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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은 미래를 내다보는 귀신이었다”[경제사상가 이건희 탐구 ⑱]

“소프트웨어 개발자 1만 명을 키워라”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이건희 회장은 미래를 내다보는 귀신이었다”[경제사상가 이건희 탐구 ⑱]

  • ● 사업 성공은 운(運), 근(根), 둔(鈍)에 달렸다
    ● 오늘날 ‘ESG 경영’도 내다본 안목
    ● 늪에서 빠져나오겠다는 절박감
    ● 슈퍼컴퓨터 도입한 사연
    ● 기자들에게 “종이가 없어질 것이다”
    ● ‘와이프 선물 챙겨오라’며 돈을 준 이유
1978년 해외사업추진위원회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이 이병철 선대 회장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삼성 제공]

1978년 해외사업추진위원회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이 이병철 선대 회장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삼성 제공]

그동안 연재한 ‘이건희와 미술’편을 접고 다시 ‘업의 개념’ 편으로 돌아가 보자.

요즘 창업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이 높은데 과연 사업에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병철 회장은 자서전 ‘호암 자전’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업이란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의욕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제 아무리 수익성이 높은 사업일지라도 그것을 발전 확장시켜 나갈 능력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시기(時期)와 사람, 거기에 자금이라는 3박자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성공을 기약할 수 없다.’

의지나 능력도 중요하지만 사업 성공의 요체를 ‘때와 사람, 돈’ 이라는 3요소로 간명하게 짚은 호암의 통찰력이 놀랍다. 특히 ‘때’를 안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그런데 이건희 회장은 자신의 책에서 선친의 이런 생각을 더욱 개념화시킨다. 일을 대하는 태도와 철학을 매우 간명하면서도 본질을 담은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데. 주목되는 점은 끊임없는 인간의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업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책에서 인용).



“사업에 성공한 사람을 놓고 간단히 운 좋은 사람이라고 평하는 경우가 있지만 사업을 해본 사람은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성공하려면 그에 값하는 남다른 노력이 있어야 하고, 수많은 고난을 극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체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친은 사업 성공의 요체로 운(運), 근(根), 둔(鈍) 세 가지를 꼽으셨다. 내 나름의 해석을 보탠다면 운이란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데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운의 이면에는 남모를 고뇌와 노력이 숨어있다. 근이란 고객의 신뢰를 얻어 내기 위한 끈기와 집념을 의미하고, 둔은 잔꾀를 부리지 않고 기본에 충실한 자세를 의미한다. 나는 선친이 말씀하신 은, 근, 둔을 염두에 두면서 사업하는 마음가짐을 다음과 같이 정해두고 있다.

초심(初心)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 일가가 2010년 1월a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전시회(CES) 2010’을 참관하고 있다. [삼성 제공]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 일가가 2010년 1월a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전시회(CES) 2010’을 참관하고 있다. [삼성 제공]

먼저 사업 초기에 가졌던 초심(初心)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다.

나는 기업인이 잠시의 성공이나 실패에 흔들리면 큰 성공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업의 호‧불황 때마다 내가 이 사업을 왜 시작했는지를 자문하면서 초심을 다시 새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둘째는 일시적 이익보다는 신용을 얻으려고 해야 한다. 어떤 고객도 좋은 품질과 친절한 서비스를 원하지 불량품이나 불친절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고객에게 한번 신용을 잃게 되면 아무리 좋은 품질, 싼 가격으로도 발길을 되돌려 놓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일본의 기업인들을 본받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들은 고객을 향해서는 발도 뻗지 않는 사람들이다. 셋째는 사람이다. 나는 사람을 소홀히 하는 기업은 오래 가지 못한다고 본다. 기술 발달이 자동화를 실현하고 첨단 컴퓨터가 시스템화를 불러온다 해도 일의 중심은 언제나 사람이다. 나는 경영자로서 사람을 소홀히 해서 얻은 돈은 무의미하며 부끄러운 돈이라고 생각한다.”

