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호

산업은행 부산으로 가면 서울 국제금융 허브는 없다?

[금융 인사이드] 新舊 권력, 산업은행 놓고 ‘기싸움’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2-04-2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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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尹 후보 시절, 산업은행 부산 이전 공약 발표

    • 부산시 숙원 사업, 선거 때마다 거론

    • 6월 지방선거 앞두고 여야 갈등 재점화

    ◀ 4월 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따르면 인수위는 지방균형발전특위 주도로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KDB산업은행 본점. [뉴스1]

    ◀ 4월 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따르면 인수위는 지방균형발전특위 주도로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KDB산업은행 본점. [뉴스1]

    “제가 (산업은행을) 부산으로 본점을 이전한다고 약속을 했으니까 그대로 (하겠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당선이 확정되고 2주 뒤인 3월 24일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공약과 관련, 약속대로 하겠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앞서 그는 대선 후보 시절인 1월 부산을 방문해 “산업은행은 부산으로 이전시키겠다”는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기존 공약 자료에도 없던 내용인 데다가 윤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에서도 예상치 못한 깜짝 발표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당시 윤 당선인은 “부산이 세계 최고의 해양 도시로, 첨단 도시로 발돋움하려면 금융 자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금융산업 없이 이런 일을 이뤄낼 수 없다. 그래서 KDB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이전시키겠다”고 강조했다.

    부산 이전 시, 지역 경제효과 수조 원

    산업은행 이전은 부산의 숙원 과제다. 부산은 2009년 서울과 함께 금융 중심지로 지정됐다. 2014년 부산 남구 문현동에 부산국제금융센터(BIFC)가 세워졌고,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주택공사, 자산관리공사 등이 자리 잡았다.



    금융기관 몇 곳이 옮겨갔다고 해서 부산이 곧장 ‘금융 중심지’로 발돋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은 물론 민간 금융사와 외국계 금융사 대부분이 서울에 자리 잡은 현실에서 부산이 경쟁력을 키우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탓이다.

    이에 따라 부산시는 공공기관 2차 이전 추진단을 꾸리고 산업은행을 최우선 유치 대상으로 선정했다. 산업은행은 직원만 3300명에 이르고 자회사가 5개로 규모 자체가 크다. 이에 따라 산업은행이 부산으로 옮기면 경제효과만 연간 수조 원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역의 숙원 사업인 만큼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은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의 단골 공약이 됐다. 그간 정치인들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산업은행이 상대해야 하는 수많은 기업과 금융사가 서울에 자리 잡고 있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윤 당선인의 공약 역시 그 정도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워낙 치열한 선거였던 탓에 여야를 막론하고 각종 지역 개발 공약을 쏟아냈던 터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역시 1월 기자간담회에서 “2년여 전인 2019년 ‘산은의 지방 이전은 진보가 아닌 퇴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옮겨봐야 소용없고 소탐대실할 것”이라고 일축하며 반대 의사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여기에 산업은행 노동조합도 부산 이전에 강하게 반대하는 만큼 정치권에서도 쉽게 추진할 분위기가 아니라는 평가가 많았다.

    윤 당선인이 공약을 지키겠다는 견해를 다시 한번 내놓으면서 분위기가 다소 달라지고 있다. 집권 초 정권이 힘이 있을 때면 국책은행 이전과 같은 어려워 보이는 일이 때로는 손쉽게 이뤄지기도 한다.

    윤 당선인뿐만 아니라 인수위 내에서도 단호한 기류가 감지된다. 산업은행 노사가 한목소리로 반대 의사를 보이자 “기관 이기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며 강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던 것. 신용현 인수위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인수위가 산은의 부산 이전을 검토하고 있고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이를 공식화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부산 이전 건과는 별개의 ‘사건’으로 인수위와 산업은행이 각을 세우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정권 초부터 산업은행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고, 부산 이전을 반대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진다.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

    인수위는 3월 31일 브리핑을 통해 산업은행이 최대주주로 있는 대우조선해양의 신규 대표 선임 절차를 공개 비판했다. 대우조선이 앞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통해 박두선 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는데, 이것이 문재인 정부의 알박기 인사라고 지적했다. 박두선 사장은 문 대통령 동생과 한국해양대 동창이다. 그러자 청와대가 다시 인수위를 비판하는 등 논란이 커졌다. 산업은행과 대우조선 측은 박 사장이 지난 1986년 대우조선에 입사해 36년 이상 근무한 ‘전문가’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인수위는 금융위가 산업은행에 유관기관에 대해 현 정부 임기 말 인사를 중단하라는 지침을 내렸는데도 산업은행이 이를 지키지 않고 무리하게 인사를 강행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외형상 민간기업의 이사회 의결이라는 형식적 절차를 거쳤다고 하지만 사실상 임명권자가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자초한 비상식적이고 몰염치한 처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인수위는 또 이동걸 회장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인수위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 노무현 정부 때 금융위 부위원장을 거쳐 문재인 정부 산업은행 초대 회장으로 4년 넘게 자리를 지켰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이 대표적인 친문 인사라는 점을 지적하며 압박한 셈이다.
    이처럼 신구 권력이 산업은행을 놓고 기싸움을 벌이면 새 정권의 공약 추진 의지는 더욱 강해질 여지가 있다. 어떤 방안이 금융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지 논의하기보다 정치 논리가 힘을 받을 경우 산업은행 이전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산업은행 이전 공약이 ‘지역균형 발전’ 차원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애초 산업은행 이전은 국회에서 ‘한국산업은행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윤 당선인의 의지만으로 추진하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많았다. 한국산업은행법에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는 규정이 있는 탓이다. 새 정부에서 국회는 여소야대가 되는 탓에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면 추진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이 역시 정치 논리에 따라 분위기가 뒤바뀔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부산 표심을 의식할 경우 무작정 반대하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관건은 인수위가 어떤 명분으로 반대 여론을 잠재울 지가 될 전망이다. 일단 금융노조는 강한 반대 입장을 내놓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4월 1일 기자회견을 열고 “새 정부가 산업은행부터 이전하겠다는 것은 지방선거용 이슈 몰이”라며 “산업은행 이전으로 지역균형 발전이 저절로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익 훼손 및 금융산업 퇴보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인 서울 국제금융 허브를 포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도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월 2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산은 지방 이전 공약을 철회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요구했다.

    금융기관 이전이 부산의 ‘금융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일단 일부 금융기관의 부산 이전이 마무리됐던 2015년과 비교하면 부산의 경쟁력은 되레 악화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 126개 도시의 금융 경쟁력을 평가하는 국제금융센터지수에서 부산은 2015년 3월 24위에서 올해 3월 30위로 하락했다.

    다만 부산의 순위는 2017년 9월 70위까지 떨어지며 바닥을 쳤다가 최근 들어서는 지속해 오르고 있다는 점이 변수가 될 수 있다. 지난해 3월과 비교하면 36위에서 올해 3월 30위까지 오르며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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