질과 두 번 이상의 박음질이 필요한 ‘쌈솔’ 방식으로 돼 있었다. 그 덕분에 유니섹스 티셔츠는 여성복 티셔츠보다 더 튼튼하고 안감이 깔끔했다. 김씨는 “이런 차이 때문에 이제는 유니섹스 쇼핑몰에서만 옷을 구매한다”고 했다.

    같은 콘셉트, 가격 의복 비교해 보니

    남성복 슬랙스의 뒷주머니 안감(왼쪽)과 여성복 슬랙스의 뒷주머니 안감.
 [최희진 제공]

    남성복 슬랙스의 뒷주머니 안감(왼쪽)과 여성복 슬랙스의 뒷주머니 안감. [최희진 제공]

    시장에서 유통되는 여성복이 남성복과 유니섹스 제품보다 비실용적이라는 소문이 돈다. ‘탈코르셋’ 운동(‘체형 보정 속옷’인 코르셋을 벗어나자는 뜻으로 다이어트, 화장, 렌즈 등 ‘꾸밈 노동’으로부터 여성해방을 부르짖는 것)이 발흥하면서 편한 옷을 찾는 여성이 늘었다. 입기 불편한 여성복을 비판하는 주장도 쏟아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남성복과 여성복을 비교한 사진을 게시하거나, 회사 측에 항의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이 근거 없는 ‘루머’인지 확인하고자 의류 브랜드 ‘쏘왓(SoWhat)’의 디자이너 소설희(31) 씨가 같은 브랜드의 남성복과 여성복을 비교했다. 비교 대상 의복은 콘셉트와 가격이 같은 제품이다. 

    먼저 ‘유니클로’와 ‘스파오’ 제품 중 같은 콘셉트와 가격으로 판매되던 남성복과 여성복을 비교했다. 5월 11일 유니클로 U-PLEX 신촌점에서 판매하던 ‘ezy앵클팬츠’의 남성복과 여성복은 안감에서 두드러진 차이를 보였다. 남성복의 경우, 판매 시기가 초여름인 점을 고려해 사람의 엉덩이가 닿는 뒷주머니 안감에 시원한 소재를 사용했다. 반면 여성복 바지 뒷주머니에는 겉감과 같은 두꺼운 소재를 사용했다. 



    남성복에는 허리 부분에 겉감이 덧대어져 신축성 있는 밴드가 겉에서는 볼 수 없었다. 여성복에는 겉감이 없어 밴드가 겉으로 드러나 있었다. 또 남성복의 허리 안감에는 고무줄이 내장돼 바지의 허리둘레를 몸에 맞게 조절할 수 있었지만, 여성복에는 이 고무줄을 찾을 수 없었다. 

    여성복 뒷주머니는 남성복 뒷주머니보다 훨씬 작았다. 여성복 주머니에 없는 기능이 남성복 주머니에서 발견됐다. 가령 남성복 앞주머니에는 주머니가 터지지 않도록 한 번 더 재봉하는, 이른바 ‘바텍’ 처리가 돼 있었다. 뒷주머니에는 도난방지용 지퍼도 있었다. 반면 여성복 주머니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소씨는 “디자이너들은 여성이 주머니를 쓰지 않으리라 짐작한다. 이에 여성복의 주머니를 작게 만들거나 ‘바텍’이나 지퍼와 같은 실용적 기능을 추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남성복 셔츠의 단추 부분(왼쪽)과 여성복 셔츠의 단추 부분. [최희진 제공]

    남성복 셔츠의 단추 부분(왼쪽)과 여성복 셔츠의 단추 부분. [최희진 제공]

    두 번째 비교 대상은 같은 날 스파오 AK홍대점에서 판매하던 ‘에코 린넨’ 라인의 셔츠다. 얼핏 보면 비슷한 모양새지만, 남성복의 왼쪽 가슴에 달린 주머니가 여성복에는 없다. 또 남성복에는 단추가 세로로 늘어진 앞부분을 따라 원단의 양 끝을 집어 재봉해 두툼하고 깔끔하게 보이도록 했다. 그러나 여성복에는 이런 처리가 생략됐다. 

    셔츠 안쪽에서도 봉제 방식 차이가 드러났다. 남성복을 시접 처리할 때에는 ‘쌈솔’ 방식, 여성복에는 ‘오버로크’ 방식을 채택했다. 소씨는 “‘쌈솔’ 방식은 ‘오버로크’ 방식보다 과정이 더 복잡하고 까다롭지만, 보기에 더 깔끔해 고급스러운 옷에 자주 사용되는 시접 처리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남성 및 여성 고객에게 적합한 디자인?

    지오다노의 남성복인 ‘쿨맥스 앵클 테이퍼드 핏 슬랙스’의 안감(왼쪽)과 여성복인 ‘코튼 트윌 플리츠 팬츠’의 안감. [최희진 제공]

    지오다노의 남성복인 ‘쿨맥스 앵클 테이퍼드 핏 슬랙스’의 안감(왼쪽)과 여성복인 ‘코튼 트윌 플리츠 팬츠’의 안감. [최희진 제공]

    5월 20일 해당 제품들의 차이에 대해 각 브랜드 측에 문의했다. 유니클로 고객센터는 “남성 및 여성 고객님께 적합한 디자인으로 제작됐다”라고만 답했다. 스파오에서는 한 달이 다 되도록 문의에 대한 답변을 주지 않았다. 

