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7월호

“한국 인터넷을 키운 건 8할이 성욕”

  • 정철영 < 자유기고가 >

    입력2005-05-24 10: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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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붕알 황붕알 선생의 욕기행’ ‘성체위 365’ ‘누드 알까기’…. 인터넷 상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성인 방송 프로그램들이다. 초고속통신망을 타고 흐르는 성 혁명의 핵폭탄들. 왜 한국인은 ‘핑크 콘텐츠’에 열광하는가.
    어느 시인은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고 썼지만, 한국의 인터넷을 키운 건 8할이 ‘성욕과 물욕’ 아니었을까.

    애초 예상이나 의도와 달리 시장 진입 후 소비자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켜 경제·사회 시스템을 새로운 단계로 진입케 하는 것을 컴퓨터업계에서는 ‘킬러 앱(killer application)’이라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의 대중화를 이끌어낸 킬러 앱이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WWW)이었다면, 10대와 20대 위주에서 30대 이상의 평범한 사람들까지 고급 사용자로 변화시킨 한국 인터넷의 킬러 앱은 단연 ‘O양 비디오’와 ‘데이(day)’를 넘어 ‘미니트(minute)’ 트레이딩으로 치닫고 있는 사이버증권거래다.

    마케팅 조사 회사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한국이 얼마나 인터넷 ‘충성 고객’이 많은 나라인지를 보여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다국적 인터넷 시장조사 업체인 닐슨넷레이팅스는 지난 3월 13일 전 세계 웹사이트 가운데 가정에서의 접속 기준으로 가장 많은 회원을 보유한 10개 사이트 중 국내 사이트가 7개를 차지하고 있고(2001년 2월 기준), 페이지뷰 기준으로는 5개가 세계 10위권에 들었다고 발표했다(2001년 1월 기준). 또 같은 회사가 지난 4월30일 발표한 세계 21개국 가정에서의 인터넷 접속 비교 분석 결과를 보면 한국이 20세 미만 청소년의 인터넷 접속률이 가장 높은 나라로 나타나 있다(2001년 3월 기준).

    넷밸류코리아가 지난해 10월 ‘한국 인터넷 사용 현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 네티즌의 월 단위 웹 접속일수와 체류시간은 각각 13.5일, 16시간으로 홍콩(12일·11시간), 싱가포르(12일·10시간), 대만(10일·8시간)은 물론 미국(11.4일·10.5시간), 영국(9.7일·6.3시간) 등 선진국에 비해서도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또 인터넷 인구의 80.9%가 사용 경력 2년 미만의 신규 진입자인 것으로 조사돼, 사용자 층이 단기간에 얼마나 급증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성 혁명 뇌관은 정보기술



    이제 컴퓨터나 네트워크에 특별히 밝은 사용자가 아니더라도 신원을 숨길 수 있는 핫메일 같은 곳에다 메일 계정을 만들고, ‘아이러브 스쿨’ 같은 사이트에서 옛날 학교 친구들을 찾고, 그렇게 만난 친구들끼리 ‘다음 카페’ 같은 곳에 모임을 개설한다. ‘버디버디’ 같은 인터넷 메신저를 켜놓고 근무시간에 짬짬이 수다 떨면서 ‘좋은 것’들을 교환하고,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TV 방송국 사이트에 들어가서 드라마 재방송을 시청하고, 잠깐씩 ‘선수’들끼리 모여 온라인 바둑이나 고스톱을 한 판 겨루는가 하면, ‘소리바다’에서 최신 가요를 찾아 다운받고, ‘팝 폴더’에 저장공간을 마련해서 자료를 공유한다.

    조금 익숙한 사용자라면 비밀번호나 백도어(Back Door) 정보가 집중적으로 올라오는 게시판에서 얻은 정보를 가지고 ‘텔리포트(Teleport)’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유료 성인 사이트의 내용을 통째로 가져오고, 유즈넷 뉴스그룹을 통해서 최신 성인 사진 자료나 개봉영화의 해적판 디지털 버전을 구한다. FTP(파일전송 규약) 서버를 통해서 대용량의 동영상이나 상용 소프트웨어를 교환하고, ‘스트림박스(Streambox)’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원래는 저장할 수 없게 되어 있는 실시간 인터넷 방송들을 녹화하고, 주민등록 생성 프로그램으로 만든 가짜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채팅 사이트에 가입해서 ‘사이버 연애’에 나선다.

