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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묻는다, 신의와 명예·자유는 무엇인가

[황승경의 Into the Arte] OTT드라마 ‘바바리안’ & 영화 ‘더 이글’

  • 황승경 공연 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로마가 묻는다, 신의와 명예·자유는 무엇인가

  • ● 인사 참사로 시작된 로마 최악 패전史
    ● 아우구스투스의 아픈 손가락 바바리안
    ● 배신으로 끝난 아르미니우스의 영광
    ● 갑자기 사라진 로마 9군단 미스터리
    ● 실族과 9군단 패잔병들의 건곤일척
영화 ‘바바리안’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영화 ‘바바리안’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이탈리아 유학 시절에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찬란한 로마 유적들을 바라보면 2000년을 넘나드는 역사 속 로마인들의 지혜가 느껴졌다. 테베레 강변의 작은 도시국가가 어떻게 이런 대역사를 이룰 수 있었을까.

로마제국은 신분이 낮거나 이민족일지라도 능력이 있다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인재들을 품었다. 덕분에 로마인들은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하고 지중해를 장악해 갈리아(프랑스), 브리타니아(영국), 바이에른(독일)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형성할 수 있었다.

로마인들은 적에게는 잔혹하리만큼 엄격했지만 일단 ‘우리 편’이라고 여겨지면 화끈하고 파격적으로 대우해 상대를 융화시켰다. 로마제국에서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군대였다. 정치·사회적으로 곤경에 빠진 로마인들은 군대에서 반전을 꾀해 입지를 다졌다. 출중한 이민족은 어릴 때부터 로마에 보내 차별 없이 로마제국의 충실한 군인으로 성장시켰다. 비록 출신은 다르더라도 그들이 충성할 조국은 로마였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 때부터 정착된 이 유화 제도는 그러나 독일인 게르만족에게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제도였다. 이는 넷플릭스 6부작 독일 시즌 드라마 ‘바바리안’(2020)에서 볼 수 있다. 반면 로마제국을 담은 영화 ‘더 이글’은 다른 방식으로 로마의 신의, 자유, 명예를 다룬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관객이 판단할 몫이다.

아우구스투스의 아픈 손가락 바바리안

영화 ‘바바리안’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영화 ‘바바리안’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6부작 독일 드라마 ‘바바리안’은 로마제국을 상대로 압승을 거둔 선조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대 로마제국은 게르만 지역 중 남쪽에 위치한 현 바이에른 지역을 맨 처음 점령했다. 바이에른을 지칭하는 ‘바바리아’가 전 게르만 지역을 의미하게 된다. 서기 9년, 게르만 부족 연합은 로마전쟁사에 두고두고 남을 뼈아픈 패전을 안겨줬다. 태평성대 대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한 고대 로마는 이 전쟁으로 3개 군단이 잔악하게 살육당하는 전무후무한 치욕을 경험해야 했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풍요로운 황금시대에 게르만에서 들려오는 로마군 학살 풍문은 일찍이 듣도 보도 못하게 잔혹했고, 이는 로마를 공포에 떨게 했다. 그래서 ‘바바리아’는 ‘야만’ ‘미개’라는 기존 의미에 ‘만행’ ‘잔인’이라는 의미가 추가됐다고 역사가들은 전한다. 당숙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뒤를 이은 아우구스투스(기원전 63~기원후 14)는 병약해서 카이사르처럼 군대를 이끌고 전장을 누빌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충복 아그리파를 전장에 보냈고, 아그리파 사후에는 자신의 양아들들을 전장에 보내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이집트에서부터 동방에 이르기까지 차례차례 전승을 올리지만 문제는 게르만 지역이었다. 그는 카이사르 상속자라는 후광 덕분에 권력을 얻을 수는 있었지만, 그에게 카이사르는 항상 넘어야 할 산이었다. 게르만 정복에 박차를 가한 것도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을 능가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야심만만하게 전쟁을 시작했지만 속절없이 시간과 세금만 쓰면서 허송세월하자 민심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작은 양아들이 전장에서 낙마 사고로 사망하자마자 후일 2대 황제가 되는 큰 양아들 티베리우스까지 보낼 정도로 그는 게르만 정복에 집착했다. 티베리우스의 혁혁한 전공으로 독일 북부 엘베강 유역까지 진출한 로마군대는 13개 군단 10만 명의 대군이었다. 게르만은 50개가 넘는 크고 작은 부족들이 으르렁거리며 난립해 있었고, 로마의 속주로 있으면서도 친(親)로마파와 반(反)로마파로 나뉘어 서로를 극도로 불신했다.



