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호

‘지지도’는 여론값일 뿐… ‘당선 가능성’이 민심값

대선 여론조사 스마트 독해법

  • 이은영 휴먼앤데이터 소장

    입력2022-01-25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민심 파악 돕는 3大 키워드 ①지지층 여론 ②세대 내 성별 표심 ③부동표

    • 당선 가능성·경제 잘할 후보 같은 속성 문항 응답률 주목해야

    • 여론조사 결과는 투표율 고려하지 않아… ‘꼭 투표층’ 의향 살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021년 11월 26일 전남 신안군에 위치한 응급의료 전용헬기(닥터헬기) 계류장을 찾아 지지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021년 11월 26일 전남 신안군에 위치한 응급의료 전용헬기(닥터헬기) 계류장을 찾아 지지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한국 정치가 팬덤을 기반으로 한 진영 대결 구도 양상을 띠고 있다. ‘정치인 팬덤’의 원조는 노무현 전 대통령. 지역 구도 타파를 위해 부산에서 연거푸 출마했다 낙선한 그에게서 유권자들은 ‘우직한 바보’의 모습을 발견하고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노사모)를 결성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팬덤이 소탈한 인간미와 지역주의 타파라는 정치적 ‘명분’에 뿌리를 뒀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팬덤은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 대결 구도 속에서 형성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2017년 이후 정치 지형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보수 우위의 유권자 지형에 ‘각성한 중도층’이 출현했고, 더불어민주당이 이들을 지지층으로 흡수하면서 당세를 크게 키웠다.

    ‘팬덤 정치’는 진영 대결 구도를 심화시켰다. 이 과정에 유튜브의 역할이 컸다. 참여와 소통으로 활성화된 유튜브 커뮤니티는 정치 정보의 강력한 획득처가 됐고, 유튜버들이 쏟아내는 정치 분석에 동조하는 ‘구독자’들이 상대 진영의 ‘프레임’을 파악하고 대응 논리를 공유하며 공동 대응에 나서면서 극한 대결 양상을 보인 것. 즉 여론 형성 과정에 ‘팬덤’ 중심의 정치 고(高)관여층이 정치 어젠다를 주도하는 새로운 프로세스가 마련된 것이다.

    여론조사가 만드는 여론 형성 메커니즘

    진영화된 팬덤이 여론 형성을 주도할 뿐 아니라, 여론조사 결과가 다시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여론조사에 의한 여론 형성 메커니즘’도 작동하고 있다. 쿠키뉴스와 한길리서치가 지난해 12월 25∼2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여야 대선후보 교체 필요성’에 대해 56.6%가 공감한다는 결과가 발표되자 여론의 반응이 크게 달라졌다(원고에 언급된 모든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특히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후보교체를 원하는 의견이 70.4%로 높게 나타나자 ‘후보 교체론’을 넘어 ‘후보 단일화론’으로까지 번졌다.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후보 교체 여론’과 ‘단일화 요구’가 여론조사 결과 발표를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이 즈음 안철수 후보의 존재감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여론조사의 핵심 기능인 사람들의 ‘생각’을 ‘숫자’로 만들어내는 과정은 그 자체로 강력한 ‘프레임’ 구실을 한다. 지금처럼 코로나19로 비대면 활동이 강화된 상황에서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여론조사 결과는 그 효과가 상당할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을 ‘여론조사 대선’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대선의 결정적 특징은 전체 표심을 좌우하는 ‘스윙보터’가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과거 대선에서는 40대가 스윙보터 구실을 했다. 허리 세대이자 경제 주도층인 이들은 이념적으로는 진보 성향을 보이면서도 오피니언 리더로서 여론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2030세대가 스윙보터로 기능하고 있다. 전체 인구에서 32.7% 비중을 차지하는 이들의 이념 성향은 중도에 가깝다. 디지털과 영상에 익숙한 2030세대를 겨냥해 선거 캠페인도 과거와 확연히 달라졌다. 1분 이내의 짧은 영상과 간결한 카피, 따라 하기 쉬운 ‘밈’ 등 2030세대가 좋아할 만한 직관적이고 유머 코드가 포함된 콘텐츠가 주를 이루는 점도 2030세대를 겨냥한 것이다.

