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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는 산업의 쌀인데 쌀 없이 무슨 밥을 먹느냐”

[경제사상가 이건희 탐구㉑] K-반도체 기반 닦은 5共 정권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반도체는 산업의 쌀인데 쌀 없이 무슨 밥을 먹느냐”

  • ● 4MD램, 정부·연구소·기업 공동 개발
    ● 삼성·금성·현대가 모인 청와대 만찬
    ● 진대제가 책에 기록한 또 다른 시선
    ● 일본 때문에 대외공개 시점까지 고려
대한민국이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혁명을 이룰 수 있었던 건 1980년대에 마련된 정보통신 인프라 덕분이고, 이 기반을 닦은 정부가 바로 5공 정권이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반도체 사업에 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사진은 삼성전자 초창기 시절인 1983년 10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삼성전자 부천공장을 시찰하는 모습. 이건희 회장(왼쪽에서 첫 번째)과 김광호 반도체사업본부장(왼쪽에서 두 번째)도 보인다. [정부기록 사진집]

대한민국이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혁명을 이룰 수 있었던 건 1980년대에 마련된 정보통신 인프라 덕분이고, 이 기반을 닦은 정부가 바로 5공 정권이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반도체 사업에 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사진은 삼성전자 초창기 시절인 1983년 10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삼성전자 부천공장을 시찰하는 모습. 이건희 회장(왼쪽에서 첫 번째)과 김광호 반도체사업본부장(왼쪽에서 두 번째)도 보인다. [정부기록 사진집]

“반도체는 우리 산업의 쌀과 같다. 반드시 우리 힘으로 개발하라!”

“반도체 기술이 없는 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반도체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느냐 못 되느냐를 가름하는 핵심적 기술이다. 각 장관은 반도체 개발 사업에 적극 협조하라.”

이렇게 말한 이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전 전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대한민국이 반도체를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며 이를 일관되게 밀고 나갔다. 대한민국 정보통신(IT) 혁명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 오명 전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은 책 ‘30년 후의 코리아를 꿈꿔라’(2009년)에서 이렇게 말한다.

“체신부(현 정보통신부)가 반도체를 개발해야 한다고 나섰을 때 가장 심하게 반대한 곳은 경제기획원이었다. 반도체는 고도의 첨단 기술과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산업이라 우리나라처럼 노동 집약적 산업구조를 지닌 나라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기술이 10년이나 뒤져 있으며, 기술 수명이 2~3년에 불과해 하나를 개발하면 또 새로운 것이 나와 개발비용조차 건지기 힘들다는 거였다.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은 ‘반도체는 산업의 쌀인데 쌀 없이 무슨 밥을 먹는다는 거냐?’며 경제기획원의 반대의견을 일축했다.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하니 경제기획원도 더 이상 반대하지 못하고 체신부에 협조하기 시작했다.”



‘이건희 회장과 반도체’편을 시작하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 이야기를 서두로 꺼낸 까닭이 있다. 5공 정권의 공과에 대해 균형 잡힌 평가를 해보자는 일환이기도 하지만 삼성을 비롯한 국내 반도체업계가 뿌리를 내릴 때 전 전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내다보며 헌신했던 관료들의 역할이 컸다는 점을 짚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삼성전자를 위시한 ‘K-반도체’ 신화는 뭐니 뭐니 해도 준비된 자만이 거머쥘 수 있는 기회 포착 능력을 가진 오너와 임직원의 피와 땀의 결실이다. 더불어 옆에서 북돋우고 도와줬던 정치 지도자와 국민의 성원이 있었다는 점도 업계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떻든, 대한민국이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혁명을 이룰 수 있었던 건 1980년대 마련된 정보통신 인프라 덕분이고, 이 기반을 닦은 정부가 바로 5공 정권이었다.

