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호

롯데 한국시리즈 우승은 손흥민 득점왕보다 어려운 일

[베이스볼 비키니]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ag.com

    입력2022-07-0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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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계 스포츠 스타, 쏟아질 날 머지않았다

    • 손흥민·김연아 성과엔 한국 특유 교육 방식도 영향

    • 평균 신장 작아 스포츠 못하던 동아시아인

    • 몸 커지자 야구선 오타니, 축구엔 손흥민

    [Gettyimage]

    [Gettyimage]

    퀴즈를 하나 내보겠습니다. 2021~2022시즌 유럽 프로축구 5대 리그(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잉글랜드, 프랑스) 경기에 출전한 선수는 총 3419명입니다. 그렇다면 이 중 아시아 선수는 몇 명일까요.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원국 출신을 기준으로 하면 31명입니다. 전체 선수 가운데 0.9%만이 아시아 출신인 겁니다. 이 31명에는 ‘어른들의 사정’으로 2006년 오세아니아축구연맹(OFC)을 떠나 AFC에 합류한 호주 출신 3명도 들어 있습니다. 아프리카축구연맹(CAF) 회원국 출신이 317명(9.3%)인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아시아 축구선수가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토트넘 소속 손흥민이 5월 23일 노리치시티와 EPL 최종전 원정경기에서 리그 22·23호 골을 터뜨려 리버풀의 모하메드 살라와 공동으로 골든부트(득점왕)를 수상한 뒤 환하게 웃고 있다. 유럽 빅 리그에서 아시아 선수가 득점 부문 정상에 오른 것은 그가 최초다. [동아DB]

    토트넘 소속 손흥민이 5월 23일 노리치시티와 EPL 최종전 원정경기에서 리그 22·23호 골을 터뜨려 리버풀의 모하메드 살라와 공동으로 골든부트(득점왕)를 수상한 뒤 환하게 웃고 있다. 유럽 빅 리그에서 아시아 선수가 득점 부문 정상에 오른 것은 그가 최초다. [동아DB]

    그러니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이 5대 리그에서 득점왕에 오른 손흥민(30·토트넘)은 정말 ‘아시아의 자존심’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습니다. 손흥민은 2021~2022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경기에서 23골을 넣으면서 무함마드 살라흐(30·이집트)와 함께 득점 공동 1위에 올랐습니다. 호주 출신을 포함해도 EPL 무대서 한 시즌에 21골 이상을 넣은 아시아 선수 역시 손흥민이 처음이었습니다.

    네, 여러분은 지금 ‘풋볼 비키니’가 아니라 ‘베이스볼 비키니’를 읽고 계십니다. 올해 개막일 로스터를 기준으로 1.9%(15명)가 아시아인이던 메이저리그(MLB)에서는 오타니 쇼헤이(大谷昌平·28·LA 에인절스)가 아시아의 자존심을 세운 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 언론도 ‘니도류(二刀流·투타 겸업 선수)’로 활약 중인 오타니가 지난해 아메리칸리그(AL) 최우수선수(MVP)로 뽑혔을 때 ‘아시아의 자존심(アジアの自尊心)’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아시아는 아직 어딘가 부족하다’

    ‘아시아의 자존심’이라는 표현을 널리 쓰게 된 건 2002 한일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이후입니다. 스페인과 맞붙은 대회 8강전을 앞두고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공식 응원단 ‘붉은악마’에서 마련한 카드섹션 문구가 ‘Pride of Asia’였습니다. 한국은 이 대회에 참가한 아시아 팀으로는 유일하게 8강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스페인에 승리하면서 아시아의 자존심을 세웠습니다. 독일과 맞붙은 준결승전 카드섹션 문구 ‘꿈★은 이루어진다’는 끝내 거짓말이 됐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아시아의 자존심’이라는 표현을 뒤집어 생각하면 ‘아시아는 아직 어딘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는 셈입니다. 아시아 팀은 축구를 못하지만 한국이 체면을 세웠고, 아시아 축구선수는 유럽 무대에서 통하지 않지만 손흥민은 다르고, 심지어 아시아 야구선수는 MLB 무대에서도 ‘유리천장’에 막히곤 하지만 오타니는 예외였던 겁니다. 그리고 손흥민과 오타니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아시아인 특히 동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을 이겨냈습니다.

