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쌀 끊고 고구마·채소만… 휴게실에서 홀로 점심

• 연차 써도 운동에 ‘올인’하니 하루 ‘순삭’

• 속은 만신창이 돼 가는데 너무 안 빠지는 살!

• 체지방률 한 자릿수 진입, 이제 카운트다운

_{*이현준 기자의 바디프로필 프로젝트는 8월 5일부터 11월 18일까지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구황작물(救荒作物). 흉년에도 안정적으로 수확할 수 있고 생육기간이 짧은 작물이다. 이러한 이점 덕분에 기근으로 굶주린 사람들에게 훌륭한 대용식이 돼 왔다. 고구마는 대표적 구황작물이다. 우리나라가 가난했던 시절, 보릿고개를 넘기는 데 고구마가 큰 구실을 했다는 건 아버지의 ‘Latte는 말이야’로 익히 들어 알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돌파하고 먹을 게 넘쳐나도 아들은 여전히 고구마를 먹는다. 아버지는 먹을 것이 없어 고구마를 찾았다. 아들은 먹을 것이 너무 많아 다 먹다보니 살이 쪄 다이어트를 위해 고구마를 찾는다. 이젠 구황작물을 일부러 사서 먹는다니 어찌 보면 우스운 일이다. 못 먹어서가 아니라 먹어서 죽는 시대라는데 살을 빼려 아등바등하는 스스로를 보니 이 말이 더욱 실감이 난다.

입사 동기는 “눈물 나는 식단”이라고 하고

고구마는 ‘디폴트(기본값)’가 됐다. 촬영이 임박해 마음이 급해졌다. 식단 유지를 위해 스스로 ‘왕따’의 길을 선택했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식사는 되도록 피하고 식사 시간엔 사내 휴게실로 가 ‘혼밥’하는 게 일상이다. 남은 시간 쭉 이렇게 먹겠다 싶어 집에서 그릇과 용기를 아예 챙겨왔다. 먹고 나선 화장실에 가서 설거지를 하고 다음 끼니 때 다시 쓴다. 

메뉴는 단순하다. 찐 고구마 200g, 닭 가슴살 100g, 채소가 전부다. 맛은 없다. 프로젝트 이전까지만 해도 식사 시간은 행복했다. ‘오늘은 어떤 맛있는 음식으로 하루 2~3번 밖에 없는 이 기회를 행복하게 보낼까’ 고민했다. 맛없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나면 기회를 날린 듯해 불쾌했다. 자기 전에 ‘내일 뭐 먹지’ 고민하면 ‘돼지’라는데, 기자는 명백한 돼지였다. 




이제 식사는 그저 ‘영양분을 섭취하는’ 행위가 돼 버렸다. 먹어야 사니까, 그러면서도 근손실을 최소화해야 해서 먹는다. 새삼 먹는 행복은 정말 무시할 수 없다고 느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행복의 비중에서 먹는 게 50%는 차지하는 듯하다. 행복지수가 절반 이상은 낮아졌다. 다른 사람 눈에도 안쓰러운가보다. 기자의 식단을 본 입사 동기 한 명은 “눈물 나는 식단”이라고 했다. 

도전을 시작할 땐 ‘현실적인’ 식단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며 ‘무리 없이’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게 목표였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균형을 찾는 데 딜레마를 느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기간을 100일보다 길게 잡으면 모를까, 직장인이 처음에 생각한 계획대로 이를 이뤄내기란 어렵다고. 혹여 바디프로필 도전을 생각하는 직장인 독자가 있다면 “기간을 넉넉하게 잡으시거나 생활의 일부를 포기하실 각오는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하겠다.

누구나 가슴에 연차 하나쯤은 가지고 있잖아요

식단과 운동은 병행돼야 한다. 운동을 하루 두 번은 해야겠다 싶어 연차를 활용했다. 수습기간을 마치고 연차를 쓸 수 있게 됐을 때, 국내여행을 다녀올까, 못 봤던 영화와 드라마를 몰아볼까, 맛집 탐방을 다녀올까 등 이런 저런 계획에 마음이 한껏 들떠 있었다. 

계획은 그저 계획이었을 뿐 현실은 헬스장에서 휴가를 즐기게(?) 됐다.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 운동하는 건 기본이다. 이제 운동하러 가는 게 귀찮음을 넘어 무서울 지경. 시간도 ‘순삭’된다. 씻기‧태닝하기‧지쳐 잠들기 등을 하다보면 하루가 그냥 흘러가 버린다. 


10월 29일, 30일, 11월 2일 3일간 연차를 사용해 5일의 ‘황금연휴’를 만들었다. 운동과 태닝, 취침 외엔 아무 것도 한 게 없다. 더 정확하게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소중한 연차를 이렇게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정도면 완전히, 중독 수준으로 헬스에 매달리는 사람이 된 게 아닐까. 

현실적 고충을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변비도 괴로움을 주는 요소다. 식이섬유가 많다는 ABC 주스, 고구마, 채소를 먹고 유산균까지 챙겨 먹는데도 배변이 잘 안 된다. 먹는 양 자체가 적은 데다, 단백질 섭취가 많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혼신의 사투를 벌이는데, 온 몸에 진이 빠진다. 불상사를 최소화하려면 물을 수시로 마셔야 한다고 한다.(담당 트레이너의 말에 따르면 하루 최소 3ℓ이상.) 이 역시 참고 바란다.

살은 왜 이리 안 빠지나

결국 겉은 좀 그럴싸해지고 있을지 몰라도 속은 만신창이가 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살은 지독히도 빠지지 않는다. 사과를 너무 많이 먹었던 걸까. 아니면 10월 31일 식사하기 귀찮아 먹었던 식사대용 쉐이크, 혹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먹어버린 초콜릿 바가 문제인 걸까. 잘 모르겠지만 설령 그렇다면 너무 가혹하다. 

11월 3일 새벽 체성분분석기(인바디) 측정 결과 8일 전인 10월 26일 결과에 비해 체중이 300g밖에 빠지지 않았다. 체지방이 1.3㎏ 빠지고 체지방률이 1.6% 낮아져 한 자리 수에 진입한 건 성과지만 목표치엔 미치지 못했다. 원래는 체지방을 300g 더 빼야 했다. 인바디 측정의 오차를 감안하면 체중 변화의 미미함도 마음에 걸린다. 이제 남은 시간은 9일이다. 트레이너는 “막판엔 체력이 아니라 정신력”이라고 강조했다. 이젠 사과도 끊을 예정이다. 하루에 300㎉는 더 줄일 수 있다. 기필코 잔뜩 화를 내고 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