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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 위해 목숨 거는 사향소 군단 중갑보병 전술

[동물萬事㉒]

  • 이강원 동물칼럼니스트 powerranger7@hanmail.net

다음 세대 위해 목숨 거는 사향소 군단 중갑보병 전술

  • ● 머리 모아 새끼 지키는 중갑보병단 사향소
    ● 늑대 이긴 중갑보병 전술, 인간에게는 무용지물
    ● 야생에 천적 없는 말썽쟁이 라쿤 도심에 진출
    ● 사냥개 부리는 사냥꾼이 라쿤의 유일한 천적
사향소는 북극권 근처 극지방에 주로 서식한다.  [GettyImage]

사향소는 북극권 근처 극지방에 주로 서식한다. [GettyImage]

큰 덩치에 풀이나 이끼만 먹는 사향소(muskox)와 체중 10㎏ 내외에 아무것이나 잘 먹는 라쿤(raccoon). 서식지도 달라 두 동물은 동물원이 아니라면 얼굴을 마주할 일조차 없다. 이렇게 다른 두 동물에도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이들이 효과적인 천적 방어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이 방어수단이 야생에서만 유효할 뿐, 인간을 상대로는 최악의 수단이라는 점이다.

소처럼 생겼으나 영양에 가까운 사향소

북극권인 그린란드, 캐나다 북부, 미국 알래스카는 사향소의 고향이다. 추운 지방에 살아서인지 사향소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와는 생김새가 많이 다르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소는 대부분 털이 짧은 단모종이나 사향소는 털이 덥수룩하다. 뿔 모양도 다르다. 한우는 머리 위쪽에 성인 손바닥 크기의 뿔이 직선으로 솟아 있다. 사향소의 뿔은 곡선이다. 사람으로 치면 이마 부분에서 뿔이 돋기 시작한다. 구부러진 뿔은 이마를 감싸며 머리 뒤로 흐르다가 다시 앞으로 뻗쳐 솟아 있다. 

장모종 소의 일종처럼 보이는 사향소에는 반전이 있다. 사향소는 솟과(Bovidae) 중에서 소아과(Bovinae)가 아닌 영양아과(Antilopinae)에 속한다. 아과(亞科)는 생물 분류 단계 중에서 과(科)의 아래, 속(屬)의 위에 위치한다. 외모는 소와 비슷하지만 그 피는 영양(antelope) 혹은 가젤(gazelle)에 가깝다.

다음 세대 위해 목숨 거는 사향소 군단

수컷 사향소는 얼굴의 안면샘에서 냄새를 분비한다.  [GettyImage]

수컷 사향소는 얼굴의 안면샘에서 냄새를 분비한다. [GettyImage]

번식기가 되면 사향소 수컷은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서 향을 발산한다. 수컷의 얼굴에는 안면샘(facial gland)이 있는데 이곳에서 특유의 향을 분비한다. 눈 밑에 있는 분비선이라서 안하선(眼下線)이라고도 하는 곳이다. 냄새는 수백m 밖까지 번져나가 암컷 사향소의 코에 닿는다. 

냄새는 영역 표시에도 쓰인다. 사향소를 포함한 영양류의 동물은 안하선에서 독특한 냄새를 분비한다. 발굽동물인 영양은 냄새로 출입금지 안내판을 쓴다. 수컷들은 나무나 바위같이 주변에 잘 노출된 곳에 안하선을 문지른다. 



사향소의 천적은 북극늑대(Arctic wolf)다. 걸음이 느린 북극곰은 사향소에게 그리 위협적이지 않은 동물이다. 추운 곳에 사는 온혈동물은 다른 지역의 동족보다 덩치가 크다. 이런 경향을 베르그만의 법칙(Bergmann’s R`ule)이라고 한다. 따라서 북극늑대도 다른 따뜻한 곳에 사는 늑대보다 체구가 큰 편이다.
 
