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호

청와대의 광주일고, 국세청의 광주고, 검찰의 목포고, 홍보의 전주고

  • 김당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11-03 13: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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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29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마치고 나온 각료들의 표정은 자못 심각하면서도 긴장돼 보였다. 다음날인 3월1일은 공휴일이고 3월2일은 김대중 대통령이 유럽 순방을 떠나는 날이었다. 대통령이 자신의 부재중에 국정 운영에 혼선이 없도록 주무 장관들을 독려하거나 적당히 ‘군기’를 잡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통과의례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의례적인 ‘군기 잡기’라고 하기에는 대통령의 어조가 너무 강경했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석상에서 이른바 특정 고교 중심의 인맥 형성을 강력히 경고했다. 당연히 장관들과 고위 공직자들은 대통령의 발언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대통령이 왜 갑작스레 그런 경고를 했을까? 그러나 딱히 맞아떨어지는 해답은 찾기 어려웠다. 요 근래에 주요 공직 인사도 없었거니와 DJ가 엄중 경고할 만큼 특정고 출신들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주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뚜렷한 징후도 감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장관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린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다만, 대통령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정보를 보고 받기 때문에 ‘그럴 만한 뭔가가 있겠지’ 하는 정도였다. 청와대는 그 다음날 민정수석실의 이만의 공직기강비서관, 정무수석실의 정영식 행정비서관을 맞바꾸는 인사를 단행했다.

    그 때문인지 대통령의 발언 배경을 두고서도 언론은 ‘지역주의 배격’이니 ‘파벌형성 차단’이니 ‘인사편중 시비 차단’ 의지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했다. 총선 공천과 관련한 특정고 파벌 움직임에 대한 경고 및 예방조치(경향신문)니 인사 잡음 방지 및 현정권의 인사 편중 시비에 대한 ‘선수치기’(동아·중앙일보)니 하는 분석이 나오는가 하면, 발언 다음날 단행된 청와대의 ‘비서관 맞바꾸기’는 김대통령의 지역주의 배격 의지로 해석할 수 없다(조선일보)며 ‘편파 인사’ 시정을 촉구하는 사설도 있었다.

    신이 난 쪽은 한나라당이었다. 한나라당은 DJ의 특정고 인맥 경고 발언을 신호탄으로 DJ 정부의 ‘인사편중’을 기정사실화하고 이를 지역감정 문제로 연결지었다. 한나라당은 3월2일 ‘DJ 정권 2년, 호남 편중인사를 고발한다’는 제목의 책자를 긴급 배포하고 “인사편중 문제는 호남에 비해 여타 지역인 수도권과 강원, 충청, 영남, 제주 출신이 불평등하게 차별 받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영남 차별’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고 ‘호남 독식’이 문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DJ는 왜 선거를 앞둔 미묘한 상황에 자칫 본전도 건지기 어려운 그런 민감한 발언을 한 것일까? DJ가 경고한 정부 주요 부처내 특정고 인맥의 실태를 짚어보고,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지역편중 인사의 실태가 과연 어디까지 사실인지 면밀하게 살펴 보기로 한다.



    [ 제1부 특정고 약진의 허실 ]

    김대중 대통령이 2월29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내각에 강조한 사안은 네 가지였다. 첫째는 제조업 분야의 사기와 주가가 떨어지고 있는 현실에 우려를 표하고 제조업과 정보화 산업의 병행 발전 대책을 경제 부처에 주문한 것이었다. 둘째로는 최근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인 사업가를 표적으로 한 범죄 대책과 재발 방지책을 주문하고 범죄 예방을 위한 한국인의 이미지 제고를 요구했다. 외교통상부와 문광부, 산자부 등이 해당되었다. 셋째는 바로 문제의 특정고 인맥에 대한 경고 발언이었고 넷째는 젊은이들에 대한 해외 취업훈련 제안이었다. 이 가운데 박준영 청와대대변인이 밝힌 DJ의 특정고 발언 대목을 옮기면 이랬다(논리적인 전개를 좋아하는 DJ는 순서를 매기는 버릇이 있다).

    DJ가 빼든 ‘옐로 카드’의 의미

    “셋째, 일부 고등학교 중심의 인맥이 공직사회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이나 문민정부 시절에도 일부 고등학교 중심으로 인맥이 형성됐었는데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느냐와 국가에 봉사하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래서 인사 문제에 출신 고등학교별 정실인사를 하거나 압력을 넣어서는 절대 안 된다. 국민의 정부 들어 그런 인맥이나 파벌 조성을 용납하지 않고 있으나 최근 일부에서 그런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폐단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앞으로 감독을 철저히 해서 그런 일이 없도록 하라. 국민의 정부 들어서는 정실인사라든가 고위 공직자 임명에서 이런 폐단은 없어졌다. 나라를 바로 잡기 위해서 우리가 나라일을 맡아서 하는 것이다. 대통령도 모범을 보이고 있다. 장관들도 이런 점에서 각 부의 기강이 바로 서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전체 문맥으로 보면 “특정고 인맥의 폐단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감독을 철저히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김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신임 이억수 공군참모총장을 임명하는 자리에서도 “호남의 일부 고교 출신들이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 오늘까지는 참겠으나 앞으로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성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식 행사에서 하루에 두 번씩이나 경고한 것은 대통령이 ‘작심’하고 말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DJ가 빼든 ‘옐로 카드’의 의미는 그 다음날 좀더 분명해졌다. 청와대는 다음날 이만의 공직기강비서관과 정영식 행정비서관을 맞바꾸는 다소 이례적인 보직 변경 인사를 했다. 공직기강비서관은 민정수석실 소속이고, 행정비서관은 정무수석실 소속이다. 그런데 검찰 출신의 신광옥 민정수석과 이만의 공직기강비서관은 둘 다 광주일고 출신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 아니라면 대통령이 말한 일부 고등학교, 즉 특정고 출신은 광주일고를 가리키는 셈이 됐다.

    그런 조짐은 이미 그전의 공군참모총장 인사에서도 엿보였다. 작전사령관이 공참총장에 임명되어온 관행에 비추어 당초 군에서는 대체로 선두 주자인 이기현 작전사령관의 기용을 점쳤다. 더구나 이사령관은 ‘잘 나가는’ 호남 출신이었다. 그런데 이기현 작전사령관(공사 13기·전남 고흥) 이억수 공참차장(공사 14기·강원 원주) 안병철 공사교장(공사 13기·대구) 등 후보군(群) 3인 중에서 예상을 뒤엎고 이억수 중장이 공참총장으로 임명되었다.