    매매춘과 ‘흥분 산업’의 불균형

    한국의 성문화는 초고속통신망의 보편화를 계기로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초고속통신망의 확산이 가져온 가장 직접적인 변화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성인 미디어 산업이 본격 태동했다는 사실이다.

    섹스산업은 크게 인간을 매개로 한 것과 미디어 위주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고대사회에서부터 존재해오면서 구매자에게 성적인 절정감의 제공을 상품으로 하는 매매춘이, 후자는 ‘공공연하게 색정을 돋우는’ 것을 의도하는 성인 잡지·비디오·인터넷 성인 사이트 등 포르노그래피가 대표적이다. 모든 종류의 성 관련 서비스가 거의 합법화되어 있는 선진국을 기준으로 섹스산업을 분류해본다면 와 같다.

    그런데 외국과 비교했을 때 종전 한국의 섹스산업, 성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육체로 매개되는 ‘사정 산업’의 지나친 비대와 미디어 중심 ‘흥분 산업’의 원천 봉쇄라는 양자 사이의 극심한 불균형에 있었다.

    매춘여성의 수치는 그 개념 규정에 따라, 또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 5000명 설(정부 여성특별위원회)에서부터 120만명 이상 설(기독교계통 단체들)까지 커다란 차이가 있지만 한국은 전국 어디서건, 그러니까 술 한 잔하면서, 이발하면서, 목욕하면서, 심지어 커피를 주문하면서도 ‘할 수 있는’, 세계에서 드문 나라인 것만은 분명하다. 더구나 모든 유형의 매매춘을 전면 금지하는 ‘윤락행위 등 방지법’과 강력한 치안·행정 조직이 존재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처럼 만연된 매매춘 현상은 이채롭기까지 하다.

    이에 비해 ‘흥분 산업’에 대한 규제는 심했다. 이는 그 전제가 되는 ‘성적 표현의 자유’가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정치적 민주화의 신장과 문화 개방, 영화 ‘거짓말’에 대한 사법처리 유보, 인터넷의 확산에 따른 ‘글로벌 스탠더드’의 확산 압력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바뀌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초고속통신망의 대중적 보급은 그 망을 이용해서 비즈니스의 기회를 잡으려는 시도들을 낳았으며, 잠재적인 수요에 비해 기존 사업자가 거의 없던 성인물로 투자가 집중되는 현상이 생겼다. 인터넷 성인 서비스는 현재 한국 정보통신 분야의 ‘콘텐츠 비즈니스’에서 흑자를 보고 있는 몇 안 되는 분야 중 하나다.

    성인 미디어 산업의 선두 주자는 인터넷 유료 성인방송이다.

    인터넷 방송에는 크게 2가지 기술이 동원된다. 하나는 스트리밍 기술이다. 스트리밍은 정보가 패키지 개념으로 한꺼번에 다운로드 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시냇물이 흐르듯 끊임없이 흘러 들어가는 것으로, 전체 정보가 다 뜨기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어 실시간 방송에 자주 사용된다. 다른 하나는 멀티캐스트 기술이다. 멀티캐스트란 특정 정보를 원하는 사용자에게만 전달하는 방식을 뜻하는데, KBS 웹사이트로 가서 ‘왕건’ 녹화 분을 필요한 부분만 바로 볼 수 있는 것처럼 ‘온 디맨드’(On Demand)의 정보 전달을 가능케 하는 기술이다.

    인터넷 성인방송은 2가지 유형으로 대별된다. 하나는 기존의 16㎜ 에로비디오들을 스트리밍 기술과 멀티캐스팅 기술을 이용해서 인터넷으로 서비스하는 경우다. 이런 방송들은 비디오 가게에 가서 눈치를 보며 에로 비디오를 빌리는 쑥스러움을 모면하게 해준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인터넷 성인방송은 세미 누드 혹은 전라(全裸)의 인터넷 자키(IJ)를 중심으로 회원들의 참여 속에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방식이다.