사업이 힘들 때 왜 내가 이 업을 시작했는지 초심으로 돌아가 보고, 일시적 이익 이전에 고객에 대한 신용을 먼저 생각하며, 사람을 소홀히 해서 번 돈은 ‘부끄럽다’고 말하는 고인의 마음가짐은 ‘돈’에 끌리는 것이 아니라 ‘업’에 끌려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은, 근, 둔이 ‘업의 태도’를 개념화한 것이라면 ‘업의 개념’은 업의 본질을 파악하라는 개념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핵심 역량에 대한 파악’이다. 그렇다면 ‘핵심 역량’이란 무엇일까. 고인의 말이다(책 중 ‘핵심역량과 업의 개념’).

“핵심 역량이란 경쟁 회사들이 쉽게 따라 올 수 없는 고유한 역량을 말한다. 과거 우리나라는 핵심 역량이 없이도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선진국에 비해 기술 수준은 뒤지지만 낮은 인건비와 저(低)가격의 이점을 살려 수출을 늘려 왔고 국내 시장이 개방되지 않은 덕을 보았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런 방식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 최근 수년 동안 국내 제조업 인건비는 생산성을 앞지르며 가파르게 상승했다. 게다가 선진국의 덤핑 규제는 날로 강화되고 있으며, 국내 시장도 속속 개방되고 있다. 바야흐로 세계적인 무한 경쟁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급속히 진전되는 정보화 추세에 따라 머잖아 소비자들은 안방에 앉아서도 세계 곳곳의 상품 정보를 얻게 되고, 언제 어디서나 세계 최고 물건을 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서 최고만이 살아남는 새롭고도 냉혹한 또 다른 경쟁 시대를 엿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 기업에 요구되는 중요한 것이 바로 경쟁사가 쉽게 따라 올 수 없는 고유한 역량, 즉 핵심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이 핵심 역량은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일수록. 그리고 단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일수록 강한 경쟁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핵심 역량이란 것은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다시 고인의 말이다.

“핵심 역량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연구 노력과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회사가 추구하는 업(業)의 개념과 회사가 가진 강약점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그 업이 나아갈 방향에 맞게 그리고 그 업에 맞는 회사의 강점만을 살려서 제대로 연구하고 투자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나는 삼성그룹의 모든 회사에 업의 개념을 다시 한번 정립하고 회사의 강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해 보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 간단히 말해 자기 자신의 모습부터 제대로 알자는 것이다. 자기 회사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해서 한계 사업이나 적자사업 같은 약한 부분은 과감하게 잘라내고 유망한 분야에 힘을 집중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핵심 역량을 키우는 지름길이다.”

ESG 경영도 내다보았다

요즘 기업들마다 친환경(Environment), 사회적 책임경영(Social), 투명한 지배구조(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 ESG경영이 화두다. ESG는 개별 기업을 넘어 한 국가의 성패를 가를 키워드로까지 부상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은 이미 20여 년 전부터 이와 비슷한 것을 말하는데, 어떤 당위나 도덕적 명분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 원가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상상력으로 가치 경영을 설명하고 있어 매우 현실적으로 들린다.