    조영길 합참의장(전남 영광) 이수용 해참총장(전남 나주) 등 호남 출신들이 군 수뇌부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 특정지역(전남) 출신이 나란히 공군참모총장과 해군참모총장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여론이 작용한 것으로 보였다. 이억수 중장이 공참총장으로 기용되자 이번에는 같은 강원도 출신인 황원탁 외교안보수석이 이 인사에 발언권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그러자 대다수 언론은 ‘강원도 무대접을 의식한 인사’니 ‘선거를 의식한 인사’니 하는 식으로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호남 출신을 임명하면 ‘호남 독식’이라고 비판하고 다른 지역 출신을 임명하면 ‘선거용’이라고 비판하니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 것이냐?”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해 청와대 한 관계자는 볼멘소리를 터트렸다.

    한광옥과 신광옥, ‘양광옥’의 신경전?

    어쨌든 광주일고가 특정고 발언의 타깃으로 비치게 된 배경에 대해 정치권의 시각은 두 가지로 나뉜다. 각각 음모론과 일반론에 입각한 두 가지 시각은 대통령의 여론 수렴 채널과 연관되어 있다.

    음모론의 시각에서 보면 ‘양광옥의 신경전’과 ‘전주고 반격설’이 그럴 듯하다. 여기서 ‘양광옥’은 한자 이름까지 같은 한광옥(韓光玉) 청와대비서실장과 신광옥(辛光玉) 민정수석을 빗댄 표현이다. 이 시각에 따르면 대통령의 특정고 발언의 진원지는 한광옥 청와대비서실장이다. 이유인즉, 한광옥 비서실장 방에서 3급 이상 고위 공직자 인사파일을 관장하는 이만의 공직비서관에게 공직자 인사파일을 요구했는데도 업무 협조가 잘 안되자 이를 보고받은 한광옥 실장이 다시 대통령에게 민정수석실의 신광옥 수석-이만의 비서관 체제(광주일고 선후배)의 문제점을 보고해 즉각 조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한실장은 서울 중동고 출신이지만 중학교는 전주고의 전신인 전주북중을 졸업해 전주고 인맥으로 분류된다. 이것이 ‘전주고 반격설’의 배경이다.

    전주고 인맥은 지난 2월 민주당의 4·13 총선 후보 공천 과정에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민주당이 창당할 때만 해도 광주·전남과 전북 지역에서는 신당의 개혁 공천 이미지 차원에서 상당수 현역의원들의 물갈이가 예상되었다.

    그런데 당초 전북에서 이런저런 사유로 물갈이 대상으로 거론된 김태식(완주)·장영달(전주 완산)·조찬형(남원) 의원을 포함해 정동영(전주 덕진)·장성원(김제) 의원 등 전주고 출신 의원들은 죄다 공천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당내에서는 조세형 전 총재권한대행, 정동영 대변인, 한광옥 비서실장 등 전주고 인맥이 ‘동문 밀어주기’ 차원에서 막후 지원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공천에서 떨어진 경합자들과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를 ‘전주고 마피아’의 농간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서울 구로을 보궐선거 공천에 이어 고향인 남원 공천에서도 연거푸 분루를 삼킨 이강래 전 정무수석은 기자회견을 갖고 ‘실세 부인들의 공천 로비’까지 거론하며 공천 결과에 강력 반발했었다. 따라서 음모론의 구도에 따르면 당 안팎에서 여론의 비난을 받은 전주고 인맥이 그동안 일부 부처에서 갈등을 빚어온 광주일고 인맥에 일종의 반격을 가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인맥 심기’ 경쟁에 대한 다목적 경고용

    음모론이 한광옥 비서실장의 보고 채널을 특정고 발언의 진원지로 꼽는 데 반해 일반론은 대통령이 접하는 다양한 보고 채널에 근거한다. 특정고 발언의 진원지는 한광옥 비서실장의 보고 채널이 아니고 특정고 발언의 배경도 일반적으로 우려되는 ‘인맥 만들기’ 현상을 지적한 것이지 딱히 광주일고를 직접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김대통령의 특정고 발언은 결과적으로 광주일고를 지칭한 것처럼 되었지만 그보다는 전주고 인맥의 공천 구설수와 일부 시중은행 행장을 선임하는 과정에 나타난 광주일고·광주고 인맥의 과열 경쟁 같은 부작용이 더 커지기 전에 쐐기를 박으려는 다목적용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특히 국민은행과 광주은행 행장을 선임하는 과정에 여권내 호남 출신 실세들이 ‘인맥 심기’ 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투서가 빗발쳤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통령은 청와대비서실의 보고 외에도 국정원, 경찰, 검찰 등 다양한 공적인 채널과 시중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여러 사적 채널을 통해 공직 기강과 시중 여론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다. 그래서 1차적으로 공직 기강 실태에 관한 국정원의 보고서가 대통령의 특정고 경고 발언에 결정적 구실을 했다는 관측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에도 특정고 출신 간부들이 상당수 포진하고 있는데 그런 보고서를 올릴 수 있겠냐”면서 “그런 보고서가 있다면 공조직보다는 사적인 채널을 통해 보고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의 발언은 “일부 고등학교 중심의 인맥이 공직사회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는 식으로 전문(傳聞) 형태를 띠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 주요 부처에 포진해 있는 특정고 출신의 현황은 어느 정도이며 그로 인한 문제점은 무엇일까. 호남지역의 명문고 가운데 이른바 특정고로 지목되고 있는 광주일고·광주고·목포고·전주고 출신 공직자 현황과 문제점을 짚어보면 이렇다.

    ●청와대 : 광주일고 최다

    청와대의 경우 일반의 인식에 비해서는 호남 지역 특정고의 편중 현상이 그리 심하지는 않은 편이다. 그러나 김영삼(YS) 정부와 비교하면 그와 대별되는 김대중(DJ) 청와대의 특징이 뚜렷이 드러난다.

