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호

에세이

아프리카의 시지프

  • 정상훈 의사·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입력2021-08-0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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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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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옥을 보았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연민과 혐오, 공포와 절망 그 무엇도 아니었지만, 그 전부를 합친 것이기도 했다. 2014년 12월, 에볼라가 창궐하던 서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 한 에볼라 관리센터에 중년 남성이 입원했다. 에볼라 확진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열병의 원인은 알 수 없었다. 고열에 시달리던 그에게 우리는 항생제와 말라리아약, 해열제와 수액을 주었다. 어차피 에볼라는 치료제도 없었다.

    아프리카에는 예방주사도 치료제도 없었다

    다음 날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간이침대에 누운 그 남자는 허리를 뒤로 꺾어 몸이 활처럼 팽팽하게 휘어 있었다. 그의 척추가 부러져 버리지 않을까 두려울 지경이었다. 목도 한껏 뒤로 젖혀서 그의 머리는 침대를 뚫고 땅으로 파고 들어갈 것만 같았다. 힘줄과 핏줄이 튀어나오도록 힘껏 주먹을 쥔 두 팔은, 무엇을 내리치기라도 할 것처럼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그의 모든 근육은 경련을 일으키다 못해 터져버리기 직전이었다. 몸 전체에서는 땀이 솟아나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뜬 그의 얼굴은 지옥문 앞에서 공포에 질린 사람처럼 괴기스럽게 일그러졌다. 그는 목이라도 졸리는 듯 컥컥 소리를 냈다. 그는 자신의 호흡근과 싸우고 있었다.

    이 모든 고통 속에서도 그에게는 의식이 있었다. 그것이 참혹함을 더했다. 임산부는 아이를 낳을 때 자궁이 수축하면서 극심한 통증을 느낀다. 중년 남성은 그런 통증을 온몸의 근육에서 느끼고 있었다. 몇 분 후 화살을 쏘아버린 활처럼, 환자는 경련을 멈추고 털썩 침대에 몸을 떨구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의 관절들은 다시 우두둑 소리를 내며 꺾였다. 그의 몸이 만드는 긴장에 시에라리온 동부에 있는 카일라훈 에볼라 관리센터의 의료진은 질려버렸다.

    나는 그렇게 멍하니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겁에 질려서만은 아니었다. 그의 모습은 전형적인 파상풍 환자의 그것이었다. 그는 에볼라가 아니라 파상풍에 걸린 것이다. 하지만 에볼라 관리센터에는 파상풍 치료제가 없었다. 파상풍균이 일으키는 이 병에는 예방주사와 치료제가 있다. 나는 시에라리온에 들어가기 전에 예방주사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시에라리온에 사는 사람들에게 예방주사란 아직 먼 나라 이야기였다. 에볼라에 맞서기 위해 급히 세운 관리센터는 모든 열병 치료제를 갖출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 진정제를 투여했을 뿐이었다. 내 안에서는 절망감이 다른 감정보다 날카로워졌다.



    병은 가난을 타고 퍼진다

    2014년 인구 600만 명인 시에라리온에서는 약 4000명이 에볼라로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같은 해 시에라리온인의 사망 원인 1위는 무엇이었을까? 암이나 심장병, 뇌졸중 같은 병이 아니다. 바로 말라리아였다. 이 병은 모기가 옮긴다. 그런데 말라리아 역시 엄연히 치료제가 있고 예방약도 있다. 모기장을 쳐서 모기에 물리지 않으면 걸리지 않는다. 충분히 예방 가능한 질병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시에라리온에서는 모기장조차 너무나 귀한 물건이다. 2019년 전 세계 말라리아 사망자는 40만 명에 이른다. 물론 그들 대부분은 가난한 아프리카인들이다.

    2014년 당시 시에라리온에서 누군가 열이 나면 무조건 에볼라 관리센터에 입원하도록 했다. 우리는 이제 ‘선별진료소’라는 용어에 익숙해졌다. 코로나19 의심 환자는 먼저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고, 양성이면 격리병동에 입원한다.