“기업 경영에서 원가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시대 변천에 따라 원가 개념도 전통적인 제조원가에서 목표원가로, 목표원가에서 미래지향적인 가치원가로 바뀌고 있다. 전통적인 제조원가 예를 들어보자. 1리터 물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100원이고 여기에 마진 5원을 붙여 105원에 판다고 하면 제조원가는 100원이다. 마진율 5원은 최소한 그 정도는 남겨야 생존할 수 있다거나 경쟁사에서 그 정도 받고 있다거나 하는 것들을 참조해서 결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제조 원가는 만들기만 하면 팔리던 시절에나 적합한 개념이다. 경제성장 속도가 둔화되고 소비자들의 욕구 충족이 중요해지면 원가개념도 바뀐다. 여기서 목표원가 개념이 등장한다. 시장조사를 해본 결과 소비자가 원하는 값은 (105원이 아니라) 100원인데 기업입장에서는 최소 5% 이익은 남겨야 생존할 수 있다고 할 때 제품 원가는 95원을 넘어서는 안 된다. 이때 95원이 목표원가가 된다. 그런데 생산 비용이 100원이 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설계, 제조, 마케팅 등 회사 전 부문이 합심해서 100원의 제조원가를 95원으로 떨어뜨려야 한다. 다시 물을 예로 든다면 생산부서에서 수소와 산소를 결합시켜 물을 만드는 방식대신 지하수를 퍼 올리는 방식으로 바꾼다든지, 판매 부서에서 광고비를 줄이는 등의 방법을 강구해야하는 것이다.”

고인은 여기서 더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앞으로 시대는 목표원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가치 원가‘ 개념이 제품 판매가에 적용될 것”이라는 것이다.

“(가치원가란) 말 그대로 고객들이 그 제품에 얼마만한 가치를 인정하는가를 따져 판매가를 책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해가 심한 지역에서는 수돗물을 그대로 먹을 사람이 많지 않다. 이런 환경에서 만약 땅속 깨끗한 물을 퍼 올려 95원에 식수를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있다면 이 회사는 굳이 5% 이익률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100원이 아니라 200원에 물을 팔아도 고객들은 기꺼이 그 물을 사먹게 된다. 게다가 물 속에 건강을 증진시키는 미네랄이라도 섞여 있으면 300원을 받아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미래 경쟁은 이처럼 원가가 아닌 가치의 경쟁이다. 같은 재료로 만들더라도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만들어야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한발 앞서 알아내고 소비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물건을 만든다면 그 기업은 원가 부담에서 어느 정도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내건 ‘가치 경영’이야말로 요즘 말하는 ESG와 상통하는 개념 아닌가. 친환경적이고 사회적인 책임감을 갖고 지배구조까지 투명한 기업 활동을 소비자들에게 알리고 설득할 수 있다면 해당 제품은 원가 부담에서 자유로운 시대가 왔으니 말이다.

늪에서 빠져나오겠다는 절박감

이건희 회장은 섬유(제일모직)나 설탕(제일제당)에 집중됐던 삼성의 핵심역량을 전자업으로 바꾸었다. 취임 직후 제2창업을 선언하면서 ‘관리의 삼성’을 ‘기술의 삼성’으로 바꾸겠다면서 더 이상 투입과 산출에 집중하는 리더십은 안 된다는 거였다. 1993년 1월 사장단 회의에서 한 말이다.

“지난 3년간 불경기가 왔기 때문에 경기 사이클상 호경기가 올 것이다. 모든 자금과 인력을 기술 투자에 집중하라. 그동안에는 삼성의 기술력이 약했기 때문에 팔고 싶어도 팔 것이 없었고 구색도 안 맞았다. 호경기가 오지 않아도 기술 투자는 경영에 계속 남는 것이다. 언제 해도 해야 되는 것이고 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다. 늪에서 빠져나가겠다는 절박한 생각으로 해보자.”

이어 조목조목 구체적인 지시를 내린다.

“중장비의 경우 유압기 정도의 소극적인 국산화로는 안 된다. 각종 수입 부품을 세밀히 분석해서 적극적으로 국산화하라. 지게차의 경우 현재 국산화율이 70%인데 95%까지 대담하게 올려라. 이런 노력이 없으면 영원히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없고 언제 회사 문을 닫느냐 하는 것만 결정할 일이 남게 된다. 공해 문제로 전기 동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전기부분 국산화 등 이것저것 자꾸 저지르고 키워라…상용차를 국산화하는 과정에서 적자가 났다고 너무 신경 쓸 일 아니다. 경영을 잘못했다고 사기 죽을 필요 없다. 어떤 면에선 용기 있고 잘한 것이다. 향후 몇 년간 적자를 감수 하더라도 기술이 축적 발전되고 더 이상 일본에 의지하지 않을 정도가 될 수 있도록 국산화에 더 신경 쓰라.”