    우선 YS 정부의 청와대 비서관 이상 60명(98년 2월 기준)의 출신고 분포는 ▲경기고 12명 ▲서울고 7명 ▲경남고 4명 ▲경복고 4명 ▲경북고 3명 순이었다. 경기고 출신이 압도적 우세를 차지했다. 출신고 소재 지역으로 분류하면 부산-경남(PK) 출신이 12명(20%), 대구-경북(TK) 출신은 7명(11%)이었다. 이에 반해 DJ 정부 청와대 비서관 이상 48명(2000년 2월 기준)의 출신고 분포는 ▲광주일고 5명 ▲경복고 3명 ▲서울고 3명 ▲전주고 3명 순이다. 그 밖에 광주고·목포고·인창고·중동고 출신이 각각 2명씩이고 나머지는 거의 한 명씩이다. 출신고 소재 지역으로 분류하면 호남 출신은 30% 안쪽으로 수석급 이상 9명 중에 신광옥 민정수석, 이기호 경제수석, 김유배 복지노동수석 등 3명이 포진해 있다.

    2년 전의 YS 시절과 비교하면 영남세의 쇠락과 호남세의 확장이 두드러진다. 그중에서도 특히 취임 초기에 비해 광주일고의 약진이 뚜렷하다. DJ 취임 초기에는 경기·경복·광주·광주일고 출신이 각각 3명씩으로 ‘공동 최다’였다. YS 시절 광주일고·광주고 출신은 1명씩이었다. 이에 반해 YS 시절 주축을 이룬 경기고·경남고 출신은 현재 1명씩이다. 정반대 현상이다.

    전주고 인맥의 부상도 눈에 띈다. 중동고 출신이지만 전주북중을 다닌 한광옥 비서실장을 포함하면 전주고 인맥은 4명이다. 특히 전주고 인맥은 공보수석실에 집중돼 있다. ‘동아일보’ 출신의 김대곤 국내언론비서관·김기만 해외언론비서관, ‘중앙일보’ 출신인 고도원 연설담당비서관 등이 모두 전주고 동문이다. 여기에다 역시 ‘중앙일보’ 출신인 오홍근 국정홍보처장도 전주고 인맥이다. 국정홍보와 국내·해외 공보 그리고 대통령의 연설까지를 전부 전주고 출신이 장악하고 있다. 게다가 전주고 인맥은 한나라당 ‘입’까지 커버하고 있다. 한나라당 선대위 대변인을 맡은 이원창 총재공보특보는 ‘경향신문’ 출신으로 역시 전주고 인맥이다. 전주고 출신 언론인들이 주축이 된 전언회(全言會)의 막강한 힘이 느껴지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 가운데도 과거 정권에 비해 ‘희망’의 징표를 읽을 수 있는 뚜렷한 특징은 ‘고교 백화점’을 연상케 하는 ‘평준화’다. 전체적으로 동문이 2명~5명씩인 8개교를 제외한 나머지는 혼자뿐인 학교이고 그중에는 이름이 생소한 학교도 많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실업고 출신들이다.

    서형래 정무1비서관(강경상고), 이상환 정무2비서관(성동공고) 등이 가정 형편 등을 이유로 실업고를 다니다 대학에 진학한 케이스다. 출범 초기에는 이강래 정무수석(대경상고), 이근경 정책1비서관(경기상고) 등 실업고 출신이 4명이나 되었다. 자수 성가형을 높이 평가하는 김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어찌 보면 광주일고를 수적으로 맞상대할 특정고 인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결속력 강한 ‘여고 인맥’이다. 놀랍게도 YS 시절까지는 청와대에 여성 비서관이 1명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박금옥 총무(인일여고)·신필균 시민사회(금란여고)·차영 문화관광(광주 경신여고)·이승희 여성정책(이화여고)·박선숙 공보기획비서관(창문여고) 등 5명이나 포진해 있다. 김대통령의 평생 동지인 이희호 여사(이화여고)까지를 포함하면 ‘여고 인맥’이 광주일고 인맥보다 더 센 셈이다.

    ●검찰 : 목포고 약진이 주목 대상

    검사장 이상 법무부·검찰의 고위 간부 41명 가운데 현재 공석인 2명을 제외한 39명을 출신 고교별로 분류하면 경기고가 6명으로 가장 많고 경북고 5명, 목포고 4명, 대전고 3명, 부산고 2명 등이다. 고교의 소재 지역별로는 영남이 14명, 호남 11명, 서울 경기 10명, 충청 3명, 제주 1명 등이다. YS 시절(98년 2월)과 비교하면 출신 고교로는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경기고가 8명에서 6명으로 줄어든 것 말고는 이렇다 할 변동은 없다. 한편 출신 지역별로는 서울·경기가 2명, 충청이 3명, 영남이 2명 줄어든 반면에 호남은 4명, 기타 지역은 1명 늘었다.

    이와 같은 결과는 당초 정권교체로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예상됐던 것을 감안하면 외형상 크게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물론 서열과 내부 평가를 무시할 수 없는 검찰 인사의 성격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구체적인 인사 내용을 보면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특히 목포고의 약진은 주목할 만하다. 현재 목포고 출신으로 검사장급 이상은 신승남 대검차장과 김학재 대전지검장, 정충수 법무부법무실장, 김규섭 대검공판송무부장 등 4명이다. 또 주요 보직 간부로는 임양운·박영관 검사가 서울지검의 특수수사를 총괄하는 3차장과 검찰 인사 및 예산에 대한 실무 책임자인 검찰1과장을 맡고 있다. DJ 정부 초기에 박상천 법무장관·김태정 검찰총장·박주선 대통령법무비서관 등 ‘광주고 3인방’이 검찰을 주도했던 것에 견주면 주시할 만한 약진이다.

    이에 비해 광주일고·광주고·전주고 출신 검사장은 김대웅 대검중수부장·조규정 부산고검차장·채수철 대전고검차장 등 각각 1명씩뿐이다. 이밖에 검사장 이하 주요 보직 간부 가운데 광주고 출신은 명동성 목포지청장·이정희 법무부조사과장·이충호 여주지청장 등이, 광주일고 출신은 강충식 순천지청장·문성우 서울지검형사7부장·박철준 대검공안2과장 등이 있다.

