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을(乙) 처지’ 호소하던 민주노총 택배노조의 갑(甲)질

“과로로 힘들다더니…민노총 조합원, 파업 무기로 택배기사 채용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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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1-09-1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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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수기’ 7월 수입 703만 원, ‘월천 기사’도

    • 민노총 조합원들 “기사 충원하려면 노조원 뽑아라”

    • 노조 간부 “내가 (기사 채용) 면접 봐서 넣겠다”

    • ‘파업’ 무기로 채용 관여, 대리점주 압박

    • 대리점주 운영 포기 요구한 녹취파일도 공개

    • 대리점주 53.7%, “조합원들 조롱‧폭행‧따돌림 경험”

    • 대리점주 협박까지, 진짜 갑은 택배노조

    경기도 김포 장기 지역의 택배대리점주가 8월 30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전국택배노동조합(이하 택배노조)을 원망하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을 계기로 일부 택배노조원들의 전횡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간 택배노조는 택배사와 대리점주 등쌀에 기사들이 희생되고 있고, 철저한 ‘을(乙)’의 처지라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리점주 사망 이후 그 속살이 드러난 것이다.

    ‘신동아’ 취재 결과, 택배노조에 가입한 기사들은 대리점주를 협박하거나, 기사들의 업무강도를 줄이기 위해 추가로 기사를 채용하는 것을 막거나, 노조원으로만 기사를 충원하라고 압박한 사실도 드러났다.

    9월 1일 경기도 김포시 한 택배업체 터미널에 마련된 택배대리점주 분향소 맞은 편 택배 분배 운송 라인에는 노조원들이 배송을 거부한 택배상자들이 가득 쌓여있다. [동아DB]

    9월 1일 경기도 김포시 한 택배업체 터미널에 마련된 택배대리점주 분향소 맞은 편 택배 분배 운송 라인에는 노조원들이 배송을 거부한 택배상자들이 가득 쌓여있다. [동아DB]

    “직장인 보다 덜 번다더니…연봉 1억 달해”

    그간 택배기사들이 ‘상대적 약자’로 보였던 이유는 과로 때문이었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대책위)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에만 16명의 택배기사가 과로로 사망했다. 당시 택배노조는 “택배기사들이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무리를 하다가 사고가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택배기사는 택배회사와 계약을 맺은 개인 사업자다. 이들은 배달 한 건마다 붙는 배달료를 택배회사와 대리점과 일정 비율로 나눠 갖는다. 택배노조는 “실제 기사들이 받는 금액이 너무 적어 과로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택배기사들은 얼마나 돈을 벌고 있을까. 2019년 CJ대한통운은 자사 택배기사의 평균 연봉을 발표했는데, 12개월 이상 근속한 기사들의 연봉만 모아 평균치를 낸 금액이 6937만 원이었다. 세금과 각종 비용을 제한 순소득은 5200만 원이었다. 같은 기간 국내 개인사업자의 평균 연간 사업소득은 4290만 원. 웬만한 자영업자보다 택배기사의 주머니 사정이 나았다.



    그러나 택배노조는 그동안 기사들이 일하는 것에 비해 버는 돈이 적다고 주장했다.택배노조 관계자는 대리점주 사망 사건이 발생하기 전 ‘신동아’ 질의에 “CJ대한통운이 발표한 내용과 실제 택배기사의 급여는 차이가 크다”며 “연간 8000만 원 가량 버는 분도 있지만 보통은 월 450만 원 가량의 매출을 올린다”며 “차량 관리 등 부대비용을 생각하면 실제 수익은 일반 직장인 소득보다 적다”고 했다.

    그러나 대리점주 사망 사건 이후 택배노조가 9월 2일 경기 김포 지역 대리점의 노조 소속 택배기사 11명의 수입을 공개한 결과, 이들의 7월 평균 수입은 703만 원이었다. 가장 고액의 소득을 올린 기사는 7월 한 달간 1062만 원을 벌었다. 7월 평균 수익을 연봉으로 환산하면 8436만 원. 7~8월은 1년 중 가장 배송량이 적은 비수기인 것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연봉 1억 원 가량 될 것이라는 게 택배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알바 배달원 쓰면서 기사 추가 고용 막아”

    이처럼 택배 물량이 늘어나자 일부 택배대리점은 기사들의 과로를 막기 위해 택배 기사 충원에 나서려고 했지만 기존 택배 기사들이 충원에 반대해 무산된 일도 비일비재했다. ‘신동아’가 서울·경기지역 택배 대리점 10여 곳과 전국택배대리점연합회(이하 대리점협회)에 문의한 결과, 대부분의 대리점에서는 “기사들이 추가 채용에 반대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리점협회 관계자는 “기사들 대부분이 택배기사 추가 채용에 반대한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택배물량이 일시적으로 늘어난 것이기 때문에 이 기간만 버티면 된다는 인식이 있다”고 밝혔다.