이 회장의 기술 중시 선언은 어떤 면에서는 기존 리더십에 대한 단절을 의미했다. 그것은 곧 아버지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 아버지 리더십에 익숙했던 사람들과의 단절이기도 했다. 조용상 전 삼성JAPAN 대표이사의 말을 곱씹어보면 이런 분위기가 느껴진다.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마음이 들긴 하지만 저는 오리지널 ‘관리 출신’이란 프라이드가 강했습니다. (삼성 내 관리 배출의 산실인) 삼성물산이 먼저고 반도체나 전자는 ‘세컨드 컴퍼니’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회장이 취임하면서 그룹 중심 업종을 물산이 아닌 전자로 택했습니다. 관리부서의 힘을 빼고 전략·마케팅·영업 부분에 힘을 실어준 거죠.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려면 세계적 수준의 보상을 해야 한다면서 몇 백만 달러씩 들여 이 분야 인재를 데려오고 파격적인 포상을 했습니다. 기존 질서에 익숙해있던 사람들 중에는 당연히 배 아파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슈퍼컴퓨터를 도입한 사연

박정옥 전 에스원 대표는 삼성전관(삼성SDI 전신)에서 종합연구소장, 삼성 비서실에서 기술팀장 등을 역임하면서 삼성의 기술 발전을 함께한 산 증인이다. 순간수상방식 브라운관을 직접 개발한 엔지니어이기도 한 그는 삼성의 성장 원동력은 이회장의 기술 중시 경영이었다고 단언한다.

“회장은 ‘기술, 기술’을 외쳤지만 직원들이 잘 따라 오지 못하고 있다며 답답해 하셨습니다. 그러자 어는 날, 아예 비서실에 기술팀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품질 안전팀, 전산팀, 연구개발팀 등으로 흩어져 있던 조직을 통폐합해 기술자들을 한 곳으로 모은 거죠. 이때 진대제, 송문섭, 장준호 등 미국 스탠포드대 출신의 막강 멤버들이 모여 들게 됩니다.”

그는 이회장의 신경영 선언 2년 전인 1991년부터 비서실 기술팀장으로 일했다.

“회장은 무엇보다 일본을 따라 잡기 위한 실천 사항을 정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기술 수준을 빨리 선진화시키기 위한 평가와 예측을 강화하고 생산성을 조목조목 따져본 뒤 선택과 집중 전략을 폈습니다.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준 거죠.”

그러면서 회장의 대표적인 실천 사례로 ‘슈퍼컴퓨터 도입’을 들었다.

“당시 국내에 있던 슈퍼컴퓨터는 기상청에 하나, 무슨 대학교에 하나 두 대 밖에 없었습니다. 그걸 들여오라고 한거죠. 막상 들여오자 어떻게 활용하라는 특별한 지시나 주문도 없이 ’삼성종합기술원에 갖다 주라, 갖다 주면 잘 갖고 놀 것이다' 라고만 하셨습니다. 회장의 그런 모습은 직원들에게 최대한 자율성을 주겠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박정옥은 회장이 아예 1991년 3월부터는 신임 임원들에게 기술 중시 경영 교육을 시키기도 했다며 이렇게 전했다.

“기술을 경영의 핵심요소로 인식해야 한다면서 ‘비(非)기술자는 기술을 알고, 기술자는 경영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낙후된 기술 수준을 조기 선진화하는 것, 이게 경영의 최우선 과제이며 이것이야말로 기술 중시 경영이라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기술자들을 끊임없이 독려했습니다. ‘99.999%에 만족해서도 안 되고 100%여야 된다, 99%까지 왔으니까 다 왔다고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프라이드가 없는 사람들이다. 자존심이 있으면 그럴 수가 없다’면서 삼성의 기술자로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수차례 당부했습니다.”