    ●경찰 : ‘종합선물세트’처럼 다양

    경찰 고위간부들의 출신고교는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만큼 다양하다. 현재 경찰청장(치안총감)을 포함한 치안감급 이상 경찰 간부 24명의 출신고는 무려 21곳이나 된다. 부산고와 부산사범고, 성남고 출신이 2명씩 있을 뿐 나머지 18명의 출신고는 모두 다르다. 요즘 잘 나간다는 이른바 MK(목포-광주고) 가운데 광주고 출신은 아예 없고 목포고 출신이 1명 있을 뿐이다. 출신 지역별로 분류해 봐도 24명의 경찰 간부 가운데 영남출신이 9명(37.5%)으로 가장 많고 호남 출신 5명(20.8%), 서울·경기 출신 6명(25%), 충청 출신 4명(16.7%) 등이다.

    경무관 이상 경찰 간부로 확대해도 YS 정부 말기 영남지역 출신 30명, 호남 출신 12명이던 것이 98년초 인사에서 각각 25명과 14명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현 정부 출범후 일부 비판과는 달리 ‘호남 독식’의 폐해는 없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내용상으로는 정보 등 핵심 보직에 호남 인맥 등용이 두드러졌다. 이를테면 이무영 경찰청장(전주상고)은 호남 출신으로는 처음 서울청장에 오른 데 이어 치안총수로 기용되었다. 또 과거 정권에서 영남 인맥이 독차지했던 경찰청 정보국장에 이대길 치안감(광주사범), 성낙식 치안감(전주고) 등 호남 출신이 연거푸 임명된 것도 대표적 사례. DJ 정부 출범 초기에 청와대 경비를 맡은 101경비단장에 임명된 박금성 경무관(목포고)은 현재 경기청장으로 승진했다. 또 인사와 관련해 김세옥 전 경찰청장의 친동생인 김옥전 총경이 22특경대장에 임명돼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한편 이무영 경찰청장 취임 이후 처음 단행된 지난 1월 총경급의 승진 인사에선 승진자 71명 중 지방경찰 몫을 뺀 중앙경찰 38명 가운데 37%인 14명이 호남 출신이고 나머지 24명 가운데 충청도 8명, 서울과 경기 7명, 영남 6명, 강원 출신 3명 등이었다. 이 때문에 경찰 내부에선 특정지역 편중인사라는 뒷얘기가 무성했다.

    ●군 : 특정고 인맥 없지만 호남 출신 약진

    국방부와 군의 주요 지휘관 면면을 보면 특정 지역의 고교 출신이 인맥을 형성한 듯한 현상은 보이지 않는다. 국방부 차관보급 이상을 포함해 합참과 3군의 장관(將官)급 이상 장성 36명(합참 전략기획본부장과 공군참모차장은 공석)의 출신고 현황을 보면 특정고 출신은 광주고 2명, 광주일고 1명, 전주고 1명 등이다. 출신고의 소재 지역으로 분류해도 호남 지역 출신은 8명(22.2%)이다.

    그러나 DJ 정부 출범 이후 호남 출신들은 군의 핵심 요직에 상당수 진출했다. 우선 현 정부 출범 직후 호남 장성으론 처음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된 김동신 예비역대장은 광주일고 출신이다. 군내 영향력이 막강한 기무사령관에는 전주고를 나온 이남신 중장이 임명됐다가 지난해 10월 대장 진급과 함께 야전군 핵심인 3군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 자리를 전북 고창고 출신의 김필수 중장이 넘겨받았다. 김희중 특전사령관도 조대부고를 나왔다.

    이밖에도 호남 출신 주요 보직자는 문일섭 국방부 획득실장(광주고), 조영길 합참의장(광주숭일고), 이수용 해군참모총장(광주일고) 등이 있다.

    군 내부에서는 ‘호남 약진’이 고위 지휘관보다 영관급 장교나 준장·소장급 인사에서 두드러진다며 이런 추세로 2∼3년이 지나면 외형상으로도 호남 출신이 다른 지역보다 많아질 것이라는 말이 나돌기도 한다. 실제로 98년 10월에 단행된 장성인사에선 육군의 경우 준장 진급자 48명 중 호남과 충청 출신이 각각 14명이고 영남이 13명으로 나타나 인구편차나 임관된 수에 비해 ‘공동정권 출신 지역’이 우대받았다. 이는 지난해 10월의 준장 및 소장 진급 인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대해 수십년간 잘못된 인사 관행을 바로잡는 게 필요하며, 오히려 진급 때마다 동기생 중 선두주자를 달려온 이기현 공군작전사령관(여수고)이 지역 안배를 이유로 공군참모총장에 임명되지 못하고 옷을 벗은 건 명백한 역차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부처 : 전통 경기고 파워 여전

    전통적으로 경제부처는 수재가 많은 경기고 출신의 최대 집결지였다. 우선 재정경제부의 경우 과거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그리고 재정경제원을 주도해왔던 경기고 출신이 다소 세가 떨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최대 계파를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재경부의 경우 특정고교 출신들이 특별히 잘 나간다는 징후는 별로 없다. 장·차관과 1급, 본부 국장 등 19명 가운데 경기고가 이헌재 장관과 엄낙용 차관을 포함해 5명으로 가장 많고 경남·경북·용산고가 각 2명씩이다. 주무국장인 경제정책국장과 금융정책국장은 경기고 출신이다.

    금융감독위는 광주고 출신인 이용근 금감위원장이 이헌재 장관의 후임을 맡아 호남인맥 약진이 두드러져 보이지만 고교 인맥으로 볼 때는 경기고 등 서울세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이정재 부위원장만 경북고 출신일 뿐 상임위원 2명과 기획행정실장·감독법규관 조정협력관이 모두 경기고 출신이다.

    금융감독원은 실무 임원급(11명)과 3국6실의 실국장급 중 15명이 호남 인맥으로 분류돼 다른 부처에 비해 상대적으로 호남세가 약진한 편이다. 이중 광주일고·광주고 출신은 8명. 금감원 내에선 최근 금융시장에서 증시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가면서 과거 정권 시절부터 호남인맥이 많이 포진했던 금감원 내 증감원 출신들이 각광을 받는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한편 공정위는 국장급 이상 10명의 출신고교가 모두 다른 ‘10인 10색’이다. 이 중 특정고 출신은 광주고 1명, 전주고 1명 등이다.

