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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소음[에세이]

  • 김경빈 작가

‘존재’의 소음[에세이]

우리 집은 안방의 방음이 유난히 허술해서 옆집 안방 소리가 종종 넘어온다. 그동안의 측(側)간 소음 내용으로 추측해 보면, 옆집에는 부모와 장성한 두 딸과 비교적 어린 아들이 사는 것 같다. 그리 화목한 가족은 아니다. 벽을 넘어오는 건 항상 부모와 자식이 서로에게 내뱉는 악다구니였으니까. 그래도 여태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던 건 금세 잠잠해졌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집에서 사람 사는 소리가 나는 것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3주 전이었다. 밤 11시부터 안방에서 정체불명의 진동 소리가 이어졌다. 스마트폰 진동이라기엔 너무 크고, 안마기 소리라기엔 너무 오래 이어지는 소리였다. 금방 끝날 거라는 생각, 혹시 우리 집에서 나는 소리인가 하는 의심, 옆집에 무슨 일이 생겼나 하는 걱정을 지나 슬슬 화가 치밀었다.

어느덧 자정도 지났다. 무슨 영상을 보는 건지 안방 화장실에선 노랫소리도 들렸다. 이소라의 ‘제발’, 김경호의 ‘금지된 사랑’의 가사가 제법 또렷해서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는 거 아닌가. 경비실에 자초지종을 전했더니 시간이 늦어 옆집에 연락하기 곤란하다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헛웃음이 나왔지만 고생하는 경비원 어르신께 따질 일은 아니어서 직접 옆집을 찾아갔다.

옆집이라고는 해도 마주친 적이 없는 사이였다. 긴 날숨으로 격앙된 감정을 추스르며 초인종을 눌렀다. 현관문 안쪽에서 익숙한 진동 소리와 노랫소리가 들리는데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나를 놀리는 건가? 이 사람이 미쳤나?’ 초인종을 재차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묵묵부답. ‘내가 헐크라면 가볍게 문을 떼어낼 텐데…’ 그런 어이없는 생각마저 들 때쯤 문 너머로 인기척이 들렸다. 곧이어 조심스레 열린 문 사이로 얼굴만 빼꼼히 내민 건 두 딸이었다. “저기요” 하고 쏘아붙이려는 내 말을 가로막은 딸의 첫마디는 뜻밖에도 “시끄러워서 오셨죠? 근데 저희 집에서 나는 소리 아니에요. 아랫집이에요”였다.

층간소음 다툼에 애먼 사람까지 피해

옆 라인의 층간소음이 우리 집까지 흘러든 자초지종은 이랬다. 옆집이 아랫집과 서로 층간소음 문제로 몇 주간 다투었는데, 며칠 전부터 아랫집 남자가 천장에 우퍼를 달아 보복한다는 거였다. 유튜브 콘텐츠로만 보던 층간소음 보복용 우퍼를 진짜 쓰는 자가 있단 말인가. 옆집 딸의 말로는 찾아가도 문을 열어주지 않고 인터폰으로도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초인종 소리에도 선뜻 대답하지 않았던 건, 아랫집 남자가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것으로 생각해서였다.



정확한 건 양쪽 사정을 다 들어봐야 아는 거겠지만, 사실 정확히 알고 싶지는 않았다. 두 집 사이의 다툼으로 애먼 사람이 고통받는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으니까.

성질 같아선 당장 달려가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아내를 위해서라도 괜한 시비에 휘말리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112에 신고하니 금세 경찰관 두 분이 와주셨다. 문제의 그 아랫집을 다녀온 경찰관은 옆집 딸과 비슷한 이야기를 전했다. 문은 열어주지 않고 인터폰으로 자신이 피해자라며 화만 내더라고. 그런데 경찰관이 “윗집이 아니라 다른 집에서 신고가 들어왔어요. 그분들은 아무 관련도 없고 그쪽한테 피해 준 것도 없잖아요”라고 했더니 이내 조용해졌단다. 그 정도면 염치가 있다고 해야 할까, 없다고 해야 할까. 아마 대각선 윗집에까지 우퍼 소리가 들릴 줄은 몰랐겠지. 그날 이후로 여태 무시무시한 진동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염치는 모르겠고 눈치는 조금 있는 것도 같다.