그는 회장이 칭찬이나 질책보다는 ‘더 나아가라’는 것을 강조했던 주마가편(走馬加鞭)형 리더 스타일이었다고 했다.

“1992년도에 1사1품에 대한 보고가 있었습니다. ‘한 가지라도 세계 시장을 석권할 수 있는 초일류 상품을 만들라'는 회장님 말씀에서 시작된 것이었지요. 각 사별로 보고가 다 끝난 후에는 '각 사업본부가 1개 이상 전략 과제를 만들라’는 새로운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당초 19개였던 과제가 65가지로 늘어났지요. 당시 보고를 모두 들으셨던 회장께서 질책보다는 추가를 하거나 수정을 통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준 일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 회장은 평소에 ‘근거 없는 두려움과 이기주의 때문에 또는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건전한 제안과 건의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기술자들의 아이디어를 독려했다. 그의 책에 나오는 ’퇴계학의 재조명‘이란 글이다.

“조선중기 학자 퇴계 이황 선생은 국력을 키우기 위해 오늘날 고속도로 개념인 신작로(新作路)를 전국에 걸쳐 동서로 다섯 개, 남북의 세 개씩 만들 것과 집집마다 소를 두 마리씩 기를 것을 조정에 건의했다. 당시 조정의 모든 대신들은 한결 같이 반대했다. 큰 길을 내면 오랑캐가 쳐들어오기 쉽다는 소극적이고 패배주의적인 이유에서였다. 만일 그때 조정이 퇴계 선생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우리 역사가 크게 달라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큰 길을 내려면 대형 건설‧토목 장비가 필요하고, 그런 장비를 만들기 위해서는 강한 쇠를 많이 쓰게 되니까 철강업이 발달했을 것이고, 그 결과 병기를 만들 능력이 생겨 임진년에 시작된 전쟁에서 일본에 초전부터 그토록 무참히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철기가 발달하면 국토 개발과 영농기술도 발전하게 되니 농업생산량이 증대했을 것이고 수송수단이 발달하고 큰 길을 따라 물자 수송이 원활해져 경제가 크게 발달했을 것이다. 소를 기르게 되면 사료 생산과 저장법 뿐 아니라 우생학, 수의학 등이 발달하면서 인간과 동물의 공생이라는 공동체 원리가 사회전반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더구나 소를 많이 기르려면 사람들이 말을 타게 되고 쉴 곳을 위해 그늘이 필요하니 식목도 하게 되었을 것이다. 말과 소가 소득을 가져와 목축업이 부흥할 뿐만 아니라 전시에는 기마병을 만들어서 전투력이 높아졌을 것이다.

퇴계학은 나라를 튼튼히 하고 국민 경제를 살찌우는 실용적인 학문으로 현실을 밝혀주는 우리 고유의 자본주의 원리라고 할수 있다. 이런 조상의 지혜가 있는데도 우리는 모든 것을 자꾸만 밖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 국가가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부(富)와 강(强)만 갖고는 안 되며 그 사회를 지탱하는 지도적 원리가 있어야 한다. 특히 새로운 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지각 변동에 비유될 정도의 변화가 닥치는 만큼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퇴계학을 새롭게 조명하고 사회전반에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기술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 경제발전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은연중에 기술자를 ‘장이’로, 상인을 ‘장사꾼’으로 가벼이 여기고 있다. 아직도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서열의식이 뿌리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기술과 경제가 주도하는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발돋음하기가 어려워진다.

국제사회에서는 기술이 뛰어난 나라가 큰소리치며 떵떵거리고 있고 장사 잘 해서 돈 많이 번 나라가 경제는 물론 정치까지 주도한다.

