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호

오늘 저녁, ‘진한 바다의 맛’ 과메기 어때요?

[김민경 ‘맛’ 이야기’]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2-12-0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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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메기는 바닷바람으로 말린다. [Gettyimage]

    과메기는 바닷바람으로 말린다. [Gettyimage]

    날이 추워질수록 바다에서 나는 맛좋은 것을 떠올리는 횟수도 늘어간다. 겨울 문턱에 들어서자마자 인기몰이를 하는 방어 같은 등푸른 생선은 물론이며, 가자미나 우럭 같은 흰 살 생선, 굴이나 전복, 돌문어와 오징어까지 차가운 파도 가운데에서 맛있어지는 때이다. 제철 미각이 펄떡이는 지금 별미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과메기다. 제철이라는 의미는 ‘날 것’이라는 조건과 한 쌍을 이뤄야 할 것 같지만 과메기의 경우는 좀 다르다.

    내가 과메기라는 것을 처음 맛본 건 스물다섯 살의 겨울, 종로구 익선동 어느 주차장에 세워진 포장마차에서였다. 지금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지만 20여 년 전 그곳의 밤은 적막하고 캄캄했다. 등대처럼 불을 밝혀둔 포장마차는 주변이 어두워질수록 단골로 들어차는, 이른바 동네 맛집이었다. 납작납작 조각난 과메기 옆에 도톰하게 썬 마늘 몇 쪽, 매운 내가 훅 올라오던 어슷어슷 썬 청양고추 조금이 작은 접시에 함께 담겨 나왔다. 그리고 초장과 오이가 따로 주어졌다. 나는 과메기 위에 고추를 올리고, 마늘에 초장을 듬뿍 찍어 그 옆에 놓았다. 아무것도 굴러 떨어지지 않게 과메기를 집어 올려 첫맛을 보았다. 매우면 어쩌나, 비리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앞섰다. 쫀득하고 기름진 살점과 알싸한 향 채소들이 함께 이겨지며 바닷가 어귀의 향이 밴 고소한 맛이 진하게 번졌다. 매운 맛, 초장의 새콤함처럼 톡 튀는 맛들이 기름진 풍미와 만나 유하게 변해버렸다. 그 밤 나는 깻잎이나 배춧잎 한 장 없이 과메기 한 접시를 몽땅 쓸어 먹었다.

    청어 눈 꿰어 바닷바람에 말리다

    과메기는 본래 청어의 눈을 꿰어 줄에 널어 바닷바람에 말린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 임금에게 올리기도 했다니 만들어 먹어 온 시간도 길지만, 적잖이 귀한 것이었나 보다. 눈을 꿰어 말리는 모양 덕에 관목어(貫目魚)로 불리다가 관메기를 거쳐 과메기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청어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아 대부분의 과메기는 꽁치로 만든다. 꽁치 역시 수입한 것이 대부분인데 크기와 신선도에 따라 과메기의 맛도 달라진다.

    말리는 방법도 변해왔다. 굴비처럼 생선을 통째로 엮어서 말리는 것은 내장과 머리를 제거하지 않는다. 당연히 수분이 천천히 빠지니 말리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고, 내장이 남아 있는데다가 속속들이 마르지 않으니 기름진 생선 자체의 맛이 점점 진해진다. 누구에게는 이것이야말로 진짜 과메기고, 누구에게는 무척 비린 과메기가 된다. 먹을 때 일일이 껍질을 벗기고 배를 갈라 손질해야 하는 점도 번거롭다. 이처럼 여러 가지 이유로 통째 말린 과메기를 맛보기는 쉽지 않다. 흔하고 맛있는 방법으로는 배지기 과메기가 있다.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깨끗이 씻어 꼬리만 붙여 놓고 반으로 가른 다음 살이 바깥으로 가도록 뒤집어 말리기에 배지기라고 부른다. 꼬리가 걸이 역할을 하므로 어쩔 수 없이 수분과 기름이 통통한 아래쪽(머리가 달렸던 쪽)으로 모여 간혹 꼬리 쪽이 너무 딱딱해지기도 한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평평한 망에 펼쳐 널어 말리는 과메기도 있는데 발 과메기라고 부른다.

    독특한 과메기만의 풍미는 기름진 살집에 차가운 바닷바람과 큰 일교차가 더해져야 제대로 완성된다. 본래 10월부터 생선을 손질해 바닷가에서 말려 초겨울 별미라는 이름표를 달고 시장에 나온다. 최근에는 영 차가워지지 않는 바닷바람 덕에 생산 시기를 조절하기도 하지만 기계 건조하는 양이 부쩍 늘었다. 자연이 덧칠하는 해풍과 햇살의 맛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깨끗한 환경에서 변수 없이 만들어지는 과메기의 맛 역시 굳이 흠 잡을 데라고는 없다. 과메기 초보자에게는 발에 펼쳐서 기계로 골고루 말린 것이 최적일 것이다.



    과메기 상차림. [Gettyimage]

    과메기 상차림. [Gettyimage]

    묵은지, 백김치, 생미역

    과메기에 맛을 들이느냐 마느냐는 첫 만남이 결정적 구실을 한다. 나처럼 먹성도 좋은데, 운까지 따라 맛있는 과메기를 만나면 다행이지만 불운이 따를 수도 있다. 신선하지 않은 생선을 말린 것, 말리는 중에 숙성이 아니라 슬쩍 발효된 것, 껍질을 제대로 벗기지 않아 비린 것, 너무 말라 쫀득함은 날아가고 단단해진 과메기와 첫 만남을 가지면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워진다. 알음알음 좋은 과메기를 구했다면 붉은 빛 감도는 통통한 몸에 깨끗한 윤기가 흐르며, 껍질이 잘 벗겨진 것일 게다. 칼로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도 좋고, 손으로 찢어도 된다.

    곁들이는 채소 준비하기는 너무나 쉽다. 마늘, 고추는 기본인데 비린 맛이 겁난다면 마늘종과 쪽파, 양파를 준비해 먹기 좋게 썰어 함께 놓자. 초장도 좋지만 쌈장에 다진 마늘과 고추, 참기름을 섞어 곁들이면 비린내를 줄여준다. 묵은지를 물에 헹궈 꽉 짠 다음 크게 썰어 과메기를 싸먹어도 좋고, 백김치도 썩 잘 어울린다. 향이 진한 깻잎과 고소한 배추 속잎도 초보자에게는 큰 응원이 된다. 한 쌈, 두 쌈 먹다가 이 맛이 마음에 든다 싶으면 마른 김, 데친 다시마, 생미역 등에 과메기를 올려 맛보자. 같은 바다에서 자랐지만 다른 맛을 내는 재료들이 타래처럼 어우러지며 입 안 가득 겨울 바다가 들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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