“64MD램 개발하면 내 머리카락이라도 팔겠다”

 1982년 11월 4일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부인 이순자 여사와 함께 한국전자기술연구소를 방문해 반도체검사시험과정을 살피고 있다. [동아DB]

1982년 11월 4일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부인 이순자 여사와 함께 한국전자기술연구소를 방문해 반도체검사시험과정을 살피고 있다. [동아DB]

1983년 호암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다는 ‘도쿄 선언’을 내놨다. 이후 삼성이 1MD램까지 단독으로 밀고 나가던 메모리 반도체 개발은 4MD램 개발 과정에서 정부와 연구소, 기업이 힘을 합치는 공동 개발 형태로 전환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6년 4월 전학제 과학기술처 장관이 보고한 ‘반도체 공동연구개발 추진계획’을 바로 수락한 뒤 태스크 포스팀을 구성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4개월 뒤인 그해 8월 경제기획원, 상공부, 체신부, 과기처 등 4개 부처가 공동으로 기획한 ‘초고집적 반도체기술 공동개발안’을 최종 결재했다. 이로써 4MD램 공동 개발계획이 정부 방침으로 최종 확정된다.

마침내 4MD램 개발에 성공한 날, 전 전 대통령은 개발 주역을 모두 청와대로 불러 성대한 만찬을 베푼다. 당시 자리에 참석한 이들의 훗날 증언을 종합해보면 전 전 대통령은 매우 들떠 있었고 연구원들에게 격려와 응원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만찬이 열리던 날은 전 전 대통령이 퇴임을 불과 10여 일 앞둔 시점이었다.

오명 전 부총리로부터 직접 들은 회고다.

“1988년 2월이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바로 며칠 뒤 퇴임을 앞두고 있었지만 수많은 잡음을 떨치고 성공을 거둔 4MD램 개발 주역들을 만나 노고를 치하하고 싶다며 모두 청와대로 불렀습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연구원들을 비롯해 삼성, 금성(현 LG), 현대그룹 회장들과 각 회사에 소속된 연구원들, 상공부·과기처·체신부 장관들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인 큰 행사였습니다. 시종일관 기분이 좋았던 전 전 대통령은 연구원들에게 일일이 술을 따라 주면서 ‘이런 것(4MD램)을 개발하는 사람은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녀야 하는 거요’라는 말까지 하며 기를 살려주었고 대통령의 이런 말들에 참석자들은 모두 비행기를 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특히 개발주역인 연구원들에게는 그동안의 땀과 눈물이 보람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군사독재의 서슬이 퍼랬던 시절이었는데 대통령이 편안하게 분위기를 잡아가니 술 한 잔 씩을 받은 연구원들이 번갈아가며 대통령께 술을 권하기도 했으니까요.

참석자들의 술잔을 모두 물리치지 않고 받은 대통령은 ‘정부가 계속 지원해줄 테니 64MD램은 세계에서 제일 먼저 개발해내시오. 그때는 내가 대통령이 아니겠지만 돈이 없으면 내 머리카락이라도 팔아서 한턱 내겠소’ 하는 농담까지 했고 참석자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킥킥 웃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대통령이 ‘당신네들이 내 머리카락이 없다고 웃는 모양인데 이게 몇 가닥 안 남아서 아주 비싸게 팔릴 거요’라고 하자 만찬장이 그야말로 웃음바다로 변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도 반도체 사업이 지속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챙겼다고 한다. 다시 그의 말이다.

“만찬 행사를 마치고 며칠 뒤였습니다. 그야말로 퇴임이 코앞이었던 날이었지요. 갑자기 저를 청와대로 부르시기에 달려갔더니 ‘반도체 개발은 대단히 중요한 사업이니 오 장관이 노태우 당선자를 찾아뵙고 직접 보고를 드려서 64MD램까지 계속 개발할 수 있도록 하시오. 내가 당선자에게 별도로 시간을 내시도록 말해두겠소’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정말 그로부터 며칠 뒤 노 당선자 측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와 경상현 전자통신연구소장과 함께 찾아가 보고를 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이처럼 5공화국에서 시작된 반도체 개발이 중단되지 않고 6공화국까지 계속 이어지길 바랐고 그것이 실현되도록 적잖이 애를 썼습니다. 그 결과 한국은 1992년 64MD램을 미국과 일본보다 더 빨리 세계 최초로 개발해낼 수 있었습니다.”