    IJ 중심의 인터넷 성인방송에서 가장 전형적인 방식은 대화형 프로그램이다. 야한 복장의 IJ가 등장한다. 그녀는 자기의 성경험, 좋아하는 체위, 최근 유행하는 음담패설, 성 관련 풍속, 범죄뉴스 등을 소재로 삼아 노골적인 표현을 써가며 자연스럽게 수다를 떤다. 이용자들은 게시판에 원하는 것을 주문하는 글을 올린다. IJ는 게시판에 뜬 글을 모니터를 통해 보면서 일일이 읽어준다.

    “○○님, 오늘 제 브래지어가 섹시한 것 같다고요. 님을 위해 신경 좀 썼지요. ○○님 특별한 성감대는 없냐구요. 전 온 몸이 아주 예민한 성감대랍니다….”

    방송이 진행될수록 이용자들은 IJ에게 옷을 하나씩 더 벗을 것을 요구하는 글들을 빗발치게 올리고, IJ의 속살이 노출될수록 화제는 그녀의 몸 구석구석으로 옮겨가다가 IJ가 전라가 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인터넷 성인방송은 과연 어느 정도로 인기가 있을까. 의문을 풀기 위해 엔터채널이라는 성인방송국을 운영하면서 한국인터넷방송협회 성인채널분과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서모 사장을 만났다. 그는 1999년 10월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IJ 중심의 성인방송국인 엔터채널을 만든 주인공이다.

    -현재 인터넷 성인방송국은 몇 군데인가.

    “IJ가 중심이 되어서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곳이 40군데쯤, 에로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는 곳까지 포함하면 100군데쯤 된다. 난 앞의 유형만 인터넷 성인방송국이라고 분류하고 싶다.”

    -업계 전체의 시장규모와 유료 회원 수는 얼마나 되나.

    “40여 군데 성인방송국의 올해 예상 매출 총액은 150억원에서 200억원 정도이고, 유료회원 수는 100만 명 안팎일 것으로 추산된다.”

    -어디가 메이저인가?

    “엔터채널을 비롯해서 바나나TV, 몰카TV, 노브라TV, 쌩쇼 등이다.”

    -회원을 연령별, 성별, 지역별, 접속회선 별로 나눈 통계가 있는가.

    “업계 전체적으로 집계된 것은 없지만 엔터채널 자료는 공개할 수 있다. 6월10일 현재 연령별로는 30대 40%, 20대 30%, 40대 25%, 50대 5% 정도고, 성별로는 남자 85%, 여자 15%다. 지역으로는 서울·경기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인구비례로 봤을 때 대전·충청 지역도 만만치 않다. 과학기술분야의 고학력자들이 대전에 몰려있기 때문인 것 같다. 접속회선은 회사·학교의 랜 15%, 가정용 초고속통신 80%, 전화접속 5% 정도로 추산된다.”

    -IJ에 대한 대우는 어떤가. 남자 IJ도 있는가?

    “신규 설립하는 곳이 많아지면서 구인난이 빚어지고 있고, 때문에 개런티도 많이 오른 상태다. 보수는 주 7일 1시간씩 7회 출연 기준으로 400만∼500만원이다. 여성 IJ는 200명 안팎이고, 남성 IJ는 5명 정도 된다.”

    -단속당한 적도 있는가.

    “올 1월19일 검찰에서 10여 군데 성인방송국을 단속했다. 당초에는 회원 중에 청소년을 찾아내서 청소년보호법 위반죄를 적용하려 했지만 어떤 업체에도 청소년 회원이 없었기 때문에 전기통신기본법 위반으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누드 알까기’와 ‘우리 욕 기행’

    인터넷 성인방송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공중파 방송국 출신들도 이 분야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주병진 씨가 중심이 되어 설립한 프랑켄슈타인TV가 대표적이다. 이들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기획력이나 내용에서 기존 것들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공중파 출신들이 설립한 인터넷 성인방송국이 대체로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판단한다. 콘텐츠 제작에 많은 돈을 투자하지만, 공중파와 인터넷 성인방송의 중간 노선을 택해 이용자들로부터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성인물은 천편일률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인터넷 성인방송국의 아이디어 싸움을 보면 생각을 달리 하게 될 것이다. 비록 아직은 몇 편에 불과하지만 기발한 기획과 날카로운 풍자 정신이 돋보이는 프로그램도 있다.