    여론조사 똑똑하게 보는 3가지 키워드

    매일같이 발표되는 수많은 대선 여론조사 결과에 담긴 진짜 민심을 읽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은 전체 여론과 지지층 여론을 구분해서 살펴봐야 한다. 진영 구도로 치러지는 선거이기에 문항에 따라 전체 여론보다 정당 지지층 내부 목소리가 더 중요한 경우가 있다.

    특히 야권 단일화가 이슈가 된 상황에서 정당 지지층 내부 견해가 여론의 흐름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일례로 YTN-리얼미터 조사에서 단일화 성사 여부에 대한 문항을 살펴보면 전체 의견은 단일화가 ‘가능하다’ 43.5%, ‘가능하지 않다’ 47.1%였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등 야권 지지층에서는 단일화가 가능하다고 응답한 이가 많은 반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전체 결과보다 단일화가 가능하지 않다는 응답 비율이 더 높았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은 각각 30% 초중반대다. 두 정당 지지층을 합치면 전체 의견의 60%가 넘는다. 나머지 30~40%의 여론이 어디로 쏠리느냐에 따라 여론 지형이 달라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특정 정당 지지 성향을 보이지 않는 30~40% 응답자 중에는 정치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 많기에 결국 60% 넘는 특정 정당 지지층이 이슈를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조사 문항에 따라서는 전체 의견보다 정당 지지층 내부 의견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 여론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지역보다는 세대와 세대 내 성별 응답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1월 6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의 갈등을 극적으로 봉합한 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여성가족부 해체’ 공약을 발표했다. YTN-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여가부 폐지에 대한 찬성 의견이 51.9%, 반대가 38.5%였는데, 20대에선 찬성 응답이 60.8%까지 치솟았다. 성별로는 20대 남성(64.0%)과 여성(40.0%) 응답이 크게 엇갈렸다. 즉 윤 후보의 여가부 폐지 공약은 20대 남성을 겨냥한 맞춤형 공약으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는 부동표의 수를 체크해야 한다. 특정 이슈에 대한 태도뿐 아니라 세대 내 성별 부동층 수도 중요하다. 대선후보 다자 구도 가상 대결에서 2030세대 부동층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다. 오마이뉴스-리얼미터 여론조사를 보면 지지 후보를 아직 결정하지 않은 부동층은 20대 남성 12.6%, 30대 남성 12.1%인 반면, 20대 여성은 19.0%, 30대 여성 17.5%로 2030세대 남성보다 여성이 5∼7%포인트 더 높다. 2030세대 여성에서 부동층이 많은 이유는 후보들에 대한 비호감도가 높은 데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4·7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의 사후 표심 조사에서도 20대 남성은 오세훈 후보에게 ‘다 걸기’한 반면, 20대 여성은 박영선·오세훈 후보로 표심이 나누어졌다. 박빙 선거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2030세대 여성 부동층 표심이 누구에게 향하느냐는 막판 변수가 될 수 있다.

    3자 구도가 만든 후보 단일화 이슈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월 16일 서울 마포구 케이터틀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 선거대책위원회 필승 결의대회에서 필승결의 구호 제창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월 16일 서울 마포구 케이터틀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 선거대책위원회 필승 결의대회에서 필승결의 구호 제창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1월 9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성안길에서 시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1월 9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성안길에서 시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안철수 후보 지지율 급상승으로 만들어진 3자 구도는 단일화 이슈가 이번 대선의 마지막 고비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진보가 아닌 보수 진영에서 단일화 이슈가 제기됐다는 점과 2위 후보보다 3위 후보 지지율이 더 낮은 상황에서 단일화 이슈가 만들어졌다는 점이 앞선 대선과 다르다.