“청와대에서 처음으로 살아서 나가는 대통령이 돼봐야겠다”

당시 만찬장 모습을 또 다른 기록으로 남긴 이가 있으니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를 일군 주역 중 하나인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다. 그의 책 ‘열정을 기억하라’에는 당시 만찬장의 분위기를 또 다른 앵글로 전하는 시선이 담겨있다.

진 전 장관의 기억을 듣다보면 전 전 대통령이 반도체개발과 과학기술에 얼마나 큰 열정과 의지를 갖고 있었는지 다시 한 번 알게 된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재벌 회장들을 말 한마디로 쥐락펴락하는 독재자의 모습도 생생히 전해진다. 고인이 생전에 호불호가 분명했고 이를 표현하는 데 거침이 없었던 직선적 성격의 소유자였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대목이 많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느껴져 진 전 장관의 글을 다소 길게 인용해본다.

소리 소문 없이 진행되던 4MD램의 완전동작 칩이 첫 방에 나와 버린 1988년 1월 말은 삼성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떠들썩했다. 그리고 2월 중순경에는 삼성, 금성, 현대 등 반도체 3사의 경영진, 기술자, 국책 연구 책임자 등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한국 반도체산업 발전에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해준 전두환 대통령의 초대로 청와대로 갔다.

어렵사리 보안절치를 통과해 영빈관에 들어가니, 테이블이 수십 개 늘어서 있었고 봉황으로 장식된 대통령 자리는 단상 위에 따로 마련돼 있었다. 예정 시간을 30분 정도 넘겨 전두환 대통령이 들어서서는 떡하니 단상에 앉았다. 삼성 이건희 회장과 현대 정주영 회장, 럭키금성(현 LG)의 구자경 회장도 참석해 있었다. 대통령은 앉자마자 큰 소리로 외쳤다.

“연구원 여러분! 4MD램 개발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자, 우리 건배합시다! 원 샷입니다.”

그때가 ‘마주앙’이라는 포도주가 처음 나온 때였다 모두 마주앙을 한 잔씩 들고는 바로 원샷을 했다. 사이클이 얼마나 빠르던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모든 사람의 얼굴이 벌개졌다.

전 대통령은 자기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반도체 사업을 지원했는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자랑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반도체 장비를 수입할 때 관세를 면제해 주고 수도권에 공장을 세우도록 토지매입을 허가해 주는 둥 많은 지원을 해주었다.

전 전 대통령은 4MD램이 나왔다는 소식에 누구 못지않게 좋아했다면서 이런 농담도 했다.

“연구원 여러분, 앞으로 반도체가 잘 되면 제가 커미션 좀 받아야 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모두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맞습니다! 많이 도와주신 겁니다.”

전 대통령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다시 건배를 제안했다. 건배가 끝나자 갑자기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을 불렀다.

“그런데 정(주영)회장!”

“예!”

“그, 정 회장은 하룻밤 술값으로 1000만 원씩 쓴다면서요?”

당시 신문에 나기도 했던 재벌 회장들의 음주문화에 대한 가십을 두고 한 말이었다.

“아이구,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우리 정말 돈 안 쓰고 삽니다. 하도 안 쓰고 살아서 구자경 회장은 별명이 두쇱니다. 구두쇠라고 합니다.”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박장대소했다. 기분이 좋아진 전 대통령이 다시 술잔을 번쩍 들었다. “사랑합니다. 연구원 여러분.”(중략) 전 전 대통령의 농담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아, 그, 요새는 컴퓨터니 이런 게 무지하게 많이 나와서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는데 나같이 머리 나쁜 사람들도 배우면 됩니까? 나 같은 사람은 그거 얼마나 배워야 쓸 수 있을까요?"

“각하, 아닙니다. 한 두어 달만 배우시면 잘 쓰시게 됩니다.”

“에이, 난 안 돼 어려울 것 같아. 그래도 내가 은퇴하면 컴퓨터나 좀 배워볼까 봐. 하하하.”

전 대통령의 농담에 ‘사랑하는 연구원들’의 웃음소리가 그치지를 않았다. 하지만 심각한 얘기도 있었다.

