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호

김명수, 법원장 추천제 ‘또’ 어겼다

추천 따로, 임명 따로 ‘법원장 추천제’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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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21-02-18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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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정부·광주지법 비추천 인사 임명

    • 사법부 민주성 강화 기대 속, 정치화 우려도

    • 지법 소속 판사들 법원장 후보 직접 추천

    • 2019년 제도 도입 첫해부터 지키지 않아 빈축

    • 기수 파괴 추천 막으려 자격 요건 대폭 강화

    • 법관 탄핵 관련 거짓말로 사법부 수장 신뢰 위기

    김명수 대법원장이 2월 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동아DB]

    김명수 대법원장이 2월 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동아DB]

    # 2019년 1월 28일
    “법원장 추천제 시범 실시 법원(의정부지방법원)에서 수렴된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널리 이해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 2021년 1월 28일
    “광주지법도 소속 법관 의사를 존중해 법원장을 보임해야 하지만, 후보 추천 이후 일부 후보자의 동의 철회 등 사정 변경이 있었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성품, 재직기간 및 경력, 법원 내외의 평판 등 기관장으로서의 여러 덕목을 고려해 보임했습니다. 널리 이해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고위 법관 인사를 단행한 올 1월 28일, 김명수 대법원장은 꼭 2년 전과 마찬가지로 법원 내부망 ‘코트넷’에 판사들에게 ‘널리 이해해 주실 것’을 당부했다. ‘인사권자가 결정 과정을 친절히(?) 설명한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앞뒤 사정을 따져보면 법관 인사 원칙을 스스로 허문 것에 대한 변명에 가깝다. 그가 고위법관 인사 단행 이후 연거푸 ‘이해’를 구한 이유가 ‘사법행정에 전문성과 민주성을 강화하겠다’고 도입한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지키지 않은 데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2월 18일 ‘광주지법원장 임명 과정에 대법원 고위 관계자가 광주지법 판사들이 추천한 유력 법원장 후보에게 물러나 달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후보 추천 이후 일부 후보자의 동의 철회 등 사정변경이 있었다”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기존 해명이 거짓말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성 강화 기대 속, 사법부의 정치화 우려

    대법원 중앙홀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동아DB]

    대법원 중앙홀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동아DB]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대법원장에게 집중돼 있어 독단적이라 비판받던 법관 인사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지방법원 소속 판사들이 해당 법원장 후보를 직접 추천하도록 한 제도다. 2018년 6월 대법원장 자문기구인 사법발전위원회가 건의한 것을 김명수 대법원장이 수용하면서 2019년에 처음 도입됐다.



    법원장 임명 과정에 일선 판사들의 의견이 반영될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법원장 추천제는 사법부 운영의 민주성을 강화하는 촉진제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었다. 그런가 하면 법원장 추천 과정에 법관 성향에 따라 ‘편가르기’가 작용, ‘사법부의 정치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법원장 추천제는 2019년 처음 실시됐다. 도입 첫해에는 의정부지방법원과 대구지방법원에서 법원장 추천제가 실시됐다. 당시에는 법조 경력 15년 이상으로 해당 법원 소속이 아니어도 법원장 후보로 추천될 수 있었다. 의정부지법 소속 판사들은 당시 신진화 부장판사를 법원장 후보로 단독 추천했다. 신 판사는 2000년 의정부지법(당시는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에서 예비판사로 사법부에 첫발을 내디뎠고, 대구지법·서울서부지법·서울중앙지법을 거쳐 충북 영동지원장을 지낸 뒤 2017년 2월부터 의정부지법에서 부장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신 부장판사가 단독 후보로 법원장 후보로 추천됐음에도 김명수 대법원장은 그를 의정부지법원장에 임명하지 않았다. 대신 장준현 서울동부지법 수석부장판사를 임명했다. 김 원장은 신 부장판사 대신 장 부장판사를 의정부지법원장에 임명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130여 명의 법관과 7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산하에 고양지원과 6개 시‧군 법원, 8개 등기소를 둔 의정부지법의 사법행정사무에 비춰 법원장으로서의 막중한 책무를 수행하려면 상당한 정도의 재직기간과 재판 및 사법행정 경험이 필요합니다.”