    남성복과 여성복의 차이는 타 브랜드에서도 발견됐다. 무인양품에서 판매 중인 ‘스탠드칼라 셔츠’에서도 남성복의 왼쪽 가슴에 달린 주머니가 여성복에는 없었다. 또 ‘스트래치 서커’ 라인의 남성복 주머니가 여성복보다 훨씬 크기가 넉넉했다. 

    5월 23일 에잇세컨즈 현대신촌점과 5월 25일 지오다노 롯데월드몰점에 전시된 모든 여성복과 남성복 슬랙스를 비교한 결과, 공통적인 현상을 발견했다. 두 매장에 전시된 모든 여성복의 뒷주머니는 주머니 모양으로 봉제선만 박은 ‘페이크’ 주머니였다. 반면 어떤 남성복에도 ‘페이크’ 뒷주머니는 없었다. 

    또 두 매장에서 판매한 남성복의 주머니에는 안감용 원단이 별도로 사용됐고, 보기에 깔끔한 ‘통솔’ 방식으로 시접 처리가 돼 있었다. 특히 지오다노의 경우 남성복에 허리 부분의 안감인 이른바 ‘고시우라’를 추가했고, 이와 비슷한 원단으로 주머니 안감을 대어 통일감을 줬다. 이에 반해 에잇세컨즈와 지오다노에서 판매한 여성복은 지오다노의 ‘전지현 린넨 슬림핏 슬랙스’와 ‘전지현 슬림핏 슬랙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주머니 안감이 ‘오버로크’ 방식으로 시접 처리됐다. 또 지오다노의 ‘린넨 플리츠’의 흰 색상 제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겉감과 같은 원단으로 주머니의 안감을 댔다. 

    의류업계는 왜 남성복과 여성복을 다르게 제작하고 있을까. 디자이너 소씨는 여성복에 대한 의류업자들의 편견을 이유로 지목하며 “여성복 제작자들은 업계에서 배운 대로 옷을 만들며 성차별적인 관행을 답습한다”고 했다. 실제 성차별적 인식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직접 국내의 한 봉제 공장에 여성복 제작을 의뢰했다. ‘고시우라(바지 허리 부분 안감)’, 뒷주머니의 단추, ‘사이드 밴딩’ 등 실용적 기능이 추가된 여성복 슬랙스의 제작 주문을 받은 공장 직원은 “봉제 방식이 남성복과 같다”며 주문 제품이 여성복이 맞는지 재차 물었다. 

    의류 제작에 뿌리박힌 성차별적 편견은 무엇으로부터 기인했을까. 다양한 추론이 있다. 실용성보다는 디자인을 고려하는 여성의 소비 성향에 따라 생산 방식도 변했다는 설이 대표적이다. 국내 의류 도매업 종사자들도 대체로 이에 동의한다. 한 도매업체 매니저 양유리(36) 씨는 “이 매장에 방문하는 수많은 여성 의류 쇼핑몰 사업자들은 대체로 편한 옷보다는 디자인이 특이한 옷을 선호한다”고 했다. 다른 도매업체 매니저인 한아름(25) 씨는 “남성 소비자는 옷이 편하지 않으면 입지 않지만, 여성 소비자는 불편을 감수하고 옷을 입는다”고 했다.

    “편한 옷보다 예쁜 옷 입도록 하는 문화”

    일부 소비자는 사회 전반에 걸친 여성 차별이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최서영 씨는 “여성에게 편한 옷보다 예쁜 옷을 입도록 하는 여성 차별적인 문화가 의류 생산 방식에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오세빈(22) 씨는 “선택적 소비가 힘든 교복의 경우에도 성별 간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은 기성복의 실용성 저하가 순전히 여성의 취향 탓이 될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편안함보다 맵시에 치중된 여학생 교복에 대한 불만이 제기된 사례도 있다. 여학생 교복뿐 아니라 여성용 수감자복과 군복에도 남성용과 달리 잘록한 허리선이 들어간다는 사실은 여성의 취향과는 상관없이 여성복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존재한다는 의견을 뒷받침하고 있다. 

    소씨는 역사적인 맥락에서 원인을 찾았다. 현대 복식이 대중화된 시점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부르주아 남성들이 근검절약의 덕목을 실현하기 위해 슈트를 발명한 18세기다. 20세기 가브리엘 샤넬이 슈트를 여성복에 적용하기 전까지 여성에게 현대 복식은 허용되지 않았다. 소씨는 “현대인이 입는 옷들은 원래 남성을 위한 옷이었으며 여성복에 달린 기능들도 여성을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닌, 남성복을 모방한 것”이라고 했다. 

    “남성복의 주머니는 무언가를 넣기 위한 것이고, 여성복의 주머니는 장식용일 뿐이다.” 디올 브랜드의 설립자인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한 말이다. 

    의류업자 대부분은 남성복과 여성복의 차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소씨는 “패션을 주도하는 것은 업계이기에 업계 관계자들이 책임감을 갖고 건강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책임은 의류업계에 있지만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건 소비자의 목소리”라고 했다.


    *[사바나 오픈 콘텐츠] 이 기사는 20대 필자가 패션 디자이너와 함께 남성복·여성복을 비교·검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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