    하지만 에볼라 방역에는 선별진료소라는 개념이 없었다. 에볼라는 유행 초기 치명률이 90%에 이를 정도로 높았고, 이 병은 침, 눈물, 피, 땀, 대소변 등 모든 체액이 감염원이었다. 그러니까 확진 검사 자체가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열이 나는 사람을 우선 에볼라 관리센터에 격리한 다음, 피를 뽑아 검사를 했다. 양성이면 완쾌할 때까지 입원시키고, 음성이면 바로 퇴원시켰다.

    문제는 시에라리온 의료기관들이 거의 붕괴 상태였다는 점이다. 에볼라 유행 초기 정체 모를 ‘괴질’에 시달리던 환자들은 병원으로 몰려갔다. 그곳 의료기관들은 대부분 음압 병동은 말할 것도 없고 격리병동조차 갖추지 못했다. 그들을 치료하던 의료인 2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죽음의 전염병’ 에볼라가 빠른 속도로 퍼지니, 열이 나는 모든 환자를 에볼라 관리센터에 격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에볼라 환자인 것은 아니었다. 그 중년 남성이 입원할 때 우리는 다리에 깊게 팬 상처를 보았다. 파상풍은 주로 흙에 사는 파상풍균이 상처를 통해 몸에 들어오면 생긴다. 우리는 그가 파상풍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어차피 퇴원하더라도 파상풍 환자를 받아줄 의료기관이 없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파상풍에 걸린 남성은 그날 내내 주기적으로 경련을 반복했다. 진정제는 그의 고통을 줄이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파상풍이 일으키는 경련은 점차 숨을 쉬는 데 필요한 근육까지도 침범했다. 경련이 일어나는 몇 분 동안 환자는 거의 숨을 쉬지 못했다. 그의 입술은 파랗다 못해 검게 변했다. 그는 멀쩡한 정신으로 모든 감각을 온전히 느껴야만 했다. 근육이 마비되고 숨이 멎는 고통을.

    인류는 파상풍 치료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시에라리온에서는 그 약을 구할 수 없었다. 나는 고백해야만 한다. 경련에 뒤틀린 남성의 육체는 내 눈에 사람의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금지된 것을 소망했다. 그 육체에 차라리 영혼이 없기를. 고통받는 영혼을 무기력하게 바라봐야 하는 나 역시 인간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그렇게 몇 시간이나 더 숨을 헐떡인 끝에 남성은 숨을 놓아버렸다.

    잠시 비탄과 절망에 빠져 있던 내 머리에 하나의 글귀가 마치 반항하듯 솟아올랐다.

    “경련하는 얼굴, 바위에 밀착한 뺨, 진흙에 덮인 돌덩어리를 떠받치는 어깨와 그것을 고여 버티는 한쪽 다리, 돌을 되받아 안은 팔 끝, 흙투성이가 된 두 손 등 온통 인간적인 확신이 보인다. 하늘 없는 공간과 깊이 없는 시간으로나 헤아릴 수 있는 이 기나긴 노력 끝에 목표는 달성된다. 그때 시지프는 돌이 순식간에 저 아래 세계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바라본다…(중략)…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제신의 소굴을 향하여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더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더 강하다. 이 신화가 비극적인 것은 주인공의 의식이 깨어 있기 때문이다.” (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책세상)

    아프리카에서 만난 시지프(시시포스). 그는 깨어 있는 정신으로 온몸의 근육이 뒤틀리는 고통을 견뎠다. 지상에서 숨을 들이마시기 위해, 대기를 움켜쥐기 위해 싸웠다. 그렇게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죽음에 반항했다. 내 눈에 그는 에볼라 관리센터의 간이침대가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버티고 선 것처럼 보였다. 이야기를 신화로 만드는 것은, 되풀이해서 기억해 내고 그것으로 세상을 해석해서 바꾸려는 인간들의 분투다. 나는 아프리카의 시지프, 그를 기억할 것이다.

    #전염병 #국경없는의사회 #아프리카 #파상풍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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