로마 역시 이곳을 완전하게 평정한 것은 아니었다. 게르만 지역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였지만 강력한 군사력으로 제압할 수 있었다. 서기 6년, 발칸반도에서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나자 이를 토벌하기 위해 티베리우스는 직접 8개 군단을 이끌고 발칸반도로 향했다. 예상외로 반란 진압까지 4년이나 걸리자, 아우구스투스는 게르만보다는 발칸에 집중 지원했고, 게르만에서는 정복보다는 현상유지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안정적인 행정관료인 푸블리우스 바루스(기원전 46~기원후 9년)를 게르만 총독으로 임명했다.

예전 아우구스투스는 정치적 계산으로 자신의 딸과 아그리파를 혼인시키려 아그리파를 임신한 아내와 이혼시킨 적이 있는데, 이때 배 속 태아가 바루스의 부인이었다. 개인적인 미안함도 있었지만 시리아 총독 시절에 행정 능력을 입증했기에 아우구스투스는 바루스를 신임했다. 이에 파격적으로 행정뿐 아니라 군사력까지 전권을 위임했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는 바루스가 등골까지 빼먹는 과도한 세금으로 원성이 자자한 냉혈한이란 점을 간과했다. 후일 패전을 책임지고 자결하는 바루스에게는 부관 아르미니우스가 있었다. 드라마 ‘바바리안’ 주인공이 바로 아르미니우스다.

배신으로 끝난 아르미니우스의 영광

아르미니우스는 게르만의 케루스키 부족 족장 아들로 태어났지만 충성 서약의 증표로 동생과 함께 로마에 볼모로 끌려간다. 시작은 인질이었지만 로마는 이들을 진정한 로마인으로 탈바꿈시켰고, 아르미니우스는 시민권뿐 아니라 기사 계급까지 받았다. 역사 속의 아르미니우스는 처음부터 로마에 저항할 심산이었는지도 모른다. 반면 드라마 ‘바바리안’에서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아르미니우스가 겪었을 고뇌와 갈등을 심도 있게 보여준다. 드라마는 아르미니우스(로런스 루프 분)가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더욱 극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그를 바루스(가에타노 아로니카 분)의 양아들로 설정한다. 로마군 지휘관으로 금의환향해 고향에 온 아르미니우스는 오랜만에 가족, 친구들과 해후하지만 배신자로 낙인찍혀 목숨을 위협받는 지경에 이른다. 동족을 징벌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로마군 아르미니우스는 평화를 위해 여러 묘책을 강구하지만 양아버지 바루스에게 평화는 안중에도 없다.

드라마에서는 어릴 적 소꿉친구로 후일 아르미니우스와 혼인하는 투스넬라의 비중이 꽤 크게 그려진다. 독일 여전사로 분한 투스넬라(잔 구르소 분)는 견원지간인 부족민을 일일이 포섭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하며 전장에 참여해 역사적 승리에 일조하기도 한다. 아르미니우스는 우선 합법적인 방식으로 각지에 흩어진 부족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엮었다. 역설적으로 바루스의 무자비한 폭정은 게르만 부족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연결고리로 작용하며 반(反)로마 전선을 만든다. 아르미니우스는 발칸반도로 향한 주력 군대가 저항 세력에 발이 묶여 돌아오지 못하는 지금이 로마군대를 이 땅에서 몰아낼 적기라 판단했다. 울창하고 습한 자연환경을 이용하면 3개 군단(17·18·19군단)과는 해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아르미니우스는 게르만 연합부족들이 토이토부르크 숲에 집결해 봉기한다는 거짓 첩보를 바루스에게 긴히 보고한다. 독일의 지형과 기후에 무지한 로마군은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아르미니우스의 전술에 휘말려 적진 한복판에 밀려들어와 진퇴양난에 빠진다. 바루스는 행정관료이지 무관은 아니다. 더구나 전투 경험이 없는 초보 군인이 대다수였다. 절대적인 수적 우위에도 모든 로마군의 공격은 처참히 실패했다. 드라마는 영광스러운 첫 승리로 자유를 얻는 게르만 민족의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한다. 여기에서 시즌1은 끝나고 시즌2의 이야기가 기다린다.