“제가 말입니다. 청와대에서 처음으로 살아서 나가는 대통령이 돼봐야겠습니다. 지금 나한테 대통령 더 하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긴 하지만 말이죠.”

어쨌든 그 자리에서는 대통령의 과학자들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과학자 여러분, 전쟁 나도 여러분은 걱정 없습니다. 전쟁 나면 과학자들 전부 대전 이남으로 소개시킬 특별계획도 다 마련돼 있습니다.”

실제로 전두환 대통령은 과학자들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기도 했다. 그때 내가 살던 남현동 집에는 경찰에서 지금의 세콤같은 특수보안장치를 설치해 주었으며, 정기적으로 집 주변을 순찰하고 이상이 없는지 방문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일본이 알면 안 된다

1983년 10월 29일 삼성전자 부천 공장을 방문해 직접 직원들과 이야기하는 전두환(가운데) 당시 대통령. 이건희 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김광호 반도체사업본부장(왼쪽 서 있는 인물)도 함께 있다. [동아DB]

1983년 10월 29일 삼성전자 부천 공장을 방문해 직접 직원들과 이야기하는 전두환(가운데) 당시 대통령. 이건희 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김광호 반도체사업본부장(왼쪽 서 있는 인물)도 함께 있다. [동아DB]

다시 오명 전 부총리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반도체 개발과 관련한 대외 공개 시점까지 신경을 썼다. 그의 회고다.

“4MD램 개발에 성공하자 참여 기업들은 대대적으로 홍보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보고를 받은 대통령이 ‘우리가 완전히 생산할 준비를 마칠 때까지 보안을 유지하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소식을 전해들은 삼성의 이병철 회장은 ‘아니, 사업을 모르는 대통령이 이런 것까지 간섭하면 되겠느냐’며 노골적으로 불평을 터뜨릴 정도였습니다.

얼마 후 대통령이 걱정했던 것처럼 일본이 우리 반도체 회사들을 죽이려고 값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정작 피해를 당한 나라는 미국이었습니다. 일본의 가격 인하를 견디지 못하게 된 미국 기업들이 문제를 제기해 일본이 물러서면서 어려운 국면을 넘길 수 있었지요. 나중에 듣자하니 이병철 회장은 ‘대통령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로구만’ 했다고 하더군요.”

이와 비슷한 증언을 하는 이가 또 한 사람 있다. 초창기 삼성 반도체를 일군 주역인 김광호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그는 2011년 10월호 ‘월간중앙’과 인터뷰에서 전 전 대통령이 4MD램이 나오기 5년 전인 1983년에 삼성이 64KD램 개발에 성공했을 때도 대외적으로 함구 지시를 내렸다고 했다. 인터뷰 중 일부를 인용한다.

“1983년 12월 1일 강진구 사장이 64KD램 개발을 발표했습니다. 아주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개발했으니 대단한 일이었지요. 그런데 사실 64KD램은 발표 한 달 전에 개발된 상태였어요.”

-발표를 미뤘다는 얘긴데 왜 그랬습니까.


“일본 업체가 견제하면 피해를 받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죠.”


-정부도 몰랐나요?


“물론 알았습니다. 대통령에게도 보고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맞습니다. 1983년 11월 전두환 대통령이 아웅산 사태 이후 처음으로 산업 시찰에 나섰는데 삼성 반도체 부천공장을 방문했어요. 그때 제가 브리핑을 하면서 64KD램을 개발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일본 업체에서 견제가 들어 올까봐 아직 발표하지 못한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랬더니요.


“전 대통령은 ‘그런 일이 있었나? 그러면 절대 발표하지 마라. 발표하려면 나한테 꼭 허가 맡고 해라’고 했어요. 전 대통령 덕분에 우리는 64KD램 개발을 정부에 공식적으로 보고하면서도 발표는 늦추게 됐어요. 그 사이 일본의 견제에 대비할 시간도 벌었습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삼성 반도체가 초기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된 건 전 전 대통령의 공이 크다”며 “전 대통령을 여러모로 평하지만 반도체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의 도움은 결코 적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구체적으로 어떤 기여를 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이 이어지자 앞서 진대제 전 장관이 언급한 반도체 장비 수입 관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다시 인터뷰에 나오는 말이다.