퇴계 선생 역시 이 시대에 살아있다면 ‘신(新)사농공상’을 얘기했을 것이다. 사(士)는 수준 높은 이론으로 든든한 받침이 되어 주고 농(農)은 풍성한 수확으로 국민의 힘이 되어 주면 공(工)은 좋은 기술로 사람들이 편히 살아가는 물질적 환경을 만들어 주고 상(商)은 깔끔한 매너로 국제사회를 멋지게 리드해 나가지 않았을까.”

2011년 9월 22일 삼성전자 반도체 나노시티 화성캠퍼스에서 열린 ‘메모리 16라인 가동식’에서 이건희 회장이 16라인에서 생산된 ‘1호 반도체 웨이퍼’를 전달받고 있다. [삼성 제공]

2011년 9월 22일 삼성전자 반도체 나노시티 화성캠퍼스에서 열린 ‘메모리 16라인 가동식’에서 이건희 회장이 16라인에서 생산된 ‘1호 반도체 웨이퍼’를 전달받고 있다. [삼성 제공]

기자들에게 “종이가 없어질 것이다”

이 회장의 1사1품 확대는 다양한 성과로 이어졌다고 한다. 박정옥 전 에스원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 비서실에는 기술상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대상(大賞)은 반도체가 독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회장의 1사1품 확대 지시가 있었던 1992년에 처음으로 통신 분야가 TDX 교환기로 대상을 받았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삼성 코닝의 퓨전글라스, 완전평면 TV와 같은 세계 최초 제품이 탄생한 거죠. 그로부터 딱 10년 뒤 ‘보르도 TV’가 세계 시장을 석권하게 된 것도 다 그런 배경이 있었죠. 1사1품 정책이 빛을 발하면서 그룹 체질이 완전히 기술 중시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 전 대표는 “회장이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생각하면 ‘귀신이었다’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요즘 벤처업체마다 개발자 확보 경쟁이 치열한데 이미 30년 전인 그 시절에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 1만 명 육성’을 내걸었습니다. 사람을 어떻게 뽑으라는 구체적인 지시까지 했는데 ‘전공을 수학이나 전자, 통계에 제한하지 많고 철학 전공자도 좋다. 그 사람 적성과 맞기만 하면 된다’거나 ‘남자만 한정하지 말고 여자도 뽑아라, 고루한 생각과 편협한 시각으로 개발자 1만 명 육성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그 당시부터 일찍이 디지털 마인드로 무장된 사람이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1991년도부터 '디지털을 경영학적 상식으로 여기고 개념을 파악해야 한다'는 주문을 했습니다. 중앙일보 임원들을 모아 놓고는 '종이가 없어진다는데 준비는 하고 있는가?' 물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디지털 개념을 소개한 서적조차 전무한 시절이었습니다. 유일한 책이 연세대 박규태 교수라고 전자공학 분야 원로가 쓴 '디지틀 공학'이었는데 '디지털'이 아닌 '디지틀'로 제목이 나올 정도로 생소한 개념이었죠.

이건희 회장이 하도 기술, 기술을 강조하니 제가 그 책을 구해 교육을 시켰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디지털이 꽃을 피웠으니 그 정도 안목이라면 ‘귀신급 레벨’ 아닌가요.”

고인은 실제로 생전에 “디지털 기술에 적응하지 못하면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의 글 ‘디지토피아’는 20여 년 전에 쓰여진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다시 한번 예측력에 놀라게 된다.

“1970년대에 바늘 대신 숫자로 시간을 나타내는 전자시계를 차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디지털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것이 전자시계 정도였다. 그러나 요즘 우리는 디지털 제품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컴퓨터는 이미 일상용품이 됐고 레코드판은 CD로 바뀌었으며 액정 TV까지 등장했다.