영화 ‘바바리안’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영화 ‘바바리안’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게르만 부족연합군은 2만 명 가까이 되는 로마 병력뿐 아니라 주둔지 인근 민간인들까지 끔찍하게 살육하며 설욕한다. 아우구스투스가 20년 동안 차근차근 진행시켰던 게르만 정복의 꿈은 물거품이 됐고, 로마의 명예는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아르미니우스는 토이토부르크 숲 대승 이후 물과 기름 같은 부족들을 동맹으로 규합하지는 못했지만 이후 지속된 로마의 대대적인 공세를 맹렬하게 막아냈다. 서기 16년, 아르미니우스는 로마군을 라인강 이남으로 완전하게 철수시킨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던가. 서기 21년, 그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걸 두려워한 친족들에 의해 그도 암살되는 운명을 맞는다. 그의 왕좌는 친로마파였던 그의 조카에게 돌아가고 그의 왕국은 다시 로마와 화친을 맺는다. 이 때문에 외세 침략에 대항한 아르미니우스의 공적은 역사 속에 묻혀버린다. 아르미니우스의 이야기가 역사에 조망된 것은 19세기에 불어닥친 독일 민족주의 열풍덕분이었다. 독일 지식인들은 불굴의 저항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그의 이야기로 문학, 연극, 회화 등의 많은 예술 작품에 등장시켰다. 그러나 나치 시기까지 활발하게 이어진 그에 대한 작품은 나치의 멍에가 씌워져 잠시 멈춰졌고, 75년 만에 자유라는 주제로 드라마 ‘바바리안’으로 다시 찾아왔다.

로마제국, 나치…황금 독수리 휘장의 명예

영화 ‘더 이글’ 스틸컷. [Focus Features 제공]

영화 ‘더 이글’ 스틸컷. [Focus Features 제공]

영화 ‘더 이글’ 스틸컷. [Focus Features 제공]

영화 ‘더 이글’ 스틸컷. [Focus Features 제공]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 형제’가 건국한 로마제국의 상징은 늑대가 아니라 독수리다. 로물루스 머리에 독수리 12마리가 보여 1200년 동안 로마가 번영할 것이라는 신탁(神託)이 있었다는 건국신화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독수리 문양을 국가의 상징으로 삼고 신성시했다. 역사적으로 유럽의 패권을 잠시라도 쥐었던 국가는 모두 로마제국의 황금 독수리 문양을 휘장으로 내걸었다. 로마군대는 모든 대대마다 군단의 황금 독수리 휘장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군인에게는 목숨보다도 귀한 명예를 상징했다.