사향소는 북극늑대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극지는 다른 온난한 지역에 비해 동물의 종류나 수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체중 400㎏의 사향소는 순록이나 말코손바닥사슴(moose)처럼 한꺼번에 많은 단백질을 공급받을 수 있는 소중한 식량이다. 

사향소는 늑대 무리가 나타나도 도망가지 않는다. 사향소 무리는 럭비 선수들처럼 스크럼(scrum)을 짠다. 강력한 뿔과 단단한 두개골로 무장한 성체 사향소들이 머리를 내민다. 고대 그리스의 중갑보병들이 방패로 온몸을 보호하고, 적진을 향해 창을 내미는 것과 비슷한 밀집 방어 진영을 꾸리는 것이다. 

사향소 무리는 결속력이 매우 강하다. “아무도 적진에 남기지 않는다(No one left behind)”는 미군의 모토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사향소가 늑대 무리의 공격을 버티는 것은 새끼 때문이다. 성체에 비해 발이 느린 새끼들은 어른들의 방어막이 없다면 늑대의 이빨을 피하기 어렵다.


늑대 이긴 중갑보병 전술, 총 앞에 무용지물

천적과 대치하는 최전선에 나선 사향소의 얼굴에는 늑대의 이빨 자국이 생기고, 살이 찢어지며 피가 흐른다. 하지만 성체들은 물러나지 않는다. 새끼를 지키기 위해 스크럼을 유지한다. 성체들의 몸으로 만든 방어 진지 안에 어린 새끼들이 몸을 숨긴다. 그 안에 있으면 새끼들은 안전하다. 내일을 맞을 수 있다. 이는 전적으로 어른의 희생과 용기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제대로 된 어른이라면 자신의 이익만 챙기지 말고 다음 세대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사향소의 어른들처럼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 사향소는 이 같은 덕목을 인간에게 가르치는 위대한 동물이다. 

만약 사향소 무리가 늑대들의 등장에 지레 겁먹고 도망쳤다면 어린 새끼들은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울 것이다. 모든 포유동물의 새끼는 젖을 먹이는 어미의 뒤를 따라 도망치는 본능이 있다. 하지만 그런 습관은 단독 사냥이 아닌 늑대같이 무리로 사냥하는 포식자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포식자들이 새끼를 어미로부터 분리하면 상황이 종료되기 때문이다. 

새끼를 노리는 포식자들은 흥분 상태인 어미를 앞뒤로 물면서 공격한다. 이런 혼란스러움이 지속되면 제아무리 모성애가 강한 어미라도 새끼와 물리적 거리가 발생하게 된다. 바로 그 순간 새끼는 늑대 무리의 손쉬운 먹잇감이 된다. 방어수단이 없는 새끼가 포식자를 상대로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자 무리가 물소(African buffalo) 새끼를 사냥하거나, 늑대 무리가 아메리카들소(buffalo) 새끼를 사냥할 때 이 방법을 사용한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향소 무리가 새끼를 지켜서 지속 가능한 사향소의 미래를 만드는 데도 적용된다. 사향소들은 늑대 무리의 공격에 겁을 먹고 도망치지 않는다. 그런 소극적인 전술보다는 오히려 용기를 내서 힘으로 맞부딪친다. 무리의 힘으로 늑대 무리를 공격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게 사향소의 승산 있는 생존 전략이다. 

그런데 적을 맞아 집단으로 대항하는 사향소의 전술은 총을 든 인간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향소라는 종(種)의 생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위험으로 작용한다. 만약 사향소가 천적을 보면 도망치는 습관을 가졌다면, 인간들은 사향소를 한 마리씩 추격하면서 사냥해야 하는 수고를 겪었을 것이다. 

인간 사냥꾼을 만나도 수십 마리의 사향소는 스크럼을 짜고 그 뒤에 새끼들을 둔다. 그러고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사냥꾼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이런 고전적 방어 태세 탓에 인간에게 사향소는 손쉬운 사냥감이 됐다. 이런 현상은 비단 사향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집단의 유대 의식이 강한 동물인 아메리카들소도 비슷하다. 

