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호

바삭한 김, 시원한 미역, 고소한 톳 [김민경 ‘맛 이야기’]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1-03-0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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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엄마는 종종 갓 지은 밥을 김에 싸서 접시에 조르르 놓아주셨다. 짭짤한 소금이 듬성듬성 묻어 있고, 참기름과 들기름 향이 함께 나는 김이 따끈한 밥에 착 붙으면 가운데는 눅진하고 가장자리는 바삭하다. 입에 쏙 넣고 오물오물 씹으면 짜고 달고 고소하고 구수하고 쫀득한 맛이 난다. 밥과 김이 선사하는 맛의 축복을 안 받아본 한국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김에 싼 밥을 입에 쏙 넣고 오물오물 씹으면 짜고 달고 고소하고 구수하고 쫀득한 맛이 난다.  [GettyImages]

    김에 싼 밥을 입에 쏙 넣고 오물오물 씹으면 짜고 달고 고소하고 구수하고 쫀득한 맛이 난다. [GettyImages]

    김은 옛날에 해우(海羽·바다의 깃털), 해의(海衣·바다 이끼), 해태(海苔·바다 이끼) 등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1640년 전남 광양에서 김 양식법을 개발한 ‘김여익’의 성을 따 ‘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김은 본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바다 바위 등에 이끼처럼 붙어 자란다. 이것을 채취해 얇게 펼쳐 널어 말리면 김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김을 먹은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찾아볼 수 있다. 

    “김은 몰래 못 먹는다”는 말이 있다. 김을 구워보면 금세 안다. 아무리 조심조심 다뤄도 온 부엌에 김가루가 날아가 붙는다. 요즘에는 조미김이 다양하게 나오지만 예전에는 집집마다 김을 구워 맛을 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는데 엄마는 하루 날을 잡아 김 두어 톳(200~300장)을 손질하셨다. 참기름과 들기름을 섞어 바르고, 소금을 뿌리고 석쇠에 올려 굽는다. 잘 구운 김은 냉동실에 뒀는데 네 식구가 끼니 때마다 먹으니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돌김으로 만드는 ‘특식’ 김튀김

    김가루를 뿌린 김치볶음밥. 김가루는 많은 한식과 찰떡궁합으로 어울린다.  [GettyImages]

    김가루를 뿌린 김치볶음밥. 김가루는 많은 한식과 찰떡궁합으로 어울린다. [GettyImages]

    김 굽는 날의 특식은 바로 김튀김이다. 두툼한 돌김을 큼직하게 4등분한 뒤 두어 장씩 겹쳐 기름에 튀겨 소금, 설탕을 솔솔 뿌려 버무린다. 그대로 집어 먹어도 좋고, 밥반찬도 된다. 고소함이 바삭바삭 부서지는 맛에 너도나도 한 움큼씩 먹어치우기 일쑤였다. 

    마른김은 요모조모 참 쓸 곳이 많다. 구워서 그대로 즐기고 주먹밥도 만들며, 무엇이든 넣고 돌돌 말아 먹으면 그 자체로 맛있다. 생김을 대강 부숴 쪽파나 양파 등을 넣고 새콤달콤하게 무쳐서 먹고, 짭짤하고 고소하게 볶아서도 먹는다. 간장으로 장물을 만들고 마른 고추랑 함께 넣어 장아찌를 만들면 또 하나의 밥도둑이 된다. 다양한 채소를 준비해 월남쌈처럼 근사하게 김쌈을 만들어도 좋고, 김국을 끓여 구수하게 즐겨도 좋다. 달걀찜이나 달걀말이에도 넣고, 김치볶음밥이나 깍두기볶음밥에 김을 넣으면 구수한 맛이 더해져 훨씬 맛있다. 만둣국, 칼국수, 수제비, 잔치국수 등에도 김가루를 더하면 확실히 향과 맛이 달라진다. 시커먼 김가루 뿌린 음식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나, 맛으로 치면 김을 좀 더해 먹는 게 아무래도 한결 낫다. 

    귀한 물김을 구했다면 무와 굴을 넣고 시원하게 국을 끓여 먹고, 액젓에 다진 마늘 섞어 조물조물 무쳐 먹어도 맛있다. 물김에 감자가루나 밀가루를 넣어 섞고 얄팍하게 전을 지져 먹는 것도 별미다.



    뽀얀 미역국에 고소한 들깻가루

    불린 미역에 국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바락바락 치댄 뒤 냄비에 달달 볶아 국을 끓이면 감칠맛 나는 미역국이 완성된다. [GettyImages]

    불린 미역에 국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바락바락 치댄 뒤 냄비에 달달 볶아 국을 끓이면 감칠맛 나는 미역국이 완성된다. [GettyImages]

    바다에서 난 것 가운데 국을 끓여 먹기에 좋은 것으로는 미역도 있다. 미역은 우리나라를 둘러싼 모든 바다에서 자란다. 투명한 몸체에서 갈색이 나는 생생한 물미역, 합판처럼 단단한 마른미역, 소금에 푹 절인 염장 미역 이렇게 세 가지가 주로 시장에 나온다. 