    필자가 재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붕알 황붕알 선생의 우리 욕 기행’, 개그맨 최병서가 진행하는 ‘성체위 365’, 공중파 코미디 프로의 ‘알까기’ 코너를 패러디한 ‘누드 알까기’, 조연급 탤런트들을 출연시킨 성인용 시트콤 등이다.

    ‘우리 욕 기행’은 도올 김용옥 복장을 한 개그맨이 나와서 방청객을 상대로 남녀 성기와 관련된 비속어의 기원과 용례를 강의하는 것이다. 예쁜 목소리의 여자 성우가 성과 관련된 적나라한 비속어가 들어 있는 보조 교재를 읽는 장면도 그 자체가 ‘근엄한’ 공중파와 ‘엄숙한’ 교육과정에 대한 통렬한 풍자로 느껴진다.

    ‘성체위 365’는 개그맨 최병서가 김동길 교수의 모습으로 분장한 채 전라로 여러 가지 체위를 실연하는 남녀의 바로 옆에서 유머러스한 해설을 덧붙이는 프로다. 체위명도 ‘소녀경’ 등의 책에 나오는 어려운 한자어가 아니라 ‘꼼짝마 이 지지배야 체위’ ‘걸레질하며 뒤치기 체위’ ‘앉아서 떡치기 체위’ 등 과감히(?) 한글화를 시도하였다.

    욕망의 충족 구조

    여성들은 인터넷 성인방송을 어느 정도로 즐길까. 인터넷성인방송협회 측의 말로는 현재까지 여성전용 성인방송은 없다고 한다. 엔터채널은 시장조사를 목적으로 몇 달 간, 남성 IJ가 진행하는 생방송 프로그램을 전업주부들이 여유 있는 오전 시간대에 편성해 시험 방송을 해 보았다. 그 결과 여성 접속자 비율이 밤 시간대보다 큰 폭으로 늘어나 남성 대 여성 비율이 75% 대 25% 정도까지 되었다. 하지만 이용자의 절대수가 부족했기 때문에 수익을 낼 수 없어서 중단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인터넷 성인방송의 내용은 천편일률적이다. 지난 1월 검찰의 단속 이후 업체들도 몸조심을 하는 탓에 선정성도 많이 약화되었다. 표현의 노골성을 기준으로 한다면 에로비디오에도 한참 못 미친다. 하지만 인터넷 성인방송은 여전히 가장 인기 있는 유료 서비스다. 이용자들이 인터넷 성인방송을 선호하는 데는 그곳에 독특한 욕망의 충족 구조가 존재하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첫째, 친밀성과 성적 흥분은 정비례한다. 서양보다는 일본에서 제작된 성인물에, 그 보다는 한국인이 등장하는 것에 더 강한 자극을 받는 것은 관객이 더 쉽게 화면 속의 주인공에게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여성이 한국어로 진행하는 인터넷 성인방송은 그 자체로 친밀감에서 우러나오는 성적 흥분과 긴장을 가져다준다.

    둘째, 우리나라처럼 공식문화에서 성적 표현이 강력하게 억압된 곳에서 일반화된 변태 심리 중 하나가 언어적 노출증과 관음증이다. 여성들 앞에서 심한 음담패설을 해 당황하는 반응을 보며 강한 쾌감을 느낀다거나, 여성이 노골적인 성적 표현을 말하도록 유도하는 데 집착하는 심리가 이에 해당된다. IJ 중심의 성인방송에서는 여성의 입을 통해 공식문화에서 훨씬 벗어난 성 표현들이 등장한다. 시청자들은 이를 통해 언어적 관음증을 만족시킨다.

