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호

명란젓 중 최고봉, 갓 잡은 명태에서 바로 꺼내 얼린 ‘선동’

[김민경 ‘맛 이야기’] 딱 한입이면 충분한 것② 명란젓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3-01-22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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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다에서 갓 잡은 명태의 배를 갈라 알부터 꺼내 바로 얼린 명란젓을 ‘선동’이라고 하는데 적은 양의 소금을 넣고 덜 짜게 절여 빛깔이 연한 것이 특징이다. 사진은 선동 정란. [Gettyimage]

    1. 바다에서 갓 잡은 명태의 배를 갈라 알부터 꺼내 바로 얼린 명란젓을 ‘선동’이라고 하는데 적은 양의 소금을 넣고 덜 짜게 절여 빛깔이 연한 것이 특징이다. 사진은 선동 정란. [Gettyimage]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엎어지면 정수리가 닿을 만한 곳에서 혼자 꽤 오래 살았다. 내가 살던 때의 홍익대학교(홍대) 앞은 이른바 ‘주차장 골목’에서 멀어지면 대체로 한산했다. 당시 홍대 정문 근처 나지막한 언덕배기에 작은 술집이 있었다. 요즘처럼 날이 차가워질 때면 술집 벽에 난 작은 창마다 온통 하얗게 김이 서렸다. 그걸 힐끗 보면 뽀얀 창문 너머 웃음과 온기와 맛있는 음식들이 넘쳐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난데없이 쓸쓸하고 허기져 절로 발걸음이 그 집으로 향했다. 간혹 아는 얼굴이 있으면 어울리기도 하고, 바 테이블에 턱을 괴고 앉아 친구를 불러내곤 했다.

    우리의 첫 주문은 언제나 명란구이! 명란은 구우면 더 통통해진다. 따로 간을 할 필요도 없이 맛있고, 물기 없이 알로 꽉 찬 특유의 팍팍함이 맑고 독한 술의 맛을 오히려 돋운다. 명란구이와 짝을 이루는 생생한 오이는 명란과 한입에 넣고 씹어도 좋고, 따로 아삭아삭 깨물어 먹어도 개운하니 좋다. 그릇 귀퉁이에는 ‘키세스초콜릿’처럼 예쁜 마요네즈도 놓여 있다. 마요네즈와 명란은 무척 잘 어울리지만 그러면 명란구이가 너무 빨리 줄어들기에 우리는 오이를 찍어 먹곤 했다.

    명란의 참맛 널리 알린 마요네즈

    명태의 알인 명란으로 만든 젓갈 즉 명란젓의 쓸모는 굉장히 다양하다. 젓갈만 작은 그릇에 담아 내놓아도 밥반찬이 되고, 참기름이나 통깨를 듬뿍 뿌려 먹으면 ‘고짠고짠(고소하고 짠맛)’하여 입맛을 돋운다. 이때 쪽파를 송송 썰어 얹어도 잘 어울린다. 술집에서처럼 통째로 구워도 좋지만 달걀말이를 만들 때 명란을 넣기도 한다, 이때의 명란은 되도록 저염명란(백명란, 무색소명란)을 써야 한다. 양념이 잔뜩 된 명란을 통째로 넣고 달걀말이를 완성했다가는 주체할 수 없는 짠맛에 혓바닥이 혼쭐 날 수 있다. 명란 달걀말이에 김까지 한 장 깔아주면 풍미는 물론 칼로 썰었을 때 보는 맛까지 더 좋아진다. 통 명란 대신 알만 발라 달걀물과 섞어 부드럽게 달걀말이를 하기도 한다.

    짭조름한 명란이 사람들에게 더 환호받기 시작한 건 마요네즈와 어울리면서부터이다. 일명 ‘명란마요’는 마요네즈를 꺼리는 이들도 슬쩍 한입 먹고 싶게 만든다. 구수하고 기름진 사이에 짭짤함이 톡톡 튀고, 다글다글 느껴지는 명란의 질감까지 맛있다. 여기에 고추냉이나 청양고추를 잘게 썰어 넣으면 알싸함과 개운함이 더해진다. 최근에는 곱게 다진 마늘이나 마늘즙, 극소량의 간장 등을 더해 색다른 풍미를 내기도 한다.

