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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의 발’ 1호선 노인들 “굶지 않으려 지하철 탄다”

“무임승차 혜택 사라지면 여기 양반들 반절은 못 와”

  • 이경은 기자 alien@donga.com

‘서울시민의 발’ 1호선 노인들 “굶지 않으려 지하철 탄다”

6월 22일 서울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 개찰구. [이경은 기자]

6월 22일 서울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 개찰구. [이경은 기자]

“나이 먹고 지하철 타는 게 쪽팔리지도 않냐.”

3월 서울지하철 1호선 수원역 부근에서 한 남성이 70대 노인에게 무차별 욕설을 퍼부었다.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은 ‘1호선 패륜아’라는 제목을 달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졌다. 지하철 이용 고령층 혐오는 온라인상에서도 빈번하다. 특히 고령층 이용 비율이 높은 1호선은 각종 커뮤니티에서 ‘기피 노선’으로 꼽힌다.

6월 22일 오후 2시 서울지하철 1호선 서울역에서 청량리행 열차에 올랐다. 1호선 열차 노약자석엔 그 나름의 규칙이 있다. 나이가 더 많은 노인이 열차에 오르면 상대적으로 어린 사람이 양보해주는 식이다. 노약자석 자리를 주고받던 노인들이 하나 둘씩 일어나 내릴 준비를 시작했다. 종로3가역이다.

서울교통공사 승차인원 통계에 따르면 1~5월 지하철 1·3·5호선 종로3가역을 승·하차한 승객 334만 명 중 129만 명(39%)이 우대권을 사용했다. 1~8호선 전체 우대권 이용 비율 16%에 비해 높은 수치다. 서울교통공사 적자 원인으로 무임승차 제도가 꼽히며 경로 우대 연령 상향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청춘 시절 싣고 달리는 1호선

종로3가역에서 하차한 이들은 대부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으로 이어지는 1번 출구로 향했다. 반짝이 끈이 둘러진 중절모를 쓴 유영훈(80) 씨도 그 중 하나다. 깔끔한 옷차림의 그는 “동호회 활동을 위해 종로3가를 찾는다”고 했다. 얼마 전 작고한 고(故) 송해 선생이 운영하던 원로연예상록회 회원이다. 유씨의 하루는 1호선에서 시작해 1호선으로 끝난다.



1974년 8월 15일 개통한 지하철 1호선은 영등포, 종각, 청량리 등 서울 구도심 지역을 지난다. 어르신들의 홍대로 통하는 종로3가역 ‘국일관’, 종각역 라이브 카페 ‘쎄시봉’은 유씨의 단골 가게. 그의 청춘 시절이 오롯이 담긴 곳이다. 가끔 청량리역 인근에 색소폰을 배우러 가기도 한다. 유씨는 “오늘은 원로연예상록회 사무실에 들렀다 일찍 귀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의 친구들도 천안, 수원, 평택에서 1호선을 타고 종로3가역으로 모인다.

65세 이상 고령층은 우대용 교통카드를 발급받아 무료로 지하철을 이용한다. 무임승차가 지하철 적자의 주된 요인으로 꼽히며 제도 수정 및 폐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2021년 무임수송 관련 손실은 2784억 원에 달한다. 이에 관한 의견을 묻자 유씨 옆에 서 있던 70대 남성 A씨는 “지하철이 무료라 (탑골공원에) 자주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유씨도 “무임승차 복지가 없어지면 여기 있는 양반들 중 반절은 못 온다”며 손사래를 쳤다.

“외로움 달래려 지하철 탄다”

같은 날 동대문역에서 만난 70대 지하철 택배원 B씨에게 1호선은 일터다. 그는 “무료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게 염치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지하철 택배 종사자 대부분이 요금을 내지 않는 65세 이상 노인. 하루종일 지하철역을 오르내리며 물건을 배송한다. 인근에 동대문종합시장이 있는 동대문역에서는 B씨와 같은 노인 택배원을 여럿 볼 수 있었다. B씨가 배달 일을 서둘렀다. 목적지는 신설동역. 한 시간 안에 배달 한 건을 마치면 5600원을 손에 쥔다. B씨는 손을 심하게 떨어 휴대전화 지도를 이용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그는 “아무 자본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라 시작했다”면서 “아침 8시부터 나왔지만 초보자인데다 손까지 떨어 시간 여유가 없다”고 말하며 길을 떠났다.

지하철에 올라 외로움을 달래는 이도 만날 수 있었다. 동묘앞역 출구 앞 벤치에 앉아 있던 조현성(77) 씨다. 그는 동묘 시장을 오가는 사람을 바라보며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었다. 종로구 충신동에서 홀로 거주하는 그의 일과는 청량리역 옆 청량리도매시장을 들렀다가 동묘앞역 인근 동묘 공원을 산책하는 것. 조씨는 “장도 보고 운동도 할 겸 매일 지하철을 탄다”며 “슈퍼마켓이나 공원은 집 주변에도 있지만 사람을 구경하려 매일 지하철을 타고 동묘앞역으로 온다”고 말했다.

이미진 건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하철 경로 우대는 건강한 노인만 혜택을 본다는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도시에 거주하는 고령자들이 누리는 삶의 질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정책”이라며 “무료로 운행되는 지하철을 이용해 사회적 관계를 맺고 생계를 유지하는 등의 사례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생존 위해 찾는 공간”

일부 소란을 피우는 노인에 대한 승객의 시선이 달갑지 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한 대학생은 “특히 1호선에 시끄러운 승객이 많아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다른 호선을 이용해 통학한다”고 말했다.

지하철 1호선의 피민원인 대부분은 고령층이다. 서울교통공사 소속 지하철보안관 손성원 씨는 “들어오는 민원의 99%가 노인 승객에 대한 불만”이라고 했다. 8년째 1호선을 담당해 온 그는 스트레스가 심해 사내 마음건강센터에 다니기도 했다. 손씨는 “원칙에 따라 신고를 당한 노인을 퇴거조치 하면 되지만 그 과정은 녹록지 않다”며 “특히 지하철에서 노숙하는 노인을 경찰에 인계해도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는 경우를 보면 ‘현대판 고려장’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곳은 노인들이 생존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찾는 공간이다. 여름엔 쪄죽지 않고, 겨울엔 얼어 죽지 않기 위해서다. 그 분들은 굶지 않으려 매일 지하철을 탄다.”



신동아 2022년 7월호

이경은 기자 ali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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