    셋째, 인터넷 성인방송의 양방향성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만족감을 준다. 방송 도중 네티즌들이 ‘상의를 벗어라’ ‘다리를 벌려 봐라’ 등의 요구를 하면 IJ는 그대로 따라한다. 비록 모니터 상이긴 하지만 자신의 지시에 복종하는 IJ를 보면서 그녀가 자신과 1대 1로 교류하고, 자신의 지배 아래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만족감은 인터넷 성인방송 외의 다른 어떤 미디어도 제공할 수 없는 독특한 쾌감이다.

    초고속통신망의 성장은 인터넷 성인 서비스 중 가장 대중적인 웹 서비스에도 변화를 몰고 왔다.

    가장 주목되는 변화가 국내 또는 해외에서 한국 여성들을 출연시켜서 자체 제작하는 본격적인 ‘코리안 하드코어물’의 등장이다. 일부 업자들이 국내와 외국의 성 표현물에 대한 규제기준이 다른 것을 틈새 삼아 외국에 합법적인 사업체를 차려놓고 하드코어 위주의 한글 서비스 사이트를 개설한 것이다. 과거 초고속통신망 사용자가 많지 않던 시절에는 동영상 서비스가 불가능해 주로 뉴스그룹에서 교환되는 사진 자료들을 모아 서비스하는 수준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초고속통신망이 일반화되자 한국인들을 등장시킨 하드코어를 직접 제작해 고액의 회비를 받고 외국에 설치된 서버를 통해 인터넷 방송 또는 다운로드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국인이 나오는 최근작으로는 ‘미스코리아 불법 비디오’라는 일본어 제목이 붙어 있는 ‘진주희’ 2편, ‘코리안 탤런트의 불법 비디오’, ‘강제숙’ ‘강제숙 동생’ 중국에서 촬영된 ‘박유미’ 등이 있다.

    이들 동영상 서비스 사이트는 많은 경우 사기성이 농후하다. 일본은 연 5000여 편 이상의 성인물과 포르노가 출시될 정도로 제작량이 많고 여배우 층도 두터운데, 그 중 국내 유명 여성 연예인과 용모가 유사한 여배우가 출연한 성인물을 발굴해 국내 연예인 출연작이라고 속여 파는 것이 전형적인 수법이다.

    두 번째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글판 유료 성인사이트의 전문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백화점 식으로 모든 영역을 다루는 사이트들과 달리 이런 사이트들은 특정 분야나 내용만을 다룬다. 노출증 경향이 있는 부부·커플을 주제로 한 커뮤니티 ‘아내사랑 EmyWife’, 미국과 일본의 하드코어 성인만화 번역본만을 서비스하는 ‘에로스헨타이’ 등이 그 대표적 예다.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사이트 중에서는 누드를 테마로 하는 사진자료만이 아니라 인터넷상에서 누드 데생이나 크로키 훈련을 할 수 있는 ‘누드 크로키’, 스타킹·유니폼·가죽옷·엉덩이·가슴 등 특정 성향의 패티시즘에 방점을 찍은 ‘패티시 코리아’ 등을 꼽을 수 있다.

    비디오·성인만화·소설·애니메이션·사진 분야에서 성인용 콘텐츠를 보유한 군소 제작사들이 정보통신업계의 기술력 있는 큰 회사를 중심으로 해 e-마켓플레이스를 구축한 후 마케팅 하는 방식도 새로운 양상이다. 마켓플레이스를 번역하면 ‘장터’정도가 될 것이다. 장터에 각종 상품들을 취급하는 점포와 노점상이 줄지어 있는 것처럼, 단품으로 판매하기 어려운 야한 소설을 오디오화한 ‘MP3 야설’, 성인용 플래시 애니메이션 등의 아이템도 e-마켓플레이스에서라면 취급이 가능하다. 나우누리의 ‘성인별곡’, 인티즌의 ‘adult channel’ 등이 새롭게 시도되고 있는 성인 미디어판 e-마켓플레이스라고 하겠다.

    “고수님들. ○○의 아뒤(ID)와 패스 하나만 부탁해요. 고수님들, ○○을 꼭 보고 싶어요.”