“정확한 시기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1980년대 중반이었을 겁니다. 전 대통령이 (삼성반도체) 부천공장을 방문했을 때 ‘애로사항이 있으면 얘기하시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반도체 회사에서는 대부분 설비를 외국에서 수입해야 되는데, 이중 일본에서 수입하는 프로젝션 얼라이너(Projection Aligner)라는 부품의 관세가 50%나 돼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은 처음에는 ‘세금? 당연히 내야지’라며 부탁을 들어주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군요.


“아닙니다. 대통령이 제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해서 제가 다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일본에서 수입하는 부품에 대한 높은 관세는 대일무역 적자에서 비롯된 것인데 사실 대일무역 적자를 해소하려면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사업을 잘해서 일본에 수출을 많이 해야 해결된다, 그런데 부품에 대한 높은 관세 부담 때문에 반도체 사업에서 이익을 내기 힘들다면 도저히 일본을 이길 수 없다고 했지요.”


-이해하시던가요.


“그제서야 전 대통령은 ‘그래? 그러면 안 되지. 일본을 이겨야지. 내가 없애주겠소’라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프로젝션 얼라이너에 붙던 관세가 사라졌어요. 정말 놀라운 일이었죠. 전 대통령이 관세를 없애준다고 약속했지만 실현되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곧 퇴임한다고 우물쭈물 미루다가는…”

김 전 부회장에 따르면 앞서 소개된 4MD램 만찬장에서도 반도체 사업에 대한 전 전 대통령의 구체적인 지원책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말이다.

“그날 만찬장 자리에서도 언제나 그렇듯 애로사항부터 묻더군요. 저는 업계 현안이던 일본 산 부품수입과 관련한 ‘외화대부(外貨貸付 수입업자에게 외화를 빌려주는 것) 조건을 완화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역시 대일무역 적자 때문에 쉽게 들어주기 힘들었을 텐데요.

“맞습니다. 당시만 해도 일본산 부품이나 설비를 수입하는 업체들은 대출이 안돼 100% 자기 자본으로 해야 했습니다. 미국산을 수입할 때에는 50%를 대출해주면서 말이지요. 당시에는 반도체 세계최고 나라가 일본이었기 때문에 반도체 생산 장비는 대부분 일본 장비가 좋았습니다. 수입업체들이 대부분 일본 산(産)을 선호했던 이유지요.”

-대통령 반응은요.

“제가 이런 사정을 설명하자 만찬 현장에서 대번에 김윤환 비서실장을 부르더니 ‘사공일 오라고 해’ 하더군요. 한 15분쯤 지나서 사공일 재무장관이 왔어요. 전 대통령은 ‘반도체 설비를 일본에서 수입하려는데, 왜 대출을 안 해주느냐’고 따지듯 물었습니다.”

-재무장관 입장은 어땠습니까.

“사공일 장관은 ‘각하, 대일 무역적자가 심각한 수준입니다.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려고 외화 대출을 허용해주면 다른 업계가 반발할 것이고 대일 무역적자 감축도 불가능합니다’라고 답변했어요.”

-전 대통령이 그 말을 받아들였나요.

“아니에요. 전 대통령은 고집을 꺾지 않았죠. ‘시끄러워. 해줘. 당신, 내가 곧 퇴임한다고 우물쭈물하면서 미루다가는 가만두지 않겠어. 무조건 일주일 안에 해줘’라고 했습니다.”

-정말 일주일 안에 외화대부가 완화되었나요.

“날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거의 일주일 안에 대통령의 지시가 이행된 것은 분명해요. 그 덕분에 삼성은 물론이고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와 금성사(현 LG전자)가 한결 수월하게 반도체 장비를 수입해 생산 규모를 늘릴 수 있었어요.”


대통령 한마디에 모든 것이 이뤄지던, 지금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권위주의 시절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증언이기도 하지만, 어떻든 미래 산업을 키우겠다는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가 삼성을 비롯한 한국 기업들이 반도체 개발에 수월하게 나설 수 있도록 한 지원책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신동아 2022년 2월호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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