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호

‘집콕’에도 출산율 떨어진 진짜 이유[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출산의 적은 산화스트레스

  • 난임전문의 조정현

    입력2021-04-15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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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칙적인 운동은 산화스트레스를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 [GettyImage]

    규칙적인 운동은 산화스트레스를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 [GettyImage]

    모든 것은 지나간다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듯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위협이 1년 넘게 지속되다보니 매일 마시는 커피처럼 우리 삶에 스민 ‘코로나 스트레스’는 출산율마저 더 떨어뜨린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으로 인해 우리나라 출생자 수가 10%나 줄었다는 통계치가 나온 것이다.

    2020년 한국의 출산율은 0.8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에 머물렀다. 지난해 태어난 신생아가 27만 명에 그쳤다. 코로나19 사태가 경제엔 치명상을 입혔지만 출산율은 오를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집콕(집에서만 생활) 선호도가 높아지면 젊은 부부의 합방 기회가 늘어나 임신과 출산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리라고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아니올시다’였다. 그 이유가 뭘까.

    그들의 기저(基底)에는 무력감, 실망감, 우울감, 고독감 같은 감정들이 깔려 있었다고 본다. 바깥을 자유스럽게 돌아다닐 수 없는 갑갑한 상황, 직장에서의 해고, 자영업의 개점휴업, 수입 감소 등 코로나 사태가 야기한 문제들이 막연한 불안감으로 엄습해오면서 소소한 일상에서 느끼던 행복한 감정을 맛볼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내 몸 망치는 산화스트레스 청소법

    음주는 체내에서 산화스트레스가 강해지도록 자극한다. [GettyImage]

    음주는 체내에서 산화스트레스가 강해지도록 자극한다. [GettyImage]

    그런 처지가 1년 이상 반복됐으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터. 생물학적 관점에서 스트레스는 ‘외부에서 가해진 힘(상황)에 대한 생명체의 반응’을 말한다. 심리학에서는 ‘긴장감과 압박감을 느끼는 감정 상태’를 일컫는다. 사람들은 흔히 몸이 피곤한 것보다 마음이 고달픈 것이 훨씬 더 힘들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마음보다 몸이 먼저 스트레스를 받는다. 몸 안의 세포가 1차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활성산소라는 물질이 다량 생겨난다. 활성산소란 철근에 생기는 녹과 같다. 녹슨 철근으로 빌딩의 골조를 만들 순 없다. 물론 철근에 미리 기름칠을 해주면 녹스는 것을 방지할 수 있겠지만 매번 그러긴 쉽지 않다.

    쉽게 설명하면 우리 몸을 녹슬고 늙게 하는 주범은 산화스트레스(Oxidative stress, 이하 OS)다. OS는 활성산소를 함유한 산화전구물질과 이를 막는 항산화물질의 불균형으로 나타난다. 몸을 자꾸 움직이고 규칙적인 운동을 거듭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럴 때는 OS가 생겨도 세포 내 항산화효소들(SOD, GPX, GSR)이 말끔히 제거해주기 때문이다. 집에서든, 밖에서든 비타민C, 비타민E, 베타카로틴, 셀레니움, 아연, 글루타치온, 타우린 같은 항산화물질을 다량 섭취해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몸에 흡수된 항산화물질은 OS를 즉각 청소한다. 반면 만성피로가 해소되지 않은 채 짜증 나는 일상이 장기간 이어질 경우 인체의 자동 청소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