늑대 무리에는 사향소의 이러한 집단 방어전술이 대단히 효율적이다. 하지만 인간 사냥꾼에게는 이런 전술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대자연의 도도한 질서에 인간이 개입하면 안 되는 것이다.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뜻밖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천적 만나면 나무 위 올라가 숨는 라쿤

라쿤은 포식자의 위협을 받으면 나무 위로 대피한다. [GettyImage]

라쿤은 포식자의 위협을 받으면 나무 위로 대피한다. [GettyImage]

라쿤(raccoon)은 여러 동물의 특징을 고루 가지고 있다. 외모는 구대륙의 갯과 동물인 너구리(raccoon dog)와 비슷하다. 그래서 아메리카 너구리(North American raccoon)라고 불리기도 한다. 시각에 따라서 곰과 비슷하게 보이기도 한다. 중국, 일본 등 한자문화권에서는 완웅(浣熊)이라고 한다. 완(浣)은 ‘물에 씻다’, 웅(熊)은 ‘곰’을 의미한다. 완웅이란 이름이 붙은 것처럼 라쿤은 주변에 물이 있으면 먹이를 그냥 먹지 않고 씻어 먹는다. 

라쿤은 식성이 까다롭지 않다.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까다롭지 않은 라쿤의 입맛은 잡식동물의 먹성 전형인 멧돼지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특징 덕분에 라쿤은 고향인 북미 숲을 벗어나도 잘 적응한다. 유럽이나 아시아에 진출한 라쿤은 그곳의 숲이나 농경지에서 자신의 고향처럼 번창하고 있다. 그러므로 집에서 키우던 라쿤을 자연에 방생하면 안 된다. 자칫 해당 생태계에 돌이키기 어려운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높은 곳을 잘 오르는 라쿤의 능력은 영장류(primates)인 원숭이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라쿤은 숲속 나무는 물론 주택가의 지붕이나 담장을 오르는 데 선수다. 이는 라쿤에 여반장(如反掌)과 같은 일이다. 미국의 단독주택에서는 심심찮게 지붕 위에 있는 라쿤을 볼 수 있다. 라쿤은 이런 재주를 비상시에 활용한다. 덩치 큰 동물이 자신의 뒤를 추격하면 어김없이 나무 같은 높은 곳에 몸을 피해 위기를 탈출한다. 

대부분의 야생동물은 계속 확대되는 인간의 생활 영역 때문에 서식지가 줄어들고 있다. 라쿤은 그런 경향에서 예외적 존재다. 오히려 자신들의 무대를 넓히고 있기 때문이다. 라쿤은 기존 서식지인 숲에도 여전히 살고 있지만, 사람들의 거주지인 도시에서도 산다. 미국 주택가에서 라쿤을 만나는 것은 신기한 일도 아니다. 한국 도시에서 길고양이를 만날 확률과 비슷한 수준이다.

살 곳 찾아 사람 사는 곳까지 진출

라쿤의 개체수가 늘어나고 활동 영역이 팽창한 이유 중 하나는 생태계에 라쿤의 개체수를 조절할 만한 포식자 수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북미 야생에서 라쿤의 천적은 퓨마, 늑대, 대형 맹금류인데, 이 같은 포식자들은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인간의 손에 의해 지속적으로 수가 줄었다. 

과잉 번식하고 있는 라쿤 중 일부는 도시로 계속 이주한다. 야생에서 과잉 번식한 멧돼지가 도심에서 출몰하는 한국과 비슷하다. 한국 야생에서 멧돼지를 제어할 수 있는 천적은 늑대, 표범, 호랑이지만 이들은 이미 야생에서 절멸했다. 미국의 경우, 전체 라쿤의 40% 이상이 도시를 보금자리로 삼고 있다는 연구도 있다. 