    미국의 전 다이빙 선수 새미 리(1920~2016). 한국계 미국인으로 1948년 런던 올림픽과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뉴시스]

    미국의 전 다이빙 선수 새미 리(1920~2016). 한국계 미국인으로 1948년 런던 올림픽과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뉴시스]

    올림픽에서 동아시아계 미국인의 자존심을 처음 세운 건 새미 리(1920~2016) 선생이었습니다. 한국 이민자 출신 부모를 둔 리 선생은 1948년 런던 대회 때 다이빙 10m 플랫폼 금메달을 목에 건 뒤 1952년 헬싱키 대회 때도 2연패에 성공했습니다. 아시아계 남자 선수가 미국 대표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건 리 선생이 처음이었습니다. 리 선생이 다이빙을 처음 익힌 곳은 수영장이 아니라 집 뒷마당이었습니다. 당시 이웃에 있던 수영장은 물을 갈기 하루 전날, 그러니까 물이 가장 더러운 수요일에만 유색인종 출입을 허락했습니다. 리 선생은 나머지 6일 동안에는 하릴없이 뒷마당에 모래를 잔뜩 깔아놓고 그 위로 점프하면서 다이빙 기술을 배워야 했습니다.

    “아시아에는 아시아만의 교육 방법이 있다”

    세상만 리 선생을 차별한 게 아니었습니다. 리 선생의 부모님 역시 아들이 운동선수가 되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공부로 큰사람이 되기를 바랐던 것. 리 선생은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의사이기도 했습니다. 군의관으로 미군에 복무하던 그는 1952년 올림픽을 앞두고 핀란드 헬싱키가 아니라 전쟁을 치르고 있던 ‘어머니 나라’로 향하고 싶었지만 상관 명령으로 올림픽에 참가했습니다.

    새삼 리 선생 이야기가 떠오른 건 토트넘 구단에서 2020년 12월 8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손흥민 선수의 가족사진 때문이었습니다. 사진 속 한국 아버지가 흔히 그린 것처럼 손흥민의 아버지인 손웅정 축구 아카데미 감독(60) 역시 표정이 굳어 있었습니다. 그러자 한 누리꾼이 “아버지는 아들이 FIFA 푸스카스상 수상자 대신 의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동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을 유머로 풀어낸 겁니다. (푸스카스상은 그해에 가장 멋진 골을 기록한 선수가 받는 상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실제로는 정반대였습니다. 손 감독은 아들이 의사가 아니라 ‘월드 클래스’ 축구선수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미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던 아들이 오프시즌을 맞아 귀국해도 매일 슈팅 연습 1000개(왼발 500개, 오른발 500개)를 하라고 주문하던 손 감독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얼마나 엄하게 아들을 혼냈는지 의붓아버지가 아이를 혹사시키는 줄 알고 경찰에 신고하려 했던 이웃 주민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성공한 선수 가운데 ‘피겨 여왕’ 김연아(32)가 있습니다. 아직 김연아가 세계 무대서 아사다 마오(淺田眞央·32·일본)에 밀리던 시절 일입니다. 김연아가 링크 위에서 혹독하게 꾸지람을 듣는 모습을 보고 놀란 해외 방송사 기자가 있었습니다. 이 기자는 병중인 어머니를 대신해 아사다와 대회 현장에 동행한 할머니와 만나 김연아가 혼나고 있는 영상을 보여주면서 의견을 물었습니다. “이건 해도 너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 그러나 할머니는 “아시아에는 아시아만의 교육 방법이 있다”면서 씨익 웃었다고 합니다.