    한글로 꾸며진 성인 게시판에서 흔히 눈에 띄는 글들이다. 회원제 사이트에 드나들 수 있는 ID와 패스워드를 간청하는 것. 이런 애절한(?) 사연을 읽은 고수들은 해킹 도구를 이용해 건진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던져준다. 이걸 받아 쥔 초보는 허겁지겁 접속을 시도하지만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실패하거나, 설사 성공했다 하더라도 며칠 못가 ‘인증이 요구됨(Auth-orization Required)’이라는 메시지를 보게 된다. 그게 귀찮아서 카드로 결제하고 회원제 사이트에 들어가지만, 빈약한 컨텐츠와 느려터진 속도에 아차 속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런 것은 성인사이트를 서핑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씩은 겪은 일일 것이다.

    ‘유즈넷’의 놀라운 힘

    이런 낭패를 경험한 사람들이 새롭게 시도하는 것이 유즈넷 또는 뉴스그룹 서비스다. 뉴스그룹 서비스는 한국통신이나 데이콤, 두루넷 등 메이저 3사를 비롯해 사용자가 가입한 어떤 접속 서비스업체에서도 제공하지만, 그 질에 있어서는 업체별 편차가 심하다.

    유즈넷은 인터넷 초창기부터 성인자료나 상용 소프트웨어, 크랙 파일(암호가 해제된 파일)들을 수집, 교환하는 장소로 널리 이용되었지만 웹의 등장과 함께 그 비중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성인물 자료에 관한 한 유즈넷은 여전히 전 세계 각양각색 마니아들이 개인적으로 만들거나 해킹한 자료들을 일차적으로 배포하는 곳이다. 개인이 만든 성인물 자료는 뉴스 그룹 → FTP → 웹사이트의 순서로, 저작권자가 만든 유료 성인용 자료들은 유료 웹사이트 → (해킹) → 뉴스그룹 → FTP → 웹사이트의 순서로 유통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무명의 이승희를 유명하게 만든 것도 그녀 사진을 스캔했던 ‘스캔마스터’ 시리즈가 뉴스그룹을 통해 공개되었기 때문이며, 인터넷 성인물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대개 알고 있는 일본 성인모델 사진 스캔 시리즈인 ‘블루 버드’, 펜트하우스 전속 여류 사진작가였던 수지의 작품들도 모두 뉴스그룹을 통해 배포된 후 웹사이트에서 확산된 것이다. 우리나라 인터넷서비스 제공업체에서는 걸러내는 alt. binaries.multimedia.erotica, alt.binaries.multimedia.erotica.asian, alt.binaries.games.adult, alt.binaries.vcd.xxx, alt.binaries.fullpost.megascans.collectors 같은 뉴스그룹들에는 하루에도 몇 기가바이트 분량의 성인물이 올라온다.

    성인자료를 구하는 데 있어서 만큼은 유즈넷 서비스는 웹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장점이 많다. 우선 웹은 일일이 찾아가야 하지만 유즈넷은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웹은 서핑에서 시작해서 서핑으로 끝난다. 어느 사이트가 영양가가 있는지 끊임없이 탐문하고 찾아가서 봐야 한다. 이때 들이는 시간과 통신자원의 낭비도 클 것이다. 하지만 유즈넷은 자신이 원하는 뉴스그룹을 정하고 나면, 그 그룹만 계속 이용하면 된다.

    또 웹은 사이트마다 회원으로 가입해야 하지만 유즈넷은 한번만 가입하면 된다. 괜찮은 웹사이트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곳일수록 월 1만원 이상의 회비를 내야 한다. 유즈넷에서는 최고 수준의 웹사이트에서 유료로 제공되는 자료들이 유통된다. 괜찮은 유즈넷 서비스 한 곳에 가입하면 수백 개의 일류 유료 웹사이트 회원이 된 것과 마찬가지다.

    웹은 수동으로 자료를 받지만 유즈넷은 자동으로 자료를 받는 셈이다. 웹은 자료 전송이 불편하다. 기본적으로 파일 단위로 자료를 다운로드 받게 되어 있다. ‘텔리포트’ ‘ 웹집’ 같은 프로그램으로 사이트 전체를 한꺼번에 받아올 수도 있지만, 제대로 된 사이트일수록 이런 편법이 불가능한 곳이 많고, ‘로봇 배제 규약’의 채택도 확산되고 있다. 이에 비해 유즈넷은 에이전트(Agent) 등의 뉴스 읽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자동 다운로드 받는 서비스가 기본적으로 제공된다. 수만 개의 파일도 간단한 설정만으로 전송 받을 수 있다.