    기획예산처는 장관 이하 12명의 실국장급 중 특정고 출신으로는 진념 장관(전주고) 김경섭 예산총괄심의관(전주고), 임상규 경제예산심의관(광주일고) 등이 있다. 그러나 부처 내에선 과거 TK·PK 정권 시절 소외됐던 호남출신들이 뒤늦게 중용되고 있다는 시각이 우세한 편이다. 특히 핵심요직으로 꼽히는 예산실의 경우 그동안 호남 출신 실장은 전북 출신의 강현욱 의원이 거의 유일할 정도로 차별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간부들 중에는 상대적으로 경북 출신이 여전히 우세하다.

    산업자원부는 정치인 출신으로 광주고를 졸업한 박태영 장관 취임 이후 호남세의 약진이 가장 두드러진 경제부처 중 하나로 꼽힌다. 산자부는 본부 국장급 이상 20명 중에서 특정고 출신은 광주일고가 3명으로 가장 많고 광주고가 2명이다. 2년 전의 YS 때와 비교하면 국장 이상 간부 가운데 호남 출신은 3명에서 5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YS 시절에는 경남 5명, 경북 5명 등 영남세가 10명으로 호남세(3명)를 압도한 점에 견주면 영남 편중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은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에 비해 과거부터 호남 출신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농림부는 새 정부 들어 영남 출신이 다소 늘어나는 등 역차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세청 : 광주고 막강한 힘

    국세청의 경우 안정남(安正男) 청장을 비롯해 대부분의 요직을 광주고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 손영래 조사국장과 작년말 부이사관으로 승진한 정민 조사1과장, 김용표 납세지원국장 등이 광주고 출신이다. 이밖에 안청장과 고시 동기로서 차기 청장감으로 거론되고 있는 김성호 서울청장(조선대 부속고)·봉태열 중부청장(광주 숭의고)이 광주지역 고등학교 출신들이다. 또 탈세 기업인들에게는 ‘염라대왕’으로 통하는 서울국세청 조사4국장은 전주고 출신이다.

    역대로 국세청장에 호남 출신이 오르기는 처음이다. 국세청장으로 가는 징검다리인 조사국장도 과거 영남 정권 시절에는 호남 출신은 ‘꿈도 꿀 수 없던 자리’로 분류될 만큼 핵심 요직이다. 국세청 조사국장은 기업의 생여탈권을 쥐고 있는 세무조사를 총괄 지휘하는 사령탑이다. YS 시절까지 호남 출신은 한번도 이 자리를 맡아보지 못했지만 DJ 정부 들어서는 봉태열 현 중부청장에 이어 손국장까지 호남 출신이 연거푸 맡고 있다.

    국세청은 역대로 TK 인맥이 두터웠다. 새 정부 출범 초기만 해도 국장급 이상 간부 11명 가운데 TK 출신이 4명으로 가장 많았고 출신 고교별로도 경북고(2명)가 ‘최다’였다. 이에 비해 특정고 출신은 광주고·광주일고·전주고가 각 1명씩이었다. 그에 견주면 지난 1년새만도 광주고는 놀라운 약진을 한 셈이다. 지난해 단행된 보광·한진 그룹 등을 대상으로 한 세무조사는 이들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정원 : ‘통치권 보위’ 차원의 전진배치

    국가정보원은 현 정부 출범 이후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곳이다. 조직 이름부터 안기부에서 국정원으로 바뀔 만큼 인사 ‘물갈이’를 넘어서 조직의 틀을 개편하는 ‘판갈이’가 이뤄졌다. 그만큼 국정원 내 핵심 인맥들의 교체가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YS 정권 하에서 인사 총무 국내정보 파트 등 요직을 장악했던 ‘김현철 사단’과 고려대 인맥 중 상당수가 97년 대통령선거 과정에 이른바 ‘북풍사건’에 관련돼 옷을 벗으면서 거의 모두 퇴진했고 그 자리에 그동안 국정원내 핵심 부서에는 접근도 못했던 호남 출신 인맥들이 이른바 ‘통치권 보위’ 차원에서 전진 배치되었다.

    DJ 정부 초기 나종일 1차장(해외담당), 신건 2차장(국내담당), 이강래 기조실장 등 전북 출신 인사들이 국정원 내 구조조정을 담당하면서 전북 출신, 그중에서도 신건 차장을 주축으로 한 전주고 인맥이 대거 부상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한때 국정원 내에서 전남 출신에 비해 전북 출신들이 부각하는 현상을 ‘신북풍’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금은 임동원 원장, 권진호 1차장, 엄익준 2차장, 최규백 기조실장 등 국정원 수뇌부 가운데 엄익준 국내담당 차장이 전주고 출신이다. 인사 및 예산 업무를 관장하는 최규백 실장은 전남 강진 출신으로 국립 체신고를 졸업했다.

    과거 정권 국무회의는 경북·경남고 동문회

    정권 교체는 고위 공직자들의 출신지 분포도를 바꾸어 놓았다. 과거 정권까지의 출신지 분포가 ‘영남 편중’이었다면 새 정부 들어서는 영남 출신이 줄어들고 호남 출신이 상대적으로 늘어났다. 그에 상응해 고위 공직자의 출신고교 분포도 달라져 5·6공 때 고위직을 독점해온 경북고·부산고 출신과 YS 정권에서 실세 그룹을 형성해온 경남고·경복고 출신의 비중은 축소됐고 광주일고·광주고·목포고·전주고 출신의 비중은 다소 커졌다.

    이처럼 출신 지역 및 출신 고교별 고위 공직자의 분포가 달라진 사실을 놓고 여야·지역별 시각은 천양지차다. 야당은 ‘지역편중 인사’라고 비판하고 있고 여당은 ‘과거 정권의 편중인사 시정’이라는 반론을 펴고 있다. 문제는 특정고교 출신들이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관계를 은연중에 맺고 배타적 영역을 형성하는가에 있다.

    실제로 5·6공 시절에는 “경북고 출신은 전화 한 통으로 민원을 다 해결한다”는 말이 유행했고, YS 정권 때는 “경남고 출신이면 안 통하는 데가 없다”는 말이 있었듯이 특정고교의 위세는 대단했다. 특히 대통령을 배출한 경북고(전두환 노태우)·경남고(YS)의 위세는 가히 하늘을 찌를 만한 것이었다. 6공 정권 중반기였던 90년의 경우 노태우 대통령을 필두로 안기부장 육군참모총장 치안본부장 국세청장 등 당시 실세들이 죄다 경북고 출신 선후배였다. 5·6공 시절 경북고 출신은 동문 기수별로 열거해야 할 정도로 요직을 독차지했다.