    무엇을 섞든 명란마요는 고기, 해산물, 채소, 두부, 달걀 요리는 당연하며 여러 통조림 식품과 밥, 국수, 빵에도 얼마든지 곁들일 수 있다. 볶음, 무침, 구이, 튀김, 찜, 데침 등 조리법도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명란마요와 어울리지 않는 것을 찾는 편이 더 의미 있는 것 같다. 명란젓 자체는 당연히 비린 맛이 있다. 그러나 마요네즈와 섞이면서 그 풍미가 희석된다. 마요네즈는 명란을 만나 느끼함을 덜고 줄기가 다른 짠맛과 질감, 게다가 핑크빛 색감까지 얻었다. 참 절묘한 어울림이다. 최근에는 명란마요에 곱게 다진 마늘이나 마늘즙, 소량의 간장, 고추기름 등을 더해 색다른 풍미를 내기도 한다.



    마요네즈뿐이랴. 명란젓은 버터, 생크림, 우유, 치즈, 올리브오일과도 잘 어울린다. 기름진 맛을 바탕으로 하는 파스타, 리조토, 수프, 크리미한 드레싱과 소스에 명란젓을 넣는다. 이런 조합 덕에 서양요리에 깻잎도 찢어 넣어보고, 김도 뿌려보고, 깻가루로 장식도 해볼 수 있게 됐다.

    백명란·무색소·양념명란… 맛도 색도 가지가지

    명란의 원료는 모두 명태의 알이지만 명란젓은 몇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흔히 접하게 되는 백명란, 무색소명란, 양념명란이 있다. 백명란은 파프리카 가루 등을 넣고 절여 먹음직스러운 색을 입힌 것이다. 파프리카 가루 역시 식재료로 만들기에 특유의 부드러운 단맛이 명란에 조금 스며든다. 무색소명란은 소금 외에 가미를 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양념명란은 말 그대로 고춧가루 등을 넣고 맛과 색을 모두 낸 것이다. 대체로 색이 진하고 맛도 더 짭짤하고 복합적이다.

    형태로는 통 명란 즉 정란 있고, 알만 발라서 따로 모아 파는 게 있다. 정란은 비닐보다 얇은 알껍질에 흠집 없이 알이 매끈하게 꽉 차 있는 것을 말한다. 어디 한 군데도 터지지 않고, 알 끄트머리까지 온전하다. 알만 바른 것은 껍질이 터지거나 흠집이 있는 파치의 알을 따로 모은 것이다. 명란마요를 손수 만들거나, 다른 요리를 할 때에는 정란보다 파치의 알을 발라 모은 걸 사용하는 게 더 편리하다.

    명란젓 품질에 가장 영향을 주는 것은 알을 품은 명태가 잡혔을 때의 상황이다. 물고기를 잡는 게 목적인 어선이면 명태를 통째로 얼리고, 알이 목적이라면 알부터 꺼내 바로 얼린다. 당연히 알만 먼저 꺼내서 얼린 ‘선동’은 신선함이 잘 유지되어 적은 양의 소금을 넣고 덜 짜게 절일 수 있고, 양념이나 색도 많이 필요 없다. 육지에 돌아와 동태를 녹여 꺼낸 알인 ‘육동’은 아무래도 신선함이 떨어지므로 더 짭조름한 간과, 색, 양념이 필요해진다. 실은 선동과 육동으로 만든 각각의 젓갈을 나란히 놓고 맛보지 않는 한 나와 같은 보통 사람은 구분하기 쉽지 않다. 다행히 명란젓의 원료가 선동일 경우에는 상인에게 묻기도 전에 먼저, 온라인 마켓에서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크게 써놓고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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