    포르노와 초고속통신망

    웹의 한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제한돼 있지만 유즈넷은 거의 무제한이다. 자료가 풍부한 웹사이트라도 자체 제작한 콘텐츠는 10기가바이트가 넘는 곳이 드물다. 이는 월 10달러 안팎의 회비로는 제작비를 충당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즈넷에서 통용되는 자료는 비록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이긴 하지만, 수백 기가바이트에 달한다.

    웹은 저작권의 속박을 받지만 유즈넷은 비교적 자유롭다. 저작권이 있는 자료의 웹 유통은 갈수록 규제가 심해지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저작권을 침해하면서 자료를 유통시킨다는 치명적인 맹점에도 불구하고, 유즈넷은 그 제공자가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무상으로 하기 때문에 저작권 압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이것이 유즈넷에서 통용되는 자료가 웹보다 훨씬 풍부한 이유이다.

    이처럼 ‘장점’이 많은 유즈넷 서비스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용이 매우 저조했다. 넷밸류코리아가 지난 5월 발표한 ‘한국 인터넷 사용 현황’에서 인터넷 프로토콜별 사용 경험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면 웹 이용 경험이 98%에 달하는 데 비해 유즈넷 이용은 2.5%에 불과하다. 그러나 주목되는 것은 지난 2월 1.3%에 비해 불과 두 달 만에 2배나 급상승했다는 사실이다.

    그 동안 우리 나라에서 유즈넷 서비스 이용이 저조했던 것은 뉴스그룹에서 자료를 다운받거나 올리려면 비교적 까다로운 사용법을 익혀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지침 등에 의해 인터넷서비스 제공업체들이 유즈넷의 주류격인 ‘sex’와 ‘erotica’ 카테고리의 뉴스그룹을 거의 완벽하게 차단한 것도 그 이유였다.

    그러나 지난 몇 달간 일반 가정에까지 초고속망이 보급되면서 alt.bin aries. korea, korea.binaries.warez, korea.binaries.movies, korea.binaries.animations 등 대용량 프로그램이나 mp3음악파일, 영화와 애니메이션 데이터를 교환하기 위한 한글 뉴스그룹이 차례로 만들어졌다. 이중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그룹은 ko-rea.binaries.movies로서, 하루 평균 서너 편의 과거 히트 작품과, 개봉 중이거나 개봉관에서는 간판을 내렸지만 아직 비디오 테이프로는 발매되지 않은 최신영화들이 올라오고 있다. 이 뉴스그룹에 올라오는 자료들은 해당 영화의 DVD판이 존재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데이터의 포맷이 다르다. 즉 과거 유명작품들은 대개 DVD 타이틀로 재발매되었기 때문에 암호화된 DVD 데이터를 임의로 풀어 다시 암호화한 divx(디빅스라고 발음한다) 방식으로, 개봉작이나 최신작들은 주로 개봉관에서 상영하는 화면을 디지털 캠코더 등으로 녹취해 암호화한 엠펙(MPEG1) 방식으로 올라온다. 뉴스그룹을 통해 편 당 수백 메가바이트씩 되는 영화를 수집하는 것이 초고속통신망 시대의 새로운 풍속이 되고 있다.

    초고속통신망은 네티즌에게 종량제 요금체계와 속도 스트레스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선물을 가져다 주었다. 접속을 전혀 하지 않건, 하루 종일 하건 요금이 동일하기 때문에 인터넷 중독자가 아니어도 채팅 및 파일 전송 프로그램들을 띄워놓고 24시간 데이터를 주고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컴퓨터로 다른 작업을 하면서도 친구, 동료, 가족과 얘기를 나누거나 자료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소프트웨어가 인스턴트 메신저이다. 넷벨류코리아의 조사에 의하면, 인스턴트 메시징의 이용률은 금년 1월 전체가구 내 인터넷 이용자의 25.8%, 2월 29.9%, 3월 33.8%, 4월 40.4%로 급증하고 있다.