    단일화와 관련한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3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는 여론조사에 적극적으로 응해 줄 핵심 지지층의 존재다. 이는 당세와 연관이 있다. YTN이 리얼미터에 의뢰해 1월 10∼11일 실시한 단일화 적합도 문항을 보면 안철수 후보가 39.6%로 윤석열 후보 35.6%보다 오차범위 내에서 앞선 결과를 보였다.

    실제 단일화 여론조사를 실시하면 윤 후보가 당세에 힘입어 앞서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같은 조사의 정당 지지도 문항을 보면 국민의힘 36.1%, 국민의당 10.6%로 국민의당보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3배가량 더 높다. 이는 단일화 여론조사가 이뤄졌을 때 적극적으로 응해 줄 사람이 3배가량 더 많다는 의미다.
    둘째로는 중도층에서 호감도가 높아야 한다. 야권은 지난해 4·7재보궐 선거 때 100% 국민여론조사(오세훈-안철수 단일화)로 단일 후보를 선출했다. 지지층뿐만 아니라 중도 성향 유권자도 단일화 조사에 참여한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윤석열 후보보다 안철수 후보 호감도가 상대적으로 더 올라간 점이 엿보인다.

    4·7 재보궐선거에서 오세훈-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조사는 타당 지지층도 참여할 수 있는 100% 전 국민 여론조사였다. ‘상대 당 후보를 이길 후보가 누구인지’를 묻는 경쟁력 문항으로 조사됐다. ‘개방형’으로 진행했기에 민주당이나 정의당 지지층도 단일화 여론조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즉 타 정당 지지층이 누구를 선택할지에 대한 전략적 표심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민주당 지지층은 윤 후보보다 안 후보를 단일화 적합 후보로 응답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1월 7일 서울 구로구 창동 수직구 공사 현장을 방문해 주민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1월 7일 서울 구로구 창동 수직구 공사 현장을 방문해 주민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타 정당 지지층 표심이 중요한 이유는 국민의힘 경선 당시 민주당 지지자들이 ‘무야홍’(무조건 야당 대선후보는 홍준표)을 외치고 특정 종교단체 커뮤니티에서 특정 후보를 낙선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던 데 있다. 즉 ‘역선택’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단일화 여론조사 문항을 협상할 때 상당한 진통 요인이 될 수 있다. 단일화가 절실한 측은 ‘조건 없는’ 단일화로 대응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측은 역선택의 득실을 따질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만큼 선거 환경이 중층적으로 복잡한 경우가 또 있을까 싶다. 이번 대선은 역대 대선 문법이 적용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여론조사업계는 대선 여론조사는 하나의 지역구를 조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틀릴 수가 없다는 불문율이 있다. 그러나 이번 대선 예측에선 이 분문율이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걱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층적으로 복잡한 대선 구도

    유례없이 높은 대통령 지지율은 여당 후보 지지율에 긍정적일까, 부정적일까. 이재명 후보가 집권할 경우, 이재명 정부의 성격은 정권교체일까, 정권 재창출일까. 정권교체 의향이 높은데도 야당 후보들의 지지율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20대의 출렁이는 표심 변화는 조사가 잘못된 탓일까.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특히 20대 표심의 변동성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지 난감한 경우가 많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여론과 민심을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론조사 결과가 사안에 따라 출렁이는 해수면 같은 것이라면, 민심은 미래 5년 국정 최고책임자로 누구를 선택할 것이냐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지표라는 점에서다.

    지지도와 적합도 문항이 여론에 해당하는 결괏값이라면, 당선 가능성이나 경제를 잘할 사람과 같은 속성 문항 평가가 실제 민심에 근접한 결괏값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여론조사는 투표율이 고려되지 않은 결과물이기 때문에 ‘꼭 투표층’의 지지 의향도 중요하게 살펴봐야 한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