    물미역은 초록색이 나도록 끓는 물에 데쳐서 먹는다. 넓은 이파리 쪽에 흰 밥을 얹고 그 위에 갈치속젓 조금 묻혀 쌈으로 먹으면 그만이다. 오도독오도독 씹는 맛 좋은 줄기는 초장에 콕콕 찍어 그대로 먹는다. 데친 미역을 듬성듬성 썰어 액젓과 다진 파, 마늘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 먹으면 생생하면서 적당히 배릿함도 배어나와 참 맛있다. 물미역으로 국도 끓이는데 이때 미역귀를 넣으면 깨끗하고 시원한 맛이 더 좋아진다. 

    마른미역은 물에 담가 충분히 불린 다음 요리한다. 바짝 마른미역이 물을 만나면 거침없이 불어난다. 한 손 가득 마른미역을 쥐면 둘이서 한 끼 먹을 양의 미역국을 끓일 수 있다. 물에 담가 충분히 부드러워진 미역은 조물조물 깨끗이 씻은 다음 먹기 좋게 자른다. 우리 엄마는 불린 미역에 국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바락바락 치댄 뒤 냄비에 달달 볶아 국을 끓이셨다. 유난히 입에 착 감기는 엄마 미역국 맛의 비결이 밑간이라 생각해 나도 꼭 그렇게 끓인다. 

    좋은 미역이 국물 맛의 뼈대를 이루고 나면 그 위에 개성을 더하는 건 쇠고기, 굴, 가자미, 홍합, 굴 같은 부재료다. 부재료가 없다면 뽀얗게 우러난 미역국에 납작하게 썬 가래떡을 불려 넣고, 거피 들깻가루를 두어 큰술 넣고 한소끔 끓여 먹는다. 구수하고 시원하며 달게 맛나다. 고기나 해물 한쪽 없어도 크고 깊은 맛이 난다. 

    마른미역을 불리면 무치거나 볶아도 먹을 수 있다. 바다의 나물이니 산과 들에서 나는 나물처럼 입맛에 맞게 양념해 즐기면 된다. 별미는 미역귀다. 우아한 물결무늬가 바글바글 모인 미역귀는 수많은 결로 이뤄진 공처럼 생겼다. 마른 바위처럼 단단하니 요리 전 충분히 불려야 한다. 불린 미역귀는 여러 조각으로 자른 다음 기름에 튀기고 소금 설탕 뿌려 바삭바삭하게 먹어도 맛있고, 고추장에 물엿이나 꿀을 섞어 달고 찐득한 양념을 만든 다음 조물조물 무쳐 먹어도 맛있다. 입에서 우물우물 뱅뱅 돌려가며 씹는 맛이 달고 재밌다. 

    염장 미역은 물미역이나 마른미역처럼 주연급은 아니지만 한동안 안 먹으면 문득 궁금해지는 반찬이다. 처음 사면 소금 범벅이니 요리 전 물에 헹군 다음 맑은 물에 담가 짠맛을 빼야 한다. 이때 너무 많이 맛을 빼면 나중에 간을 해도 영 맹맹하다. 20~30분 정도 물에 담갔다가 미역을 조금 떼어 맛을 본다. 짭짤하다 싶으면 그때부터 요리하면 된다. 다진 마늘로만 양념한 뒤 기름에 볶고 참기름 똑 떨어뜨려 섞어 먹는다. 이때 당근, 피망, 양파, 쪽파, 맛살 같은 것을 길쭉하게 준비해 넣어도 맛있다. 미역줄기는 잡채에 넣어도 매끌매끌 맛과 색이 잘 어울린다. 풋고추, 오이, 양파, 깻잎, 데친 콩나물 등을 넣고 무쳐 먹어도 맛있다. 새콤달콤한 양념과 잘 어울리고, 고춧가루를 살짝 곁들여도 좋다.

    개운한 굴국에 구수한 매생이 한 국자

    이번엔 매생이 얘기를 해보자. 지금은 건강하고 맛좋은 식재료로 유명하지만, 한때 매생이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김에 붙어 자라는 습성 때문이다. 오랫동안 어부들은 매끈하고 모양 좋은 김을 만들고자 김 양식장에서 매생이를 일일이 뜯어버리곤 했다. 그러던 매생이가 스스로 양식 대상이 된 건 2000년 즈음, 매생이의 맛과 건강상 효능이 알려진 뒤부터다. 

    나는 매생이를 부침개로 처음 만났다. 축축 처지는 것을 젓가락으로 수습해가며 겨우 한입 먹었는데, 물렁하고 질척하고 뜨거웠다. 한 김 식은 다음 죽죽 찢어가며 먹으니 비로소 특유의 구수한 맛이 느껴졌다. 알고 보니 매생이전 반죽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매생이를 가위로 잘게 자른 뒤 가루 재료를 조금씩 넣어가며 엉김 정도를 살펴야 한다. 너무 질면 부침개가 처진다. 그렇다고 반죽이 되직해질 만큼 가루를 넣으면 부침개가 떡처럼 단단해져 매생이 특유의 부드러움을 맛볼 수 없게 된다. 