영화 ‘더 이글’(2011)은 이러한 로마군의 명예와 로마군과 이민족의 신의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서기 120년, 브리타니아(현재의 영국)섬에서 시작한다. 최고의 번영을 누리는 로마제국의 영토는 나날이 팽창돼 현재의 스코틀랜드 지역까지 진출했지만, 스코틀랜드 켈트 원주민인 픽트족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골칫거리인 픽트족을 제압하기 위해 로마 9군단이 파견됐다. 로마의 브리타니아 정복이 시작된 43년부터 브리타니아에서 주둔한 로마 9군단은 주력 부대였다. 진군한 최강 전투 부대원 6000명은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황금 독수리 휘장과 함께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어떠한 흔적도 없었다. 전멸됐다거나 도주했다는 등의 여러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로마 9군단 미스터리를 다룬 다른 영화로는 ‘센츄리온’(2010), ‘마지막 군단’(2007) 등이 있을 정도로 사라진 로마 9군단은 후세의 많은 흥미와 관심을 받았다. 9군단이 사라진 다음 해에 보고를 받은 히드리아누스 황제는 북진 계획을 철회하고 섬 중부에 120km에 이르는 견고한 방벽을 쌓아 경계선을 구축할 것을 명했다. 자연스럽게 방벽 이남으로만 로마의 영향력이 집중됐고 북쪽 스코틀랜드와는 별다른 접촉이 없어졌다.

영화 ‘더 이글’ 포스터. [Focus Features 제공]

영화 ‘더 이글’ 포스터. [Focus Features 제공]

실族과 9군단 패잔병들의 건곤일척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40년, 빈번한 이민족 침입으로 장교들의 기피 지역이었던 남부 브리타니아 지역에 젊은 장교 마커스(채닝 테이텀 분)가 자원한다. 그는 실종된 9군단 제1대대를 통솔하고 황금 휘장을 맡았던 대대장 아퀼라의 아들로, 가문의 명예를 되찾으러 아버지의 땅으로 뛰어든 것이다. 투철한 군인 정신으로 무장한 그는 병사들을 살리기 위해 홀로 적진에 뛰어드는 바람에 큰 부상을 입고 명예 제대한다. 실의에 빠진 어느 날,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한 노예 전투사 에스카(제이미 벨 분)를 보고 동변상련을 느껴 그의 목숨을 구해 준다. 이를 계기로 에스카는 그의 노예가 된다.

마커스는 로마 9군단 휘장이 스코틀랜드 북쪽 어느 부족의 사원에 우상으로 모셔져 있다는 소문을 접한다. 스코틀랜드 부족민 출신인 에스카를 대동한 마커스는 히드리아누스 방벽을 넘어 미지의 땅으로 향한다. 9군단이 실족의 습격을 받아 짐승처럼 비참하게 도살당했고, 그 전투에는 노예 에스카의 부족 또한 합세했다는 사실을 안 마커스는 에스카를 크게 힐책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실족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에스카는 기지를 발휘해 마커스를 자신의 노예로 소개한다. 실족 마을에 초대받은 에스카는 환영받지만 졸지에 영문도 모른 채 노예가 된 마커스는 고달프기만 하다. 부족민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든 에스카는 기회를 노린다. 축제가 끝난 새벽, 에스카는 마커스를 풀어주고 로마 휘장을 되찾아 히드리아누스 방벽으로 도주한다. 에스카는 민족보다는 충성을 맹세한 신의로 자신의 명예를 지켰다. 신성한 우상을 도둑맞은 실족의 최강 전사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이내 이들을 추적한다. 마커스는 다리 부상이 도져 한계에 부딪히고, 에스카에게 자유를 주고 휘장을 로마에 전해 달라고 부탁한다. 에스카는 휘장을 다시 마커스의 품속에 안겨주고는 어디론가 급히 뛰어간다. 실족이 거의 마커스를 따라잡을 무렵, 마커스의 시야에 20년 전 전투에서 도망쳐 목숨을 부지하던 9군단의 패잔병들이 잡힌다. 에스카가 데리고 온 그들은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기 위해 실족과 장렬한 전투를 시작한다. 성스러운 휘장을 지키려는 한판 승부에서 이긴 마커스는 로마군과 실족 모두의 장례를 치러준다.

각기 다른 시각에서 로마의 이민족 정벌을 다룬 두 작품은 우리에게 신의와 명예, 그리고 자유에 대한 원초적인 물음을 던진다.

#황승경 #바바리안 #더이글 #영화 #신동아

황승경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 디플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성균관대 공연예술학 박사
● 국제오페라단 단장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 外




신동아 2022년 1월호

황승경 공연 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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