    ▲25기 박준규(국회의장) ▲32기 노태우(제13대 대통령) 김윤환(민자당 사무총장) 정소영(농수산부 장관) 정춘택(산업은행 총재) 정호용(내무부 장관) ▲33기 박우병(국회의원) 서동권(검찰총장·안기부장) ▲34기 김만제(경제기획원 장관) 김우현(치안본부장) 박희도(육군참모총장) 이영창(치안본부장) 최세창(국방부 장관) ▲35기 권병식(수도방위사령관) 오한구(국회의원) 이종구(육군참모총장) ▲37기 문희갑(국회의원) 정해창(법무부 장관) ▲38기 서영택(국세청장) ▲39기 사공일(재무부 장관) ▲40기 서완수(특전사령관) ▲41기 박철언(정무1장관)… 이쯤되면 동문만으로도 국무회의와 전군 지휘관회의를 열 수 있을 정도이다.

    YS 정부에서도 집권 중반기였던 95년 8월 당시 법무장관,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육군참모총장, 청와대 경호실장, 경제수석 등 실세들이 모두 경남고 출신 선후배였다. 김기춘·안우만 법무부장관-김기수 검찰총장-배재욱 사정비서관이 경남고 동문이었다. 또 박일룡 경찰청장·안기부 차장과 정형근 안기부차장이 대통령의 동문이었다. 이쯤되면 관계기관대책회의가 곧 동문회고 동문회가 관계기관대책회의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또 어떤가. DJ의 경고 발언대로 아직 그런 폐단은 나타나지 않고 있을지 몰라도 특정 부처 및 분야에서는 “○○고가 뭉치고 있다”느니 “○○고 출신이 약진하고 있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이미 그런 사례와 그로 인한 폐단은 몇차례 감지되었다.

    DJ와 임기를 함께 할 것으로까지 점쳐졌던 천용택 국정원장이 낙마한 배경을 인사 갈등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물론 천원장 경질의 직접 배경은 민감한 정치자금과 관련된 치명적인 설화(舌禍)였다. 그러나 한번의 실수를 동교동계 일부에서 경질 쪽으로 몰아간 데는 신주류인 그가 국방장관-국정원장 재임중 주류 동교동계의 일부 인사청탁을 냉정하게 거절한 데 대한 응보(應報)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동교동계 일부에서 그의 사표 수리를 적극 건의한 데서 연유한 시각이다.

    천원장은 목포 문태고 출신이지만 국방부장관 시절 목포상고 출신에 대한 장성 진급 청탁을 거절한 데 이어 국정원장 재임중에도 인사 청탁자에게는 오히려 불이익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원장은 지난해 8월 감찰실의 직원 비위 내사에 대해 조직적 항명 조짐을 보인 최아무개씨(2급) 등 목포상고 출신 직원들을 대기 발령하거나 인사 조치한 바 있다. 민주당 권노갑 고문의 목포상고 후배인 최아무개씨는 권고문이 야당 시절 오래 전부터 드러내놓고 가깝게 지내올 만큼 배짱이 두둑하고 보스 기질도 있어 목포 출신 안기부 직원들의 맏형으로 통했다. 그 덕분에 천원장은 목포상고 동문들 사이에서 ‘목상(木商) 킬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

    DJ정부 K1·K2의 신경전

    이른바 K1과 K2의 미묘한 갈등도 호사가들에게는 좋은 ‘안주거리’이다. YS 정부 시절에 만들어진 K1·K2라는 용어는 YS 차남 현철씨의 모교인 경복고 출신들이 득세함에 따라 경기고를 K1, 경복고를 K2로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DJ 정부에서는 광주일고가 K1이면 광주고가 K2라는 것이다. DJ 정부 출범 초기에는 K2가 전주고와 함께 두각을 나타내는 바람에 ‘호남 제일 명문고’라는 자부심이 강한 K1 출신들과 미묘한 갈등을 빚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박상천 법무장관-김태정 검찰총장-박주선 법무비서관으로 이어지는 ‘K2 3인방’의 존재는 사정을 관장하는 핵심 요직이라는 점 때문에 두고두고 야당뿐만 아니라 언론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옷로비 의혹 사건이 꼬이게 된 것도 이들이 동문이라는 데 있었다. 광주고 출신으로 부산에서 태어난 김태정 총장은 YS가 임명한 사람이지만 처음부터 박상천 의원이 장관 자리를 포기하거나 YS 시절에도 ‘잘 나가던 검사’였던 박주선 비서관을 법무비서관에 기용하지 않았더라면 화를 자초하지 않았을 것이다. 잘못 끼운 첫 단추였던 셈이다.

    지난 1월 신광옥 대검 중수부장(사시 12회)이 신설된 민정수석에 기용되고 김대웅 강력부장(사시 13회)이 중수부장에 임명된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두 사람 모두 검찰 내에서는 요직을 두루 거친 특수수사통이라는 점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광주일고 선후배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신광옥 검사장의 청와대 입성으로 또 다시 검찰의 중립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마당에 사정을 관장하는 민정수석과 교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후임 중수부장에 동문 후배를 앉힘으로써 불필요한 오해를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김대통령과 청와대 내에서도 이와 같은 폐단과 그로 인한 국정 운용의 부담에 대해 심각히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특히 DJ 정권 내부에서도 새 정부 출범 후 처음 치를 98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의 패배 원인이 인사편중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됨에 따라 논란이 있었으나 ‘정면 돌파론’이 우세했다는 것이다.