    택배노조는 이에 대해 “택배기사가 신규 기사 채용을 막는 등 대리점 업무에 간섭하는 경우는 없다”고 밝혔지만 대리점주들의 말은 달랐다. 서울 지역의 한 대리점주는 “신규 기사를 채용하려면 기존 기사들이 맡고 있는 구역을 나눠야 한다”며 “구역의 크기가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노조 소속 기사들은 파업을 무기로 추가 채용을 막으려 한다”고 밝혔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대형 아파트 단지나 오피스텔 밀집지역 등 소위 ‘편하고 돈이 되는 지역’을 담당하는 기사 중 일부는 코로나19로 늘어난 물량을 감당하겠다며 자신이 직접 아르바이트 배달원까지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채용을 막기 위해 기사들이 자비를 들여 사람을 쓰고 있다는 것.

    택배노조도 일부 기사들이 아르바이트 배달원을 쓴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한 택배노조 관계자는 “갑자기 배달하는 물량이 늘어나다보니 어쩔 수 없이 가족이 함께 일하는 분들도 있다. 심한 경우에는 아르바이트까지 구한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파업 무기로 대리점 좌지우지

    김태완 전국택배노동조합수석부위원장이 9월 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서 김포 택배대리점 소장 사망 사건에 대한 택배노조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김태완 전국택배노동조합수석부위원장이 9월 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서 김포 택배대리점 소장 사망 사건에 대한 택배노조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일부 대리점에서는 택배 조가 신규 택배기사 채용에 간섭하는 일도 있었다. 9월 7일 채널A가 공개한 경기도 지역의 한 대리점주와 택배노조 간부의 통화에서는 다음과 같은 발언도 등장했다.

    “노조가 허락하지 않는 사람이 들어오는 순간 전쟁이다. 내(노조 간부)가 (신규 기사 채용) 면접(을) 봐서 내가 넣겠다(채용하겠다).”

    경기도 지역의 또 다른 대리점주는 노조의 채용 간섭에 대해 묻는 ‘신동아’ 질문에 “그건 공공연한 일이다. (일부 택배노조원들이) 채용 등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파업을 하겠다고 하니 노조와 관계된 직원(노조원)만 채용하게 된다”고 밝혔다.

    나아가 택배노조는 대리점에 새 대리점주가 오는 것도 방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리점협회는 9월 2일 “택배노조 간부 A씨가 경기 지역의 한 대리점을 맡게 된 B씨에게 전화를 걸어 ‘대리점주 자리를 포기하라’고 협박했다”며 관련 녹취 파일을 공개했다.

    해당 녹취 파일에서 A씨는 B씨에게 “우리는 새로운 소장(대리점주)을 원하지 않는다”며 “당신이 (소장으로) 오면 우리가 쟁의권을 사용해 일 년 내내 파업을 할 것이니 자신이 있다면 대리점을 맡아라”고 말했다.

    대리점협회에 따르면, 이 통화가 이뤄진 시기는 지난 3월.전화를 받은 B씨는 협박에도 해당 대리점을 맡아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 관계자는 “노조가 원하는 사람이 대리점을 운영하도록 만들기 위해 그런 전화를 했던 것”이라 설명했다.

    택배노조의 이 같은 횡포는 상습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리점협회가 251개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 대표 190명을 대상으로 9월 6~7일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중 102명(53.7%)이 택배노조 간부와 조합원들로부터 대면이나 전화,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등으로 조롱, 폭언, 폭행, 집단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리점협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택배노조 위원장과 집행부 전원이 사과하고 사퇴할 것을 요구했지만 택배노조는 반응을 하지 않고 있다. 택배노조가 마지막으로 발표한 공식 문건은 9월 2일 김포 택배대리점 사망 사건에 관한 자체조사 보고서다. 당시 보고서를 발표하며 택배노조는 “위법성 여부와 무관하게 (해당 사건 관계자들을) 노조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엄중한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며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계기로 노조 차원의 원칙을 수립해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택배 #택배대리점주사망 #조합원들횡포 #신동아



    박세준 기자

    박세준 기자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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