    이치로에서 오타니로

     LA 에인절스 오타니 쇼헤이가 지난해 11월 24일 발표된 ‘올 MLB 팀’ 퍼스트 팀 지명타자, 세컨드 팀 선발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투타 동시에 이름을 올린 것은 2019년 상이 제정된 뒤 처음이다. [LA에인절스]

    LA 에인절스 오타니 쇼헤이가 지난해 11월 24일 발표된 ‘올 MLB 팀’ 퍼스트 팀 지명타자, 세컨드 팀 선발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투타 동시에 이름을 올린 것은 2019년 상이 제정된 뒤 처음이다. [LA에인절스]

    스즈키 이치로(鈴木一郞·49)가 MLB 데뷔 첫해이던 2001년 아메리칸리그(AL) MVP를 차지할 수 있던 건 ‘다른 야구’를 했기 때문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홈런을 뻥뻥 쳐대던 스테로이드 시대에 이치로는 안타 치고 도루하는 ‘동양 야구’를 선보였습니다.

    그러면서 MLB에서 인종차별 장벽을 무너뜨린 재키 로빈슨(1919~1972) 이후 처음으로 데뷔 시즌에 타격왕(타율 0.350)과 도루왕(56개)을 동시에 석권한 선수가 됐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일어나 아침 식사로 아내가 만든 카레라이스만 먹었던 것도 ‘아시아 스타일’에 가까운 고집이었을 겁니다.

    반면 이로부터 20년이 지나 AL MVP를 받은 오타니는 완전 MLB 스타일입니다. 마운드에서는 시속 160㎞가 넘는 강속구를 던지고 타석에서는 홈런을 노리고 시원하게 방망이를 돌립니다. 이치로는 일본 프로야구 시절 트레이드 마크였던 ‘시계추 타법’을 포기하고서야, 그렇게 장타력을 희생한 뒤에야 MLB 무대에서도 전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약점을 줄이는 방식으로 MLB 무대에서 성공한 겁니다. 반면 오타니는 ‘쿨하게’ 정확도를 포기하는 대신 장점이었던 파워를 살려 AL 최고 선수에 등극했습니다. 그것도 투타 겸업 고집을 꺾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사실 스즈키와 오타니는 ‘사이즈’부터 다릅니다. 이치로도 180㎝로 작은 키는 아니지만 몸무게가 79kg밖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반면 오타니는 193㎝에 95㎏입니다. 오타니가 MLB 선수 평균(185.4㎝·94.3㎏)보다 크고 무겁습니다. 체격에서 뒤지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 오타니가 MLB 스타일로 MLB에서 정상에 오른 데 도움을 줬을 겁니다.

    미국 언론은 키(155㎝) 때문에 새미 리 선생을 ‘리틀 새미’라고 불렀지만 현재 동아시아 젊은 세대는 다릅니다. 손흥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손 감독은 167㎝이지만 아들 손흥민은 183㎝입니다. 183㎝는 2021~2022시즌 EPL 선수 평균 키(182.9㎝)에 해당합니다. 포워드 평균 키는 180.1㎝니까 손흥민은 큰 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키가 작은 건 오히려 살라흐(175㎝) 쪽입니다.

    한국인 신장 전 세계 상위 20%

    손흥민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진행한 ‘인류 신장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92년 한국에서 태어난 남성은 평균 174.1㎝로 전체 조사 대상 200개 나라(지역) 가운데 38번째로 컸습니다. 전 세계 상위 20% 안에 속한 겁니다. 아시아 국가 가운데서는 이스라엘(174.8㎝) 한 곳만이 한국보다 평균 키가 컸을 뿐입니다. 아시아 적어도 동아시아 선수가 체격이 작다는 이유로 세계 무대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건 이제 거짓말에 가깝습니다.

    이번 호는 너무 풋볼 비키니 같으니까 베이스볼 비키니 스타일로 마무리. 손흥민이 태어난 1992년 7월 8일로부터 98일이 지난 그해 10월 14일 롯데 자이언츠는 현재까지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손흥민이 골든부트를 거머쥔 5월 23일로부터 98일 뒤는 아직 올 시즌 페넌트레이스가 한창인 8월 29일입니다. 그러니까 롯데가 한국시리즈 정상을 밟는 건 한국인 한 명이 태어나 아시아의 자존심을 세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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