사실 나도 측간, 층간소음의 주범이었던 시절이 있다. 아르앤드비(R&B)와 힙합에 빠져 지내던 중학생 시절엔 틈만 나면 노래를 불렀다. 교실 뒤편에서 부르고, 오락실 한구석 코인노래방에서 부르고, 세 들어 살던 우리 집에서도 불렀다. 부모님이 안 계실 땐 더 크게 불렀고, 자려고 누워서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불렀다. 참다못한 엄마가 이불을 홱 젖히며 조용히 하고 잠 좀 자라던 순간에는 어찌나 부끄럽던지. 놀랍게도 나는 진심으로 노랫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참으로 어리석은 착각이자 오해였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한 교실을 쓰던 친구들과 함께 살던 부모님과 옆집과 윗집, 그리고 아래층 주인집 가족까지 모두에게 온통 죄송스러워진다.

아주 시끄럽지는 않을 것이라는 오해

대학생이 되고서는 코인노래방이나 1시간 결제하면 1시간 서비스를 주던 허름한 노래연습장에서만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라도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힘껏 양껏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갑갑한 마음을 견디기 힘들었다. 코로나19가 생활을 덮친 후로는 노래연습장이나 코인노래방을 가지 못했다. 그러니 힘껏 양껏 소리쳐 노래 부를 기회가 없었다. 집에선 당연히 노래를 부를 수 없고, 버스킹도 금지된 마당에 야외 어디에서든 고성방가는 민폐일 테니까.

그러고 보니 3년 넘게 살았던 고시원에서도 소음 때문에 옆방을 찾아간 적이 있다. 새벽까지 애인과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며 웃고 떠들고 애정행각을 벌이던 610호. 정중히 문을 두드리면 통화 소리만 사라질 뿐 인기척이 없던 610호. 소음을 소음으로 대갚음하는 짓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문에 얼굴을 바짝 갖다 대고 나직한 목소리로 “한 번만 더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면, 그땐 이 문 부수고 들어갑니다”라고 엄포를 놨더니 이후로는 조용했다. 혹시 610호 그놈도 중학생이었던 나와 같은 착각을 했던 걸까. 스피커폰으로 통화해도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을 거라는 착각. 새어 나가더라도 아주 시끄럽지는 않을 거라는 오해.

작정하고 소음 공해를 일으키는 악당들도 있겠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의도치 않게 민폐를 끼칠 때가 많다. 자신이 내는 소음이 타인에게 들리지 않을 거라는 착각, 들린다 해도 아주 작아서 상관없을 거라는 오해. 심지어 작정하고 천장에 우퍼를 단 그 집도 윗집이 아닌 우리 집이 고통받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런 착각과 오해 때문에 때로는 누군가가 피해를 호소해도, 그 말을 온전히 믿지 않기도 한다. ‘예민하게 굴기는’ ‘당신이 과민 반응하는 거야’, 그러면서. ‘그런 소릴 들으면 누구나 보복하겠다’는 생각이 들 것도 같다. ‘너도 똑같이 당해 봐야 알지’, 그러면서.

보이지 않는 틈새 빠져나오는 소리

소리라는 게 참 신기하다. 아무리 꽁꽁 싸매도, 문을 닫고 틈을 막아도, 소리는 새어 나온다. 작고 납작한 몸집이 돼 눈에 보이지도 않는 틈새를 유유히, 유유히 삐져나와 귓바퀴에 머무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진심을 ‘마음의 소리’라고 표현하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표정을 닫아걸고 눈빛을 피해도 느껴지는 마음이 있는 법이니까. 은근히 새어 나오는 마음, 들키고 싶지 않거나 애써 들키고 싶은 그런 마음 말이다.

한 명 한 명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마음을 품은 하나하나의 집이기도 해서 우리는 종종 서로의 소음에 시달린다. 존재의 외벽을 단단히 정비해도 마음의 소리는 기어코 새어 나온다. 좁은 틈새로 작고 납작한 마음의 소리가 슬며시 삐져나와 타인의 좁은 틈새로 다시 흘러 들어간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괜히 신중해진다. 내 이기적인 마음이 누군가의 속을 시끄럽게 할까 봐, 내 기쁨의 환호가 누군가의 곤한 잠을 깨우게 될까 봐. 글을 쓸 때도 손끝이 조심스럽고, 말을 할 때도 입매를 정돈한다. 옆집과 옆집의 아랫집을 다녀온 뒤, 우리 부부는 더 사뿐사뿐 걷는다. 집과 존재의 소음을 줄이는 중이다.

#소음 #층간소음 #이웃 #존재 #신동아

김경빈
● 에세이 ‘서른이 벌써 어른은 아직’ ‘이까짓 민트초코’ 발표
● 前 카카오메이커스 에디터/카피라이터




신동아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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