    매생이 특유의 순하면서도 개운한 맛을 즐기기엔 국물요리가 제격이다. 멀겋게 끓인 된장국에 매생이 두어 숟가락을 풀면 맛이 확 달라진다. 고기나 뼈로 낸 국물이든, 멸치로 낸 국물이든 매생이는 어디에나 살랑살랑 잘 어우러진다. 그중 최고는 매생이 굴국이다. 개운하고 달큰한 국물의 바탕이 되도록 무를 푹 끓이고, 구수한 향과 진한 감칠맛을 내는 굴을 넣어 살짝 익힌다. 마지막에 개운함과 잔향을 선사하는 매생이를 한 국자 넣은 뒤 바로 불을 끄고 살살 푼다. 이때 매생이를 뭉치지 않게 하려고 많이 휘저으면 음식이 지저분해지니 덩이가 풀어질 정도로만 젓는다. 만둣국, 떡국, 칼국수 등에 매생이를 넣을 때도 요리가 완성된 뒤 넣고 불을 끈 채 살살 저으면 된다. 매생이는 죽이나 라면에 넣어도 좋다. 생생한 매생이를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바다내음 향긋한 무침으로 먹어도 그만이다. 채소나 파스타를 볶을 때도 조금씩 넣으면 향이 더해진다. 

    매생이를 손질할 때는 반드시 체에 밭쳐 물에 헹궈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물에 줄줄 흘러가는 매생이를 결코 잡을 수 없다. 잘 헹군 매생이는 한 번에 먹을 만한 분량으로 나눠 냉동 보관하면 된다. 요즘엔 동결 건조한 ‘매생이 블록’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동결 매생이도 생매생이와 마찬가지로 요리 마지막에 넣으면 금세 부드럽게 풀어지며 음식의 향과 맛을 더한다.

    톳과 깨 버무려 톡톡 깨어 먹는 맛

    톳을 넣고 지은 가마솥밥. [GettyImages]

    톳을 넣고 지은 가마솥밥. [GettyImages]

    계절이 봄으로 바뀌면 바다에서는 톳이 나온다. 이맘때 바닷가 시장에 가면 바구니에 철철 넘치게 담은 것도 모자라 시장 바닥까지 뒤덮은 톳을 볼 수 있다. 크게 자란 톳은 다발 길이며 풍성함이 무성한 수양버들 저리가랄 정도로 넘실넘실하다. 

    톳을 사면 손질부터 해야 한다. 크게 자란 톳은 줄기가 억셀 수 있으니 잔가지만 훑어낸다. 가지가 자란 반대 방향으로 훑으면 쉽다. 손으로 주물럭거려 보면 질긴 부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줄기라고 해서 다 버리지 말고 억센 부분만 떼어낸다. 

    손질을 마치면 커다란 냄비에 물을 팔팔 끓여 톳을 데친다. 톳은 끓는 물에 빠지자마자 청록색으로 예쁘게 변한다. 뭉치지 않게 휘휘 저어 골고루 녹색으로 변하면 바로 건져 찬물에 씻는다. 검붉은 물이 빠지며 점점 맑은 물만 남는다. 체에 밭쳐 물기를 빼두면 일을 절반은 한 것이다. 

    톳은 비린내나 짠물 맛이 연하다. 향도 은은하다. 신기한 것은 이 무심한 톳이 양념을 만나면 만 가지 맛을 낸다는 점이다. 초장에 찍거나 버무려도 좋지만 톳의 개성을 고려해 액젓이나 된장에 한번 무쳐 보길 권한다. 톳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물기를 꼭 짠다. 빨간 고추, 청양고추, 대파를 잘게 썰고, 마늘을 다져 넣는다. 까나리나 멸치로 만든 맑은 액젓을 조금씩 부어 버무리면서 간을 본다. 설탕을 아주 조금 넣으면 감칠맛이 좋아지고, 고춧가루를 살짝 곁들여도 좋다. 마지막으로 통깨를 듬뿍 뿌려 섞는다. 참기름을 넣으면 향이 좋아지나 액젓의 낭창한 맛이 줄어든다. 

    이렇게 버무려 찬 곳에 한숨 뒀다가 밥반찬으로 먹는다. 양념 맛이 어우러지며 처음 버무렸을 때와 다른 새로운 맛이 난다. 거짓말 조금 보태 한 젓가락에 한 줌씩 먹게 된다. 목구멍 가득 채워 넘어가는 매끈하고 짜릿한 맛에 뜨거운 밥이 따라가기 바빠진다. 톳과 깨를 톡톡 깨어 먹는 맛 또한 놓칠 수 없다. 톳밥도 별미다. 생톳을 깨끗이 다듬어 넣어도 좋고, 데친 톳으로 밥을 지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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