    김 대법원장의 이 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법원 안팎에서는 말 못 할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았다. 당시 법원 주변에서 “사법연수원 29기인 신 부장판사를 법원장에 임명할 경우 다른 법원장과의 기수 차이가 열(10) 기수 이상 차이가 나 ‘기수 파괴에 따른 파격 인사’에 따른 부담이 컸을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즉 기수 파괴, 서열 파괴라는 법원 내부 구성원들의 반발을 감안해 법원장으로 추천된 연수원 29기 신 부장판사 대신 연수원 22기인 장 수석부장판사를 의정부지방법원장에 임명하지 않았겠느냐는 것. 김 대법원장은 장 부장판사를 의정부법원장으로 보임한 이유로 ‘수평적인 사법행정’을 꼽았다. 즉 ‘수평’이란 말 속에 ‘기수 감안’이란 숨은 뜻이 담긴 셈이다. 신 부장판사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회장을 지낸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이기도 하다.

    기수 파괴 추천 막으려 자격 요건 대폭 강화

    법원장 추천제가 기수 파괴로 이어질 개연성이 확인되자 대법원은 ‘법조 경력 22년 이상, 법관 경력 10년 이상의 법관을 법원장으로 추천할 수 있다’며 법원장 후보 자격 요건을 크게 강화했다. 지난해 서울동부지법과 대전지법 등 4곳으로 확대된 법원장 추천제는 올해 서울회생법원, 서울남부지법, 서울북부지법, 부산지법, 광주지법 등 총 7곳으로 그 대상이 크게 확대됐다. 그러나 올해 단행된 법원장 인사에서도 광주지법원장에는 법관들이 추천한 이와 무관한 이가 임명돼 뒷말을 낳고 있다.

    광주지법 판사들이 법원장 후보로 3명을 추천했음에도 추천된 후보를 모두 배제하고 인천지법 부장판사를 광주지법원장에 임명했기 때문. 김 대법원장은 ‘일부 후보자의 동의 철회 등 사정변경’을 이유로 내세웠다. 하지만 법원 안팎에서는 “‘추천’ 따로, ‘임명’ 따로 할 거라면 뭣 하러 법원장 추천제를 도입했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이번 광주지방법원장 인사는 민주적 법원장 선출이란 ‘법원장 추천제’ 도입 취지를 무시한 인사”라고 말했다. 그는 “추천한 이도, 추천된 이도 모두 머쓱하게 만든 인사”라며 “추천한 판사들의 뜻을 무시하고 다른 지법 출신을 법원장에 앉히는 것은 ‘법원장 추천제’와 양립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지법 부장판사는 “법원장 추천제는 지방법원과 고등법원 인사를 따로 하겠다는 법원 인사 이원화 의지로 해석됐다”며 “추천받은 법원장 후보를 임명하지 않는 사례가 반복되면 제도 자체가 무력화되는 것은 물론 법원장 인사에 대한 신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월 4일 헌정사상 최초로 국회에서 탄핵된 임성근 전 고법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둘러싼 거짓말 논란으로 현재 국민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자신의 육성이 담긴 음성 파일이 공개되기 이전에는 “탄핵을 언급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지난해 5월 임 전 부장판사와의 면담 때 “(몇몇 의원들이 법관) 탄핵하자고 저래 설치고 있는데 내가 지금 사표 수리하겠다고 하면 국회에서 또 무슨 얘기를 듣겠느냐”며 사표를 수리할 수 없는 이유를 언급한 음성 파일이 공개된 것.

    법원장 추천제와 무관한 ‘추천 따로 임명 따로’의 법원장 인사를 단행해 사법부 내부 구성원인 판사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데 이어, 법관 탄핵과 관련한 ‘거짓 해명’으로 국민에게까지 신뢰를 상실한 김명수 대법원장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믿음이 없으면 똑바로 서 있을 수 없다”는 공자의 무신불립(無信不立) 고사성어가 사법부 안팎에서 신뢰 위기에 봉착한 김명수 대법원장을 떠올리게 한다.



    구자홍 기자

    구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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