    초고속통신망 가입자는 조금만 적극적이 되면 엄청난 데이터를 모을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모은 데이터 중 저작권이나 ‘미풍양속’의 기준으로부터 떳떳한 것이 얼마나 될까. 쌓인 데이터를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지만 수백 메가씩 하는 것을 홈페이지에 올려놓을 수도 없고, 이메일로 전송할 수는 더더욱 없다. 저작권을 침해했거나 ‘음란물’이기 때문에 공공연하게 주고받는 것이 부담스러운 경우도 많다.

    P2P(Peer to Peer) 서비스는 이런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환영받고 있다. P2P는 중앙 서버 없이 인터넷에 연결된 PC들을 직접 연결해 사용자간 파일 공유를 가능케 하는 기술이다. 같은 랜(LAN)을 사용하는 PC끼리 파일을 공유하는 방식을 전체 인터넷으로 확대한 것인 셈이다.

    지금은 불법이 되어버렸지만 냅스터, 소리바다는 음악파일은 물론 동영상까지 교환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그런 가운데 최근 개발된 애니메이션셰어(구 애니나라)는, 냅스터 등이 미국음반협회와의 소송에서 불리한 입장에 처한 이유가 중앙 서버가 존재해 파일공유 시 중재 역할을 해주는 P2P 방식의 불완전성 때문이라고 보고, 중앙서버 없이 PC들을 아예 인터넷 계정만으로 직접 연계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터넷 사용자가 방송 수신 단말기처럼 일방적인 수용자에 가까웠다면, P2P 방법으로 데이터를 교환하는 것은 마치 1 대 1로 전화 통화를 하는 것처럼 사적이고 비밀이 보장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 P2P 방식 역시 자료 교환 및 공유에는 좋으나 반사회적인 표현물의 유통을 방지하는 데는 속수무책이다.

    저작권 침해는 물론 콘텐츠 유료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사용자들의 균형잡힌 가치관 없이 오용되는 P2P 서비스는 인터넷 산업을 침체시키고 불법 성인물을 대폭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일본식 외설 규제의 함정

    초고속통신망이 보편화하고 인터넷 사용층이 확대될수록 정부는 인터넷 성표현물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성표현물 유해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성기 노출 여부다. 그러나 유해성의 판단을 성적 노골성의 정도로 잡아 단속과 허용을 결정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이런 방향의 규제가 얼마나 부적절할 수 있는지에 대해 탄네바움이란 학자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그는 피실험자들에게 포르노 한 편을 세 가지로 편집해 보여주었다. ①원본, ②강제추행 장면을 미묘하게 제거한 검열본 ③강제추행 장면을 완전히 제거한 검열본. 그 후 피실험자들이 작성한 진술을 분석한 결과, 영화의 성적 노골성 정도와는 정반대로 사람들은 ③,②,①의 순서로 성적 자극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상상이 실제보다 더 유혹적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규제가 올바르게 시행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의도했던 바와 정반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피실험자들은 자세한 묘사보다는 느슨한 장면들에서 오히려 더 자극을 받고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험 결과는 성적 노골성만 문제 삼고 폭력성, 잔혹성에는 비교적 관대한 우리 성인물 규제 정책의 허점이 무엇인지를 시사해준다.

    표현의 자유가 신장된 다음 한국식의 편리한 검열 방식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은 일본의 선례를 보면 더욱 명백해진다. 일본도 규제의 1차적 기준은 성적 노골성 여부로, 음모 노출까지 허용된다. 그러자 일본 성표현물들은 규제는 피하면서 남성의 성적 상상을 가장 자극할 수 있는 테마로 가학증을 택했다. 여성을 결박해서 거꾸로 매달고, 채찍질을 하고, 고문하고, 모욕을 주고, 배설행위를 강제하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은 것이다. 성기만 보이지 않는다면.

    그 결과 오늘날 일본은 책에서부터 컴퓨터게임에 이르기까지 사디즘이 모든 성오락물의 주류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규제의 기준까지 일본을 따를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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