도시에서 삶을 꾸린 라쿤은 여러 문제를 일으키며 말썽꾸러기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한국과는 달리 미국의 주택은 도로 쪽에 건물이 있고, 마당은 뒤에 있다. 이 마당을 백야드(backyard)라고 한다. 

미국인들은 평일에는 백야드에 반려동물을 풀어놓고 같이 놀기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식물을 재배하기도 한다. 주말이면 그곳에서 바비큐 파티를 벌이며 맥주를 즐기기도 한다. 그게 미국인의 평범한 일상이다. 문제는 주택가에 침투한 라쿤도 미국인 못지않게 백야드를 소중한 공간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라쿤은 사람들이 정성껏 가꾸는 백야드의 식물을 식용이나 놀이 목적으로 마구 훼손한다. 또한 그곳에서 노는 개나 고양이의 밥을 훔치기도 하고, 심지어 그들과 한바탕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반려동물은 인간의 보호 아래 비교적 편하게 산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야생동물처럼 힘들게 사냥할 필요도 없다. 라쿤과 사냥 경험이 거의 전무한 반려동물의 싸움은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반려동물은 라쿤과 싸워서 얻을 것이 하나 없다. 북미에서는 라쿤을 광견병(rabies)을 전파하는 매개동물이라고 본다. 라쿤 때문에 반려동물이 다치거나 전염병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 피해는 주인에게 전가되기 마련이다. 라쿤과 불필요한 싸움 때문에 반려동물이 다치면 그 치료 비용은 사람이 감당해야 한다.

라쿤 잡는 천적, 사냥꾼과 사냥개

모피 때문에 라쿤은 
사냥감으로 인기가 많다. [GettyImage]

모피 때문에 라쿤은 사냥감으로 인기가 많다. [GettyImage]

천적도 사라졌으니 라쿤의 과잉 번식을 막을 동물은 총을 든 사람뿐이다. 추수가 끝난 10월 말이 되면 미국의 농촌 지역은 사냥철에 접어든다. 라쿤은 모피 때문에 인기가 많은 사냥감이다. 라쿤 사냥을 하려면 사냥개가 필요하다. 나무를 타는 라쿤을 인간 혼자서 사냥하기는 역부족이다. 사냥꾼들은 쿤하운드(coonhound)라고 부르는 사냥개들과 함께 나선다. 쿤(coon)은 라쿤, 하운드(hound)는 사냥개를 의미한다. 

후각이 예민한 개들이 사냥감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사냥개가 뒤를 밟으면 퓨마나 곰 같은 맹수도 위협을 느끼고 도망가게 마련이다. 중형견보다 작은 라쿤은 말할 것도 없다. 사냥개를 피하다가 한계에 봉착하면 라쿤은 대대손손 내려오는 전가의 보도(傳家之寶)를 꺼낸다. 나무 위로 올라가서 몸을 피하는 것이다. 나무의 제일 높은 곳까지 오른 라쿤은 사냥꾼과 개들이 제발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라쿤은 자신의 앞발을 손처럼 사용하며 지난 수만 년 동안 그렇게 도망을 다녔다. 

라쿤 몰이를 하던 사냥개들은 물러섬이 없다. 라쿤이 숨은 나무에서 위를 쳐다보면서 계속 짖어댄다. 개가 짖는 소리를 따라 사냥꾼이 도착한다. 사냥꾼은 나무 위의 라쿤을 조준해 방아쇠를 당긴다. 날 수 없는 라쿤이 사냥꾼의 총탄을 피하기는 어렵다. 

수만 년 동안 천적의 공격으로부터 라쿤의 안전을 보장하던 도주 방법은 사향소와 마찬가지로 총을 든 인간 사냥꾼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이렇게 인간의 힘은 강력하다. 그 힘이 특정 종을 지구에서 완전히 지워버릴 수 있을 만큼 큰 게 문제다. 이는 인간이 자연의 질서에 불필요하게 개입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신동아 2021년 1월호

이강원 동물칼럼니스트 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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