디지털 기술은 연속적인 전기파로 표현되던 아날로그 신호를 0과 1의 비트(bit)정보로 표현하는 첨단 전자기술이다. 모든 정보를 0과 1로 표시하므로 혼란의 소지가 없다. 그만큼 분명하고 정확하다. 이를 전화기에 활용하면 음질이 깨끗하고 TV에 활용하면 음질과 화상이 깨끗하다.

뿐만 아니라 제품의 개념 자체를 바꾸기도 한다. 지금까지 사진은 카메라에 필름을 넣고 피사체를 찍은 후 사진관에서 인화해서 앨범에 보관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을 카메라에 응용하면 사진을 디스켓에 보관하고 컴퓨터를 통해 얼마든지 편집이 가능하고 출력도 자유롭다. 디지털 카메라 외에도 디지털 비디오 디스크(DVD), 디지털 TV, 지능형 자동차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디지털 문명이 우리 생활에 끼치는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과거에는 물건을 사려면 시장에 가야했고 골프 연습을 하려면 골프장에 가야 했다. 이제는 이런 상식이 흔들리고 있다. 컴퓨터 화면에 떠오르는 물건들을 구경한 다음 선택키만 누르면 시장에 가지 않고도 물건이 배달되어온다. 실내에서 스윙만 해도 푸른 잔디 위를 날아가는 흰 공을 볼 수 있다. 집에 있어도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업무를 체크할 수 있고 업무결과는 통신망을 통해 보내면 된다.

지금까지 갖고 있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도 바꾸어야 한다. 다가올 미래에는 가짜가 진짜처럼 느껴지는 가상의 세계에 살게 될 것이다. 얼마 전부터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인터넷 열풍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대표적 수단이다. 미래는 디지털이 만드는 유토피아, 즉 ‘디지토피아(digitopia)’라 단언해도 좋을 듯하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핑크빛 ‘디지토피아’ 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금 세계 각국은 자국의 디지털 기술과 제품을 세계 표준으로 만들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전개하고 있다. 세계 유수의 전자업체들도 서로 편을 달리하여 다국적 연합군을 구성하고 생사를 건 기술개발, 제품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에게 디지털 사회는 엄청난 재도약의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 틀림없지만 자칫 잘못하면 그나마 1만 불 소득을 가능케 한 산업시대의 경쟁력마저 무용지물로 만드는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과거 산업시대의 우리 경제 발전 전략은 선진국으로부터 사양 산업을 인수하고 기술을 이전받아 모방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기술격차가 20년이상 나는 영원히 뒤쫓아가는 후발국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디지털 분야는 아직 미개척 상태이고 비교적 선진국과 기술격차가 그리 크지 않은 분야이므로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디지털 선진국 진입도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본다. CDMA 등 디지털 분야에서 몇가지 세계를 선도하는 기술은 이러한 전망을 더욱 더 밝게 해준다.

기회는 변화를 선점하고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찾아오고 주어진다. 우리도 디지털 시대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디지털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선정하고 그 육성에 국력을 집중해 나아가야 한다.”

한편 박 전 대표는 이 대목에서 회장의 인간적인 모습도 전하고 싶다고 했다.

“회장은 손님이 있는 경우만 제외하고 팀장들에게 언제든 방에 들어와 ‘거짓말 말고 있는 대로 느낀 대로 이야기 해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많이 하진 못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따뜻하고 정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해외 출장 갈 때 인사를 드리러 가면 꼭 와이프 선물을 챙겨오라고 1000달러, 2000달러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조건이 하나 붙었죠. ‘전자제품 중에 가장 탐나는 것으로 사고 그 이유를 내게 설명하라’는 거였습니다. 귀국해서 사온 선물을 보여드리면 ‘잘 했다’라든지 ‘이 제품은 더 알아보라’는 강평을 하기도 했습니다. 선물 살 돈을 주시면서도 그냥 하시는 게 아니라 인심도 쓰시고 일도 시키고 한 거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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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2021년 8월호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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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은 미래를 내다보는 귀신이었다”[경제사상가 이건희 탐구 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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