    몸에서 OS가 강해지게 만드는 자극은 비만, 흡연, 음주가 대표적이다. 무엇보다 우울한 감정 상태나 교감신경의 지배를 받는 긴장된 몸에서 OS 강도가 더 높아진다. 그러다 보면 생식력을 떨어뜨리고 임신을 방해하는 몸으로 악화할 수 있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OS 수치가 올라갈수록 아내와의 로맨틱한 밤을 멀리하고 싶어지고, 애인과의 만남이 귀찮아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몇 년 전 41세 여성이 필자에게 진료를 받으러 왔다. 결혼 3년차인데 아기가 생기지 않는 것이 걱정돼서다. 그는 이미 여러 병원에서 시험관아기시술(IVF)에 도전했다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검사결과, 왼쪽 난소에 지름이 2.5cm 정도 되는 자궁내막증 혹이 있고 혹 사이에 몇 개 안 되는 난포가 있었다. 배란을 유도했지만 난포가 자라지 않아 이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난포가 자라더라도 난자를 채취하기 힘든 여건이었다. 생리를 두세 달에 한번 하고, 배란 주기도 일정치 않았기 때문이다. 알코올경화술로 자궁내막증 혹의 크기를 줄이고, 자궁경으로 자궁 내 폴립(혹 모양의 작은 돌기)도 없앴지만 임신을 성공시키기까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는 전문직 여성이었다. 과묵할 정도로 말수가 적어 묻는 말에 낮은 목소리로 겨우 한마디 하는 게 전부였다. 아래로 내리깔고 있던 눈을 한 번씩 들 때면 눈썹 사이 내천(川) 자의 세로 주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에게 스트레스는 생활을 짓누르다 못해 생식력까지 떨어뜨린 주범이었다. 이렇게 스트레스가 심한 여성도 IVF로 임신할 순 있지만 임신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군에 속한 여성을 만날 때면 그들에게 많이 웃으며 수다를 떨게 하는 편이다. 여성에게 수다나 웃음은 스트레스를 날리거나 잊게 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어서다.

    실제로 OS가 쌓이는 상황이 지속되는 경우 자궁내막증이나 다낭성 난소 증후군, 원인 미상의 난임, 습관성 유산, 임신 중독증 같은 산부인과 질환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OS에 노출되면 배란이 일어날 때 난소 상피세포의 DNA가 손상될 수 있다. OS 강도가 높으면 DNA 손상에 의해 난소암이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몸과 마음이 쾌적한 상태에서는 항산화물질이 OS를 거뜬히 물리치고 막아줄 수 있다.

    여성의 몸은 교감신경의 지배를 받으면 생식기능이 떨어지고 자율신경계의 불균형이 일어날 수 있다. 뇌 시상하부는 자율신경계뿐만 아니라 우리 몸의 주요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는 기능을 도맡는 중요한 부위로,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친다. 여성이 남성보다 감정에 잘 휘둘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배란이 규칙적으로 진행되고 임신을 하지 않았을 때 주기적으로 생리혈이 배출되는 과정은 시상하부·뇌하수체·난소에서 호르몬 자극과 반응이 유기적으로 작용해 일어난다. 하지만 극심한 스트레스와 외부 충격을 받으면 시상하부의 정상적인 조절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여성이 하혈 혹은 생리불순을 오랫동안 겪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스트레스 잊고 싶다면 ‘믿고 사랑하라’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몸속에 OS가 쌓이면 정자는 ‘안녕’할까? 최근 미국 메릴랜드대 의대 연구팀이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내놨다. 스트레스가 공포와 불안을 가중시키면 정신건강은 물론 남성의 정자 구성에까지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스트레스 수치가 만성적으로 높아져 수개월간 지속될 경우 정자의 RNA 함량에서 현저한 변화가 나타난다고 한다. 아버지의 스트레스가 정자로 옮겨가 태아의 뇌 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리비도(성욕) 저하는 더 나은 자손을 낳기 위한 인체의 합리적인 대응이 아닌가 싶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은 스트레스와 공존해 왔다. 스트레스가 없는 삶을 꿈꾸기보다 스트레스를 잊을 만한 나만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 해법은 아들이 가져온 100점짜리 시험지일 수도 있고, ‘나는 할 수 있다’는 마음과의 대화일 수도 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법. 오늘은 탐탁지 않지만 내일은 오늘보다 훨씬 더 나아지리란 것을 믿어야 한다. 마음의 본체는 심장이 아니라 뇌다. 사랑하는 마음도, 사랑 행위도 모두 뇌 사령탑에서 관장한다. 무엇이든 마음먹기 나름이고 생각하기 나름이다. 사랑은 행복할 때 일어나는 기적이 아니다. 고통과 스트레스가 번식한 삶의 틈새에서 피어나는 꽃이요, 우리를 숨 쉬게 하는 숨통이다. 스트레스가 지속된다고 해도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걸 잊거나 잃어서는 안 된다.


    조 정 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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