    당시 이들이 내세운 논리는 전 정권과의 단절론이었다. 즉 IMF 체제에서 이미 국가 경영에 실패한 정권으로 낙인 찍힌 정부에 참여했던 인사들을 기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또 소수파 정권의 한계를 극복해 개혁을 추진하고 국가를 경영하려면 주체세력을 형성할 수밖에 없는데 지역 안배에 머무르면 개혁의 추진력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실 당시로서는 정권 핵심들 사이에서도 경제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면 DJ 정권은 실패한다는 위기감이 팽배했기 때문에 위기 극복과 개혁 추진을 위한 주체세력 형성을 먼저 풀어야 할 과제로 보았었다. 거기다가 50년 만에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진 마당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명분론과 개혁 주체세력의 책임론이 가세해 ‘기득권 세력’으로 대비되는 영남 인맥을 가로지르는 수밖에 없었으나 문제는 지역감정의 함정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지난 3월2일 김대중 대통령이 유럽 순방을 떠나자마자 한나라당은 ‘DJ 정권 2년, 호남 편중인사를 고발한다’ 제하의 책자를 긴급 발간해 배포했다. 때마침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의 ‘지역감정 책임’ 발언으로 지역감정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자 이 지역감정의 불씨를 살리려는 의도가 명백한 책자였다. ‘인사편중’을 부각해 지역감정에 호소하려는 의도는 이 책자의 부제에서부터 드러났다. 한나라당은 이 책자의 부제에 “국민 정부인가 호남정부인가” “호남편중을 넘어선 호남독식 상황”이라는 선동적 문구를 사용했다. 한나라당은 98년 4월 재보궐선거와 6월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도 갓 출범한 DJ 정부의 ‘인사편중’ 문제를 쟁점화함으로써 이른바 영남 정서를 자극해 선거에서 쏠쏠한 재미를 본 적이 있다.

    이번에도 한나라당 홍사덕 선대위원장과 대변인단은 이 책자를 근거로 연일 DJ 정부의 ‘인사편중’을 물고 늘어졌다. 한나라당은 이 ‘인사백서’ 책자에서 DJ 정부 2년의 인사정책을 ▲DJ 정권 인사는 망사(亡事) ▲집권 전후 DJ 약속은 거짓말 ▲호남 편중 더욱 심화 ▲사정·인사·정보·예산분야 호남편중 극심 ▲총선 앞두고 풀뿌리까지 호남화 기도 등으로 요약했다. 한나라당은 더 나아가 이번 선거에서 ‘반DJ 비호남 정서’ 부추기기를 통한 일종의 ‘호남 고립화 전략’을 구사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인사 편중 문제를 호남 대 영남의 문제만으로 호도해선 안된다. DJ의 고향인 호남에 비해 여타 지역인 수도권과 강원, 충청, 영남, 제주 출신이 불평등하게 차별받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동아’가 입수한 3급 이상 공직자 현황 관련 자료 및 통계에 따르면, 적어도 3급 이상 공무원의 경우 김대중 정부 출범 전(98년 2월24일)과 현재(2000년 2월말)를 비교하면 호남편중 인사가 아니라 과거의 영남편중 인사가 시정되어 가는 과정에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즉 김대중 정부 출범 전 3급 이상 공무원의 지역별 분포는 ▲영남 36.9% ▲호남 20.0% ▲서울·경기 20.7% ▲충청 16.8% ▲기타 지역 5.6% 등으로 영남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러나 2000년 2월 현재의 고위 공직자 분포는 ▲영남 32.0% ▲호남 24.7% ▲서울·경기 20.3% ▲충청 16.1% ▲기타 6.9% 등으로 나타났다.

    거주지와 본적지의 이중기준

    2년 전과 비교할 때 통계상의 의미 있는 차이는 영남 출신 비율이 4.9% 줄어든 반면에 호남 출신 비율은 4.7% 늘어났다는 점이다. 그러나 DJ정부 들어 그 비율이 감소했다고 해도 영남 출신은 여전히 가장 많다. 호남 출신과 비교해도 7.3%가 많다. 따라서 “인사 편중 문제를 호남 대 영남의 문제만으로 호도해선 안 된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은 성립하기 어렵다.

    한편 다른 지역 출신 공직자의 경우 2년 전과 비교할 때 ▲기타 지역(+1.3%) 출신이 조금 늘어났을 뿐 ▲서울·경기(+0.3%) ▲충청(-0.7%) 출신 비율에는 변화가 거의 없다. 결국 전체적으로 보면 DJ 정부 출범 이후 과거 정권에서의 영남 편중현상이 완화되고 호남 차별현상이 해소됨으로써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DJ 고향인 호남에 비해 여타 지역인 수도권과 강원, 충청, 영남, 제주 출신이 불평등하게 차별받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는 한나라당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은 인사편중의 근거로 이른바 10대 권력 핵심 및 장관급 편중실태를 제시하면서 출신지별 인구비교를 근거로 내세웠다. 가장 최근인 95년 인구센서스에 의한 거주지별 인구분포는 한나라당 주장대로 ▲광주·호남 11.7% ▲대구·경북 11.5% ▲부산·울산·경남 17.2%로 영남이 호남에 비해 2.45배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공직자 출신비율을 계산할 때 그 공직자들의 본적지를 기준으로 삼아 비교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민주당측 지적이다. 한나라당이 지역별 인구분포는 현재 거주지를 기준으로 하고 공직자의 지역별 분포는 본적지를 기준으로 함으로써 지역편중을 교묘히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영호남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1935년부터 1960년까지는 평균 32.1% 대 24.9%로 인구편차가 1.29 대 1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70년대 산업화과정에 수도권의 인구가 급증하면서 호남지역인구의 이탈이 두드러졌고 현재는 영남 인구가 호남에 비해 2배 이상 많아졌다. 따라서 고위공직자가 취임하는 40세 이상 연령층(60년 이전 출생자)을 기준으로 본다면 본적지별 영호남간 인구 편차는 1.3 대 1 이하라는 계산이 나온다. 실제로 95년 인구센서스에서 출생지별 인구분포는 영남 31.1%, 호남 19.6%로 영남이 호남의 1.5배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호남에 거주하는 인구는 영남과 비교해 2.45 대 1에 불과하지만 호남에서 태어났거나 호남을 본적지로 하는 인구의 비율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영호남 간의 편중인사를 비판하려면 ▲본적지 기준으로 할 때는 영남 출신 공직자가 호남의 1.3배 이하거나 ▲출생지 기준으로 할 때는 영남 출신 공직자가 호남의 1.5배 이하일 때 가능하다. 그러나 ‘신동아’가 입수한 3급 이상 고위 공직자 관련 자료 및 통계에 따르면 영남 출신 공직자 비율이 호남의 1.3~1.5배 이하로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경우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인구분포는 현재의 거주지를 기준으로 삼고 공직자의 출신은 본적지를 기준으로 삼아 인사편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진실을 은폐하고 의도적으로 호남 편중인사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통계적 조작”이라는 민주당의 주장에는 설득력이 없지 않다.

    한나라당이 인사편중의 근거로 제시한 ‘10대 권력 핵심’이라는 기준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한나라당은 ▲국무총리(박태준·경남) ▲감사원장(이종남·서울) ▲국정원장(임동원·평북) ▲국방장관(조성태·충남) ▲법무장관(김정길·전남) ▲행자장관(최인기·전남) ▲대통령비서실장(한광옥·전북) ▲검찰총장(박순용·경북) ▲국세청장(안정남·전남) ▲경찰청장(이무영·전북) 등을 10대 권력 핵심으로 제시하고 그중 절반인 5명이 호남 출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10대 권력 핵심의 기준이나 근거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예컨대 호남 출신인 법무·행자장관은 ‘10대 권력 핵심’에 포함하면서 경제정책 전반을 총괄하는 재정경제부장관은 제외하고 있다. 또 같은 방식으로 국세청장·경찰청장은 포함하면서도 3군 참모총장은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알다시피 육군참모총장 자리는 불과 2년 전에 김동신 대장이 임명되었을 때만 해도 ‘호남 출신으로는 건군 이후 최초‘를 기록할 만큼 호남 출신을 배제했던 ‘요직 중의 요직’이었다.

    한나라당이 선정한 ‘10대 권력 핵심’의 출신지를 한나라당이 집권했던 때와 그 전신인 민자당 시절의 노태우 정부 때와 비교하면 ‘더 참담한 결과’가 나오게 된다. 이를테면 YS 정부 말기(98년 2월)에는 ‘10대 권력 핵심’ 10명 중 5명이 영남이었고 호남은 1명뿐이었다. 또 노태우 정부 말기(93년 2월)에는 ‘10대 권력 핵심’ 10명 중 영남이 7명인 반면에 호남은 1명도 없었다.

    한나라당이 내세운 편중인사의 또 다른 근거는 ▲청와대비서실 ▲새천년민주당 ▲감사원 ▲국정원 ▲검찰 ▲군부 ▲경찰 ▲국세청 등 이른바 ‘8대 권부 인사편중 실태’이다. 한나라당은 이 ‘8대 권부’의 핵심 요직을 선정해 각 기관의 요직을 호남이 독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당(민주당)을 권부로 분류하는 선정 기준에는 문제가 있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민주당을 ‘호남지역당’이라고 몰아세웠다. 그런 한나라당이 민주당의 호남편중을 문제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또 감사원의 경우 한나라당은 감사원장과 감사위원 6명 그리고 사무총장을 요직으로 제시하고 8명 중 4명을 호남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감사원의 요직은 통상 감사계획 수립과 감사지휘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사무총장, 사무 1·2차장, 1∼6국장 등이 꼽힌다. 이들을 모두 포함하면 총 24명(감사위원 6명, 국장급 이상 18명) 가운데 호남은 7명(29.2%)이고 영남은 9명(37.5%)이다.

    검찰의 경우도 한나라당은 요직을 법무장관, 검찰총장, 서울지검장 등 7개 직위로 한정해 그중 호남 출신이 57.1%(4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일선 검찰의 수사를 지휘하는 지검장 12명을 포함한 주요 보직자 20명으로 범위를 넓히면 영남 8명(40%), 호남 6명(30%)의 비율이 된다.

    한나라당은 경찰의 경우 경찰청장(이무영·전북) 경찰차장(이헌만·경남) 해양경찰청장(김종우·경남) 서울지방청장(윤웅섭·서울) 경찰대학장(김재종·전남) 정보국장(성낙식·전북) 치안비서관(최기문·경북) 기획정보심의관(배성수·전북) 사직동팀장(이송범·전남) 등 요직 9명 중 5명(55.6%)이 호남 출신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경찰 사정에 밝은 관계자들은 치안감 중 요직으로 꼽히는 경찰청 경무기획국장(전용찬·강원) 수사국장(이규식·경남), 경무관 보직의 경찰청 감사관(유봉안·경북), 서울청 경무부장(이용상·전북) 서울청 정보부장(김중겸·충남) 등은 누락시키고 총경급인 경찰청 조사과장(사직동팀장)을 포함시키는 기준에는 머리를 갸웃거린다. 2월 현재 경무관 이상 경찰 간부 79명의 출신고별 소재지 분포는 영남 27명(34.2%) 호남 23명(29.1%) 서울·경기 12명(15.2%) 충청 12명(15.25) 기타 5명(6.3%) 등이다.

    군부의 경우에도 한나라당은 11개 요직 중 4명(36.4%)이 호남 출신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장성 출신지 분포 기준으로 보면 영남 38%, 호남 22%이고 대령 출신지 구성비도 영남 36%, 호남 20%로 한나라당의 편중인사 주장은 설득력이 약해진다. 한나라당은 청와대의 경우에도 충남 출신인 남궁진 정무수석을 전북 출신이라고 오기(?)했다.

    한나라당은 또 현 정권이 선거를 앞두고 일선 경찰서의 정보과 요원과 파출소장을 호남 출신으로 교체했다고 주장이 했다. 한나라당은 이밖에도 구청장이 여당 소속인 지역을 중심으로 동장·통장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가 진행되었고 특히 통장은 서울시내의 경우 거의 절반으로 감축하면서 ‘호남화’가 뚜렷해졌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그 구체적인 근거로 ▲동장의 경우 동작갑 9명 중 4명, 성북을 14명 중 8명이 호남 출신이고 ▲경찰의 경우 강동을 파출소장 9명 중 4명, 은평을 파출소장 10명 중 4명이 호남 출신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파출소장은 경찰서 계장들을 1~2년 주기로 교체 임용하는 것이 경찰의 오랜 인사관행임에 비추어 이런 주장은 근거가 없어 보인다. 특정지역 출신자 위주로 정보 인력을 배치할 경우 정보 수집능력이 저하되는 등 문제가 많기 때문에 출신지역, 학력, 연령 등을 고려해 안배하는 것은 정보수집의 기본수칙이다. 신동아가 확인해본 결과 3월 현재 강동을 지역 파출소장 9명 중 호남은 한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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